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팥죽과 인과자책

작성자녹림처사|작성시간23.12.22|조회수832 목록 댓글 0

◐ 동짓날 팥죽과 인과자책(引過自責) ◑

 

오늘이 동지(冬至)이지요

동지는 우리나라의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서,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기도 하지요

이 동지를 기준으로 점차 낮의 길이가 길어졌기 때문에

과거 민간에서는 이 날을 기준으로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동지를 ‘작은 설’로 생각하고,

설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왔지요

 

궁중에서는 동지가 되면 왕과 신하들이 모여 잔치를 하는

회례연을 베풀었고, ‘동지사’라고 하여 이때를 맞이해

중국에 사신을 보내기도 했어요

또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왕에게 바치기도 했고,

제주에서 진상된 귤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지요

 

보통 동지는 양력 12월 22일경인데

이때 음력 날짜가 11월 초순이면 애동지, 11월 중순 중에 있으면 중동지,

11월 하순 중에 있으면 노동지라고 구분했어요

그런데 보통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팥떡을 해먹었고,

중동지나 노동지에만 팥죽을 끓여 먹었지요

그렇게 했던 이유로는 애동지에 팥죽을 쑤게 되면,

삼신 할머니가 아이를 돌보지 못하게 된다거나,

아이 귀신을 쫓아내게 되어 아이에게 좋지 못하다는 속설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이번 동지가 음력11월10일 이므로 애동지 이지요

 

그렇다고 애동지에 팥죽을 안 먹은 것은 아니 었어요

오히려 죽보다 떡이 더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애동지에 귀한 팥떡을 먹어 아이에게 생길 안 좋은 일들을

피하고 싶은 선조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풍습이었다고 하지요.

그러니 애동지는 둘 다 먹을 수 있어 더욱 좋은 것이 었어요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이유로는,

공통적으로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라는 기록을 들고 있지요

이에 따르면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하지요

역신이란 전염병을 퍼뜨리고 다니는 아주 무서운 귀신이었어요

그런데 그 아들이 살아 생전에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서 역신된 아들을 쫓게 되었다고 하지요

이 풍습이 중국의 달력, 절기와 함께 우리나라에 전해지며

우리의 풍습으로 자리잡게 되었어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 학자인 이색의 문집에

‘동지가 되면 시골풍속에 팥죽을 진하게 쑨다’는 내용이 있는 걸로 보아

고려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동짓날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요

 

특히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기에, 어둠을 틈타 각종 잡귀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때라고도 믿어왔어요

그래서 다가올 새해를 무탈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잡귀를 막고,

액운을 쫓아야만 했지요

그 결과 귀신들이 무서워한다는 팥을 이용해 팥죽을 쑤어서

대문이나 장독대에 뿌리고, 이웃들과 나눠먹는 풍습이

오래도록 유지되어 온 것이지요

 

옛날에는 동지가 되면 팥죽을 쑤어 조상께 먼저 제사를 지낸 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고 집에서 중요한 공간인 방, 마루, 헛간, 우물,

장독대 등에 놓아 두었어요

또 들고 다니며 벽이나 대문에 조금씩 뿌리기도 했지요

모두 귀신을 쫓기 위해서, 그리고 혹시나 모를 재액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지요

이러한 동지 팥죽에는 빠져선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새알심(心) 이지요

 

옛날 어린 날에는 할머니와 동생과 소반에 둘러앉아 새알심(心)을 빚었어요

찹쌀 반죽을 동전만큼 떼 손바닥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대

동동 궁굴리며 새알을 만들었지요

할머니는 두 번이나 세 번만 굴리면 금세 멋진 알을 만들었지만,

동생과 나는 열 번 스무 번을 굴려도 꼭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어요

작은 새알은 손바닥을 간질이며 굴러다니다 곧 부화할 것처럼 따뜻해졌지요

 

우리 마음이 담긴 새알심은 팥죽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어요

한 알 떠서 호호 불어 먹으면 짭조름하고 뜨거운 것이

온 우주처럼 들어와 입천장 아래 들러붙었지요

그걸 때어내느라 쩝쩝대고 있으면 할머니는

나이만큼 새알심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지요

나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서 배불러도 새알의 마음을 먹고 또 먹었어요

그래서 동지팥죽에는 아련한 추억이 있지요

 

아무튼 동지 팥죽을 먹어야 비로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먹는 사람의 나이 숫자만큼 새알심을 빚어

떡국처럼 먹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동지에 유자를 띄운 목욕탕에서 몸을 씻는 풍습이 있다 하지요

대자연을 품은 과실 향에 기대 한 해 시름을 털어내는 풍습인데

목욕 물속에 샛노란 유자를 띠우면

유자향기가 사람피부에 스며들어 온몸에 유자 향기가 난다고 하는데

이를 유자를 입이 아닌 살로 마신다고 하고 있어요

이웃 나라의 낯선 풍습이 신비롭지요

 

그들은 하루의 시름도 밤마다 목욕탕에서 씻어내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잠이 들지요

그래서 가정집 욕조에 받은 물을 데우는 기능이 있고

식지 않게 뚜껑을 덮어두지요

거기에 알이 큼직한 유자를 띄우니 집 안에 은은한 향이 감돌고 있어요

 

오늘이 벌써 동지(冬至) 이지요

올해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

바쁘게 살아왔지만, 나와 한 다짐은 지켰는지.

그리고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남과 한 약속은 지켰는지.

우리 모두의 세상을 위해 작은 무엇이라도 했는지.

 

동지때가 되면 서서히 한해를 마감할 준비를 하며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라 했어요

그러면서 인과자책(引過自責)의 시간을 가지라 했지요

이는 자기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꾸짖는다는 뜻으로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이지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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