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작성자녹림처사|작성시간23.05.16|조회수329 목록 댓글 0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

 

러시아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로 불렸어요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870여 일간 이 도시를 봉쇄해

시민 100여 만명이 굶어 죽었지요

시민들이 항전을 이어가자 이 도시 출신인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작곡을 시작했어요

레닌그라드 라디오교향악단이 곡이 완성되기를 기다려 연습을 시작했지만

아사자가 속출했지요

그 때마다 연주를 할 줄 아는 군인과 시민들이 대신 악기를 들었어요

1942년 8월 9일, 목숨과 맞바꾼 곡이 마침내 울려 퍼지자

시민들은 눈물을 쏟았고, 세계는 나치의 만행을 규탄했지요

 

예술가에게도 싸워 지켜야 할 조국이 있어요

자원 입대한 쇼스타코비치가 소방 부대에 배속되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불타는 소련 도시를 배경으로

그가 소방 모자를 쓴 모습을 표지로 제작했지요

음악으로 전쟁의 불을 끄고 싶어 했던 대 작곡가의 염원을 그렇게 응원했어요

80년이 흐른 뒤, 이번엔 러시아가 침략자가 됐지요

우크라이나의 많은 예술가가 러시아에 맞서 싸우고 있어요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필하모니도 그중 하나이지요

남성 단원 대부분이 전쟁터에 나가면서 여성만으로 교향악단이 운영되고 있어요

이 여성들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젤렌스카 여사와 함께

조선일보가 개최하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15일 한국에 왔지요

연주회는 17일 서울에서 열리지요

 

체르니우치 필하모니가 내한하기까지 여러 난관을 뚫어야 했어요

때론 목숨마저 위험했지요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에 있는 체르니우치에서 서울에 오려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거쳐야 했어요

평소 같으면 차로 7시간이면 도착할 바르샤바까지

폭격 위험이 덜한 시간을 골라 조금씩 이동하느라 이틀이 걸렸지요

수도 키이우 등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일부 단원도

“서울행에 동참하겠다”며 위험을 무릅썼어요

 

2차대전 당시 소련은 독일의 침략을 규탄하는 세계 여론을 일으키려 부심했지요

세계 주요 국가에 교향곡 ‘레닌그라드’ 악보를 내보낸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나치 독일이 훼방 놓자 마이크로필름으로 제작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막을 우회, 감시망을 뚫었지요

런던 초연에 이어 뉴욕과 보스턴 등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60회 넘게 연주되자 소련을 돕자는 여론이 크게 일었어요.

음악은 부드럽지만 그 속에 담은 염원은 강철처럼 단단하지요

체르니우치 필하모니의 여성 음악인들이 온갖 난관을 뚫고

서울에 온 이유도 음악의 힘을 믿기 때문일 것이지요

우리는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두 손 모아 기원했으면 좋겠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젤렌스카 여사 15일 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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