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一相無相分 第9~
절대의 법은 존재가 없음이다.
-이글은
자~
# 그 금강경이란 어떤 경인가?
# 一相無相分 第9~
절대의 법은 존재가 없음이다.
順으로 이어집니다.-
- 이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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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형학의 한마디~>
-자~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나의 運命을
만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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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수보리야,
이른바 佛法이라고 하는 것은
곧 佛法이 아니니라‘,
인도에
부처님의 佛敎思想이 있다면
중국에는
儒敎와 老莊思想이 있는 것처럼
금강경을 해석하는 방법도
인도와 중국이 다르답니다.
금강경은
대단히 높은 經이라서
중생들이 모를 수 있답니다.
모르기 때문에 아니라고 하는 것이
인도의 공덕 해석법이랍니다.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이
워낙 차원이 높아서
공덕이 부족한 중생은 모른답니다.
모르니까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었고요.
그래서 佛法이 佛法이 아니다.
이 말은~
이 經의 말씀이 대단히 차원 높다는 뜻
이랍니다.
☀ 중국의 解析법은 좀 다르답니다.
금강경에 집착하면
이미 금강경이 아니다.
經을 經이라고 하면 經이 아니고,
佛法을
불법이라고 하면 또 불법이 아니다.
이것을 無心 해석이라고 한답니다.
자~
마음을 텅 비워야 올바른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랍니다.
無心으로 들어가야 하지요.
-See You Again-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자~
# 一相無相分 第9~
절대의 법은 존재가 없음이다.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자~
# 一相無相分 第9
無得無設에서~ (設-베풀 설)
’여래가 말한 법은 모두가 잡을 수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고 비법도 아니다.‘ 라고
했는데요.
聲聞이 지위를 얻어 說法을 한 것은
不 雜音이나 말함이 아닌가?
이 疑問을 수보리는
소승 불교의 아라한의 위치에서
묻고 있답니다.
聲聞은~
부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제자라는~
뜻이랍니다.
이는 부처님 생존시 친히 뫼시던
1,255명의 제자들이겠으나,
요즈음의 우리들도 여기에 포함된답니다.
성문은~
그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지위를 나타내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4果가 있답니다.
이것은
복잡한 번뇌를 끊고서 얻은 지위이며,
☀ 煩惱 번뇌란?
누구에게나 본능적으로 있는~
5鈍使와 (鈍-무딜 둔)
수행하는 과정에서만 나타나는
5利使가 있답니다. (利-날카로운리)
이 열 가지 번뇌가 三界에 두루 퍼져서
苦, 集, 滅, 道의 4 聖諦를~
(諦-살필 제(체))
닦지 못하게 막고 있답니다.
이렇게
어려운 번뇌를 끊고 얻은 地位의 경우
첫 자리가 수다원이니~
그 마지막인 아라한이
끊는 번뇌는 얼마나 힘이 들까~
짐작할 수 있지요.
사다함은 一往來,
아나함은 不來, 不還子,
아라한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
즉 不生이 목적이랍니다.
태어나서 깨닫고 열반에 들어~
다시 환생하지 않는 것이지요.
불교에서는
욕심도 없애고 화도 없애고요.
모두 없애는 것이 궁극적 목표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경 반야바라밀에 의한 아라한들은
사다함이라 하더라도~
사다함이라는 생각이 없답니다.
그게~
금강경의 아라한들이랍니다.
또 수다원이든 사다함이든
아라한이든지 간에~
그 地位에 관한 생각이 없답니다.
그게 금강경을 신봉하는 분들의
精神世界이지요.
자~
# ’ 수보리야, 네 생각이 어떠하냐?
수다원이 생각하기를
‘내가 수다원이 果位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수다원은
성인의 무리에 들어간 者 (入流)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들어간 일이 없으니~
색, 성, 향, 미, 촉, 법에
탐착하지 않음으로~
이름을 수다원이라고 하나이다.
須菩提 於意云何
須陀洹 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須陀洹 名爲入流 而無所入
不入色聲香味觸法 是名須陀洹
자~
# 나타나고, 안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平凡해지면 그것이 성인이지요.
# 6진에서 나왔으니
아무 것도 얻은 바가 없지요.
여기서 流라는 것은~
어떤 세계, 어떤 종류, 한계를 말한답니다.
수다원을
현장은 預流者라 옯겼답니다.
이를 入流라고 표현한 것은
성인의 무리에 처음으로 들어갔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성인의 무리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것인가?
전통적으로는
첫 번째,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 有身見을
버려야 한답니다.
두 번째,
내가 믿는 종교나 종파만이 옳다는
형식적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見을 버리는 것이랍니다.
세 번째는
불, 법, 승 修行의 필요성, 緣起法 등에
대한~
회의와 의심-疑을 버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확립되어야
한답니다.
그리하여
어느 思想, 어느 宗敎를 대하여도
지혜로서~
걸림과 막힘이 없이 本質을
꿰뚫어 봐야만~
참다운 불자의 반열에 든다고
할 수 있지요.
성인의 무리에 들어간다는 것은~
보이고, 들리고, 냄새나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집착하지
아니하여~
성인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색, 성, 향, 미, 촉, 법의(色聲香味觸法)
이 여섯 가지 경계가
마음을 홀리는 것이 마치
먼지가 눈 앞을 가리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티끌이라고 한답니다.
자~
성인의 무리에 들어가려면
6 塵에서 나와야 한답니다. (塵-티끌 진)
그러므로 入流가 곧 出塵이며,
출진하면
다시 ’6진에들지 않는다,‘ 고
할 수 있지요.
6진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6진에 시달리거나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상태인데요.
이렇게 집착하지 아니하고 초연하면~
聖人이 된답니다.
자~
☀ 일부러 안 보려고 하는 것도 집착이죠.
나타나고 안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평범해지면 그것이 성인이랍니다.
聖人은
좋아하지도 않고요.
싫어하지도 않는답니다.
이것을
平常心 또는 本心이라고 한답니다.
☀ 평상 그대로의 마음,
그것이 가장 큰마음이랍니다.
☀ 성인의 세계에 든다는 것은
보이고 들리고 하는 現狀 世界에서~
그냥 平凡해지는 것이며,
본래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랍니다.
그러나
중생은 그게 안 된답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차별의 마음이~
일어나지요.
그 差別心이 없어지면 성인인데요.~
성인은 마음이 탁 트여서
있으면 있는 그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답니다.
그런데 중생은 例를 들어~
큰 손님이 오면
지나치게 대접을 하고요.
작은 손님이 오면
지나치게 대접을 하지 않지요.
또한 중생은
손님이 오기 전부터 신경을 쓰고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답니다.
이렇게 중생의 마음이
복잡하다 보니~
보이고 들리는 데에~
자꾸 얽매이게 되는 것이지요.
자~ 그런데
가끔은 自然에 순응하면서~
4相이 무엇인지 몰라도
또 종종 그것에 걸리더라도~
진정으로 그것을 벗어나지 않았나 하고~
느끼곤 한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산답니다.
아프면 아파하고요.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답니다.
명예도 돈에도
집착하지 않는답니다.
그저 분수를 넘어선 욕심을
내지 않는답니다.
자~
☀ 봄이 오면~ 꽃이 피고요.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고요.
겨울에는 눈이 온답니다.
그리고 그 일부가 된답니다.
더우면 계곡에 몸을 담그고,
때가 되면
손수 가꾼 채소와 함께
계곡물에 밥을 지어 먹는답니다.
회사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고요.
병원에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죽음 앞에서 선 사람의 마음을
느꼈다는군요.
4시간여에 걸친 대수술로 살아났지만
실려 가는 그 당시는
왼쪽 가슴이 아파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으니
죽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답니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지나온 삶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지면서
지나간 세월이 영화필름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답니다.
지난 세월 무엇 하러 그리 아등바등
살았는지 후회도 됐답니다.
하물며 내게 잘못했던 사람에 대한
미움도 없어졌고요.
그리곤 부모님과 형제들, 아내가
차례로 떠올랐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였지만
이내 평온이 찾아왔답니다.
자~
☀ 죽음 앞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답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죽음 앞에선~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 없어지니~
마음이 편안해졌답니다.
자~
지금 금강경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버린~
순간이었지요.
돈과 사람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어졌으니~
人相을 버린 것이요,
모든 것이 헛되고 어리석었음을
깨달았으니~
衆生相을 버린 것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으니~
壽者相을 버린 것이 아닌가.
지금 당장 이 순간 뿐이니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는
숭산스님의 설법이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마음으로 수행을 하면
그게 육바라밀 이요.
무주상보시에 해당될 것이지요.
자~
이런 경지에 이른 경우를
수다원의 세계라 하면~
수다원의 果位에 올랐다.’ 는
‘티’가 남아 있지 않으며
이미 6진에서 나왔으니~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는경지에
있는 것이지요.
-See You Again-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