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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자료실』

대본 - 도덕적 도둑

작성자안광용|작성시간06.10.12|조회수777 목록 댓글 1


다리오 포 (Dario Fo)
(1997년 노벨 문학상 수상)


1926∼ . 이탈리아의 극작가, 배우, 감독,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 연극음악 작곡가


다리오 포는 1926년 이탈리아 바레스지방의 작은 마을 산지나노에서 태어났다. 1940년 밀란으로 이주하여 브레라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전쟁 후에는 공예기술학교에서 건축을 잠시 공부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군대에 징집되었으나 탈영하여 숨어 지내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밀란의 브레라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후에 빠렌띠아극단에 들어가 하계버라이어티쇼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이때 후에 그의 45년간의 연극공연 및 제작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며 그의 작품구성 및 제작에 공헌한 Fanca Rame를 만났다.

다리오 포는 여러 해 동안 전세계를 돌며 연극을 공연했고 그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그는 웃음과 심각함을 혼합하여 사회의 불평등과 악습을 부각시켰고 동시에 우리에게 폭넓은 역사적 관점을 제공했다. 포는 진지한 풍자가로서 다양한 측면을 지닌 작품을 저술했다. 그의 독립적이고 명확한 시각은 여러 계층의 호응을 얻었지만, 동시에 작가 자신에게 커다란 위험도 부담하게 했다. 비제도적인 전통은 포의 작품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중세시대의 광대들을 흉내내어 권력을 징계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품위을 고양시키는 작품을 썼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 Accidental Death of an Anarchist>(1970), <트럼펫과 나무딸기열매 Trumpets and Raspberries>, <얼간이들과 함께 한 놈 The Devil with Boobs> 등이 있다.

원문은 다운 받아서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대본은 각색본입니다.

도덕적 도둑

다리오 포 저
손동철 역

등장인물
도둑, 도둑의 아내, 남자, 여자, 안나, 안토니오, 도둑2

도둑이 창 밖에서 창문을 따고 들어온다. 여기는 고급 빌라의 3층이다. 실내 한쪽에 고전풍의 갓이 달린 램프가 있다. 그는 주위를 살핀다. 어둠 속에 가구, 카펫, 값비싼 고미술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도둑은 블라인드를 내리고 전등 스위치를 켠다. 도둑이 막 서랍을 열려고 할 때 전화 벨이 울린다. 우선 자지러지게 놀라 급히 도망치려다가, 집안에 전화 받을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 겁먹을 이유가 없게 되자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온다. 울리는 전화 벨을 무시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전화기로 조심스레 다가가더니 재빨리 손을 뻗는다. 수화기를 움켜쥐더니 질식시키려는 듯 가슴에다 꼭 붙이고 웃옷자락으로 덮는다. 마치 이 행위가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점차 가냘프게 수화기에서 들려온다.

도둑 아내 : 여보세요. 여보세요. 대답 좀 해요. 거기 누구세요?

도둑은 마침내 진정된 듯 한숨을 내쉰다. 목소리는 중단된다. 도둑은 상의를 펼치고 수화기를 꺼내 조심 스레 귀에 댄다.

도둑 아내 : 아... 여보세요... 누구세요?
도 둑 : (깜짝 놀라며) 마리아? 당신이야?
도둑 아내 : 응. 나야. 왜 말을 안 해?

풋라이트 하나가 켜지며,아직 어둠 속에 있는 무대 한쪽에 전화 통화를 하는 여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도 둑: 미쳤군! 일하는데 웬 전화야? 딴 사람이 받으면 어쩔려구. 도대체 도움이 안돼.
도둑 아내: 집주인은 시골 별장에 갔다며...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도 둑: 설마 당신이 전화할 줄...
도둑 아내: 아니, 왜?
도 둑: 왜는, 그냥... 일해야 돼... 나 시간 없어. 내가 여기 놀러 왔어?
이번 한번만이라도 좀 편안하게 털어보자.
도둑 아내: 또 시작이야. 자기가 무슨 박해를 받는 순교자야? 다른 도둑이나 들치기들은, 아니 강도도 이런 유난은 안 떨어. 좀도둑이니 망정이지. 안 그랬어 봐, 정말...
도 둑: (뒤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서 본능적으로 송화구를 손으로 가리며) 쉿!

다행히, 거대한 추시계가 시간을 알리려는 소리다. 자정을 알린다.

도둑 아내: 뭐야?
도 둑: (공포에서 벗어나며) 휴- 시계 치는 소리야.
도둑 아내: 소리가 참 깨끗하네! 꽤 오래된 거겠지. 무거워?
도 둑: (별 생각없이)아마 꽤...(불현듯 아내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설마 날더러 그걸...
도둑 아내: 어쩜, 그런 멋진 생각을 해!
도 둑: 정말 미쳤어...(비웃는 투로)냉장고도 갖고 갈까? 아주 멋진 초대형이야, 투도어식.
도둑 아내: 목소리 낮춰. 거기가 집인 줄 알어.
도 둑: 열 받게 했잖아.
도둑 아내: 누가 들으면, 당신 매너 없다고 욕해. 하여튼, 난 냉장고 말한 적 없어. 너무 커서 놓을 데도 없구. 난 그냥 조그만 거 하나면 돼. 중요한 건 마음이잖아.
선물하는 건 자기니까 알아서 해.
도 둑: 당신이 원하는 걸 내가 어떻게 알어. 난 따로 생각해둔 게 있어.
도둑 아내: 그럼, 내가 직접 가서 골라야겠네. 보고 싶어, 고급 빌라는 어떤지.
얘기 들으면 친구들은 부러워 죽으려고 들 할 걸.
도 둑: 죽고 싶은 건 나야, 그 여편네들이 아니고..난 이 집을 털러 왔어. 그걸 몰라?
안녕, 이따 봐.
도둑 아내: 뭐가 그렇게 바뻐? 어쩌다 기분 한번 맞춰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 난 당신 아내야.
도 둑: (안달이 나서) 글쎄, 이따 보재두.
도둑 아내: 키스는?
도 둑: 좋아.

도둑은 우스꽝스럽게 입술을 내밀더니 커다랗게 키스 소리를 낸다.

도둑 아내: 나 사랑해?
도 둑: 사랑하지.
도둑 아내: 아주 많이?
도 둑: (인내심이 극에 달해) 아주, 아주, 아주 많이. 이젠 전화 끊을래?
도둑 아내: 자기 먼저.
도 둑: 그래.

그가 전화를 내려놓으려 할 때 아내의 우렁찬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도둑 아내: 선물 잊지 마!

도둑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혐오에 찬 시선으로 전화통을 노려본다. 이 때 도둑 아내의 모습은 어둠 속에 묻힌다. 도둑은 마침내 혼자가 되자, 훔칠 물건을 찾을 심산으로 서서히 실내를 둘러본다. 그는 서랍을 연다. 찾고 있던 물건을 발견한다. 웃옷 주머니에서 자루를 꺼내 물건을 담기 시작할 때 출입문에서 자물쇠가 딸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도둑은 흠칫 놀란다. 무대 밖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 목소리: 거실에 불이 켜 있네요. 가슴이 떨려요. 도로 나가요.
남자 목소리: 진정해요. 내가 안 끄고 나갔나 보죠.
여자 목소리: 혹시... 부인이 돌아온 거 아네요?

그 동안 도둑은 공포에 질려 창문 밖으로 빠져나가려 애쓰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실패한다. 그는 대형 추시계 안으로 뛰어든다.

남 자: (조심스레 들어오며 구석구석 샅샅이 훑어보며) 아무도 없어요.
여 자: (여전히 경계와 의혹 속에서) 양심에 찔려요. (모피코트 벗는 걸 남자가 도울 때) 절 어찌 생각하세요. 이렇게 쉽게 따라온 건 제 잘못이에요. 부인은 저보다 시간을 더 오래 끌었겠죠.
남 자: 지금 그 사람 얘기를 왜 꺼내요? (그녀를 소파로 데려가려 하며)

남자가 여자를 안으려고 하자

여 자: 기분 잡쳤어요. (여자가 갑자기 소파에 앉는 바람에 남자가 균형을 잃고 소파 등에 부딪히자, 소파와 함께 넘어진다) 이젠 날더러 어쩌란 말예요. 후회가 되고 죄책감 도... (넘어진 남자를 보고)당신 뭐하는 거예요?
남 자: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무언가를 해야 될 거 같아서...
여 자: 좋은 생각 같네요. 해 보죠.
남 자: (기대에 부풀어) 진짜?
여 자: 그럼요.
남 자: 침실에서?
여 자: 네! 침실에서. 그냥 대화를 해요. 어릴 때 얘길 해 보세요. 난 어린애들이 좋아요.
남 자: (마지못해 포기하며) 그러죠. (불쑥 큰소리로, 짜증스럽게) 빌어먹을, 이런 멍청한 짓은 관두죠. 난 한번 한다 하면 하는 사내요. 당장 들어갑시다.
여 자: 어딜 들어가요?
남 자: 침실.

남자가 팔짱을 끼고 침실로 들어 가려고 할 때 전화벨이 울린다. 두 사람,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어 붙는다.

남 자: 누구지?
여 자: 혹시... 부인?
남 자: 내 집사람이? 내가 어머니 댁에 있는 걸로 알 텐데. 음란 전화나, 뭐 잘못 걸려온 전화일 거요. (다시 팔짱을 끼며) 들어갑시다. 금방 그칠 테니.

그러나 아랑곳없이 전화벨은 계속 울린다.

여 자: 차라리 받아요. 미치겠어요.
남 자: (전화기로 가서 수화기를 집어 들어 전화 탁자의 서랍 속에 넣는다)
자, 이젠 신경 쓸 일 없어요.
여 자: (절망감에서) 뭐 하는 거예요? 당신이 집에 있다는 걸 알리는 셈이잖아요.
남 자: (여자 말이 옳다는 걸 깨닫고, 낙담하여) 이런 멍청이!
여 자: 왜 솔직히 말 못해요? 나한테 원하는 건 그거 하나밖에 없다구!(눈물을 왈칵 쏟으며)
남 자: 제발, 오해 말아요. 아니 근데, 아까 전화 받는 사람이 꼭 나라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뭐죠? 받는 거야, 누구든지...

그는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모른다.

여 자: (빈정거리며) 그럼요, 개나 소나 다 받을 수 있죠. 지나가던 도둑이 받을 수도 있고, 아무나 받으면 어때요.
남 자: 그것도 가능하죠. 도둑? 그렇게 생각한다면, 경찰을 불러야죠.
(전화기를 집어 들려고 한다)
여 자: (남자를 제지하면서) 미쳤어요? 우리가 불륜이라고 경찰에 신고하자는 거예요? 어머! 누군가 벌써 신고했을 지도... (겁에 질려) 우리 두 사람을 보면 체포할 거예요.
(거의 비명을 지르듯) 경찰! 안돼! 집에 갈래요.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문 쪽으로 뛰어가고 남자는 뒤따라가 붙잡으려 한다. 바로 그때 겁에 질린 도둑이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온다.

남 자: (거실 바깥에서) 잠깐만요. 애들처럼 왜 그래요?
여 자: 겁이 나요. 빨리 나가죠.
남 자: 갈 땐 가더라도 코트는 걸쳐야죠.
여 자: 모피코트! 내 정신 좀 봐!

그 동안 도둑은 창문으로 빠져나갈지 두 사람이 나갈 때까지 기다릴지 결정을 못 내린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소리를 듣고서 그전에 숨어 있던 곳으로 돌진한다.

도 둑: (시계 몸체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갈 때 머리가 추에 부딪혀 뎅’하는 소리가 난다) 아야! (시계추를 밀자 다시 돌아오면서 도둑의 머리를 친다)
여 자: (겁에 질려) 뭐죠?
남 자: 별거 아녜요. 시계가 두시를 쳤소.
(그리곤 자신의 시계를 쳐다보곤 고개를 까우뚱 한다)
여 자: 미안해요. 신경이 곤두서서...

남자가 손에 든 모피코트를 여자에게 입힌다. 그때 여자는 수화기가 여태 내려져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여 자: 어머! 수화길 내려놓은 채 그냥 갈 뻔했잖아요.

여자가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자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다시 겁에 질린다. 남자는 마치 전화벨 소리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수화기를 움켜잡고 천천히 귀에 갖다댄다.

남 자: (긴장된 목소리로) 여보세요.

전과 같이 도둑의 아내 모습이 나타나고, 동시에 지극히 화가 난 목소리가 들린다.

도둑 아내: 참, 빨리도 받는다! 한 시간 내내 걸었어. 왜 통화가 안 된 거야?
남 자: 실례지만, 누구 신지?

그의 애인은 수화기에 귀를 바짝 대고 듣는다.

도둑 아내: 얼씨구! 이젠 마누라 목소리도 몰라.
여 자: (기절할 듯이) 부인이에요.! 그럴 줄 알았어! 어떡해!
도둑 아내: 누구야, 옆에 있는 게? 흥! 분명히 여자 목소린데... 누구야?
남 자: (애인에게로 돌아서며) 뭔가 잘못됐어. 모르는 사람이라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야.
도둑 아내: 이 짐승 같은 게. 결국은 꼬리가 잡혔지. 흥, 왜 그 집에 날 못 오게 하나 했더니.

도둑은 대화를 이해하려고 숨어 있던 곳에서 내다보다가 그의 아내 목소리를 듣고 안절부절못한다.

남 자: (전화에다 대고) 여보시오. 전화 잘못 걸었습니다. 여기 프라초시네 집입니다.
도둑 아내: 프라초시, 잘 알지. 세니니가(街) 47번지 303호. 아주 웃겨! 이제 목소리까지 바꿔.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나쁜 자식! 뭐, 일을 해!
여 자: 우린 끝장이야!
남 지: (수화기를 막으며) 쉿! (여자는 미치기 일보직전이다) 난 당신 남편이 아니에요.
도둑 아내: 당신이 내 남편이 아니면 그 집에서 뭘 하는 거죠?
남 자: 여보시오. 여긴 내 집이오.
도둑 아내: 훌륭하시군. 부인이 없는 사이에 딴 여자하고... 단둘이 이 야밤에... 하, 시골 간다 고 소문 내고서...
여 자: 들켰어!
도둑 아내: 내 남편하고 똑 같아. 배신자, 사기꾼, 거짓말쟁이, 그러니 도둑놈이지.
남 자: 당신 남편 일이야 내 알 바 아니지만, 내가 시골 간다고 누가 그래요?
도둑 아내: 내 남편이죠. 늘 가는 데를 알리니까. 당신을 열흘 동안 감시했다구요.
남 자: 뭐요?
도둑 아내: 적당한 때를 노렸죠.
여 자: (손으로 수화기를 가리며) 모르겠어요? 부인이 저 여자 남편한테 미행하라고 시킨 거 예요. 틀림없이 흥신소 사람이에요.
남 자: 아, 남편께선 대단한 일을 하시는군요.
도둑 아내: 그게 직업이니까요.
남 자: 훌륭한 직업이죠. 남의 여자더러 남편하고 갈라서라고 부추기는 게 잘하는 짓이라면요. (어조를 바꾸며)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이란 없어. 속은 내가 바보지. 내가 뭐랬는지 알아요? 내 아내는 절대 비열한 짓은 안 해. 다른 여자들하고는 달라. 진짜 요조숙녀지, 약간 멍청하긴 해도. 헌데, 멍청한 건 나였어요.
도둑 아내: 무슨 말씀예요? 설마... 당신 부인하고 내 남편이...
남 자: 설마 라니? 불 보듯 뻔한 거죠. 바보 같은 질문 그만둬요.
도둑 아내: 좋아요. 내 남편 어딨죠?
남 자: 댁이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도둑 아내: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 집에 있었는데요.
남 자: 여기? 이 집에?
도둑 아내: 직접 통화했어요. 아직 거기 있을 텐데.
여 자: 당신 부인이 열쇠를 줬을 거예요.
남 자: 그랬겠지. 낮이든 밤이든 아무 때나 드나들어야 하니까. 지금쯤 포넨테 별장에 있을 거요.
도둑 아내: 포넨테 별장? 내 남편이 거긴 왜요?
남 자: (빈정거리며) 말 않던가요? 그쪽 가정의 행복을 위해 주소를 드리죠. 아리스티데 참보니가(街) 34번지, 포넨테 빌라. 전화번호는 7845.

이 말을 끝내자 홧김에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여자는 울음을 터뜨리고 도둑의 아내 모습은 사라진다.

여 자: 남편이 알면 충격이 클텐데. 그이 모르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다구... 속상해 할까봐 자질구레한 일도 숨기고, 이제 어쩌지, 들통 났으니...
남 자: 내가 더 문제지.
여 자: 이제 어떡하죠? 도망가든지,자수하든지...
남 자: 자수라니! 왜? 우리가 대체 뭘 했는데? 속 터져. 차라리 죽어버려?
여 자: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그게 최선이고 유일한 해결책이에요.
남 자: 유일한 해결책이라니? 미쳤어요? 유망한 시의원, 간통 현장에서 권총 자살. 시의회에서 다들 배꼽 잡고 웃을 거요! 우린 함정에 빠진 거요. 내 집사람이 별장에서 올 때까지 한 두시간 기다릴 수밖에.(곰곰이 생각하며) 한 두시간? 잘 활용만 하면, 그렇지. 처벌을 받으려면 죄를 범해야지. (소파에 줄곧 앉아있는 여자에게로 간다) 안으로 들어가죠.
여 자: 천박하게 왜 이래요?

여자가 남자를 밀자, 전과 똑같이 머리가 등받이에 부딪히며 소파와 함께 나둥그러진다.

남 자: (손바닥으로 소파를 치며 욕설을 뱉는다) 염병할!
여 자: 날 손톱만큼이라도 이해를 못해줘요? 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려요.
남 자: 절망! 나한테서 뭘 원해? (과장된 태도로) 내가 죽어버려? 좋아, 그러지 뭐. (남자는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관자놀이에 갖다댄다) 이제 만족해?
여 자: 안돼요! 무슨 짓이에요? 이리 주세요.

여자는 권총을 뺏는다. 남자는, 애인을 놀라게 할 의도로 허세를 부렸기에 가만히 웃는다.

남 자: (빈정거리지만, 흡족해하며) 왜, 이젠 내가 죽는 게 싫어?
여 자: 아뇨. 안전장치를 풀고 총알이 있나 봐야죠. (총알이 장전되었는지를 확인하고 그에게 건네준다) 자, 됐어요. 이제 당기세요. (총을 그의 얼굴 높이로 올리며) 해요, 빨리. 집에 온 부인에게 살아있는 꼴을 보일 작정이에요?

남자가 뻣뻣이 굳은 채 총을 머리에 갖다댈 때, 시계가 1시를 친다. 이 소리에 남자는 움찔 놀라더니 공포에 질려 권총을 응시한다.

여 자: 참 이상한 시계네. 2시를 치더니 다음에 1시. 너무 늦게. 이거 거꾸로 가잖아.
남 자: 정말 이상해. 이런 일이 없었는데. 자살하려는 내 손을 붙든 운명의 손이여, 감사합 니다. 시계가 나를 살렸어!

이 말을 끝내자, 시계를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열렬히 껴안는다. 그 바람에 시계는 생명을 얻은 것처럼 다시 울린다.

도 둑: (목소리만, 추가 머리를 강타하자 아픔을 참을 수 없어) 그만!

남자 펄쩍 뛰어 뒤로 물러 난다

도 둑: (머리를 어루만지며 나온다) 어이쿠, 아파라! (일행들을 보고는) 안녕하세요.
여 자: 당신 누구예요? 대체 여기서 뭘 하신 거예요?
남 자: (도둑을 향해 단호하게 총을 겨누며) 나, 지금 폭발 직전이야. 너 누구야?
도 둑: (겁에 질려) 총을 겨누실 필요까지야. 한 마디로, 제가 그 남편입니다. 좀 전에 전화 했던 여자가 제 아내고, 제가 그 남편이고요.
남 자: 아, 당신이 그 남편이라. 좋아.
도 둑: 우린 성당에서 정식으로 결혼했죠.
여 자: 행운아네요. 성스러운 성당묘지에 묻힐테니.
도 둑: 묻히다니, 제가! 그렇게는 안되죠. (여자에게로 돌아서며) 당신네들은 권리가 없어 요. 나한테 무기가 없다는 걸 아셔야죠. 부인이 증인이요. 누구든 날 쏘면 형법 제 127조에 저촉됩니다. 내가 도망가면 공포를 쏠 수 있지만 난 도망을 안 갈 테니 그 것도 안되죠. 경고하지만, 날 쏘면 일급살인이요.
여 자: (남자에게 애원하듯)제발 쏘지 마세요! 등에다 쏴요. (도둑에게) 돌아서시죠.
도 둑: 죄송하지만, 전 그냥 죽기 싫은데요. 경찰을 부르시죠.
남 자: 야, 잔머리 쓰네. 경찰을 부르자고! 경찰이 불륜관계를 밝혀내면, 우린 보따리를 싸 고, 넌 보상금을 챙기겠지!
도 둑: 보상금? 누가 줘요?
남 자: 내 마누라지.
도 둑: 어디가 아파요? 난 당신 부인 몰라요.
여 자: 뻔뻔스럽긴, 당장 쏴요! 신경 거슬려요.
남 자: (도둑 돌아서게 한 후 총을 겨누다가 뭔가 생각 난 듯) 잠깐, 저 안에 얼마나 있었지?
도 둑: 정확히 13분전 2시. 선생님이 온 뒤 로죠. 왜요?
남 자: 저 친구가 저 안에 있었다면 아직 전화는 못했어. 잘만 하면 무사할 수 있어. 그렇다 고, 죽이면 일이 커지고.
여 자: 중상을 입힌다면?
남 자: 이득은?
도 둑: 전 반댑니다. 무슨 이득이 있겠어요?
여 자: 이득이 있죠. 중추신경 중에서 이 부분의(여자는 남자의 목덜미에 손을 댄다) 1번 경추하고 2번 경추 사이를 강타하면 기억을 말끔히 상실해요.
남 자: 확실해요?
여 자: 네. 신경이 마비돼서 말을 못할 테니까 우리 입장으로선 마찬가지죠.
도 둑: (벌써 신경이 마비된 듯) 제 입장은 안 그런데요. 좀 더 안전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요? 사모님, 명석한 두뇌로 묘안을 내셔야죠.
여 자: (으쓱해서) 딴 방법이 있기는 해요. 술을 먹이는 거죠. 주정뱅이 말은 증거로 효력이 없어요.
남 자: 그래! 당신은 언제 봐도 대단해요.
도 둑: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정말 대단하십니다. 첨 뵙는 순간 단박에 알았죠. (두 손을 비비며) 근데, 무슨 술이 있죠? 이왕이면 적포도주로. 백포도주는 소화가 잘 안돼서요.
남 자: 와인은 안돼. 너무 오래 걸려. 위스키에 맥주를 섞은 폭탄주 세 잔이면 될 거야.
도 둑: 위스키는 휘발유 냄새가 나서...
여 자: (그 사이, 신나서 회오리주를 만든다) 이건 싸구려 술이 아녜요. 진짜 스카치 위스키 에 맥주를 섞은 거예요.

여자, 도둑에게 잔을 건넨다. 도둑 사림들의 눈치를 보다가 마지 못해 마신다.

여 자: 어때요?
도 둑: (감정가같이 맛을 보며) 음. 정말 좋은 데요! 한 잔 더 만들어 주시겠어요?
남 자: (술을 채워달라고 잔을 내민 도둑에게) 왜 이리 급해? 당신이 다 마시면 우린 어떡하구?
여 자: 예의를 지키세요? 어쨌거나 취할 사람은 저쪽이에요.
도 둑: 맞아요. (점점 대담해지며) 같이 취합시다. 하, 하, 하... 우리 마누라 이 얘기 들어도 안 믿을 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 대체 뭐라고 그랬기에 내 마누라가 그렇게 난리를 친 거죠? 날 취하게 해서 입 막는다. 이 행위는 뭔지 난처한 일 땜에...
여 자: 들었어요? 순 악질에요. 당장 쏴요. 끝내버리죠.
남 자: 그게 낫겠어. (선반에 두었던 총을 가지러 갈 때, 도둑이 먼저 집어서 남자를 겨냥한 다 ) 헛수작 말어! 내 총이야! 당장 이리 내.
도 둑: 입장이 바뀌었어. 당신 땜에 내가 시계추에 얻어맞질 않나, 마누라한테 쫓겨나게 생 긴데다... 내 척수신경을 마비 시키겠다구? 오락 시간은 끝났어. 난 도둑이지, 광대 가 아냐.
남 자: 도둑?
도 둑: 도둑이지. 진짜 도둑.
여 자: (재미있어 하는 기색으로) 도둑! 참, 별소리 다 듣겠네. 까만 복면은 어딨죠?
남 자: 그래, 어딨어?
도 둑: 까만 복면! 영화 찍는 줄 알어? 도둑이나 강도가 뭔지 알기나 해?
여 자: (으스대며) 나도 도둑, 강도, 사기꾼에 대해 알만큼 알죠.
도 둑: 이봐, 마르텔로파(派)라고 들어봤어?
여 자: (줄줄 외우듯이) 미르텔로파. 주요 멤버가 만지아, 세라피니, 그리고 안젤로 토르나 티, 별명은 스탕카...
도 둑: 토르나티의 별명은 스탕가야. 카가 아니라 가. 방언으로 위대하다는 뜻이지.
여 자: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죠?
도 둑: 무슨 상관이라니? 날 소개하지. 본명 안젤로 토르나티. 별명 스탕가. 곧이 안 들려? (안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낸다) 이거 산토 스테파노 형무소에서 발행한 출감 허가증이 야. 3년 살았지.
여 자: (서류를 보더니 얼굴이 환해진다) 진짠데! 스탕가... 아니 스탕가 선생님, 꿈만 같아 요. 결례가 아니라면 (그를 안고서 뺨에 키스한다) 난생 처음이야, 진짜 도둑이라니.
남 자: (질투가 나서) 무슨 짓이요, 이게? 이 불한당은 내 집을 털러 왔는데, 키스까지.에 이, 더러워.
여 자: 더럽다니? 말조심해요! 뭘 안다고 그래요. 도둑한테 키스해 봤어요?
남 자: 아니.
여 자: 그럼, 해보고 더러운지 아닌지 말해요.

그때 현관 벨이 울린다.

여 자: 누구지?
도 둑 : 내 마누라지. (수화기를 들며) 내 마누라한테 대신 설명해야 돼. 마리아, 나야. 당신 전화 땜에 나 아주 곤란하게 됐어. 몇 번이고 말하지만, 일할 땐 날 좀 내버려둬. 우 리 집에 불이 나더라도 나한테 전화하지 마. 얌전히 집이나 보고 절대 신경 쓰지 마.
남 자 : 전화벨이 아니고 현관 벨이오.
도 둑 : (화난 기색으로 전화기를 보며) 어쩐지 대꾸를 안 한다 했어.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남 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누구세요?
안 나: (목소리) 누구긴 누구예요? 여보, 나예요. 안나.
여 자: (핼쓱해지며) 어머! 이번엔 진짜 부인이야.
남 자: (목소리를 천연스럽게 가져가며) 어, 당신이야? 근데, 왜 돌아왔어? 무슨 일 있어?
안 나: 내가 묻고 싶은 게 그거예요. 웬 미친 여자가 나한테 전화해 마구 욕을 해댔다니까.
도 둑: 미친 여자! 내 마누라야. 그럴 것 같더라니.
안 나: 문 열어요. 빨리!
남 자: 지금 나가. (창문에서 멀어지며) 큰일 났어. 뭐라 그러지?
도 둑: 자, 다들 잘 있어요. 난 갑니다. (창문으로 나가려 한다)
남 자: (도둑의 옷깃을 잡으며) 안되지. 그쪽 편리대로? 당신 부부 덕에 일이 이 꼴이 됐으니 마무리도 맡아야지.
도 둑: 날더러 뭘 어떡하라구?
남 자: (여자에게로 돌아서며) 둘이서 부부 행세를 하면 만사가 오케이지.
여 자: 결혼! 저 사람하구! 서로 소개도 안했는데.
남 자: 걱정 말아요. 사랑은 차후에 생기는 거니까. 어쨌든 남의 남편 애인보다야 가짜 남편 아내가 되는 게 낫지. (그의 아내를 맞이할 채비를 차리며) 자, 다들 준비됐죠? (총 을 집어 들며) 이건 내가 갖지. 명심할 건, 만약 딴 수작을 부리면 (총을 발사할 태 세를 취하며) 이걸 안 썼으면 좋겠어.
여 자: 어머, 끔찍해. (도둑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내 남편이 되려면 똑바로 서세요, 잘 좀 보게. 좀 단정하게 입고 다니면 안돼요?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가기가 늘 부끄럽다니 까. 남자가 정갈치 못하면 여자만 욕먹어요.
도 둑: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집에 양복이 있는데, 빨리 가서 갈아입고 올까요?
여 자: 안돼요, 그건.
안 나: (목소리, 밖에서 들려온다) 무슨 일이 있어요? 누가 왔어요?
남 자:(밖에 나가면서) 아니야. 지금 나가. (남자 안나하고 같이 들어 오면서) 말한 그대로 지. 오해가 있었지만 다 풀렸어.
안 나: 오해요? 말도 안돼. 어머님 댁에 있을 사람이 어떻게 여기 있어요?
남 자: (먼저 들어서고 아내가 뒤따른다)설명한다니까. 이쪽은 내친구 안젤로 토르나토박사.
도 둑: (냉랭하게) 토르나티.
남 자: (살짝 웃으며) 미안. 이 분은 부인이시고.
도 둑: 남편께서 우리 둘을 결혼시켰죠. 사랑은 차후에 생긴다면서...
남 자: (입을 막으려고) 공무상... 호적 처리 말이야.
여 자: 이렇게 불쑥 찾아봬서 죄송해요. 늦었지만 남편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사정이 보시다시피...
안 나: (쌀쌀하게) 괜찮아요. 근데, 저한테 전화하신 분이 부인이세요?
남 자: (재빨리 끼어들며) 그래. 하지만 이해해야 돼. 그땐 정말 심란했거든.
여 자: 용서하세요. 질투 땜에 보이는 게 없었어요. 제 남편이 부인하고 만난다는 생각에 그 만. 근데, 이렇게 뵈니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안 나: 그럼, 제가 한물 간 여자나 무슨 괴물 같다는 거예요?
여 자: 그게 아니라, 아주 우아하시다는 거죠. 제 말은 남편 취향이 좀 천박해서...
도 둑: 천박하다구? 내가!
안 나: 안됐군요. 그런 남편하고 살다보니 같이 천박해졌다니. 그렇다고, 나를 댁의 남편 같 은 그런 남자나 만나는 저질로 봐요?
도 둑: 됐어요. 됐어. 천박하고 저질인 걸로 족해요.
남 자: (어떻게든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의도에서) 말이 지나쳐. 저 친구 볼품은 없어도 취향 에 따라 어울릴 수도 있지.
안 나: 당신이 내 남편이야! 아내가 모욕을 당해도 화는 안 내구, 뭐 저 남자가 애인으로 어 울려? 미쳤어!
여 자: 댁의 남편 말씀은, 여자는 자기가 남편을 사랑하는 경우 다른 여자도 자기 남편을 좋 아할 거란 거고. 취향이 천박해도 말이에요.
안 나: 좋으시겠어요. 내가 남편을 사랑하니 부인도 내 남편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당장 애 인하시지 그래요?
여 자: 무슨 그런 말씀을...
안 나: (도둑에게로 돌아서며) 뭐라고 한 말씀 하셔야죠?
도 둑: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내가 아니라 애인으로 삼을 참입니다. 부인 남편께서 반대만 안하신다면. 우릴 결혼시킨 분이니까, 전적으로.
안 나: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유머가 풍부하시니 부인이 다른 여자를 경계하죠. 위트가 넘치는 남잔 위험해요. 취향이 천박하면 더 위험하죠.
도 둑: (여자에게) 또 그러네, 내가 천박하다구.
여 자: (사랑스럽게 도둑을 팔로 감싸며) 이 남자 정말 위험해요, 부인이야 모르시겠지만.
안 나: 절대 당신은 아녜요! (도둑과 여자가 다정히 손을 잡고 있는 걸 보며) 어쩜, 신혼부 부 같애요. 천생연분이야. 안 그래요?
남 자: (화가 치밀어) 그래. 근데, 이젠 가셔야죠. 시간이 꽤 됐어요.
안 나: 원, 매너가 없긴. 신경 쓰지 마시고 편히 계세요. 같이 한잔할까요?
도 둑: 그러죠! 아까 마시던 그걸로.

그가 병을 집자 여자는 그에게 ‘금지’의 표시를 보낸다.

여 자: (안나에게) 호의는 감사하지만. (도둑은 병을 주머니에 넣는다) 너무 늦었어요. 남편이 오기 전에...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서) 아니, 남편이 집에 가는 게 너무 늦어서요. 저희 집이 꽤 멀어요. 남편은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기도 하구요. 여보, 그렇지?
도 둑: 응?
안 나: 그냥 여기서 주무세요. 빈방도 있구요.
도 둑: 아, 우리는 좋습니다.
여 자: (마지막 노력으로) 저, 사실은 준비가 안돼서, 우리 저인 파자마 없인 못 자요.
안 나: 그거야. (남편에게) 당신 파자마 드려요. 새거 하나 있죠?
남 자: (절망적으로) 응!
안 나: (여자에게) 이리 오세요. 방을 보여 드릴게요. 편안하실 거예요. (도둑에게) 부인을 잠시만 뺏어갈게요.

두 여자는 퇴장하고 두 남자는 남아 서로 쳐다본다. 한 남자의 시선에는 당황함이, 다른 남자의 시선에는 증오가 차 있다.

남 자: 정말 잘 거야, 내 파자마 입고? 그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걸.
도 둑: 애당초 이게 누구 생각인데? 당신 애인 남편 노릇을 하라 더니 이제 와서 왜 야단이야? 평생에 단 하루도 운이 없던 놈이 먹고 살겠다고 여길 왔더니.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미안하지만, 당장 내 마누라한테 전화해서, 아냐, 그럴 필요도 없지. 당신 부인에게 다 털어놓고 경찰을 부르자고. 경찰한테 심문 받는 게 나아, 마누라보다는...
남 자: 화가 나겠지. 뼛골 빠지게 일하는데 우리가 방해했으니. 당신 털러 왔지, 여기? 좋아, 털어 가. (그는 신경질 적으로 서랍을 연다) 여기 금 티스푼도 있어. 다 가져 가.
도 둑: (자루를 꺼내 벌렸다가 다시 생각하고서) 고맙긴 해도 이건 내 식이 아냐. 다음 기회 로 미루지.
남 자: (주머니에서 총을 꺼낼 듯) 그래? 그렇다면 이거 뭔지 알지!
도 둑: 정 그렇다면. (그는 스푼 하나를 아주 조심스레 다룬다) 정말 탐나는 물건이네.

스푼을 상의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남 자: (총을 꺼내 위협적으로) 깡그리 털어 가. 우리 집에 별로 훔칠 게 없다느니, 우리가 강도를 이용한다느니 나중에 딴 소리 말구.
도 둑: 그런 말 안했는데.
남 자: 그렇게 말할 타입이야. 이것도 가져.

그는 도둑에게 총을 건네려고 한다. 바로 그때 도둑의 아내가 들어온다. 남자가 남편에게 총을 겨눈 걸 보더니 비명을 지르면서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들어 남편에게 매달린다.

도 둑: 마리아! 여길 어떻게...
도둑 아내: 문이 열렸던데.
도 둑: 난 3층까지 파이프 타고 올라왔어.
도둑 아내: 여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알았을 땐 너무 늦었어. 훔친 거 다 돌려줘. 몇 달은 살겠지만 요즘같이 벌이가 안 될 때는 감방도 괜찮아.
남 자: 아내라니! 이런 빌어먹을! 그냥 여자라도 문젠데 아내가 둘이란 걸 어떻게 말해.
도둑 아내: 아내가 둘이라니, 누가요?

남자 절망에 빠져서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들어 나가라는 손짓을 한다. 도둑 아내 그것을 남편을 가르키는 것으로 안다.

도 둑: (공포에 질려 목소리가 올라간다) 나하곤 상관없어. 저 사람이 시킨 거야. 자기 부인이 알면 큰일 난다고, 모르는 여자를 내 아내로. 그냥 아내로...
도둑 아내: 총 이리 줘요. 못된 버릇을 고쳐주지. (남자에게서 총을 빼앗아 남편을 겨눈다) 흥, 딴 마누라를 숨겨두고 나하고 잘 살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죽여주지. (안전장치를 풀려고 애쓴다) 이거 왜 안되죠?
남 자: (총을 낚아챈다) 제발, 소란 피우지 말아요. 다른 두 여자가 들으면 나나 당신 남편이나 끝장이오. 잠깐만 내 얘길 들어요. 남편을 살리려면...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이런, 벌써 나오잖아!
안 나: (들어오면서) 토르나티 선생님, 아리따운 부인이 기다려요. 파자마는 제가 직접 가져 왔어요. 저도 남편하구... (말을 멈춘다. 도둑과 남편이 새로 나타난 손님을 안 보이게 가리려고 애쓰지만 안나는 이미 보고 놀라며) 여보 이 분은 누구세요?
남 자: (그 존재를 모르는 듯) 누구?
도둑 아내: 전 이 사람 아내, 마리아 토르나티에요.
안 나: 네? 아내?
남 자: (어찌할 줄 몰라서 횡설수설한다) 바로 내가 부인이셔. 아니, 저쪽이 부인이지. 내 친구 토르나토씨의 첫 부인....으로 지금은 이혼하셨고.

도둑의 아내가 끼어들려 하자 남편이 팔꿈치로 찌른다.

안 나: 외국 국적을 가졌어요?
도 둑: 음, 아녜요... 우린...
안 나: 근데, 어떻게 이중결혼에다가 이혼도 가능했죠?
도 둑: (남자에게 도움을 청하며) 네? 가능했던 건...

남자, 도둑의 시선을 받고는 절망에 빠진다.

안 나: 아, 친구 분이 영화 일을 하시나 보다.
남 자: 응, 그래. 영화 일. 영화제작자야.
안 나: 아, 제작자! 어떤 영화를 만드세요? (손에 든 자루를 눈여겨보며) 손에 든 게... (자루 를 연다) 내 은스푼! 어찌된 거죠?
도 둑: 훔친 거죠.
안 나: 재밌네요. 그러니 전문가죠.
도 둑: 네, 집안 대대로...
안 나: (도둑에게) 부인도?
도둑 아내: 전 아녜요. 남편이 집에만 있게 해요.
안 나: 아니, 이혼문제 말예요. 이혼했는데 어째서 아직 아내로 있죠?
남 자: 분명히 이혼했고 재혼했지만 민법보다 상위법인 교회법은 이혼을 인정 안했지. 그러니 민법에서는 이미 재혼이 인정됐지만.
도둑 아내: 뭐! (남편에게) 그런 말 일체 안했잖아.
도 둑: 나도 몰라.

남자는 도둑을 여자들에게서 떼어놓는다.

안 나: (도둑의 아내에게) 부인한테는 그 편이 낮죠.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에요. 아마 재판이 열리면 감옥에 가겠죠, 좀도둑 경우처럼.
남 자: 그럴 걸. 스푼을 훔치는 누구처럼. (꼭 집어서 말하듯) 그냥 마누라 하나 잘못 둬서 말야.
안 나: 네?
남 자: 아니, 마누라가 둘이라서.
안 나: (도둑에게) 참, 다른 부인한테 첫 부인이 온 걸 알려야죠. (도둑의 아내를 가리키며) 안됐어요. 우린들 뭐 별 방도가 있나요. 설령 다들 좋다고 해도 더블 베드라, 아무래도 불편할 텐데.
남 자: 어떻게든 해 봐야지.
도둑 아내: 당신, 이번 일은 그냥 못 넘어갈 줄 알어.
도 둑: (자루를 들고 가고 싶어도 왼편에 난 문 쪽으로 아내를 끌고 가기 위해서는 두고 갈 수밖에 없다) 그래. 어쨌든 나가자고. 제기랄! 수입 잡은 걸 두고 가다니!
남 자: (도둑의 아내에게) 가시다니 만나야죠, 남편 부인을. 이쪽으로 오세요.
도 둑: 나도 따라가야지.
안 나: (세 사람이 나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젓는다) 여자가 불쌍해! (이내 탁자 위에 흩어져 있는 병을 보고) 엉망이네, 술들 마셨나 봐.

술을 한잔 따른다. 그 사이 웬 남자가 문간에 나타나서 조용히 안나를 부른다.

안토니오 : 안나... 혼자야?
안 나 : 아니, 안토니오. 미쳤어? 가, 빨리. 남편 여기 있어.
안토니오 : 대체 무슨 일이야? 전화에다 한 얘긴 종잡을 수가 없어. 내 마누라가 전화를 했다니?
안 나 : 아냐, 오해였어. 어떤 여자가 나한테 전화해서 마구 욕을 하잖아. 자기 남편 때문이 라고.
안토니오 : 그 여자가 내 마누란 줄 알았다고?
안 나 : 나야 거기 얼굴을 아나, 목소리도 모르니 겁이 덜컥 났지. 어쨌든 여기 있으면 안돼. 가.
안토니오 : 나보고 꺼지라고? 그렇겐 안돼. 내가 그렇게 얼간이로 보여? 걸려온 전화는 오해였고, 남편도 지네 엄마 집이 아니라 여기 있다. 그렇다면, 무슨 내막이 있겠지. 내 생각을 털어나 봐? 우리 약속을 취소한 건 여기서 딴 놈을 만나려는 수작 아냐? 누구인지는 몰라도 남편은 아냐.
안 나: 미쳤어. 어떻게 그런...
안토니오 : 거짓말 마... 술잔은 뭐야? 이게 증거지. 영적 교감을 위한 준비였겠지. 그 놈 어디 있어? 이름은? (어깨를 잡는다) 말해! 어떤 놈이야?

그때, 도둑이 겨드랑이에 파자마를 끼고 나타난다. 자루를 찾으러 왔다. 그러나 새로 나타난 손님이 실랑이를 하는 걸 보자 겁에 질려 자루를 떨어뜨리고, 그 소리에 안토니오가 돌아본다.

도 둑: 방해하려든 게 아니고, 자루 땜에...
안토니오 : 오, 이 친구구만. 파자마까지. 같이 잘 준비까지 다 끝났네.
도 둑: (팔을 움켜쥐는 안토니오에게) 잠깐만요, 이건 저 부인이 주신 거요. 원하시면 가져 요 파자마 땜에 흥분할 필요야 없죠.
안토니오 : 그거... 저 사람이 준 거, 나도 알아! 너희 둘은 대가를 치러야 돼. (이 말을 끝내자 문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는다) 해명해. 그 전엔 못 나가.
안 나: 왜 그래. 이건 순전히 오해야. 이 분은 남편 친구 분이시구, 부인네들하고 함께...

다른 방에서 두 여자가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두 여자의 목소리 : 내가 촌닭이라고... 얻다가 그따위 소릴. 이 창녀 같은 게...
(다른 목소리) 뭐, 창녀? 말조심해.

안토니오 : (움켜잡았던 손을 풀며) 전부... 당신 부인이요? 몇 명이나...

도둑은 꽤 많다는 표시인 양 손짓을 한다.

안 나: 제발, 남편에겐 아무 말씀도 말아 주세요.
도 둑: 입 다물죠.
안토니오 : 관대하시군요. 오해해서 미안해요.
도 둑: 이번 오해는 또 어떤 거예요? 오늘밤은 정말 이상해!
안 나: 이제 나가도 되지? 열쇠 줘.
안토니오 : 코트에. (주머니를 뒤진다) 이런, 제기랄! 속으로 들어갔잖아. 여기 구멍이 났어. 서 있지만 말고 좀 거들어.

열쇠를 쉽게 찾으려고 코트를 벗는다. 세 사람이 합동하지만, 열쇠는 생명이 있는 듯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난다.

안 나: 잡았어!
도 둑: 가만, 여기예요. 어, 어디 갔지?
안토니오 : 살살 해요. 안감 다 찢어져요. 이젠 소매로 갔어.

옆방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안 나: 사람들이 나와. 어쩌지?
도 둑: 이리 와요. 난 두 시간이나 있었어요. (추시계를 연다) 편히 쉬어요. (문을 닫으려다가) 시계가 칠 땐 조심해요. 얻어맞지 않게.

두 여자가 들어오고 남자는 그 뒤를 따른다. 그들은 떨떠름한 표정이다.

도둑 아내: (남편에게) 여기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집에 가서 당신이 해명해.
도 둑: 집에? 왜 벌써 가? 여기 재밌잖아, 사람들도 좋구. 봐, 파자마도 줬어. 하여간 여길 못 나가. 열쇠가 없어.
도둑 아내: (문을 흔들며) 자물쇠 따는 거야, 당신 전공 아냐?

도둑은 주머니에서 커다란 열쇠 꾸러미를 꺼낸다.

안 나: (남편에게) 웬 열쇠 뭉치죠?

바로 그때 시계가 친다. 첫 번째 칠 때 비명이 들린다. 시계 안에 있던 안토니오가 머리를 어루만지며 밖으로 나온다.

도 둑: 조심하라 그랬죠.
안토니오 : 줄리아! 당신 여기 웬일이야?
안 나: 아세요? 토르나티씨 부인.
안토니오 : 누구 부인? 농담도 내 아내요.
여 자: 시계 속에서 뭘 했어요? (도둑에게) 아까 저 안에 있을 때 저 사람도 같이 있었어요?
도 둑: (순간적으로 당황하더니) 글쎄요. 안이 하도 어두워서. 말하자면...

말을 잇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은 도둑이 각자의 사연을 밝힐까봐 급히 끼어든다.

안 나: 그건 오해였어요, 분명히.
안토니오 : 네, 친구들이 아직 덜 모여서 어리둥절한 통에, 괜히 엉뚱한 오해만 생겼죠.
남 자: 시시콜콜 무슨 해명이 필요하겠어요?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오해가 아니죠.
도 둑: (그의 아내에게) 나가자고.
도둑 아내: 가만, 그렇게 당기지 마.
도 둑: 눈치 채기 전에 빨리 가.

전등 스위치 옆을 지날 때 불을 끈다.

안 나: 누가 껐어?
여 자: 무슨 일이지?
안토니오 : 잡아! 그 두 사람 어딨어?
여 자: 그 남자, 제 정신 아냐. 지금쯤... 자수할 지도 몰라.
남 자: 빨리 잡아. 보내면 안돼.

모두 나간다. 창문에 불빛이 비친다. 불빛은 바로 거실로 들어와 도둑의 장물이 담긴 자루 위에 멈춘다. 바로 그때 사람들이 되돌아온다.

도 둑2: 야, 이런 집도 있네! 은스푼을 챙겨 놨어. 자상하기도 하지. (사이) 누가 오잖아.
남 자: 그 도적놈이 창문으로 다시 왔어. 물건을 가지러.
안 나: 붙잡아요.
여 자: 빨리 잡아요.
남 자: 불을 켜.

불이 들어오면, 네 추적자가 도둑2를 포위하고 있다.

안 나: 이 사람... 저명한 토르나티씨가 아닌데.
도 둑2 : 아무리 함정수사라 해도, 이건 너무해. 창문은 열어 놓고, 물건도 챙겨 놓고. 내가 움직이는 순간에, 이건 완전히 함정 수사야. 우리 노조에 보고할 거야. 다들 안녕히 계세요.
일 동: 안돼!!!
남 자: 젠장, 이건 오해라니깐.
도 둑2 : 뭐요?
일 동: 오해라고.
남 자: 자초지종을 설명하죠.
일 동: 말하자면...

다음 대사는 동시에 말해지기 때문에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어 소음같이 들린다.

여 자 : 초저녁에 남편하고 같이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당장 이리 오라고...
안 나 : 별장에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받았더니 느닷없이 욕을 퍼붓는데...
남 자 : 어머님 댁에 있었죠. 저녁을 먹으려는데, 문득 사무실 열쇠를 집에 두고 온 게 생각이 나서...
안토니오 : 일찌감치 영화관에 갔죠. 늘 보는 그런 거 있잖아요, 섹스, 폭력... 그런데, 그때...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의미 없는 말의 공세에 압도당한 도둑2는 뒤로 물러나다가 소파에 부딪힌다. 처음엔 주저앉았다가 다음엔 드러눕게 된 도둑2에다 대고 불성실한 네 사람은 거짓말을 줄줄이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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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파랑새 | 작성시간 06.10.24 잘 모르지만,"도덕적 도둑"이 맘에 드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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