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76]이 날아가 다시 올려놓습니다
이관순의 손편지[76]
2019. 11. 11(월)
웃고웃는 결혼의 추억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가 아니라, 우리세대가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죠.
누나가 결혼을 앞두고 사진관에서 결혼사진 찍을 일로 수심이 가득합니다.
지금은 조명이 좋지만 그때는 사진관에서 마그네슘을 터드렸어요. 퍼억,
소리와 함께 불이 번쩍일 때 셔터를 누르는데, 긴장한 나머지 퍽- 순간
눈을 감아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누나의 사진은 모두 눈 감은 것뿐입니다. 제대로 찍힌 것이 하나도 없으니
걱정이 클 수밖에요. 눈감은 결혼사진, 생각해도 악몽이라며 거울 앞에서
연습을 합니다. 하나, 둘, 셋, 퍼억! 순간 눈을 부릅뜨고 힘을 주는 거죠.
결혼을 앞두고 누나와 매형을 따라 사진관에 갔습니다. 긴장하는 누나에게
사진사가 자세를 잡아주고 약간의 미소도 주문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요.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퍽 소리가 나고 흰 연기가 펴오릅니다. 혹시나
해서 몇 판을 더 찍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다 눈 감은 사진뿐.
그때부터 매형은 눈감은 사진을 들고서 누나를 웃기기도 하고 면박을 주기도
했답니다. 평생 사진의 추억을 안고 살았던 누님은 몇 해 전 돌아가셨지요.
매형이 끝까지 병상을 지키며 아내를 즐겁게 하려고 흔들어 보인 것이
눈 감은 결혼사진입니다.
세상이 변하더니 예식문화도 달라졌습니다. 요즘 예식은 비디오 한편을
찍는 세트장처럼 보입니다. 청첩장에 청첩인도 없고 근사한 남녀 모델의
사랑 이야기만 도드라지지요.
부모의 역할도 확 줄어, 신부는 아버지가 아닌 신랑 손을 잡고 레드카펫을
밟고 나타납니다. 어느 커플은 우주선을 타고 입장하고, 아예 주례를
제치고도 하네요. 집을 떠난다는 슬픔에 눈물짓던 신부와 친정 엄마의
석별의 정은 이제 액자 속 이야기입니다.
영화제 시상식의 남녀배우처럼 입꼬리를 올린 채 연신 웃고 또 웃습니다.
그 와중에 친구 얼굴을 찾아 손을 흔들기도 하죠. 일부 나이 든 참석자는
변한 세상을 이해하면서도, 인륜대사가 좀 경망스럽다며 민망해 합니다.
가끔은 경험하지 못한 진풍경도 보지요. 친구가 늦은 오후에 호텔 결혼식에
갔다가 맞닥뜨린 이야기로 한바탕 웃고 말았습니다. 5시에 시작할 예식이
무슨 사정인지 계속 지연되었답니다. 시계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예식이 계속 늦어지자 사회자가 주인공이 없는 상태에서 순발력을 발휘해
축가부터 진행합니다. 생뚱맞긴 해도 사정이 있겠지 했는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갑니다. 식 후에 나올 와인과 디너코스가 나오네요. 사람들이 웅성이자
주례자가 나와 말하는 이유가 더 가상합니다.
한의사인 신랑이 긴장한 나머지 우황청심환을 두 개나 먹었다가 탈이 나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겁니다. 결혼식 때문에 신랑이 우황청심환을
먹었다고? 금시초문의 일이라 멍했지만 상황이 그렇다니 느긋하게 마음먹고
와인도 한 잔 더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예정시간을 2시간 넘겨서야 마침내 신랑이 신부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장내가 웃음바다가 될 수밖에요. 신랑신부도 웃고 하객들도 웃고, 격려의
박수까지 터지면서 예식은 초스피드로 진행됐지요. 여러 사람을 진땀나게
만든 결혼식. 그래도 성혼선포는 됐으니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결혼 날, 돈 주고도 못살 평생 못 잊을 추억하나를 건진 셈이죠.
시름에 젖다가도 결혼사진만 보면 웃던 누나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