무아와 윤회 / 월호스님
2018년, 미국 ‘빅 싱크’는 불자들이 다른 종교인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강하다는 연구 결과를 낸 바 있다. 생사초월과 무아를 중시하는 불자들이기에 더욱 충격적인 결과였다.
‘자기 자신은 연속성과 영속성을 가지는가?’라는 질문에 불교 출가자들의 대답이 가장 부정적이었고, ‘죽음과 자신의 소멸에 대한 공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불교 출가자들이 가장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연구팀은 이 모순에 대해 “불교는 죽음을 통해 반열반을 성취한다는 점에서, 영혼의 영속성을 주장하는 기독교보다 자신의 소실에 대한 감각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육신을 신기루와 같다고 믿고 수행한다 해도, 실질적으로 익히는 것은 어려운 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조사결과를 백퍼센트 믿을 수는 없지만, 한편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어설피 아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막상 불자라 해도, 무아와 윤회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아(無我)의 원어인 범어는 An-ātman이다. 아트만, 즉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는 뜻이다. ‘변화하는 현상으로서의 나’는 있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도 의식은 여전히 존재하며, 윤회를 거듭한다. 다만 무아법에 통달한 아라한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윤회는 현실이요, 현상마저 사라진 무아는 수행의 목표이자 이상이다. 무아인데, 누가 윤회하는가? 한 마디로 아바타가 윤회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바타인 줄 모르기에 윤회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아바타라고 깨치거나 굳게 믿으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어든다. 한발 더 나아가, 사바는 윤회세계요, 극락은 해탈세계라고 믿게 되면, 오히려 죽음을 반길 수도 있다.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 하지만 변하는 현상으로서의 나는 있다. 그러므로 작용한다. 애착하지도 말고, 무시하지도 말라. 다만 선용(善用)할 뿐!
몸도 선용, 마음도 선용! 중생도 선용, 신(神)도 선용!
보살도 선용, 부처도 선용! 사바도 선용, 극락도 선용!
최상의 선용은 “아바타가 ‘아미타바’ 염할 뿐!”
출처 : 행불선원
작성자 : 달빛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