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롬8:26-30
찬송 : 585장(내 주는 강한 성이요)
393장(오 신실하신 주)
[성경 읽기]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구조 분석 및 주석]
로마서 8:26-30은 성령의 중보, 하나님의 섭리,
그리고 구원의 황금사슬(golden chain)을 하나의 논리적 흐름으로 연결하는 매우 정교한 단락입니다.
바울은 이 부분에서 성령의 사역(26-27절)
→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28절)
→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29-30절)으로 전개합니다.
A. 성령의 중보 (26-27)
├─ 인간의 연약함
├─ 성령의 탄식하는 중보
└─ 하나님의 뜻에 따른 간구
B. 하나님의 섭리 (28)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 부르심을 받은 자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C. 하나님의 구원 계획 (29-30)
├─ 미리 아심
├─ 예정하심
├─ 부르심
├─ 의롭다 하심
└─ 영화롭게 하심
A. 성령의 중보 (26-27절)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여기서 "이와 같이"(ὡσαύτως)는 앞 단락(18-25절)의 "탄식"과 연결됩니다.
앞부분에는 세 가지 탄식이 있습니다.
- 피조물의 탄식 (8:22)
- 성도의 탄식 (8:23)
- 성령의 탄식 (8:26)
따라서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조물 → 탄식
성도 → 탄식
성령 → 탄식
성령은 성도의 연약함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하십니다.
27절
26절의 설명을 이어서 성령의 중보가 왜 효과적인지를 설명합니다.
26절: 성령이 중보하신다
↓
27절: 하나님은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
핵심 문장: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즉,
성도
↓
성령의 중보
↓
하나님의 뜻
성령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B. 하나님의 섭리 (28절)
28절은 앞 단락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이 표현은 새로운 주제를 시작하기보다 앞의 논리를 결론짓는 역할을 합니다.
대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결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문법적으로 보면:
하나님
↓
모든 것들을 함께 역사하심
↓
선
즉 "모든 것이 우연히 좋은 결과를 낸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함께 작동시키신다는 의미입니다.
C.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 (29-30절)
이 부분은 흔히 "구원의 황금사슬"이라고 불립니다.
29절
미리 아심
↓
예정하심
목적 :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따라서 구조는
미리 아심
↓
예정하심
↓
그리스도를 닮게 함
그리고 최종 목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
즉
그리스도
↓
하나님의 가족
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30절
바울은 다섯 개의 동사를 연속적으로 배열합니다.
미리 아신 자
↓
예정하신 자
↓
부르신 자
↓
의롭다 하신 자
↓
영화롭게 하신 자
이를 도식화하면:
영원 전
│
├─ 미리 아심
├─ 예정
│
역사 속
│
├─ 부르심
├─ 칭의
│
미래 완성
│
└─ 영화
흥미로운 점은 "영화롭게 하셨다"(ἐδόξασεν)가 과거형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합니다.
문맥 속의 흐름
로마서 8:18부터 연결하면 더 분명해집니다.
현재의 고난 (18)
↓
피조물의 탄식 (22)
↓
성도의 탄식 (23)
↓
성령의 탄식 (26)
↓
하나님의 섭리 (28)
↓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29-30)
바울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도는 고난 가운데 연약하여 탄식한다.
그러나 성령이 그를 위해 중보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을 위해 역사하신다.
왜냐하면 성도의 구원은 영원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8:26-27은 성령의 중보,
8:28은 하나님의 섭리,
8:29-30은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을 보여 주며,
이 세 부분은 "성령의 중보 → 하나님의 섭리 → 하나님의 예정된 구원 완성"이라는 논리적 흐름으로 연결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본문: 로마서 8:26-30
오늘 우리는 수요예배로 하나님 앞에 나와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특별히 6·25전쟁 발발 76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됩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쟁의 포성이 한반도 전역에 울려 퍼졌습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헤어졌고, 형제와 자매가 서로 다른 곳으로 흩어졌으며,
평범했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었고,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무엇보다 내일에 대한 희망마저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점점 우리 곁을 떠나고 있지만,
그분들의 희생과 눈물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아직도 한반도는 분단의 현실 속에 있으며, 완전한 평화를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를 돌아볼 때마다 갖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비극을 허락하셨을까?"
"왜 선한 사람들이 고난을 당해야 했을까?"
"하나님은 그때 어디에 계셨을까?"
이 질문은 비단 전쟁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갑작스러운 질병 앞에서,
예상치 못한 실패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앞에서,
가정의 어려움과 경제적 고난 앞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정말 저를 사랑하십니까?"
사실 우리의 눈은 너무 제한적입니다.
우리는 현재만 볼 수 있고, 눈앞에 있는 상황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찾아오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 들어가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현실의 문제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시선을 현실 너머로 이끌어 줍니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 8장은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위대한 위로의 장이라고 불립니다.
바울은 이 장에서 성도들이 겪는 고난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조물이 탄식하고, 성도들이 탄식하고, 심지어 성령께서도 탄식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탄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눈물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게 합니다.
현재의 아픔 너머에 있는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8절에서 우리에게 놀라운 믿음의 선언을 들려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고난이 없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전쟁이 없다는 약속도 아닙니다.
눈물이 없다는 약속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 가운데서 일하고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인생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리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26-27절)
바울은 먼저 성도의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26절)
바울은 성도를 강한 존재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약한 존재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다 이해하지 못하며, 때로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합니다.
6·25전쟁 당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전쟁이 시작된 그날 아침, 사람들은 몇 주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지킬 수 있을지 몰랐고, 자녀는 부모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이 살 집을 다시 보게 될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연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수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피난민들이 모인 천막교회에서도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내일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을 붙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
눈물밖에 나오지 않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니다.
전쟁 중에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눈물도,
폐허가 된 집터 앞에서 드린 기도도,
전선에서 나라를 위해 드린 간절한 기도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성도,
가정의 문제로 눈물 흘리는 성도,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
미래를 걱정하며 잠 못 이루는 성도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붙드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삶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28절)
28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큰 위로의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모든 것"입니다.
성경은 좋은 일만 합력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성공도,
실패도,
건강도,
질병도,
만남도,
이별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선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6·25전쟁은 분명 악한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전쟁 자체는 결코 선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비극 속에서도 일하셨습니다.
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무너진 교회들이 다시 세워졌고,
복음이 전국으로 확장되었으며,
선교사를 받던 나라가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쟁이 좋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와 악함마저도 사용하셔서 결국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것은 분명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요셉은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인간은 악을 행하지만 하나님은 선을 이루십니다.
인간은 파괴하지만 하나님은 회복하십니다.
인간은 절망을 만들지만 하나님은 희망을 만드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환경을 보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은 민족과 성도의 미래를 책임지십니다 (29-30절)
29-30절은 바울이 말하는 구원의 절정을 보여 줍니다.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완성하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역사도,
민족도,
교회도,
성도의 인생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가 사라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전쟁의 불길 속에서도 교회를 지키셨고,
민족을 지키셨고,
복음의 씨앗을 보존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분들의 희생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를 볼 때 우연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삶도 책임지십니다.
29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려고" 예정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은 세상적인 성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고난이 우리를 더 겸손하게 만들고,
눈물이 우리를 더 기도하게 만들고,
실패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난조차도 사용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직 천국에 가지 않았는데도 과거형으로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사람은 끝까지 붙드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은 반드시 완성됩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민족을 붙드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도 끝까지 붙드시고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으며,
눈앞에 닥친 문제 때문에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을 주관하십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원하지 않았던 일들,
때로는 아픔과 눈물을 가져다준 일들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신 계획 가운데 사용하셔서 결국 선을 이루십니다.
오늘 우리가 6·25전쟁 76주년을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전쟁은 결코 아름다운 역사가 아닙니다.
전쟁은 인간의 죄악이 만들어 낸 비극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었으며,
지금도 분단의 상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역사 속에서도 일하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폐허가 된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절망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게 하신 하나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
복음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붙들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키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시 124:1)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과 함께하셨기에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과거만 돌아볼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도 한반도는 분단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갈등과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 참된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복음 안에서 민족이 하나 되도록,
다음 세대가 자유롭게 믿음을 지켜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붙들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도 이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이해할 수 없는 문제 가운데 있습니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침묵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사용하여 선을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는 현재를 보지만 하나님은 미래를 보십니다.
우리는 한 장면을 보지만 하나님은 전체 그림을 보십니다.
우리는 눈물을 보지만 하나님은 영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할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선을 이루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가정에서도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민족을 붙드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회도 붙드실 것입니다.
어제도 역사하셨고 오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내일도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맙시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