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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 챕터 1][대사집] E3 C1 - Origin (보리스)

작성자han94|작성시간14.06.16|조회수6,328 목록 댓글 1

 

 

(화면 조금 줄이고 보시는 게 좋아요~)

 

 

 

 

히라크 칼마린: 드디어 왔는가.

티치엘: 앗, 처음 뵙는 교수님이네요. 안녕하세요?

히라크 칼마린: 네냐-야플리아의 학장을 맡고 있는 칼마린이라고 하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하는 건 처음이지, 그렇지. 티치엘 쥬스피앙 양?

티치엘: 네냐플의 학장님이시라고요?

           저기… 몰라봬서 정말 죄송해요.

히라크 칼마린: 죄송할 필요 없네. 가끔 교수들도 내 얼굴을 잊어버리고 무슨 과목을 맡고 계시냐고

                     물어볼 정도니까. 그동안 에밀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수업은 어떠했나?

보리스: 가끔 수업이 아니라 훈련을 받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든 적도 있었지만….

           덕분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윈터러를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저로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히라크 칼마린: 훈련이라…?

                     정확히 짚었네. 생각보다 냉철한 구석이 있군.

                     실은, 자네들은 우연히 네냐플에 입학하게 된 것이 아니네.

                     자네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그저 겉모습만 번드르르한, 평범한 무기가 아니지.

                     그것은 아티펙트라고 불리는, 자네들의 숙명과 같은 존재이자, 이 별의 운명을 구한

                     무기가 아닌가?

보리스: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시죠?

히라크 칼마린: 네냐플을 단순한 마법 학원으로만 생각하는 건 곤란해.

                     이곳에서는 세상 각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심도깊게 바라보고 있네.

                     심지어 저 멀리 떨어진 산스루에서 나비 한 마리가 고치를 벗고 있는 일까지 기록하고

                     있다고 할 정도니까. 네냐플은 그런 곳이야.

보리스: …….

히라크 칼마린: 하지만 그런 네냐플의 우리들마저, 아티펙트의 힘을 빌리거나 훔칠 수는 없네.

                     그 힘은 오직 자네들만을 위해 설계된, 자네들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지.

                     따라서 지금 일시적으로 그 힘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닐세. 이 자리에서는 말해줄 수는 없지만, 네냐플에서는 특별한 이유로 자네들이 가지고

                     있는 아티펙트와 그 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네.

                     그래서 그 힘을 다시 찾도록 도와주기로 한 것이지.

                     그러던 중 마침, 이솔렛이 부탁한 일에 자네들을 포함시키면 어떨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네

보리스: 저희들의 아티펙트와 이솔렛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히라크 칼마린: 이솔렛, 설명해 주게.

이솔렛: …보리스.

           달의 섬에 골모답이 다시 나타났어.

보리스: ……!

이솔렛: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지만, 지팡이의 사제님마저도 골모답을 처지할 방법을 찾지 못하셨어.

           그래서 내가 이곳에 온 거야. 네냐플에서 골모답을 처치해 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아, 달의 섬으

           로 함께 가기 위해서.

칼마린: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자네들은 에밀 교수의 수업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기록한 학생들이지.

           자네들이야말로 달의 섬의 괴물을 물리칠 자격이 충분하네.

보리스: 그렇지만 알고 있잖아요, 이솔렛. 제가 섬을 나올 때 무엇을 맹세했는지.

           저는 달의 섬에 다시는 갈 수 없어요.

이솔렛: 너도 알고 있잖아.

           골모답은 이계에서 온 존재야. 그 괴물은 평범한 무기로는 죽일 수 없어.

           우리에겐 네가 가진 힘이 필요해.

보리스: 윈터러에 깃들었던 신비한 힘은 모두 빠져나가 버렸어요.

           게다가 지금의 저는 윈터러를 한 손으로 드는 것만으로도 버겁다고요.

           마치 검이 저를 거부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칼마린: 그렇지 않네.

           그 검은 자네를 거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오히려 예전처럼 자기를 다시 휘둘러주길 기다리고 있지.

           자네는 이미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겼네. 오르두스와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않았는가?

           그 검은 사용하면 할 수록 더 강해질 것이고, 예전의 힘을 되찾게 될 거야.

보리스: 그렇게 말하셔도, 저는 달의 섬에 갈 수 없어요.

           물론 가길 원해요. 어마어마하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고, 그쪽을 바라봐도 눈물이 날 정도로.

           그곳에서 이솔렛 당신과 나우플리온 사제님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도, 떠난 후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도 제 자신이에요.

           그래서 갈 수 없었어요. 특히 이솔렛 당신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달의 섬에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감히 할 수 없었다고요.

이솔렛: 네 마음을 알아.

           너에게 섬의 일로 이런 부탁을 해서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 네게 못할 짓이야.

           하지만…. 역시 섬이 죽음의 기운으로 덮여가는 걸 지켜보는 것도 괴로워.

보리스: 이솔렛….

티치엘: 저…보리스.

           난 네가 달의 섬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만약 네가 그곳의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준 게 맞다면,

           내가 아는 너는 항상 잘못을 용서받고 싶었을 거야.

           그렇다면 이번이 네가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아닐까?

           이대로 계속 섬사람들이 너를 미워해도 좋겠어?

이솔렛: 골모답의 일이라면, 사제님들께서도 널 받아들이고 믿음직스럽게 생각하실 거야.

           그리고 내가 널 믿으니까.

보리스: …….

티치엘: 그리고 봐봐, 보리스. 우리들도 함께 가잖아.

           그러니까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만약 네가 그곳에서 위험한 상황에 빠진다 해도 우리가 지켜줄게!

보리스: …언제 출발하는 거죠?

칼마린: 마음을 결정했나.

           이솔렛이 타고 온 배가 지금 칸타 파르스 근처에 정박되어 있어. 그 배를 타고 가면 되네.

           그리고 이것을 받아 두게.

 

           [서리의 눈 획득]

 

칼마린: 아직 자네들의 힘이 온전치 못한 점을 염려하여 준비한 물건이지.

           그 돌을 골모답의 몸에 박아넣고 윈터러로 찌르면, 순식간에 골모답을 얼려버릴 수 있을 걸세.

           달의 섬은 우리에게 골모답을 처치해줄 것을 부탁했고, 우리는 그 부탁을 들어줄 것을 약속했네.

           네냐플의 입장에서도 골모답은 꼭 소멸되어야만 하는 존재야.

보리스: 감사합니다.

칼마린: 그 돌은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므로, 꼭 골모답과의 전투에서만 활용할 것을 명심하게.

보리스: 알겠습니다.

칼마린: 달의 섬에서 자네들은 네냐플의 명예를 대표하는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골모답을 이 세상에서 몰아내길 바라네. 그럼 건투를 빌지.

 

 

 

 

[달의 섬 선착장]

테스모폴로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바람이 분다.

                    과연 먼 길을 무사히 올 수 있을지…….

                    좀 더 옷을 단정히 하시는 게 좋겠네.

                    처음 본 빛은 잔상이 오래 남는 법이오.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야하지 않겠소?

달여왕의 군대1,2,3: 명심하겠습니다.

테스모폴로스: 안심해도 좋겠지. 그 아이는 믿을 수 있는 항해자니까….

 

                  [잠시 후]

 

테스모폴로스: 많이 늦는군.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어. 비는 좋지 않은 신호인데…….

달여왕의 군대1: 사제님,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겠습니까?

테스모폴로스: 그건 달여왕께서 결정하실 일이오.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잠시 후]

 

테스모폴로스: 오래 기다리던 바람이 오니 갈대도 박수를 치오.

                    잘 오셨소. 바다 건너의 이방인들이여.

                    대륙과의 교류를 관장하는 메달의 사제 테스모폴로스라고 하오.

이솔렛: 다녀왔어요.

테스모폴로스: 고생 많았구나. 날씨가 험하긴 했으나 너를 믿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껏 큰 문제는 없었느냐?

보리스: …….

테스모폴로스: ?

이솔렛: 다들 많이 지쳤을 거예요.

테스모폴로스: 아, 그렇군. 계속 여기서 비를 맞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 은색 메달들을 받으시오. 그것이 통행증의 역할을 할 테니까.

티치엘: 감사합니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할게요.

테스모폴로스: 자, 그럼 마을로 돌아갑시다.

                    어르신들께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시니, 먼저 공회당으로 가서 인사를 드리시길 바라오.

 

 

 

[달의 섬 공회당]

데스포이나: 기쁜 날이군요.

                 새봄에 피는 첫 꽃을 기다리듯, 여러분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찌나 조심스럽고 조마조마하던지

                 요….

페이스마: 요즈렐이 알려주었다.

              이들이 네냐플에서 신중을 가해 선별한 네 명의 학생들이란 말이지?

              정말이지, 네냐플에서 우리를 위해 큰일을 해주었어.

데스포이나: 이솔렛이 수고가 많았구나.

                 자, 우리의 옛 고향. 대륙에서 온 손님들께서는 가까이 오셔서 저희의 인사를 받으세요.

보리스: 오랜만입니다.

페이스마: 허!

달여왕의 군대3: 저, 저 사람은?

달여왕의 군대2: 틀림없어!

달여왕의 군대1: 감히 어딜……!

데스포이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이솔렛?

이솔렛: 제가 다 설명드리겠어요.

데스포이나: 아니다. 나는 저 소년에게 직접 들어야겠다.

보리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최소한의 감정만 가지고 살아왔다 한들, 인간으로서의 염치마저 잃어버린 건 아닙니다.

           네냐플에서 만난 이솔렛에게 섬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들었고, 제가 여러분을 도울 수 있다기에

           오게 된 것 뿐입니다.

페이스마: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릴 도울 수 있다고 말하느냐?

보리스: 주제넘는 생각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려움에 처한 달의 섬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페이스마: 테스모 사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그 아이인 줄 모르고 여길 데려온 거요?

테스모폴로스: 그게…날이 완전히 저문데다 비까지 와서 얼굴을 알아채지 못했소.

페트라: 섬에서의 추방은 곧 존재의 완전한 말살을 뜻합니다.

페이스마: 확실히 맞는 말이다. 저 소년은 두번 다시 섬에 올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법을 돌이켜봐도, 추방당한 인간을 다시 받아들이는 법은 우리 섬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병사가 보리스를 공격한다]

 

데스포이나: 그만! 그만 하세요!

                 감히 신성한 공회당 안에 허락되지 않은 피를 묻힐 생각인 겁니까!

                 그것만은 제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병사, 물러난다]

 

데스포이나: 쉽게 해결이 나지 않겠군요.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다들 하고 싶은 말씀들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

                 늦은 밤이지만 잠시 긴급 회의를 가지도록 합시다.

                 이솔렛, 너도 그 소년을 데리고 잠시 밖으로 나가있거라. 어서.

 

 

 

[달의 섬]

에키온: 이게 누구야?

           저 기분 나쁜 우울한 눈빛, 내가 아는 사람하고 똑 닮았는데?

           아니, 이솔렛하고 꼭 붙어다니는 걸 보니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보네!

           그렇지?

이솔렛: 에키온,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돌려 말하지 말고 바로 해.

에키온: 흥, 원한다면!

           네 녀석이 어째서 여기 있는 거야?

           처형 당하고 싶어서 제 발로 걸어들어온 거냐?

           아니면, 지금쯤이면 죄가 다 잊혀졌을 것이라 생각하고 뻔뻔스럽게 돌아온 거냐?

아나벨: (대체 보리스가 섬에서 무슨 잘못을 했길래 다들 이러는 거지?)

이솔렛: 사제님들의 부름에 응한 것 뿐이야.

           새빨간 거짓말이야! 우리 아버지가 곧 대류에서 외지인이 올거라고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그게

           저 녀석이라고 하진 않았어. 대체 사제님들이 허락하신 그 대단한 외지인이 누굴가 싶어서 나와봤더

           니, 그 정체가 바로 너일줄이야! 만약 달여왕이 이 사실을 아셨더라면 네 머리는 이미 여왕의 손에

           들려 있었을거다!

이솔렛: 말은 물보다 미끄럽고, 공기보다 가벼워. 그러니까 입 조심해, 에키온.

           아직 사제님들은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으셨어

에키온: 내가 듣고 싶은 목소리는 네 것이 아니라 이 녀석의 것이야. 스스로 당당하다면

           한 마디라도 해봐! 좋아하는 여자의 뒤에 숨어 모든 일을 그녀한테 다 떠넘길 셈이야?

보리스: !, 사제님들이 내게 싫은 소리를 하시는 건 이해한다. 과거에 그분들께 많은 빚을 졌으니까,

           하지만 넌 그럴 자격이 없어. 너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빚도 없고, 하물며 그런 걸 논할 사이도 아니

           었지. 따라서 너는 비난할 수 없어. 나 뿐만 아니라, 그녀 역시도.

에키온: 뭐, 뭐야. 그 말투는? 지금 내게 경고하는 거냐?

보리스: 마음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경고로 받아들이다니 섭섭한데.

에키온: 여러분! 이 대륙 출신 무뢰한이 과거에 우리 섬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신다면 다들 깜짝 놀라

           실걸요? 저 녀석은 순례자가 되기 싫어서 억지로 리리오페와의 혼약을 어기고 도망쳤습니다!

           혼약을 깨기 싫다고 하는 리리오페에게 심지어 폭력을 행사면서까지요!

아르파: 그게 정말이야?

닉티모스: 순례자의 길을 거부했다고! 감히 그럴수가 있나!

에키온: 그러니까 이대로 두면 안된다구요!

           당장 저 녀석이 가진 대륙의 위험한 물건들을 모조리 빼앗고, 그 다음에 쫓아내야합니다!

롯사: 꺄아, 싫어! 무서워!

에키온: 그러니까 이 한 몸 희생해서 저 녀석의 물건을 빼앗아 버리겠단 말입니다!

           자, 어서 내놔!

보리스: 그럴 수 없어.

에키온: 내놓으라고! 지금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는거야?

보리스: 이런 상황에선 그냥 잠자코 있으라고 내 직감이 말하고 있군.

에키온: 건방져! 이래도 내놓지 않을 거야? 크윽…! 감히 나, 나한테 칼을 휘둘러?

이오: 이제 에키온은 끝장이야…이미 병에 걸려버렸다고!

보리스: 아니야. 난….

에키온: 네가 휘두른 그건…. 바로 그 검이잖아!

           네 녀석의 겨울을 불러들이는 재앙의 검!

           이제 알겠다! 우리들에게 복수를 하러 온 거지?

보리스: 그렇지 않아!

닉티모스: 복수! 달여왕의 권능에 도전하는 자가 누구냐?

 

              [잠시 후]

 

테스모폴로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 그 사이를 못 참고 또 사고를 치다니!

페이스마: 역시 우리가 품어서는 안 될 녀석이오!

데스포이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거라, 에키온.

에키온: 데시 사제님, 저 녀석이 절 공격했습니다!

           그것도 바로 그 겨울의 검으로요!

데스포이나: 칼로 공격당한 사람치고는 다친 곳이 없어도 너무 없구나.

                 내 눈에는 단지 약간 까진 네 팔꿈치와 엉덩이만 보일 뿐이다

                 그러니까 내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계속 넘어져 있을 필요는 업산다, 에키온.

에키온: 그렇지만…사제님! 저 녀석은 섬에 있어서는 안 돼요!

           예전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 아시잖아요!

데스포이나: 안 그래도 그 일과 관련해 결론을 내리고 오는 참이다.

에키온: 역시! 분명 현명한 판단을 내리셨겠죠?

데스포이나: 확실히 여기 있는 소년은 마땅히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소년이 섬을 나갈 때 버린 이름은 앞으로 영원히 사용할 수 없을 것이며,

에키온: 그렇죠!

데스포이나: 섬을 나갈 당시 스스로 맺을 맹세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에키온: 물론 그렇죠!

데스포이나: 허나…현재 섬은 유례없던 위기 상황을 겪고 있다. 지난 달, 정체 모를 괴물이 숲에 나타나

                 섭정 각하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 결계를 쳐 간신히 멀리 쫓아냈으나, 아직 괴물은 섬을 완전히

                 떠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책을 찾고자 고심을 거듭하여 대륙에서 지원군을 받기로 결

                 정하였고, 그 결과 이들이 도착했다. 이제와서 이들을 다시 돌려보내고 새ㅗ운 외지인을 받아

                 들이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를 믿고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준 네냐플에도

                 염치 없는 모습을 보이게 될 터이니, 따라서 이번 일이 해결될 때까지만 이들을 섬에 들이기로

                 결정했느니라.

페이스마: 우리는 달여왕을 섬기는 사제이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수많은 순례자들을 이끄는 인도자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여왕의 가르침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또는 순례자들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결국 우리는 먼저 인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단지

              그뿐이다.

에키온: 말도 안 돼…섭정 각하도 이 일에 찬성하셨습니까?

테스모폴로스: 섭정각하께서는 저번 사건 때문에 깊은 안정을 취하시는 중이다.

                    후에 우리가 모든것을 소상히 말씀드릴 것이니 에키온, 너는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닉팀스: 하지만 그는 정식 순례자가 되길 거부한 괘씸한 인간이야!

이오: 그는 대륙의 전염병을 섬에 퍼뜨릴 거야!

롯사: 그는 리리오페 언니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나쁜 사람이에요! 

테스모폴로스: 조용히 하시오!

이오: 우리 아들을 병에 걸리게 할 순 없어!

아르파: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들일 순 없어!

닉티모스: 달여왕이 허락하지 않은 자는 섬에서도 허락되지 않는다!

테스모폴로스: 이미 결정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소! 그러니까 이제 그만 조용히….

데스포이나: 지난 달, 섭정 각하를 노린 괴물은 바로 골모답입니다!

                 그렇습니다. 옛 북서쪽 마을 인구의 삼분의 이를 죽인 그 괴물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 섬은 그야말로 완전한 파멸에 이르게 되겠지요.

                 불행히도 그 괴물이 왜 나타나는지,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대륙의 유구한 마법사들이 모여있다는 네냐플에 지원군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

                 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이 이름을 잃은 소년은 예전에 골모답을 처치한 적이 있습니다

                 제 두눈으로 지켜본,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과거에 문제를 일으켰다 한들 우리는 이 소년이

                 다시 한번 괴물을 처치해 주기를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달여왕께 약속드린 대로, 앞으로도

                 유구히 기억될 이 달의 섬을 지켜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솔렛, 너에게 또 한번 어려운 부탁을 해야겠구나. 이 아이들이 섬에서 맡은 일을 완수할

                 때 까지 지켜봐 줄 수 있겠니?

이솔렛: 임무 연장이군요.

데스포이나: 혹시나 이들이 섬에서 말썽을 일으키거나 의무를 등한시할 경우에는,검의 사제의 권한으로

                 강력한 벌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솔렛: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어요.

데스포이나: 앞으로 나오너라. 궤의 사제께서 너희에게 걸린 금제를 풀어주실 것이다.

페이스마: 네다, 페로, 나하론.

데스포이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있겠지만, 너희를 받아주는 이유는 언제까지나 섬에 나타난

                 괴물을 제거하기 위함임을 명심하여라. 그리고 소년이여, 알다시피 네가 예전에 이곳에서 사용

                 하던 이름은 더 이상 네 것이 아니게 되었다. 또한 순례자가 되기 위해 섬에 찾아온 것이 아니니

                 입문례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러니 대륙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여라.

보리스: 감사합니다.

데스포이나: 감사할 이유는 없다. 두번 다시 우리 섬의 순례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니.

보리스: …알고있습니다.

데스포이나: 이 아이들은 섬에 있는 동안 달여왕의 군대와 동일한 신분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군대가 하는 일에는 필히 참여하도록 할 것이며, 이들을 이끄는 일은

                 이솔렛에게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페이스마: 하지만 지팡이의 사제님, 이들을 어디에 묵게 할 생각이십니까?

              순례자도 아닌 이를 자기 집에 묵게 하고 싶어하는 사라믄 아무도 없습니다.

이솔렛: 유일하게 보리스를 환영해주는 곳이 있지 않은가요.

           나우플리온 사제님의 집.

데스포이나: …역시 그렇겠구나.

                 집을 비운지 오래되어 꽤 지저분할테지만, 지내는 데는 어렵지 않겠지.

보리스: 알겠습니다.

데스포이나: 이만 나우플리온의 집으로 돌아가거라. 날이 밝거든, 이솔렛이 너희를 옛 기억의 숲

                 입구에서 기다릴 것이다. 내일부터는 바빠질 것이니 유념하여라.

 

               [잠시 후]

 

이솔렛: 많이 성장했구나. 너도, 그 검도.

 

 

 

 

[나우플리온의 집]

티치엘: 콜록…완전히 먼지 투성이야. 이 먼지들을 다 모으면 이불도 짤 수 있겠다. 그치?

보리스: …….

티치엘: 보리스, 뭐하는 거야?

보리스: 청소중이야.

           이 그릇은….

티치엘: 이가 다 빠졌네. 모양도 울퉁불퉁하고.

보리스: 여기에 오트밀을 부어서 함께 먹곤 했었지.

           되게 맛없었는데.

티치엘: 오트밀도 최악인데, 맛없는 오트밀이라니 더 최악인걸.

보리스: 그래도 가끔 먹고 싶어질 때가 있어.

티치엘: …?

보리스: ….

           특히 오늘처럼 유난히 그분이 그리울 때면.

 

 

 

[옛 기억의 숲]

이솔렛: 늦지 않았네.

티치엘: 마을 밖은 위험하지 않나요?

이솔렛: 사제님들이 만드신 결계는 생각보다 넓어.

           이 숲의 중간 지점까지는 결계가 쳐져 있으니 안전해. 우선은.

보리스: 그럼 이제 저희가 할 일은 무엇이죠?

이솔렛: 검의 사제 훈련장에서 실력을 평가받는 것.

보리스: 검의 사제…훈련장이라구요?

이솔렛: 섬에서 무기를 지니려면 검의 사제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알고있겠지.

           나우플리온 사제님이 계실 때는 사제님 스스로 검을 지닐 자를 판단하셨어.

           하지만 그분이 안 계신 지금은, 다른 이가 특별한 기준으로 검을 지닐 자를 선별해야 해.

보리스; 그 자를 선별하는 사람은 누구죠?

이솔렛: 바로 나야.

보리스: 네?

이솔렛: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하긴, 난 평소에 직위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우플리온 사제님이 섬을 떠나시기 전에 특별히 내게 일을 맡기셨어.

           관습에 따라 티엘라의 계승자가 검의 사제가 되어야 했던 것을,

           잠시 빼앗아 재미 좀 봤으니 이제 다시 돌려주겠다며 농담처럼 말씀하셨지.

           물론 하나도 웃기지 않았지만.

보리스: ….

이솔렛: 사제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지만 유효한 지위야.

           임시직이지. 그래서 맡은 것이기도 하고.

보리스: 굉장해요, 이솔렛.

           나우플리온님의 뒤를 이어 검의 사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고 생각해 왔어요.

이솔렛: 그런 소리는 나중에 하자. 일단 너희는 지원군의 자격으로 섬에 온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무기를 지녀도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

           좁은 사회인데다 종교적인 가치가 최우선인 이곳에서는 융통성이나 편법 같은 건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따라서 무기를 자유롭게 지니고 싶으면, 우선 훈련장에서 40,000점 이상의

           점수로 시험을 통과해야 해.

보리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요.

이솔렛: 훈련장은 이 숲의 7시 방향에 있어.

           앞장설테니, 따라와.

 

 

 

이솔렛: 시험 방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줄게.

           이 시험은 베기나 찌르기 같은 기술보다는, 상황에 따른 민첩성과 판단력을 평가하는 자리라는

           것을 명심해. 시험이 시작되면 위쪽에서 검술 연습용 목각인형들이 내려오게 돼.

           이 중에는 클릭해도 되는 목각인형이 있고, 클릭하면 안 되는 목각인형이 있어.

           따라서 색깔과 모양을 보고 잘 판단해서 클릭해야 해.

           먼저 기본형 목각인형이야.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인형으로, 쉽게 클릭할 수 있을 거야.

           다음은 속도형 목각인형이야. 기본형보다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신속하게 공략해야 해.

           체력형 목각인형이야. 한 번의 공격으로는 쉽게 부서지지 않으니까 여러 번 반복해서

           클릭해야 한다는 걸 잊지마.

           이번에는 클릭하면 안되는 인형들에 대해서 알려줄게.

           이 속도 증가형 목각인형은 공격하면 일반형, 속도형, 체력형 목각인형의 속도가 빨라져.

           그러니까 실수로 클릭하지 않도록 조심해. 그리고 이건 방어형 목각인형이야.

           이 목각인형을 클릭하면……생략

           시범 삼아, 나도 너희와 함께 시험을 치를 거야. 시험에 통과하려면 40.000점은 넘어야 해.

           시험에 통과한 뒤에는 곧장 공회당으로 돌아가. 사제님들이 기다리고 계시니까.

 

 

 

 

[달의 섬 공회당]

데스포이나: 시험은 제대로 치르고 왔느냐?

보리스: 그렇습니다.

데스포이나: 그러면 무기를 지니는 것은 네 자유에 맡겨도 되겠구나.

페이스마: 이런 일은 확실히 해두는 게 좋지. 가뜩이나 사람들 눈밖에 난 마당에.

              무기라도 당당히 갖고 다니려면 시험을 통과했다는 핑계라도 있어야 하니까.

데스포이나: 내가 너희를 부른 것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다.

                 보리스, 괴물이 나타나는 이유를 알고 있느냐?

                 네냐플의 분들이 골모답이라고 부르는 그 괴물 말이다.

페이스마: 으…대륙 냄새가 나는 그 이름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구려.

테스모폴로스: 우리 섬에는 그 골모답이라는 것이 총 두 번 출몰했다.

                    이번까지 치면 벌써 세 번째지. 대체 이유가 뭐란 말이냐?

보리스: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 말씀드리자면…….

           골모답은 이계의 존재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계의 존재란 좁게는 옛 가나폴리의 물건이나 특수한 무기, 넓게는 사람의 영혼 등도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테스모폴로스: 골모답 역시 이계에서 온 괴물이 아니더냐?

보리스: 맞습니다. 하지만 골모답이 자신의 세계에서 온 존재에 이끌리는 것인지,

           혹은 다른 이계의 존재에 이끌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페이스마: 그렇다면 섬 어딘가에 이계의 존재가 있었기에 골모답이 나타난 것이란 말이냐?

페트라: 그럴리는 없어요. 달여왕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순례자들을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가 있다면 이미 여왕이 알아채시고 저희에게 가르쳐 주셨을 겁니다.

데스포이나: 이번에 나타난 골모답은 연례 행사로 숲을 시찰하고 있던 섭정 각하와 우리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 즉시 온 사제가 알고 있는 마법을 총동원하여 괴물을 막아냈고 다행히 섭정 각하

                 도 상처를 입진 않으셨지만, 우리 역시 괴물의 몸에 상처하나 낼 수 없었다.

              너는 네가 가진 검으로 골모답을 소멸시킨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 검의 힘을 믿어도 되겠느냐.

보리스: 제 윈터러는…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데스포이나: 무슨 뜻이지?

보리스: 본디 윈터러는 도전하길 좋아하는 검이었습니다. 때때로 저 스스로도 힘을 제어하지 못해 끌려다닌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 힘은 저 멀리 있는 사막의 탑꼭대기에 갇혀 함께 무너져 버렸습니다.

           지금의 윈터러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형이 제게 물려준 추억의 검, 그 자체일 뿐입니다.

테스모폴로스: 이건 말도 안 되오. 검의 힘이 아니면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니오?

페이스마: 우리가 금기를 깨면서까지 저 소년을 받아준 이유는 검이라도 있기 때문이었지 않소?

데스포이나: 하지만 이 소년은 골모답을 처치한 자 중에 유일하게 부상을 입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요.

                 너는 어제 우리에게 섬의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왔다고 말했다. 뭔가 다른 대책이 있는

                 것이냐?

보리스: 이것입니다.

           네냐플에서 주신, 모든 것을 다 얼려버리는 마법의 돌입니다. 과거, 제가 골모답을 얼음 속에 가둔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제게 주셨죠. 비록 힘을 잃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겨울의 검인 윈터러는, 서리의 눈이 지닌 마력을 발휘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돌을 괴물의 몸에 꽂아넣은 다음, 윈터러로 찍어내리면 순식간에 골모답을 얼려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페이스마: 과연…골모답과 마주했을 때 저 돌과 윈터러를 함께 사용하면 되는 것인가.

데스포이나: 네냐플의 사려깊은 친절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구나.

                 그 돌은 잘 보관하거라. 잃어버리거나 허튼 곳에 쓰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결계 밖으로 나갈 준비는 다 되어가고 있다.

                 때가 되면 너희를 다시 부를 것이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여라.

보리스: 알겠습니다.

 

 

 

 

[달의 섬]

오이지스: 드디어 만났네! 어제 섬에 도착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만날 수 없어서 한참이나 찾았어!

보리스: 다시 봐서 반갑다, 오이지스.

오이지스: 어…이제 널 뭐라고 불러야 하지?

보리스: 보리스라고 불러. 내 원래 이름이야.

오이지스: 보리스! 너처럼 멋지고 늠름한 이름이네.

보리스: 키가 많이 컸구나, 꼬마야.

오이지스: 난 더 이상 꼬마가 아니야, 보리스.

보리스: 후후, 그럼 꼬마의 형님 쯤 되겠는걸.

오이지스: 그나저나 널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분명 달여왕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신 거야.

              그동안 널 다시 보게 해달라고 달여왕께 몇 번이나 기도를 올렸거든.

보리스: 하지만 대부분의 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오이지스: 어쩔 수 없어. 괴물 때문에 다들 불안해하고 있거든. 아직 섬 어딘가에 괴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무섭지만…그래도 그 덕에 너를 만나게 돼서 좋다!

              앗, 괴물이 나타난 게 좋다는 뜻은 아니야. 알지?

보리스: 그럼. 그런 소리 함부로 했다간 잡아 먹힐지도 모른다고.

오이지스: 그쪽은 보리스의 친구야? 난 오이지스라고 해.

              예전에 보리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

아나벨: 반가워.

티치엘: 헤헤, 잘 부탁해.

오이지스: 보리스. 넌 대단한 남자야.

보리스: 뭐?

오이지스: 아무것도 아냐. 참, 제로 아저씨를 뵈러 가지 않을래?

보리스: 아저씨는 건강하신 거야?

오이지스: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되지. 요즘 난 아저씨랑 같이 살고 있어.

              우리 집은 데스포이나 사제님 집 옆에 있거든? 네가 먼저 인사를 걸면 더 좋아하실 거야.

              그럼 같이 가자!

 

 

 

보리스: 안녕하세요.

제로: 거기 누굽니까? 듣지 못한 목소리이오만.

오이지스: 에이, 아저씨. 대륙에서 온 제 멋진 친구요. 벌써 다 잊어버리신 거예요?

제로: 아니 이런. 누가 온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게 너인줄은 몰랐구나.

        예전에 만났을 때는 한참 변성기를 겪고 있던 꼬마였는데, 이젠 어른이 다 됐구나.

        허허. 이젠 널 뭐라고 부르면 되니?

보리스: 보리스 진네만입니다. 트라바체스가 제게 물려준 유일한 유산이죠.

제로: 허허, 보리스라. 이름은 보통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을 암시하기도 하지.

        보리스란 이름은 네 강인하고 정직한 성품에 딱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쨌든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다, 보리스.

보리스: 저도 아저씨를 다시 만나뵙게 돼서 기뻐요. …눈은 좀 어떠세요?

제로: 눈? 보다시피 완전히 멀어버렸지. 이제는 많이 적응했단다.

        오이지스가 사제 일로 바쁜 와중에도 매일 책을 읽어주는 덕분에 심심할 틈이 없거든.

보리스: 사제 일?

제로: 아직 얘기하지 않았니, 오이지스? 요즘 오이지스는 페트라 사제님의 일을 돕고 있단다.

        먼 훗날 사제가 되어서, 나를 위한 장서관을 새로 지어주고 싶다는 구나.

오이지스: 아저씨!

제로: 뭘 부끄러워하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특한 일인데.

        그나저나 보리스, 이번에는 완전히 섬에 정착하는 거냐?

보리스: 아니오. 섬에 나타난 괴물만 없애면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저를 다시 허락해주신 이유

           는, 제가 예전에 같은 괴물을 물리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제로: 그렇군. 아쉽구나. 요즘 섬의 상황은 네가 알던 것보다 더 안 좋아졌어. 가뜩이나 두문불출하던 섭정

        각하는 골모답을 마주친 이후 완전한 은신을 택하셨다. 다행히 함께 있던 사제님들 덕분에 아무

        도 입지 않았지만, 오랜만의 바깥 나들이를 망친 것에 꽤나 큰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지. 때문에 섬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사제님들이 처리하고 계신데, 괴물 일까지 수습하느라 더욱 바빠지셨어.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불안해 하고 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북서쪽 마을의 그 사건을 기

        기억하는 이들이 많으니까. 그러니 너희도 몸조심해라. 눈이 안 보이는 대신 쓸데없는 감이 좋아진

        건지, 왠지 곧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구나. 허허허….

보리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이지스: 보리스, 난 지금 모르페우스 사제님께 갈 건데 같이 안 갈래?

              제로 아저씨의 약을 받아야 하거든.

제로: 모르페 사제님도 널 보면 좋아하실 거다. 물론 내색은 안 하겠지만 말이야.

보리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섬에 있을 동안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제로: 언제나 환영이란다.

 

 

 

오이지스: 안녕하세요, 모르페 사제님. 다른 사제님들께서는 공회당에 계신 것 같던데,

              어째서 혼자만 안 가고 계세요?

모르페우스: 나 정도야 어차피 없어도 티도 안 난다.

                 어, 너는?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

보리스: 보리스입니다. 이 이름으로는 처음 소개드리는군요.

모르페우스: 그랬던가. 예전 이름은 뭐였더라.

                 …상관없겠지. 그건 그렇고. 어…간만이구나, 이솔렛.

이솔렛: 오랜만이군요. 바쁘신 모양입니다.

모르페우스: 꼴통이 꼴통다운 짓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나저나 제로 씨의 약을 받으러 온 건가?

                 흐음, 펠로로스 수도사님께 같은 약을 전달해야 하는 걸 깜빡했군.

오이지스: 앗, 저는 지금 약 시간에 늦어서 빨리 제로 아저씨께 가봐야 하는데…….

보리스: (펠로로스 수도사라, 분명 내겐 반갑지 않은 이름이다.)

            그럼 저도 이만 돌아가겠….

티치엘: 제가 그분을 찾아서 약을 전해 드릴게요!

보리스: 티치엘….

티치엘: 보리스, 왜? 어디 아파?

모르페우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렇게 말해주니 사양않고 부탁 좀 하지.

                 분명 내가 먼저 시킨 것이 아니라 자네들이 자진해서 하겠다고 한 거야. 나중에 다른 소리

                 하지마.

아나벨: (이 사람…안 그렇게 생겨서는 엄청 뻔뻔하잖아….)

티치엘: 펠로로스 수도사님이란 분은 어디 계신가요?

모르페우스: 글쎄, 사제님들과 함께 공회당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집에 계실 수도 있고…뭐, 먼저 공회당에 가 봤다가 없으면 직접 집으로 찾아가면

                 되겠지.

티치엘: 그럼 먼저 공회당에 가 볼게요.

 

            [잠시 후]

 

오이지스: 보리스, 오늘은 이만 헤어져야겠어. 다음에 만나면 대륙에서 겪었던 모험담을 들려줘. 그럼 안녕!

 

 

 

 

블라비: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펠로로스: 확신이 아니라, 가능성이라고 했지 않나.

              자네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는 걸 모르는가?

블라비: 화를 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골모답이 나타난 이유가, 저희들 때문일지도 모른다니요!

펠로로스: 데스포이나 사제님께서 그러시기를, 골모답이라는 괴물은 이계의 존재에 반응을 보인다고 하네.

              즉, 이계의 힘이 깃든 물건이나 무기, 혹은 영혼이 있는 곳에 나타난다는 뜻이야. 그런데 보게,

              이번에 나타난 골모답은 처음에 숲에서 모습을 보였어. 자네를 포함한 아홉 수도사들이 은둔하는

              숲의 근처에서 말일세. 실제로, 자네들이 하는 일은 수수께끼 같아서 정확히 무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말일세!

블라비: 저희 아홉 수도사들은 달여왕을 섬기고 자연을 가꾸는 일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그녀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따르기 위해, 일부러 힘들고 고독한 은둔의 삶을 택한 저희들이란

           말입니다!

펠로로스: 그 말은 마치 마을에 있는 나머지 여덟명의 수도사들은 진정한 수도사가 아니라는 뜻으로 들리는

              군.

블라비: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펠로로스: 뭐라 했나?

블라비: 따뜻하고 풍족한 생활 속에서 어찌 달여왕의 부르심을 간절히 바랄 수 있겠습니까?

펠로로스: 그건 편견일세! 마을에서 지낸다고 해서 달여왕을 진심으로 섬기지 않는 것은 아니야!

블라비: 당신도 편견이십니다! 우연히 저희가 머무는 숲쪽에서 괴물이 등장했다고 해서, 저희가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 또한 편견입니다!

펠로로스: 무려 섭정 각하가 다칠 뻔 했다고! 그 골모답이란 지긋지긋한 괴물이 또 나타나는 바람에,

              정말로 섭정께서 큰일나실 뻔 했단 말이네! 괴물이 나타난 이유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는 게 그렇게 잘못 되었나?

블라비: 수도사라는 신분을 가지고 계시면서, 어찌 같은 수도사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십니까?

펠로로스: 그도 그럴 것이, 자네들은 유난히 고집불통인데다 이해할 수 없는 기행마저 일삼지 않나?

              중대한 회의가 있어 공회당에 불러모으려고 하면, 새끼 새 한 마리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갈

              수가 없다는 둥 이상한 소리나 해대고 말이야! 특히 자네! 자네가 그 중에서도 제일 으뜸일세!

              괴물 때문에 숲은 위험하니 마을로 돌아오라고 했을 때도 한사코 거부한 게 누구지?

블라비: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지 않으십니까? 회의에 저희를 부르는 이유는 그저 자리를 채우기 위함이고,

           의견을 낸다 한들 마치 어린 아이의 멋 모르는 발언처럼 취급하지 않으십니까? 특히, 예전에

           저희들의 만류를 무시한 채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숲에 있는 나무들을 베어버리도록 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그 의견을 적극 발의하고 결국 실행에 옮긴 자가 바로 당신이 아니었습니까?

펠로로스: 블라비, 말이 심한 것 아닌가?

블라비: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제 진심을 말씀드릴까요?

           제가 보기에 펠로로스 수도사님께서는 수도사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보다는 잇속에만 관심을 두시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어떻게 하면 남들의 눈에 격식 높고 권위 있어 보일까 같은 일, 혹은 아들들의

           손에 어떻게 하면 막강한 권위를 쥐어줄 수 있을까 같은 일 말입니다!

펠로로스: 아니, 이런 무엄한……!

 

            [잠시 후]

 

티치엘: 안녕하세요! 펠로로스 수도사님이 여기 계신가요?

 

 

            [블라비, 나간다.]

 

티치엘: 아…제가 너무 큰 소리로 말했나봐요.

펠로로스: 크흠, 흠. 무슨 일이냐? 외지인 주제에 누구의 허락으로 감히 공회당에 들어오느냐?

이솔렛: 잊으셨나요? 섬에 들어온 이상, 이 아이들은 달여왕의 군대와 동일한 신분이에요.

           이 아이들이 공회당에 들어오지 못한다면, 달여왕의 군대 역시 들어오지 못해야 합니다.

           그건 아니지 않나요? 게다가 모르페우스 사제님의 부탁으로 온 것이니,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까요.

펠로로스: 모르페 사제님의 부탁이라고? 또 그 약 때문인가?

티치엘: 네, 저기…부탁하신 약을 가지고 왔어요.

 

            [약을 건네준다.]

 

펠로로스: 확실히 받긴 받았네만…….

 

            [약 값을 받는다.]

 

펠로로스: 대체 언제까지 내가 심부름을 계속해야 되는 거야? 쳇. 그럼 이만 나가 봐, 어서.

보리스: 이 돈은 모르페우스 사제님께 전해드리도록 하죠. 그럼.

 

             [보리스 일행 나간다.]

 

펠로로스: 저 녀석…기어코 다시 돌아오고 말았나.

              체엣, 입맛 떨어지는 일의 연속이로군.

 

 

보리스: 여기, 약값을 가져왔습니다.

 

          [약값을 건네준다.]

 

모르페우스: 오, 고마워. 그 사람은 왠지 보기가 불편해서 말이야.

                 하지만 약을 지어주는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니 더 이상 볼일은 없겠지.

이솔렛: 마지막이란 말씀은……?

모르페우스: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약 짓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다.

                 더 이상 귀찮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리스: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솔렛.

           아까 펠로로스 수도사가 심부름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그럼 그 약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이솔렛: 섭정 각하가 아닐까.

           너도 알다시피 펠로로스 수도사는 섭정 각하의 친동생이니까.

보리스: 역시 그렇겠군요.

모르페우스: 왜 아직 안 가고 서 있는건가?

                 마치 심부름 거리를 달라고 기다리는 모양새니 하나 더 부탁하지.

                 요즘 숲 속에서 베지픽시가 내 소중한 연구 재료인 약초들을 다 먹어치우고 있거든.

                 그러니까 그 지긋지긋한 베지픽시를 30마리만 잡아준다면 내게 아주 큰 도움이 될거야.

 

              [30마리를 잡은 후]

 

 

 

보리스: 당신은 아까 그….

블라비: 당신들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요? …설마 베지픽시를 죽인 거요?

           달여왕께 기도를 드리는 성스럽고 아름다운 이곳에서 어찌하여 내 허락도 없이 함부로 살생을

           저지를 수 있소?

아나벨: 어, 그게….

티치엘: 죄, 죄송해요.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는 몰랐어요….

블라비: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소? 이곳에는 내가 관리하는 신목(神木)이 자리하고 있단 말이오.

           게다가 바닥의 이건…혹시 핏자국이오? 어쩌려고 핏자국을 남기고 다니는 것이오?

           피냄새로 괴물을 유인하기라도 하려는 것이오?

이솔렛: 아까 그런 말을 하고 나오셨으니, 자리에 안 계시면 다들 걱정하실 겁니다.

블라비: 들었나. …상관없소.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서로 혈압만 높일 바에야,

           난 차라리 조용한 숲에서 혼자 있는 편을 택하겠소.

이솔렛: 숲을 사랑하시는 군요.

블라비: 물론이오. 이곳은 달여왕의 또 다른 모습이오. 달여왕처럼 순수하고 고귀하며 매번 색다른 모습

           으로 아름답지. 특히 이 주위는 신목 여왕의 창이 다스리는 곳으로, 그 어떤 악한 것도 감히

           침범하진……

 

           [땅이 흔들린다]

 

블라비: 이게 무슨 소리지?

보리스: 뭔가 쓰러진 것 같습니다.

블라비: 혹시…? 어서 소리가 난 쪽으로 가 봐야겠소! 빨리!

 

 

 

블라비: 이럴수가… 여왕의 창이 쓰러졌소!

           신목이 쓰러지다니! 이럴 순 없어!

아나벨: 도저히 사람 힘으로는 쓰러뜨릴 수 없는 크기인데….

블라비: 아아, 여왕이시여! 부디 용서하소서!

이솔렛: 나이트메어들이 깨어났어요.

보리스: 나이트메어?

이솔렛: 밤에만 활동하는 악령이야. 원래는 섬에 자생하던 하얀 말이었다고 해.

블라비: 믿을 수 없어…여왕의 창이 쓰러지다니….

이솔렛: …!  나이트메어가 다가오고 있어.

보리스: 조심해요! 어서 일어나요! 그렇게 있다간 위험해요!

 

            [나이트메어가 블라비를 공격한다.]

 

블라비: 이럴수는… 소중한 신목이…. 크윽!

보리스: 안돼!

이솔렛: 일어나세요. 나이트메어를 없애야 하니까.

블라비: 하지만 이곳만큼은 피에 물들어선 안되오! 신목의 기운이 서린 신성한 곳이란 말이오!

이솔렛: 이대로 두면 나이트메어가 숲을 온통 망가뜨려 버릴지도 몰라요. 그래도 좋은 건가요?

블라비: …할 수 없군. 그렇다면 부탁하겠소. 여왕의 창을 대신하여 이 악의 화신들에게 벌을 내려주시오.

이솔렛: 다들 검을 잡아. 여기있는 나이트메어를 모두 물리쳐야 해. 한 마리도 빠짐없이.

 

          [전투 후]

 

보리스: 일어설 수 있습니까?

블라비: 충분히 가능하오. 윽….

보리스: 역시 무리군요. 상처를 봅시다.

블라비: 이 정도를 가지고 상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오.

           어서 마을에 돌아가 이 사실을 알려야겠소.

           신목이 쓰러진 건 보통일이 아니오.

티치엘: 상처는 제게 맡기세요. 제가 알고 있는 좋은 주문이…

블라비: 괜찮다고 했지 않소? 걸을 수만 있다면 된 거 아니오?

티치엘: …있거든요….

아나벨: (황소보다 더한 고집이잖아.)

블라비: 누구한테 이 일을 알려야…그래, 그나마 지팡이의 사제님께선 말이 통하는 분이시지.

           당신들도 나와 함께 사건을 목격했으니 증인이 되어 주시오.

           바로 데스포이나 사제님의 집으로 가봐야 되겠소.

 

 

블라비: 말 좀 묻겠소. 데스포이나 사제님은 안 계시오?

세멜레: 안녕하세요, 수도사님.

           음…아침에 목캔디를 사신다고 잡화점에 가셨어요. 하지만 꽤 오래 전의 일이라….

블라비: 그럼 지금은 어디에 계시오?

세멜레: 그건 저도 잘….

블라비: 사제님이 어디 계신지 모른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세멜레: 죄, 죄송합니다….

블라비: 당신은 데스포이나 사제님의 시종이 아니오?

           그런데 그분의 행방도 몰라서 어쩌자는 거요?

세멜레: 저…정말로 드릴 말씀이 없어요….

이솔렛: 잡화점 주인인 로울라 씨께 여쭤보면 되겠죠. 그쪽으로 가봐요.

 

 

파나나: 이것 보라구! 오늘은 내가 1000 seed 더 팔았으니 나의 승리다!

로울라: 흥, 퍽이나! 장사 경력 60년인 나를 속일 생각일랑 하덜 마쇼.

           아까 테스모 사제님이 20000 seed 외상 걸어놓구 간 거 누가 모를 줄 알어?

           그러니까 20000은 빼고 계산해야지!

파나나: 저렇게 인정머리가 없어서야! 외상은 뭐, 물건 판 게 아닌감?

           그리고 장사 경력 60년이라니! 나도 아직 60살이 안 됐는데 무슨 소리야?

보리스: 저기….

파나나: 네, 어서오세요!

보리스: 잡화점이 여깁니까?

로울라: 호호, 잘 찾아오셨수. 그래, 무슨 물건을 찾으시오?

파나나: 체엣, 졌구먼.

블라비: 아까 데스포이나 사제님이 여기서 목캔디를 사가셨소?

로울라: 그랬지요.

블라비: 그리고 나서 어디로 가셨는지 혹시 기억하오?

로울라: 글쎄…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닉 영감님께 목캔디를 선물로 드릴거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는구려.

블라비: 닉 영감님이 누구요?

파나나: 아, 거 닉티모스씨 말이오. 제로씨의 집 옆에서 만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영감.

           제로씨의 집 근처에서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그 영감이오.

로울라: 어딜 끼어들어? 내 손님들 빼앗아갈 생각하덜 마쇼.

파나나: 누가 뺏어간다고 그래? 설마 질까봐 초조해서 그래?

블라비: 얼른 닉티모스씨를 만나봐야 되겠소.

 

          [보리스 일행, 간다.]

 

로울라: 이것봐, 오라비라고 하나 있는 게 내 장사를 다 망쳐놓네!

파나나: 왜 내 탓을 해? 손님들 붙잡지 못한 네 잘못이지! 아직 오늘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으니

          긴장 단단히 하라구!

 

 

 

닉티모스: 달여왕이시여! 당신께 더할나위 없는 찬양을 바치는 이 순례자를 부디 따사로이 굽어보소서!

              끝내 안식의 길에 다다를 때까지 당신의 성스러운 빛으로 비추어 주소서!

블라비: 당신이 닉티모스 입니까?

닉티모스: 달여왕을 따르면 영생할 것이며 아니면 파멸할 것이니…….

              모두들 달여왕을 우러러 칭송할 지어다!

보리스: 저분께는 우리 말이 들리지 않나 본데요….

닉티모스: …그리하여 달여왕은 그 누구보다 고귀하며 찬란한 존재이리니, 순례자로서 마땅히 몸을 낮춰

              경배할 지어다! …케헴, 목이 마르구먼. 그런데 당신들은 누구요?

블라비: 데스포이나 사제님이 당신에게 목캔디를 주고 가셨소?

닉티모스: 어떻게 알았지? 달여왕보다는 못하지만 데스포이나 사제님도 꽤 아름답고 친절하시지.

              이 늙은이의 목 건강을 걱정하여 항상 목캔디를 챙겨주신다네.

보리스: 사제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혹시 아십니까?

닉티모스: 에잉, 즛쯧… 세례도 받지 못한 외지인이 감히 내게 말을 걸다니,

              달여왕께 무시무시한 벌을 받고 싶은가!

블라비: 난 달여왕을 섬기는 수도사요. 그러니 노여워 말고 데스포이나 사제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알려주시오.

닉티모스: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함께 광장 쪽으로 가셨지.

보리스: 그게 누굽니까?

닉티모스: 달여왕이시여! 이 무지한 외지인에게 부디 당신의 자비로움을 조금만 베푸시어….

              이 가련하고 미련한 존재에게 당신의 절대적 권능을 체험하게 하시어 언젠가는 아들로서 품어주

              시고…….

블라비: 말이 안통하는군.

티치엘: 아까 할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해요.

           광장에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인을 찾아봐요.

 

 

 

 

이오: 사제님, 정말 우린 안전한 건가요?

데스포이나: 그래요. 마을 주변에 단단한 결계를 쳐 놓았답니다.

이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계가 약해지면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결계의 위치가 달라지기라도 하면요?

        숲속의 야생 동물들이 결계를 훼손하기라도 하면요?

데스포이나: 아무 걱정 말아요, 이오. 지금 이 간에도 달여왕께서는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분명 그녀가 지켜주실 겁니다.

이오: 저, 전 제 아들 알콘이 없으면 일 분도 살 수 없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알콘 만은 지켜주세요!

알콘: 엄마, 배고파.

데스포이나: 호호…알콘한테 제일 필요한 건 밥인 것 같네요.

 

          [잠시 후]

 

블라비: 드디어 뵙습니다. 데스포이나 사제님.

아나벨: (이렇게 가까이 계시는 줄 알았으면 그 할아버지의 지루한 설교를 들을 필요도 없었잖아…)

데스포이나: 당신은? 블라비 수도사군요. 무슨일이죠?

                 이솔렛과 함께라니…꽤 의외군요.

블라비: 공회당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데스포이나: 여기서는 얘기하지 못할 일인가요?

블라비: 그렇습니다.

데스포이나: 중요한 말일수록 가장 깊은 입속에 숨기라고 했죠. 공회당으로 갑시다.

 

[공회당]

데스포이나: 무슨 일인지 상세히 말씀하세요.

블라비: 우선 이걸 보십시오.

 

          [데스포이나에게 악몽의 씨앗과, 신목의 조각을 건넨다.]

 

데스포이나: 이건?

블라비: 여왕의 창이 쓰러졌습니다.

데스포이나: 여왕의 창이라 함은…신목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나무가 아닙니까 ?

                 대체 그 커다란 나무를 누가 쓰러뜨렸단 말이지요?

블라비: 아직 모릅니다.

데스포이나: 확실한 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이건 악몽의 씨앗이군요.

이솔렛: 나이트메어가 깨어났어요. 밤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나이트메어가 낮게 깨어났다는 것은

           역시 평범하지 않아요.

데스포이나: 그 나이트메어는 처치했느냐?

이솔렛: 네.

데스포이나: 잘했구나. 본디 결계 안에 있었던 여왕의 창이 쓰러졌다는 것은 결계에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합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겠군요. 오늘 당장 골모답을 처치하기 위한 원정대를 소집

                 하도록 하겠습니다. 블라비 수도사, 당신은 다리를 다쳤나요?

블라비: 그렇지 않습니다.

데스포이나: 고집부리지 말아요. 제 눈에는 당신의 상처가 보입니다. 나이트메어에게 입은 상처는 쉽게

                  사리지지 않고, 악화되기 쉬우므로 충분히 몸조리를 잘 해야 합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집은

                  다른 수도사 분들과 여럿이 사용하고 있어서 아픈 몸을 돌보기에는 적당치 않지요?

                  몸이 나을때까지 이들과 함께 나우플리온 사제의 집에서 머물도록 하세요 .

블라비: 하지만 사제님…!

데스포이나: 이건 제 명령입니다. 블라비 수도사. 이런 일로 명령까지 내리고 싶진 않지만, 이것이

                 당신에게는 가장 잘 듣는 방법이지 않습니까. 이솔렛, 지금부터 원정대를 꾸려서, 새벽이

                 밝자마자 공회당에 모여 함께 출발하겠다. 이솔렛은 남고, 너희들은 블라비 수도사를

                데리고 나가보거라.

보리스: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보리스: 아래 침대는 쓰지 않습니다.

           저희 셋은 바닥에서 잘테니, 당신은 위에 있는 침대를 사용하세요.

블라비: 침대라, 내겐 사치요. 배려해 주는 것이 오히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니, 신경쓰지 마시오.

보리스: 저희는 다치지 않았고, 당신은 다쳤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침대를 쓰게 한 건데, 그게 뭐가 불편하십니까?

블라비: 난 어차피 친절과 호의 따위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오.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해 미안하오.

보리스: 감사하다는 말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티치엘: 하지만 보리스, 아래의 침대는 왜 사용하지 않는 거야? 낡아서 그래?

           아니면 쳐다보기도 끔찍한 곰팡이가 핀 거야?

보리스: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분의 침대야. 엄하기만 하셨던 아버지 대신, 일찍 세상을 떠난 형 대신,

           다가오지 않았던 또래들 대신, 내게 넘칠만큼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분이지.

           지금은 잠시 집을 비우셨지만, 그분이 남긴 흔적에 조금의 손도 대고 싶지 않았어.

블라비: …형이 있었나.

보리스: 당신에게도 있었습니까?

블라비: 있었소.

보리스: 과거형이군요.

블라비: 피곤하군. 이제 그만 자도 되겠소?

보리스: 물론입니다.

블라비: 지나가는 객이 집주인보다 빨리 잠드는 건 예의가 아니오. 먼저 주무시오.

보리스: 괜찮습니다. 먼저 주무십시오.

블라비: 아니, 그쪽이 먼저….

보리스: 아닙니다. 당신이 먼저….

블라비: 아니오. 난 괜찮으니 먼저….

아나벨: (주거니 받거니 서로 뭐 하고 있는 거야?)

보리스: 그럼 내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공회당에 가야 하니, 먼저 자도록 하겠습니다.

           불을 끄도록 하죠.

 

 

 

 

데스포이나: 우리가 모인 것은 여왕의 신성한 보금자리에 독버섯처럼 자라난 이물을 제거하고 함입니다.

                 수색을 떠나기 전, 저는 이 자리에서 달여왕께 허락을 받고자 합니다.

                 여왕이시여, 이 미욱한 순례자들을 굽어보시고 친히 여기시어 저희의 앞길을 밝혀주소서.

                 듣는자의 룬이 응답했습니다. 이로써 달여왕은 우리에게 허락을 내리셨습니다.

                 순례자들의 안식을 방해하는 저 이계의 괴물에게서 스스로를 지켜내라 말씀하셨습니다.

                 찬양하라.

페이스마: 찬양하라.

테스모폴로스: 찬양하라.

페트라: 찬양하라.

모르페우스: 찬양하라.

데스포이나: 제가 지난 날 이 듣는 자의 룬을 사용하여 섬 곳곳을 비추어 봤을 때, 유독 어두워

                 꿰뚫어 볼수 없는 곳이 있더군요. 추측일 뿐이지만 그곳이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곳임이 유력

                 하다고 본 사제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위치는 옛 기억의 숲 12시 방향.

                 여왕의 명령에 응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이 그곳으로 향할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수비대에서 돌아와 달여왕의 군대의 일원이 된 순례자여, 앞으로 나오세요.

 

                 [붉은 머리의 남자, 앞으로 간다.]

 

데스포이나: 돌발상황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군대의 일부를 남겨놓고 떠날 것이니, 마을 사람들을 책임지고

                 돌보아 주세요.

붉은 머리의 군인: 알겠습니다.

데스포이나: 자, 이제 원정의 준비는 모두 끝난 것 같군요.

블라비: 잠깐만요, 어르신. 역시 저도 따라가면 안되겠습니까.

데스포이나: 분명 휴식을 취하라고 했을 텐데요, 블라비 수도사.

블라비: 저는 다 나았습니다. 다리도 말끔해졌습니다.

데스포이나: 다리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건 그리 쉽게 낫는 상처가 아닙니다.

블라비: 하지만 저는 그놈의 얼굴을 꼭 확인해야 합니다.

           여왕의 창을 쓰러뜨린 그놈을……!

페이스마: 원정대에 포함된 우리 모두, 괴물을 잡을 수만 있다면 숲을 헤집어 놓는 한이 있어도

              그리 할것이오.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겠소?

블라비: 그건….

데스포이나: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하겠어요. 자,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하십시다.

                 초승달 수정이 달여왕의 힘을 빌어 우리에게 옳은 길을 인도해 줄 것입니다.

                 이 빛을 발한다는 뜻은, 우리가 아직 결계 안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빛이 꺼질때까지 걷고 걸어서,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숲의 12시 방향까지 가보도록 하지요.

 

 

 

 

데스포이나: 듣는 자의 룬에서 불빛이 사라졌군요.

                 드디어 우리가 결계를 벗어난 모양입니다.

                 사건 이후 결계 밖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니, 모두 조심하세요.

 

이솔렛: 긴장되니?

보리스: 괜찮아요. 당신은요?

이솔렛: 나 역시도.

테스모폴로스: 이거…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하구려.

                    아무 소리라도 좋으니 이 정적을 좀 깨줫으면 좋겠는데.

 

                [몬스터들이 도망가고, 괴물소리가 들린다.]

 

테스모폴로스: 깜짝이야!

모르페우스: 그러니 허튼 말은 함부로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테스모폴로스: 하지만 당신은 늘 필요 이상으로 과묵하오.

달여왕의 군대 1: 저, 저건?

달여왕의 군대 2: 거대하고….

달여왕의 군대 3: 웅장하고….

달여왕의 군대 4: 소름끼쳐!

 

 

 

보리스: 저건, 저건 골모답이 아닙니다.

데스포이나: 확실히 이전에 봤던 괴물과는 다르게 생겼구나.

                 하지만 저것은 섬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와도 역시 다르다.

                 저 이질적이고도 위압적인 생김새…그 어떤 것도 달여왕의 손길이 닿지 아니한 모습이다.

페이스마: 혹, 저것이 골모답을 불러들인다는 이계의 존재가 아닙니까?

데스포이나: 그 존재가 무엇이든, 달여왕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면 달의 섬에 있어서는 안 되지요.

                 우선 저것을 없애버리도록 합시다.

 

 

                 [전투 후]

 

데스포이나: 드디어 우리의 봉인 마법에 확실히 걸려든 것 같소.

페이스마: 달여왕께서 축복을 내리셨습니다. 이런 괴상망측한 생물.

              아니 생물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은 이것을 저지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오.

              자칫하면 섬사람들을 더 큰 혼란에 빠뜨릴 뻔 했소.

보리스: …하지만 이건 골모답이 아니야.

아나벨: (그럼 골모답은 어떻게 된 거지? 이 괴물이 아니라면…골모답은 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거지?)

이솔렛: 오히려 더 나빠졌어.

보리스: 네?

이솔렛: 숲이 슬퍼하는 소리가 안 들리니? 골모답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온 숲이 처량하게 울고 있는 게 느껴져.

           이게 과연 무슨 뜻일까?

보리스: 괴물이 봉인된 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이솔렛: 그 이유가 밝혀지는 날에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몰라.

데스포이나: 어둠이 사라졌기에, 듣는자의 룬이 섬의 모든 곳을 환하게 비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허나, 드러난 어둠의 정체는 결국 골모답이 아니었군요.

페이스마: 이 괴물이 소멸되면서 함께 사라진 건 아닙니까?

데스포이나: 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딱히 알아낸 것은 없습니다.

모르페우스: 달여왕께서 창조하지 않으신 생물이 대체 숲에 얼마나 더 있는 것입니까?

                 지팡이의 사제님께서는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데스포이나: 본 사제 입장에서도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군요.

수도사 1: 골모답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결국 이번 원정은 실패가 아닙니까?

데스포이나: 그리 단연히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비록 이 괴물의 정체가 골모답이 아니라 하더라도, 섬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임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일단 마을로 다시 돌아가서, 오늘의 원정과 골모답의 거취에 관해

                 말씀을 나눠보도록 합시다.

이솔렛: 보리스, 잠깐만.

보리스: 무슨 일이죠?

이솔렛: 아무래도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보리스: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거죠?

이솔렛: 여왕의 창. 그녀는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부러진 신목과 봉인단한 이 괴물, 그리고 울고 있는 숲 사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진실이 있을지도 몰라.

보리스: 좋아요. 여왕의 창이 부러졌던 장소에 다시 한번 가 봐요.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있을테니,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디케: 야, 너 거기 안 서?

로코: 헉헉… 이젠 더 이상 못 가겠어!

디케: 드디어 잡았다! 이 쪼그만 쥐새끼야!

        숲에 함부로 들어오면 사제님들께 혼난다는 거 몰라?

로코: …으.

디케: 대체 숲으로 통하는 개구멍은 어떻게 알아낸 거냐? 구멍이 너무 작아서 시논은

        아직 그대로 끼어 있을거야. 그러니까 들키기 전에 돌아가야 돼.

        어서 내놔. 그 꽃.

로코: 아, 안돼…이건 이솔렛 누나한테…….

디케: 이솔렛? 지금 이솔렛이라고 했어? 푸하하!

        이솔렛한테 주려고 산 꽃이었단 말이냐? 네가 그런다고 그녀가 널 봐주기나

        할 것 같아?

로코: 그건 아니지만….

디케: 우리 에키온 형님이 리리오페 누님께 드릴 선물을 하나 가져오라고 하셨단 말이다.

        그 선물로 네가 가진 꽃이 딱일 것 같으니까. 얼른 내놓으란 말씀이야.

로코: 시, 싫어. 힘들게 얻은 거란 말이야!

 

        [로코, 도망간다.]

 

 

 

디케: 어쭈, 반항해?

        너랑 유일하게 놀아주는 친구가 누구지? 바로 우리잖아!

        네가 과연 우리를 배신할 수 있을까? 완전히 따돌림 받아도 좋다 이거야?

로코: … 알겠어. 그러니까 날 따돌리지만 말아줘….

디케: 진작에 그랬어야지, 꼭 두번 말하게 만드냐. 어라? 근데 저게 뭐지?

 

디케: 예쁜 목걸이다.

        이것도 갖다드리면 에키온 형님이 좋아하시겠지?

로코: 건드리면 안돼!

디케: 뭐라고?

로코: 사제님들이 숲에서 낯선 물건을 발견하면 함부로 건들지 말라고 하셨어….

        그 괴물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디케: 그래? 그럼 이 주위에 괴물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야?

        흐흠, 흠…무섭진 않지만 지금쯤 시논 녀석이 붙잡혔을지도 모르니까 얼른 가봐야겠다.

        그리고 어른들한테도 말씀드려야지. 절대로 무섭진 않지만 말이야.

 

        [로코,디케가 가고난 후, 이솔렛 일행이 온다.]

 

보리스: 아직 그대로네요.

           이솔렛, 당신은 나무와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나요?

이솔렛: 그렇진 않아. 하지만 이 아이라면 할 수 있으니까.

 

          [새 한마리가 나타나 알려준다.]

 

이솔렛: 고마워.

보리스: 뭐라고 하던가요?

이솔렛: 여왕의 창이 말하길, 아까 우리가 봉인시킨 그 괴물은

           원래 이곳에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곳에 있어야 할 존재라고 해.

보리스: 그게 무슨 뜻이죠?

이솔렛: 그 자는 섬이 비어있을 때부터 존재했었대.

           우리 순례자들이 섬에 정착한 후에 달의 힘이 너무 강해지자, 다른 이공간으로

           밀려나 버린거야. 하지만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불가사의한 힘이 그를 다시

           이곳으로 불러냈고, 그 둘은 서로 힘겨루기를 했나봐. 결국 그가 승리를 거두었고,

           외부에서 온 힘은 패배해 숨어버렸대. 하지만 거세고 맹렬한 싸움에 휘말려 그만

           여왕의 창이 부러지고 만 거야.

보리스: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힘이라 함은 혹시 골모답을 뜻하는 걸까요?

           골모답과 힘겨루기를 해서 이긴 자를 우린 봉인시켜 버린 거고요?

이솔렛: 확실하진 않지만, 그 자가 숲에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해.

           그렇지 않다면 그의 봉인에 숲 전체가 슬픔에 빠질리는 없으니까.

티치엘: 그럴 수가…….

보리스: 여기에 처음 보는 펜던트가 있어요.

이솔렛: 아마 블라비 수도사의 것이 아닐까.

보리스: 그런가요?

이솔렛: 여왕의 창은 블라비 수도사가 관리하던 신목이야.

           종종 수도사들은 아끼는 소장품이나 종교적인 물건들을 신목 근처에 놓아둘 때가 있어.

           그렇게 하면 자신과 신목 간에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 믿거든.

보리스: 그럼 다시 돌려드려야겠어요.

이솔렛: 이건…블라비 수도사님의 물건이 확실해.

보리스: 예전에 같은 펜던트를 본 적이 있나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이솔렛: 일단 원정대를 따라서 마을로 돌아가자. 가는 길에 설명해 줄게.

 

 

 

티나: 사제님들이 돌아오셨어!

이오: 이젠 저희는 안전한 거겠죠? 그런 거겠죠?

아르파: 오늘의 기쁜 소식을 지금 작곡하고 있는 찬가의 소재로 사용해야지!

닉티모스: 역시 달여왕이 지켜주시면 못할 일이 없도다!

데스포이나: ……오직 감사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으신 분은 달여왕 뿐이십니다.

                 원정의 여파로 모두 몸이 힘드실 건 알지만 당장 사제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아주 비밀스럽고 또한 긴밀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회의 시간이 길어질지도 

                 모르겠군요. 이솔렛, 너 역시 검의 사제로서 회의에 참석해야 함은 알고 있을 것이다.

                 공회당으로 가자꾸나.

 

                 [잠시 후]

 

오이지스: 역시 대단해, 보리스! 너라면 반드시 해낼 줄 알았어!

보리스: 아직 끝난 건 없어.

오이지스: 뭐가 끝나지 않았다는 거야?

보리스: 아무것도 아냐.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블라비 수도사님은 아직 휴식을 취하고 계셔?

오이지스: 으응, 근데 예전보다 몸이 더 안 좋아지신 모양이야.

보리스: 어째서지? 바로 그 다음날에도 그는 멀쩡히 걸을 수 있었는데.

티치엘: 펜던트도 전해줄 겸, 빨리 나우플리온 사제님의 집으로 가보자.

 

 

 

블라비: 으으…….

티치엘: 수도사님! 정신차리세요!

블라비: 당신은…? 나…난 괜찮으니까 조금만 뒤로 물러나 주시오, 제발.

티치엘: 죄송해요. 단지 이걸 돌려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블라비에게 작은 펜던트를 건네준다.]

 

보리스: 부러진 여왕의 창 근처에서 발견했습니다.

            틀림없이 당신 물건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블라비: 쓸데없는 짓을 했소. 왜 내가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멋대로 하는 것이오?

           왜 내 머릿속을 함부로 추정하오? 이건 필요없소.

 

            [펜던트를 던진다.]

 

티치엘: 저, 하지만…이 펜던트는 수도사님의 어린 시절과 깊은 관계가 있는 물건이잖아요.

블라비: 당신이 뭘 알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보리스: 이솔렛이 펜던트를 본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펜던트의 주인인 형제가 누군지도

           알고있었습니다. 대륙사람과 섬사람 사이에 태어난 유명했던 형제.

           그 중 동생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 아닙니까?

블라비: 이솔렛이 나를 알고 있다고?

           …다 옛날 일이야. 그떄의 일은 다 잊었소.

티치엘: 나이트메어의 독은 사람들이 떠올리기 싫어하는 기억의 밑바닥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악몽으로 보여준대요. 그것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 가장 슬프고 끔찍한 기억들만을

           골라서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어요. 수도사님이 어린 시절과 관련된 아픈 기억을

           잊지 못해서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블라비: 그런 식으로…그런 식으로 날 마치 잘 아는 것 처럼 말하지 마시오!

아나벨: 인정하기 싫다면, 적어도 당신의 마음이 고독하고 아프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

           하지 마세요. 여러사람에게 민폐가 되니까.

블라비: 민폐라고? 주변에 폐를 끼치는 자들을 누구보다 혐오하는 내가, 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고있다? 알 수가 없군…….

           이것 역시 달여왕께서 내게 내리시는 시험인가…?

           그렇소. 당신들 말이 모두 맞소. 나에겐 형이 한명 있었고, 우린 대륙출신의 아버지와

           섬사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소. 하지만 두 분 모두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형이 나를 길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섬에서 태어난 나와는 달리, 13살이 많았던

           형은 대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오래 자란 탓인지 섬 분위기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지.

           그렇지만 우리 형제는 곧잘 검을 잘 다뤘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가 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소. 그 말대로 형은 실버스컬에 나갈 자격까지 얻게 되었소.

           하지만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지.

           실버스컬이 끝난 후 다시 섬으로 귀환했지만, 왠지 그의 마음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 같소.

           알고보니 대륙에서 만난 한 귀족여인과 서로 사랑에 빠졌던 거요.

           썰물섬에서 경비를 하던 그는, 결국 근처를 돌아다니는 보물 사냥꾼들에게 부탁해

           대륙에 있는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는 중죄를 저질렀소.

           그리고 다시는 섬에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지.

보리스: …….

 

 

 

블라비: 그는 섬에서 추방되기 전 단지 나에게 이렇게 말했소.

           오늘부터 먼 바다에 있는 작은 섬에서 일하게 됐어. 꼭 다시 올아올테니,

           내가 보고싶으면 우리가 함께 놀던 절벽에 앉아 바다를 바라봐, 그곳에 내가 있을거야라고.

           바다를 바라본지 한달이, 여섯달이, 그리고 일년이 지나서야, 난 형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됐소. 내가 형을 사랑하던 마음도, 그가 마지막에 보여준 슬프면서도 기쁜듯한 표정에 섞여

           함께 날아가버렸지. 그 이후 나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했소.

           형과 함께 걷던 검의 길도 포기해버렸소. 완전히 외톨이가 되고 만 거요.

 

           그러던 어느 날, 검의 사제님께서 형의 물건이라며 내게 이 펜던트를 건네줬소.

           당연히 화가 났소. 그래서 펜던트를 그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려고 했다가, 나도 모르게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지고 말았소. 죽을뻔했던 내 곁에 오직 계셨던 건 달여왕 뿐이었소. 그녀가 비춰주신 빛

           덕분에 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발견될 수 있었지. 그 뒤로 달여왕께 내 모든 마음을 바치기로

           결정한거요. 검의 길도, 형에 대한 추억도 모두 잊기 위해서 말이오.

           펜던트는 내게 분노와 좌절을 떠올리게 만들었소. 따라서 달여왕의 도움을 받아 잊고 싶었기에,

           신목 밑에 묻어놓았던 거요.

티치엘: 결국 수도사님의 아픈 기억은 형과 연결된 것이었군요…….

블라비: 난 그에게 버림받은 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소.

           지금은 어깨 위에 있는 까마귀 칼가만이 내 유일한 친구요.

보리스: 제게도 형이 있죠. 아니, 있었죠.

           한때는 어린 저를 두고 임무를 수행한다며 떠나버린 형을 원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신처럼요. 하지만 그의 죽음을 알게 된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저를 배신한 것이어도 좋으니, 어딘가에 행복하게만 살고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블라비: …그런 일이 있었나. 이런…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는 군.

           이대로 잠에 빠졌다간 또다시 악몽을 꾸게 될텐데….

티치엘: 아직도 나이트메어의 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지?

블라비: 듣자하니 실력이 뛰어난 의사선생이 있다고 하더군….

보리스: 모르페우스 사제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블라비: 아니오. 그는 모르페 사제님의 제자가 되는 자인데….

           최근들어 사제님이 하시던 일을 모두 도맡아 섬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하였소….

아나벨: 전에 모르페우스 사제님이 더 이상 약 짓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군요.

티치엘: 그분은 어디에 계세요?

블라비: 나도 닉티모스씨를 통해 들은 사실이오. 그는 아마 알고있을지도….

티치엘: 제가 할아버지께 여쭤보고 약을 받아 올게요! 그때까지 잠들지말고 깨어계셔야….

           안돼. 벌써 블라비 수도사님이 잠에 드셨어. 악몽은 반복될수록 괴롭기만 할 뿐이야.

           어서 닉티모스 할아버지께 가서 의사 선생님에 대해 여쭤보자!

 

 

 

 

보리스: 정말 저 할아버지가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줄 거라고 생각해?

티치엘: 나에게는 항상 최고의 행운이 함께 한다는 걸 잊은 거야?

           이 티치엘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두 사람은 내가 하는 것만 지켜보고 있으면 돼!

 

티치엘: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또 뵙네요?

닉티모스: 어젯밤 찬란한 빛으로 달여왕 나를 부르시니, 이에 감격하여 오늘도

              당신을 향한 찬양을 드리노니….

티치엘: 한창 바쁘신 데 죄송하지만….

           모르페우스 사제님의 제자라는 의사선생님에 대해 여쭤보려고 왔어요.

닉티모스: 악이 부르는 소리에 절대 현혹되지말고

              달여왕이 주시는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순례자로서 행해야 할 의무이며….

티치엘: 할아버지는 그 의사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알고 계세요?

닉티모스: 우리가 가야할 길 가르쳐 주시는 이는 오직 달여왕이 유일하시고 또한

              의사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도 알고 계시니……응? 시끄럽다!

              네녀석들 때문에 달여왕께서 화가 나셨지 않느냐!

티치엘: 죄송해요. 저는 그저 의사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알고 싶어서….

닉티모스: 또 그놈의 의사 타령인가!

              감히 순례자도 아닌 녀석이 내 소중한 시간을 방해해? 고얀것!

티치엘: 으…죄송해요….

 

         [로코가 온다.]

 

로코: 저기…의사 선생님은 섭정 각하의 집 앞에 계신데요.

        검은 옷을 입고 계셔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아나벨: 치료 실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는 그 의사 선생님이야?

로코: 네. 저… 저희 어머니가 걷는 것이 불편하셨는데, 그분이 치료해 주신 뒤로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셨어요. 닉티모스 할아버지도 원래는 더 시끄러우셨는데,

        그분 덕분에 많이 조용해진 것이라고 해요.

아나벨: 저 상태가 그나마 호전된 거란 말이야?

티치엘: 그럼 빨리 섭정 각하의 집 앞에 가서 검은 옷을 입은 분을 찾아보자!

           방해해서 죄송해요. 할아버지! 달여왕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길 바라요!

 

 

 

티치엘: 실례합니다. 당신이 모르페우스 사제님의 제자이신 그 의사선생님이세요?

리리오페: 넌…?

검은 옷의 의사: 제가 맞습니다만, 어쩐 일이시죠?

티치엘: 제 친구가 나이트메어에게 부상을 입은 뒤로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요.

           혹시 제 친구를 치료할 방법을 알고 계시나요?

키리온: 나이트메어에게 당해 악몽을 꾸고 있다고요? 곧바로 약을 지어 드리죠.

티치엘: 와아, 감사합니다!

검은 옷의 의사: 당신은? 아아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군요.

                      얼음의 보리스!

아나벨: (이상한 별명이다…)

검은 옷의 의사: 하하.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반가워서 한 소리였으니까.

                      사실 저도 대륙에 있다 온지 얼마 안 돼서, 당신들이 온다고 했을 때부터

                      만나보고 싶었답니다.

보리스: 당신도 대륙에서 왔다고요?

검은 옷의 의사: 원래는 달의 섬 출신이긴 합니다만…. 의학 공부를 위해 대륙에

                      몇 년 나가있었죠. 지금은 완전히 공부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지만 말입니다.

리리오페: 우리 선생님은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야. 치료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여자한테도 다정하고 친절하신 분이셔, 대륙 생활을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거칠고

              난폭한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나봐, 그렇죠, 선생님?

 

검은 옷의 의사: 하하. 저는 선생님이란 호칭보단 이름은 불러주시는 게 더 좋답니다.

                      리리오페 아가씨.

                      아,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죠. 제 이름은 키리온입니다.

보리스: 반갑습니다.

에키온: 아무래도 리리오페는 새까만 옷을 입은 남자가 취향인가 봐.

           키리온 선생님도 그렇고, 보리스도…….

리리오페: 날 놀리는 게 재미있니?

에키온: 으…아파! 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 리리오페!

리리오페: 몰라! 이래서 넌 좋아할 수 없다니까!

에키온: 자, 잠깐만! 너한테 줄 게 있단 말이야!

 

            [리리오페, 에키온 가버린다.]

 

키리온: 하하! 두 사람, 잘 어울리지 않나요?

           아아, 지금 당장 약을 지어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기있습니다.

 

           [약을 받는다.]

 

키리온: 기회가 되면 대륙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네요.

           이곳에서 대륙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저와 당신들 뿐이니까요.

           여유로운 시간에 저를 만나러 와주세요. 대륙에서 가져온 맛있는 차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티치엘: 네냐플에서 마시던 향긋하고 달콤한 차가 그리워지던 참이었는데…초대해주시니

           영광이에요.

키리온: 저야말로 여러분들을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티치엘: 이 약, 꼭 친구에게 전해줄게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나우플리온 사제의 집]

이솔렛: 돌아왔구나.

보리스: …이솔렛! 사제 회의는 어떻게 됐나요?

이솔렛: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야. 누구도 결론을 맺지 못했어.

           현재 부상 당한 군인들이 많아 당장 원정을 떠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대신 사제님들께서 숲으로 나가 결계를 강화하겠다고 하셨어.

보리스: 그렇군요. 수도사님은 괜찮으신 건가요?

블라비: 이솔렛이 와준 덕분에 간신히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었소.

티치엘: 늦기 전에 드릴게요. 키리온 선생님이 지어주신 약이에요.

 

          [약을 건네준다.]

 

블라비: 이런 신세까지 지다니 염치가 없소.

           아픈 나를 재워주고 게다가 약까지 가져다 주다니…오늘을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나가려고 하오.

티치엘: 그러지 마세요. 완전히 몸이 나을 때까지 계세요, 네?

블라비: 아니오. 악몽을 꾸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약도 받았지 않소. 아무튼 여러가지로…고마웠소.

티치엘: 수도사님…….

블라비: 언젠가 숲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 날, 내가 머물고 있는 숲에도

           한번 찾아오시오. 아주 아름다운 곳이니까.

티치엘: 꼭 그렇게 할게요.

블라비: 그럼…….

 

           [블라비, 나간다.]

 

티치엘: …어쩌면 블라비 수도사님은 그 누구보다 사람을 그리워 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아무리 외톨이가 되는 것을 자처하셨다고 하지만…그래도 역시 많이 외로우셨던 거예요.

아나벨: 과거에는 보리스도 그랬지.

           우리들과 함께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조금 밝아진 것 같지만.

티치엘: 게다가 달의 섬에 온 이후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명랑해졌어. 모두 이솔렛 덕분일까?

이솔렛: 그거 다행이구나, 나 때문에 성격이 더 어두워지지 않아서.

보리스: 하하…그런가요?

           하지만 역시 골모답의 일이 걱정이 돼요.

           저도 그 괴물을 처치한 적은 있지만, 그것이 왜 나타나는 것이며

           어디에 숨어있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이솔렛: 사제님들도 굉장히 고민하고 계셔.

           골모답이 있는 곳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기억섬 너머 바다 밑까지 살펴보실 생각이시지.

           그러니까 나도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해.

보리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이솔렛: 제로 아저씨를 만나봐야겠어.

 

 

 

보리스: 안녕하세요, 아저씨.

제로: 보리스구나. 약속대로 다시 찾아주어서 기쁘다.

        오늘은 오이지스도 없이 어쩐 일로 왔니?

이솔렛: 제로 아저씨,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당신은 순례자들이 정착하기 전의 달의 섬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제로: 이솔렛…? 갑자기 무슨 일이지?

이솔렛: 이번 원정에서 저희는 달의 섬과는 아주 다른 문명의 존재를 만났어요.

           오래 전부터 달여왕의 힘이 뿌리깊게 작용하는 이곳에, 갑자기 이질적인 문명의 존재가

           등장한다는 것은 지극히 이상한 일이죠.

           그 자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가 어째서 지금 달의 섬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혹시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이에 대해 짐작하고 잇는 바가 있긴 하지만, 저의 추측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저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제로: 흐음…네가 알고 있는 것은 얘기해 주렴.

이솔렛: 그 자는 이 섬이 비어있을 때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섬에 점차 달의 힘이 강해지면서 세력을 잃게 되었고, 결국에는 차원 너머의 이공간으로

           완전히 물러나고 말았죠, 하지만 최근 외부에서 흘러 들어온 불가사의한 힘의 부름으로,

           그가 달의 섬에 다시 나타나버린 거예요.

제로: 사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 위에는 많은 이공간들이 산재하고 있다.

        이번에 나타난 자는 그 많은 이공간들 중 한 곳에서 내려왔겠구나.

        하지만 웬만해선 현실 세계와 이공간은 서로 혼선되지 않는데,

        그 불가사의한 힘이라는 것이 나타나는 바람에 공간 차원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이솔렛: 저는 그 힘의 정체를 골모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로: 그렇군. 그렇게 말하니 이해가 되는구나.

보리스: 어떻게 된 거죠?

제로: 쉽게 예를 들어주마.

        겨우 팔 하나만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나 있는 얇은 벽을 생각해 보렴.

        반대편으로 넘어가고 싶어서 그 작은 구멍에 몸을 억지로 끼어넣으면 어떻게 되겠니?

        아마 구멍이 부서지는 것도 모자라, 벽 전체에 균열이 생기고 말겠지.

        마찬가지로, 골모답은 자기가 있던 세계에서 달의 섬으로 건너오기 위해 상당히

        무리한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달의 섬에 오는 것 까진 성공했지만, 그 바람에 공간 차원이 벽에 난 균열처럼

        마구잡이로 갈라지고 깨져 버린 거야. 그 충격에 덩달아 다른 공간에 있던 자까지

        현실 세계에 불쑥 등장해 버린 것이지.

보리스: 이 모든 것이 골모답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말씀이군요.

제로: 그렇지, 음… 예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생각나는 구나.

        대륙에 나라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할 무렵, 이 섬에는 이미 작지만 그럴듯한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원시적인 수준에 불과했겠지만 그들에게는

        종교가 있었고, 그들의 신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본딴 수호신이었다.

        이번에 나타났다는 다른 문명에서 온 자가, 곧 그 수호신과 동일한 존재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솔렛, 내게 묻기 전부터 이미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구나.

        어떻게 알았지?

이솔렛: 나무가 제게 들려줬어요.

제로: 그런가, 자연은 때로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깊은 것을 생각하지.

이솔렛: 말씀 감사했습니다.

제로: 너희들 덕분에 나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단다.

 

         [잠시 후]

 

티치엘: 아, 보리스. 키리온 선생님께 가볼까?

           그분이 맛있는 차를 대접해 준다고 하셨잖아.

보리스: 그건 그냥 예의상 한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티치엘: 아니야, 보리스.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하신 분이 거짓 약속을 하셨을 리 없어.

           게다가 널 아주 좋아하시는 것 같던걸?

보리스: 하지만 지금은 골모답의 일도 있고 놀고 있을 때가….

티치엘: 골모답과의 싸움은 장기전이 될 거야.

           항상 걱정만 하고 있다가는 금방 지쳐버릴지도 몰라.

아나벨: 티치엘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티치엘: 그렇지? 그러니까 잠깐 휴식을 취해주는 것도 필요해.

           자아, 그렇게 딱딱한 표정 짓지 말고.

           어서 키리온 선생님께 가 보자! 이솔렛 언니도 함께요!

 

          [보리스, 아나벨, 티치엘 간다]

 

이솔렛: 보리스가 그동안 저 아이들과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

 

 

 

펠로로스: 너희들, 정말로 골모답을 불러들인 그 이계의 물건이라는 것을 발견한 게 맞느냐?

              주위를 둘러봐도 특이한 낌새라고는 없단 말이다.

디케: 분명 이 부근이었어요.

        여기서 이상하게 생긴 목걸이를 발견했었어요. 그렇지, 로코?

로코: 으응….

펠로로스: 너희가 골모답을 불러낸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고 해서 와 봤더니,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

              철부지들 말만 믿고 위험한 숲까지 나와본 내가 바보같군.

              에키온, 너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이런 철부지들과 어울리는 것이냐?

              네 형처럼 의젓하고 점잖게 행동하면 좀 좋으냐?

에키온: 헤헤…저도 노력하고 있다고요, 아버지.

펠로로스: 돌아가자. 앞으로 또 이렇게 경거망동했다간 호되게 혼이 날 줄 알아라.

 

블라비: 으…어찌하여 졸음이 가시지 않는 것인가…….

           이런 곳에서 쓰러질…쓰러질 순 없어….

           왜 자꾸 날 괴롭히는 것이오…이 펜던트 때문이오?

           제발 내 머릿속에서 나가달란 말이오….

 

디케: 저, 저거예요! 저희가 본 목걸이를 저 수도사님이 갖고 있어요!

펠로로스: 뭐? 블라비 수도사가?

에키온: 저 사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게 조금 이상해 보이는데요. 어디 아픈 건 아닐까요?

펠로로스: …흐응, 얌전한 척 하더니 뒤꽁무니로는 온갖 기묘한 짓을 하고 다니는 군.

              나를 조용히 따라와라. 데스포이나 사제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

 

 

 

 

데스포이나: 그래서 무슨 일이지요? 펠로로스 수도사.

                 회의가 끝난지 미처 얼마 되지 않았는데, 뭔가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펠로로스: 저는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이 자리에서

              지팡이의 사제님께 제 발의를 재청해 주실 것을 부탁하고자 합니다.

데스포이나: 재판을 발의하려 하심입니까? 그렇다면 누구에 대해서, 어떤 일로 재판을 요청

                 하는 것인지 말씀해 주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만.

펠로로스: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골모답이라는 괴물이 이계의 존재에 반응하여 따라오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일

              말입니다. 이 섬에 이계의 존재가 저절로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가? 달여왕이 계시는

              한 불가능한 일이겠죠. 그렇다면 섬의 누군가가 이계와 관련된 물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데스포이나: 섬사람 중의 한 명이 골모답을 불러들였단 말씀이십니까?

                 이곳에서 저희가 나누는 단어는 모두 달여왕이 듣고 계시며, 취하는 몸짓 역시

                 모두 달여왕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 위험하고도 무서운 생각을 함부로 품지

                 마세요.

스카이볼라: 그의 말을 끊지 말게.

데스포이나: 섭정 각하.

스카이볼라: 골모답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내게 해를 끼칠 뻔한 아주 사악한 괴물이오.

                 섬 어딘가에 숨어 뱀처럼 섬뜩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 괴물을 당장이라도 찾아서

                 처치해야 하오. 그러나 골모답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작은 실마리라 해도 쓸모 없지 않을 것이오.

펠로로스: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결론부터 바로 말씀드리지요.

              제가 생각하는 골모답을 섬으로 불러들인 장본인은, 바로 블라비 수도사입니다.

수도사 2: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블라비 수도사는 달여왕 앞에 부끄러운 짓을 할 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데스포이나: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으시오, 펠로로스 수도사?

펠로로스: 아직까진 얄팍한 제 의견일 뿐이지만, 몇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데스포이나: 그 증거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시오.

                 만일 거짓을 말한다면, 달여왕께서 당신의 혀를 어떻게 해도 좋다는 걸 잊지 마시오.

펠로로스: 명심하겠습니다. 먼저 여왕의 창이 쓰러진 사건부터 논하지요.

              그 신목은 블라비 수도사가 예전부터 관리하던 것으로, 굉장히 거대하고 오래되어

              쉽게 꺾이기는 불가능한 나무입니다.

              대체 어찌하여 그 나무가 쓰러진 것일까 궁금하던 찰나, 제 작은 아들인 에키온 녀석과

              그 친구들이 그러기를, 신목의 뿌리 근처에서 처음 보는 펜던트를 보았다고 합니다.

데스포이나: 펜던트라고 하셨소?

펠로로스: 네. 달의 섬에서 나는 물건은 모두 일정한 전통과 관습대로 만드는 것이라 쉽게

              알아볼 수 있지요. 하지만 그 펜던트는 섬에서 만들었다기엔 너무나 독특하고 유별난

              모양새였다고 하더군요. 불길한 직감이 들어 어른들을 모셔오려고 마을에 갔다 온 사이

              사라져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라졌다던 그 펜던트는 지금, 블라비 수도사의 손에

              들어가 있습니다. 저와 제 아들 녀석이 직접 목격한 사실입니다.

수도사 1: 펜던트라고?

수도사 2: 블라비 수도사가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소.

수도사 1: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퉁명스러운 면이 있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하긴 하지만,

              알고보면 솔직하고 정직하신 분입니다.

펠로로스: 왜들 이러시오? 그는 대륙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오. 잊으셨소?

              다들 알고 있듯이 대륙에서 난 사람은 우리 섬사람들과 기질 자체가 다르오.

              그들은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의뭉스럽지.

              대륙의 피가 반이나 섞인 그도 여기서 예외는 아닐 것이오.

              그가 관리하던 신목이 쓰러졌고, 신목 근처에서 발견된 특이한 펜던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소.

              게다가 내가 목격했을 당시 블라비 수도사는 펜던트를 손에 꽉 쥐고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며 괴로워 하고 있었소. 그는 마치, 골모답을 달의 섬에 불러낸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단 말이오!

              자, 이래도 그가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소?

데스포이나: …그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옳겠군요. 블라비 수도사를 이곳으로 데려옵시다.

 

 

 

 

로울라: 하루종일 서 있으려니 무릎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어디 좋은 약 없수?

이오: 잘 듣는 소화제 좀 지어주세요.

        알콘이 배고프다는 소리를 안 하는 게 어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모나사: 우리 남편이 돈만 잘 벌어왔어도 이렇게 몸 곳곳이 쑤시진 않을텐데…

           그래도 선생님이 주신 약 덕분에 내가 산다니까요.

캄페: 의사 선생님 앞에서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하지만 나도 선생님 덕을 톡톡히 봤지.

        모르페우스 사제님보다도 훨씬 뛰어나시다고. 이런 걸 청춘어람이라고 하나?

모나사: 청출어람이오.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이이가 왜 괜히 나서서 날 부끄럽게 만드는 거야?

 

티치엘: 바쁘신 모양이네…오늘은 그냥 돌아가야 하나봐.

키리온: 아, 오셨군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있으면 일이 끝날 것 같거든요.

티치엘: 헤헤, 저희는 신경쓰지 마세요.

 

         [잠시 후]

 

키리온: 휴,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네요.

티치엘: 항상 이렇게 바쁘세요?

키리온: 요즘 들어 그렇습니다. 모르페우스 사제님이 연구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그의 일을 모두 도맡게 되었거든요. 원래 그분은 한번 연구에 빠지시면

           보이는 게 없는 성미시니까요. 하하….

보리스: ….

키리온: 게다가 섭정 각하도 돌봐드려야 하고요.

티치엘: 섭정 각하요?

키리온: 네, 저는 섭정 각하의 개인 주치의이기도 합니다.

           예전보다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제가 항상 곁은 지키며 그분의

           상태에 걸맞은 처방을 내려드리고 있습니다.

아나벨: 그럼 지금도 바쁘신 건 아닌가요?

키리온: 괜찮습니다. 마침 각하께서 자리를 비우셔서, 여러분들을 대접할 수가 있게 되었거든요.

           제가 음식들을 가지고 나오도록 하죠. 대륙에서 가져온 빵과 쿠키도 있으니,

           차와 곁들여서 먹으면 딱 좋을겁니다.

티치엘: 와아, 말만 들어도 배가 고파져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지고 있었는데.

이솔렛: 저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보리스: 아, 이솔렛…….

           죄송합니다. 저는 다음에 함께 하겠습니다.

 

 

 

보리스: 이솔렛!

이솔렛: …보리스? 함께 차를 마시고 있을 줄 알았어.

보리스: 차는 다음에 마셔도 돼요.

           그리고 전 대륙의 음식도 그렇게까진 간절하지 않아서요.

           역시 섬에서의 이 년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닌 모양이죠?

이솔렛: 그때의 일을 이젠 농담처럼 말할 수도 있게 됐구나.

           그렇게 되기까기 분명 넌 많은 일을 겪었겠지.

보리스: …섬에 오면 당신과 단둘이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을 줄 알았어요.

          예전에 함께 찬트 수업을 했던 때처럼 말이에요.

이솔렛: 그 시절이 그립니?

보리스: 물론 그립고 말고요.

이솔렛: 그럼 가볼까. 예전에 우리가 찬트 수업을 함께 했던 그곳.

           이쪽이야. 계단을 밟는 방법은 잊지 않았겠지?

 

 

 

[하늘다리]

보리스: 이곳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당신처럼요.

이솔렛: …….

보리스: 아, 저…….

           역시…골모답이 발견되지 않아서 이솔렛도 걱정하고 있죠?

이솔렛: 물론이야. 그 괴물은 우리 섬 전체 인구의 삼분의 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정도로 강력하고

           잔인해. 이번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마 달의 섬 자체가 지도에서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보리스: 그럼 지금 대체 골모답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이솔렛: 지금까지 했던 말들을 되새겨봤어.

           골모답은 힘겨루기에 졌고, 아직 섬을 떠나지 않았고, 공간 사이의 경계를 파괴하면서까지

           달의 섬에 왔어. 그 괴물에게는 여러 공간의 차원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

           어쩌면 지금쯤 우리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여전히 왜 섬에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리스: 아까 그 일이 자꾸 마음에 걸려요.

           원치 않게 이공간에서 넘어온 자를 무작정 봉인시켜 버린 일이요.

           사제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이솔렛: …질문이 많은 건 여전하구나. 그분들은 너처럼 생각하지 않으실 거야.

           역사가 오래됐든 아니든, 숲을 수호하든 아니든간에, 달의 섬의 문명 하에서 등장하지

           않았으니 사라져 버려 마땅할 존재라고 생각하시면 몰라도.

보리스: 이솔렛, 당신도 이 상황을 두렵다고 느끼나요?

이솔렛;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내 개인적인 감정과는 상관없이, 난 이곳에서 줄곧 자라왔고 아버지와 함께 많은 추억을 쌓았어.

           달의 섬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역시 두려울 수 밖에 없어.

보리스: 후훗….

이솔렛: 왜 웃는 거야?

보리스: 아니요, 죄송해요. 그냥…당신은 언제나 강하고 반듯하니까.

           지켜주고 싶어도 제가 오히려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라 항상 부끄러웠거든요.

           어쩌면, 지금이라면, 제가 당신을 지켜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이솔렛: …….

보리스: 기억해요. 이솔렛?

           제가 당신에게 약속했던 것.

이솔렛: 잊지 않았어.

 

 

 

이솔렛: 보리스.

보리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이솔렛: 그게 아니야. 요즈렐이 누군가 집에 왔다고 알려주었어. 내려가보자.

 

 

 

 

데스포이나: …이솔렛.

이솔렛: 사제님이셨군요. 저희 집엔 어쩐 일로…….

데스포이나: 밤 늦은 시간에 미안하구나.

                 허나 급하게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었단다.

                 혹시 블라비 수도사의 행방을 알고 있니?

이솔렛: 나우플리온 사제님의 집에 머물다 떠나셨습니다.

           지금쯤 다른 수도사님들과 함께 지내시리라 생각했어요.

수도사 1: 블라비 수도사님은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그분이 나우플리온 사제님의 집에 머무시는 줄 알았습니다.

보리스: 그럼 지금 어디 계시는 겁니까?

데스포이나: 아무도 모른단다.

이솔렛: 어떻게 된 일이죠?

데스포이나: 사실 공회당에서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었다.

                 펠로로스 수도사가 블라비 수도사를 골모답을 끌어들인 장본인이라고 여기는

                 바람에 작은 소란이 있었어.

보리스: ……!

데스포이나: 말다툼 끝에 결국 블라비 수도사가 뛰쳐나갔고, 그 후 그를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혹여나 너희를 다시 찾아간 줄 알았는데…

                 결국 그가 사라진 것이 확실해 졌구나.

보리스: 말도 안 돼요. 블라비 수도사님은 골모답을 끌어들이지 않았어요!

데스포이나: 그가 가지고 있던 펜던트가 이계의 물건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여러가지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 차마 말리지 못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 구나.

보리스: 그 펜던트는 그의 형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에요!

           골모답과는 아무 상관도 없단 말입니다!

수도사 1: 저희 수도사들은 그가 숲으로 다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상처 입은 그를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숲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걱정이 됩니다.

             아직 골모답을 처치하지도 못했는데 혹시나 숲속에서 봉변을 당하실까봐…….

보리스: …그분이 기거하시는 숲이 어디죠?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자신의 숲에 놀러오라고 하셨었는데, 꼭 한 번 가고 싶었거든요.

수도사 1: 블라비 수도사님이 그런 말을 하시다니 믿기지 않는군요.

             그분이 머무시는 곳은 옛 기억의 숲 입구의 위쪽, 숲의 3시 방향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의 오두막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보리스: 그럼 그곳으로 가서 블라비 수도사님을 마을로 모셔오겠습니다.

이솔렛: 보리스…….

보리스: 겨우 그의 상처가 낫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위에 새로운 상처가 났으니, 머무는 시간은 배로 걸릴 겁니다.

           게다가 마을 밖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아닌가요?

           어딘가에 골모답이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입니다.

데스포이나: 괜찮겠느냐.

보리스: 닷새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데스포이나: 그 말은 닷새 안에 돌아올 수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 구나.

                 그렇다면 사제들을 대표하여 부탁하겠다. 부디 블라비 수도사를 찾아다오.

보리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채비를 해 블라비 수도사님의 오두막으로 가 보겠습니다.

 

 

 

리리오페: 이런 밤 늦게 무슨 일이야?

에키온: 예전에 너를 화나게 했던 일 미안해. 사과하러 왔어.

리리오페: 네가 나한테 뭘 했는데?

에키온: 그러니까 내가 네 앞에서 그 녀석의 이름을 말하는 바람에…화가 났었잖아?

리리오페: 아, 그거? 이미 다 잊어버렸는데.

에키온: 그래? 그러면 정말 다행이고.

리리오페: 겨우 그 말 하러 온 거야?

              비가 올 것 같으니까 이제 들어가도 돼?

에키온: 아, 아니. 잠깐만.

 

          [리리오페에게 꽃을 건네준다.]

 

에키온: 받아줘.

리리오페: 웬 꽃이야?

에키온: 너한테 사과도 할 겸…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

           앞으로 너랑 잘 지내보고 싶어. 그러니까 친구 이상으로….

리리오페: 하! 제정신이니? 지금 나를 마음에 품고 있다고 말하는 거야?

              감히 네가, 섭정 각하의 딸인 이 나를?

에키온: 우…우리 집안도 나쁘지만은 않잖아? 우리 아버지는 수도사시고 또…….

리리오페: 누가 집안 수준을 논하랬니? 문제는 너야!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너라는 게 문제라고!

에키온: 내 어디가 문제라는 거야?

리리오페: 넌 패배자니까.

              네가 네 손으로 이룬 업적이나 명예가 있니? 없잖아.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거나 검에 소질이 있기나 하니? 아니잖아.

              난 더 이상 옛 섭정의 원칙 따위 지킬 생각 없어.

              그러니까 내 상대자가 될 사람은 강하고,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에키온: ….

리리오페: 이제 알겠니? 나는 너 같은 패배자가 주제도 모르고 감히 나를 좋아하려 한다는

              자체가 불쾌해. 네 속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돋보이고 싶어서 날

              이용할 생각이었다면 당장이라도 포기하는 것이 좋고.

              순수하게 날 좋아하는 마음이었다면 더더욱 빨리 단념하는 것이 좋을 거야!

키리온: 리리오페 아가씨, 무슨 일입니까?

           곧 비가 내릴 것 같군요.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리실까 걱정이 됩니다.

리리오페: 아, 선생님! 걱정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금방 갈게요.

              이게 내 대답이야.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 줘.

 

 

 

디케: 에키온 형님, 괜찮아요?

에키온: 후후…리리오페는 똑똑한 여자야. 역시 내가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어!

시논: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머리가 어떻게 됐나 봐.

에키온: 그런 게 아니야, 멍청아.

           아까 리리오페가 돋보이고 싶어서 자기를 이용할 생각을 했었냐고 말했잖아?

           정확히 짚은 거라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리리오페 보다도, 그녀 뒤에 있는 권력이니까.

디케: 하지만 형님에게는 이미 대단한 아버지가 계신데다, 명문가의 유산까지 있잖아요.

에키온: 흥, 헥토르 형에게나 대단한 아버지겠지.

           그가 형을 편애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할 정도야. 내게 해주시는 말씀이라곤 오직 형 좀

           닮으라는 잔소리뿐이지. 게다가 헥토르 형은 이제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예전의 욕심도, 야망도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그러니까 검의 사제도 못 되고

           겨우 달여왕의 군대에 들어가 버린 것 아니겠어? 난 리리오페와 혼인해서,

           그녀가 가진 힘을 곧 내 힘으로 만들거야. 그러면 아버지도, 형도 날 무시하지 못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가 말한 대로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을 만한 명예가 필요해.

시논: 어떻게요?

에키온: 음….

 

디케: 보리스다!

로코: 이솔렛이다!

디케: 저 녀석들, 골모답을 잡으러 가는 것 같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면 이런 비오는 밤에 저런 심각한 얼굴로 숲에 나갈 이유가 없잖아요!

에키온: 좋은 생각이 났다. 저들을 따라가서 우리도 함께 골모답을 공격하는 척하고 같이

           마을로 돌아오는 거야. 어차피 저 애들은 곧 섬을 나가게 될 테니까

           남은 명성은 우리들의 차지야.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모두 에키온과 그의 친구들이

           골모답을 물리쳤다고 기억할 거라고.

디케: 에키온 형님의 뜻이 그렇다면 저도 따라야죠!

시논: 나도 갈래!

로코: 난…난 싫어. 무섭단 말야.

디케: 이 약골 생쥐! 너 혼자 쏙 빠지려고?

시논: 우리가 하는 일에 따르지 않겠다는 거야?

        우리가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좋아?

로코: 그건…….

에키온: 내겐 몇가지 마법 두루마리가 있어.

           이걸 사용하면 마치 엄청난 공격을 퍼붓는 척 눈속임을 할 수 있다고.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 얼른 뒤를 따라가자!

 

 

 

보리스: 블라비 수도사님! 계십니까?

           …아무 대답도 없어.

티치엘: 보리스, 이걸 봐. 오두막 지붕에 구멍이 나 있어.

보리스: 마치 커다란 주먹이…위에서 지붕을 내려친 것 같아. 그렇다는 건…?

이솔렛: 바닥에 일기가 떨어져 있어.

보리스: 이건 저주다. 치료받지 못할 상처다. 날 사랑해 주는 이는 달여왕이 유일하시니,

           그렇다면 달여왕께 기도를 드리다 죽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리라.

           블라비 수도사님이 위험에 빠진 게 분명해요!

 

          [아나벨, 쓰러져 있는 까마귀를 발견한다.]

 

아나벨: 이 까마귀는 칼가야! 블라비 수도사님의 애완 까마귀!

이솔렛: 이미 죽었어. 이건 사람의 이빨 자국….

보리스: 블라비 수도사님! 어디 계세요! 블라비 수도사님!

 

 

 

 

보리스: 수도사님!

이솔렛: 보리스! 어서 그의 곁에서 물러나!

보리스: 이솔렛?

 

         [블라비 수도사가 보리스를 공격한다.]

 

보리스: 윽! 블라비 수도사님…?

괴물이 된 블라비: 크으…크으…….

이솔렛: 저건 이미 블라비 수도사가 아냐.

           그의 공격을 막지 않으면 우린 살아 돌아갈 수 없어.

            그러니까 무기를 들어, 보리스. 그리고 너희들도.

 

          [전투 후]

 

보리스: 수도사님! 들리면 제발 대답 좀 해보세요!

           …그가 죽었어.

아나벨: …….

이솔렛: 보리스, 블라비 수도사님을 이렇게 만든 것이 누굴까?

보리스: …저예요…제가 그를 이렇게…!

이솔렛: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수도사님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범인.

           넌 알고 있잖아? …틀림 없지?

보리스: …네. 드디어 그 사악한 꼬리를 잡았어요. 이건 골모답의 짓이 틀림없어요.

이솔렛: 골모답에게 당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성을 잃고 광기에 빠진 괴물이 되어버린다고 하지.

           그것이 주변에 있는 게 분명해.

보리스: 이건…수도사님의 검이었을까요?

이솔렛: 자루만 남았지만, 아마 그럴 거야. 그는 한때 검을 잡았던 적이 있으니까.

           검날이 사라진 것을 보면, 골모답과 얼마나 필사적인 사투를 벌이셨을지 짐작이 가.

보리스: ……이 검자루를 가져가서, 무덤에 함께 묻어드리겠어요.

           그에게 용서를 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어요.

 

            [낡은 검자루 획득.]

 

이솔렛: …주위가 지나치게 조용해. 마치 그 날 같아.

           우리가 과거 문명의 수호신을 봉인시켰던 날.

 

 

 

아나벨: 골모답이다!

보리스: 드디어 나타났나! …하지만 예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작고, 빛깔도 연해.

이솔렛: 크기가 작든, 색이 연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이것의 정체가 골모답이라는 것.

           더 이상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당장 없애버리겠어.

 

          [전투 중 이솔렛이 다친다.]

 

보리스: 안돼!

 

           [보리스가 서리의 눈을 사용하여 골모답을 죽인다.]

 

보리스: 이솔렛! 이솔렛!

이솔렛: 난 괜찮아.

보리스: 또 그때처럼 그런 말을! 당신도 알잖아요!

           골모답에게 당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솔렛: 하지만 사실이야. 조금 긁힌 것을 제외하면 아무 상처도 나지 않았어.

보리스: 정말 괜찮은 거예요?

이솔렛: 정말.

보리스: 그렇다는 말은, 이것과 비슷하게 생긴 놈들이 더 많이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요?

티치엘: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티치엘: 작은 골모답처럼 생긴 것들이 안에 잔뜩 있어!

보리스: 티치엘, 네 덕분에 드디어 골모답의 근거지를 찾았어!

이솔렛: 틈이 열리려고 해.

           이 틈이 완전히 벌어지는 날엔, 달의 섬은 골모답 떼로 뒤덮이고 말아.

보리스: 이 안에 우리가 찾던 그 골모답이 있을 거예요. 당장 들어가요.

티치엘: 하지만 네냐플에서 받은 서리의 눈을 이미 써버렸잖아.

           그게 없으면 골모답을 처치하기 힘들지도 모른단 말야.

보리스: 무작정 서리의 눈을 사용해 버린 것도 나고, 블라비 수도사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도 나야.

           그러니까 이 상황, 끝까지 내가 책임지겠어.

아나벨: 나 역시 너와 함께 골모답을 처치하기 위해 네냐플에서 이곳까지 따라왔어. 그러니 함께 갈게.

티치엘: …해보지도 않고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했어. 약한 소리 해서 미안해.

이솔렛: …좋아. 너희들이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나 역시 칼을 뽑지 않으면 안 되겠지.

           이 바위 틈이 어떤 곳인지, 이 안에 얼마나 두려운 것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자, 들어가자.

 

          [작은 골모답 무리들을 처치한 후]

 

 

 

아나벨: 시끄럽게 귀를 긁던 소리가 그쳤어.

티치엘: 대량으로 쏟아지던 몬스터들도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아.

보리스: 어딘가 골모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확실해. 말보다는 검을 앞세우는 것이 최선이겠지.

 

에키온: 아아, 드디어 만났어!

보리스: ?! 

           너는…대체…여기…왜…?

에키온: 우린 보리스 너를 따라온 것 뿐인데, 난데없이 이상한 곳에 빨려들어 버렸어!

           그나저나 여긴 어디냐? 마치 달여왕께서 말씀하시던 지옥 같아!

보리스: 여긴 위험해! 당장 나가!

에키온: 나가고 싶어도 나가는 곳이 없단 말이다!

           너희는 왜 이런 섬뜩한 곳에 들어온거야?

           설마 이런 데에 골모답이 있는 건…….

 

 

 

디케: 으아악! 괴, 괴물이다!

아나벨: 저게 말로만 듣던…….

티치엘: 골모답……!

이솔렛: ….

보리스: 드디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나!

디케: 아악! 저리 가!

 

        [골모답이 디케를 공격한다.]

 

시논: 우와악! 디케가 죽었어!

로코: 싫어! 여기서 나갈래!

에키온: 으아아아악!

보리스: …………!

         

       [골모답이 공격한다.]

 

보리스: 크윽….

아나벨: 귀, 귀가 터질 것 같아….

티치엘: 머리가 아파…!

에키온: 여기 있다간 주,죽을 거야!

           여왕이시여, 살려주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오는 게 아니었어!

이솔렛: 비켜. 다들 그러고 있을 거면, 뒤에 가서 조용히 앉아 있어. 적어도 방해는 되지 않도록.

보리스: 당신이 혼자 싸우도록 놔둘 수는 없어요, 이솔렛.

           이 괴물이 당신에게 발톱을 겨눌 수조차 없도록 하겠어요.

           네가 할 말이 있어 이곳에 왔든, 찾는 것이 있어 이곳에 왔든 듣지 않겠다.

           네게 답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검뿐이다!

 

 

        [전투 후]

 

 

 

보리스: …이솔렛. 괜찮아요?

이솔렛: …그래.

보리스: 이제 그만 솔직해지라구요…많이 다쳤잖아요…….

           골모답이 당신에게 발톱조차 겨누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제가 부족해서…당신을 다치게 만들었어요.

이솔렛: 솔직히 말하자면, 발목을 다쳐서 움직이기 조금 힘들어.

           하지만 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더 큰 상처를 입었겠지.

           나야말로 이곳에 온 너희들을 끝까지 지켜내기로 했는데 면목이 없어.

보리스: 하핫…그렇지 않아요. 저도 겨우 팔 한쪽만 부러진 걸요….

           당신이 없었다면 전 이미 골모답에게 당해 광증에 걸려버렸을지도 몰라요.

이솔렛: …….

보리스: 어떻게 해서든 저 돌무더기를 치워야 하는데…….

           왜 골모답이 죽자마자 바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거죠?

이솔렛: 이곳 역시 일종의 이공간. 그러니까 우리들이 살고 있는 달의 섬과,

           골모답이 있던 이계를 이어주는 가상의 통로였던 것 같아. 실제로는 아주 좁은 바위 틈에 불과

           하지만, 골모답이 마력을 이용해 넓은 통로처럼 보이게 한다음 자신의 군대를 주둔시킨 거지.

           골모답이 죽으면서 동시에 마력도 사라져, 허상 뿐이었던 공간이 다시 원래 모습인 바위 틈으로

           돌아온 거야.

보리스: 그렇다면 달의 섬에서 골모답의 근거지는 완전히 사라진 셈이 되겠군요.

           다행이에요. 대신 우리가 갇히게 되어 버렸지만요. 하하….

           …저 아이는 죽었을까요?

이솔렛: 아니, 아직까지는. 하지만 시간 문제야.

           나 역시 골모답의 공격에 당해본 적이 있으니 알 수 있어.

보리스: 그렇다면 빨리 서둘러야겠어요.

           더 이상 달의 섬에 골모답으로 인한 비극이 있어서는 안 돼요.

 

보리스: 제발…출구를 찾아야 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맹세했다고!

           이 돌무더기를 파내지 않으면…우린 밖으로 나갈 수 없단 말이야…!

이솔렛: ……. 이 소리는….

보리스: 이솔렛?

이솔렛: 나를 찾고 있어.

보리스: 당신을…찾고 있다고요?

 

 

 

이솔렛: 연기와 같고 구름과 같은 그대.

           너무나 아득하여 보이지 않네.

           너무나 멀리 있어 만질 수도 없네.

           하지만 그대 내게 왔음을 느낄 수 있네.

           머리카락 부드럽게 쓰다듬는 그대의 손짓에,

           나 드디어 그대 내게 왔음을 느낄 수 있네.

보리스: …누구지?

 

 

 

헥토르: 예전에는 유력한 검의 사제 후보.

           한때는 썰물섬의 경비 책임자 클란치.

           그리고 지금은 달여왕의 군대가 된 헥토르다.

보리스: 헥토르! 마을에 돌아와 있었던 건가?

헥토르: 물론. 전에 원정을 떠나기 위해 다들 공회당에 집결했을 때 그곳에서 너를 봤다.

           지금까지 기회가 없어 말을 걸지 못했는데 이제야 겨우 인사를 하게 되었군.

보리스: 하지만 네가 어째서…우릴 구해주는 거지?

헥토르: 잊었나? 난 너를 세 번 돕기로 약속했었다.

           그리고 오늘로써 드디어 모든 빚은 갚은 거다.

이솔렛: 너에게 새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는데

헥토르: 아, 운이 좋았던 것 뿐입니다.

           에키온과 그 친구들이 작당하며 보리스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듣고,

           낌새가 이상해 뒤를 밟았다가 길을 잃고 말았죠. 한참 숲을 헤매고 있던 중

           눈부시게 하얀 새들이 나타나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솔렛의 새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따라와 보니 이곳이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좁은 틈 안에 갇혀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골모답은?

보리스: 처치했다.

헥토르: 그럼 됐어.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자.

보리스: 이솔렛, 제 손을 잡아요.

           이솔렛부터 먼저 밖에 내보내 줘.

이솔렛: 겨우 발목을 조금 다친 것 뿐이야.

헥토르: 뭐하는 거야?

보리스: 잠시만.

 

          [골모답을 베어 붉은 심장과 녹슨 검날을 얻는다.]

 

보리스: 이 심장은 다친 저 아이를 살리는 데 필요해.

           그리고 아마 이 검날은… 블라비 수도사님의 검에서 부러져 나온 것이 틀림없어.

헥토르: 블라비 수도사님의 검이라고?

           최근 그분이 이계의 물건으로 골모답을 불러들였다는 소문이 돌던데. 혹시 그 검인가?

보리스: 이 검은 수도사님의 누명을 풀어줄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을 가지고 먼저 모르페우스 사제님께 가겠어.

           그 분은 검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거야.

헥토르: 밖에 새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을 따라 마을로 돌아가자.

 

 

 

보리스: 모르페우스 사제님. 오늘은 부탁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모르페우스: 한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갑자기 나타나 대뜸 하는 것이 부탁인가.

                 무슨 일이지?

보리스: 이 반쪽짜리 검들의 정체를 밝혀 주십시오.

 

           [녹슨 검날과 낡은 검자루를 건네준다.]

 

모르페우스: 오래 되었지만 꽤 좋은 검이군.

                 좋아, 이건 내가 맡지.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얼굴이 다들 왜 그렇지?

                 마치 내가 여덟 번 연속 실험에 실패했을 때의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아나벨: (누구랑 참 잘 어울릴 것 같단 말야…

            빨간 곱슬 머리에 안경을 쓴 그 사람하고….)

보리스: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조금 지쳤을 뿐이에요.

           저희는 데스포이나 사제님의 댁에 가봐야 겠습니다.

           그 검, 잘 부탁드립니다.

 

 

 

이솔렛: 세멜레, 사제님은 집에 계시니?

세멜레: 아…네, 안에 계세요! 제가 지금 사제님을…….

데스포이나: 너희들…!

보리스: 오늘이 며칠이죠?

데스포이나: 26일이란다.

보리스: 그럼 오늘이 딱 닷새 째가 되는 날이네요.

데스포이나: …보리스. 일은 어찌 되었느냐?

보리스: …블라비 수도사님은 이미 골모답에게 당한 상태였습니다.

           광증에 걸려 이성을 완전히 빼앗긴 모습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에게 강제로 평온을 찾아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데스포이나: 골모답이라! 그가 골모답에게 당했단 말이더냐!

                 아아, 여왕이시여. 부디 그의 영혼을 당신 품에 감싸안아 주소서…….

이솔렛: 골모답은 책임지고 처리했어요.

           하지만 도중에 불청객이 찾아왔더군요.

           디케가 골모답의 공격을 당했어요.

데스포이나: 디케라고? 그 아이는 에키온의 친구가 아니더냐?

                 왜 그 아이가 그곳에?

 

롯사: 디케가 다쳤대!

아르파: 뭐? 디케가 외지인들을 따라갔다가 다쳤다고?

모나사: 뭐? 디케가 외지인들의 공격을 받았다고?

캄페: 살인자! 살인자들!

이오: 저 외지인들이 온 이후로 우리 섬에 재앙이 닥쳤어!

이솔렛: 이들에게 골모답을 처치해 달라고 부탁한 것은 우리 섬 사람들이 아닌가요?

           결국 이들은 목숨을 걸고 골모답을 섬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어요.

           하지만 왜 아무도 감사하지 않죠?

           도움을 준 사람을 이방인이라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 그것이 달여왕의 가르침인가요?

데스포이나: 이솔렛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들을 달의 섬으로 불러온 것도 우리요, 골모답을

                 처치할 것을 부탁한 것도 우리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제들 모두와, 달여왕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따라서 순례자들이여, 당신들이 한 말은 바로 우리 사제들과

                 달여왕을 겨냥하는 말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이솔렛, 골모답에게 입은 상처는

                 그의 심장으로만 치료할 수 있다. 붉은 심장은 어찌 되었지?

이솔렛: 가져왔어요.

데스포이나: 다행이구나. 심장으로 그 아이를 치료할 것이다.

                 나를 따라 들어오거라.

 

 

 

            [골모답의 붉은 심장을 건네준다.]

 

디케: 음…….

데스포이나: 휴우…한 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군요.

                 붉은 심장이 이 아이를 구했습니다.

데스모폴로스: 오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우선 달여왕께 감사드리고,

                    골모답을 처치하고 심장을 가져온 이솔렛과 이들에게도 감사합니다.

페이스마: 혹 내가 대륙 출신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거나,

              추방시키자는 말을 하여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용서해 주길 바란다.

              이솔렛과 너희들이 아니었으면 이런 큰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페트라: 저 역시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낍니다.

데스포이나: 달의 섬은 또 한 번 주어진 시련을 견뎌냈습니다.

                 어제의 비극적인 일은 우리 순례자들의 가슴에 반성과 성찰이라는 글자로 새겨질

                 것이며, 오늘의 기쁜 일은 우리 순례자들의 앞날에 축복과 환희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 말씀 중에 실례합니다.

페트라: 아, 들어오렴.

오이지스: 소매의 사제님께서 부탁하신 이불과 편한 옷을 가져왔어요.

페트라: 수고했다, 오이지스.

보리스: 페트라 사제님의 일을 열심히 돕고 있구나.

오이지스: 네가 와 있는 줄은 몰랐어. 왠지 쑥쓰럽다!

              나중에 네게 따로 축하 인사를 건네려고 했는데. 골모답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며?

              역시 넌 굉장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굉장하고 굉장해!

보리스: 오이지스, 너야말로 나를 어디까지 쑥쓰럽게 만들 셈이야?

데스포이나: 보리스, 이제 그만 블라비 수도사를 달여왕의 품으로 보내주려고 한다.

                 그가 가는 길에 네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 줄 수 있겠니?

보리스: …물론입니다.

오이지스: 아, 제로 아저씨가 보리스에게 줄 물건이 있다고 했어요.

              블라비 수도사님과 관계된 물건이라면서, 저보고 꼭 데려오라고 하셨어요.

데스포이나: 그럼 우리가 준비하는 동안 잠시 제로 씨에게 들렀다 오너라.

                 장례식은 마을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무덤가에서 치를 예정이다. 늦지 않게 와 주렴.

보리스: 알겠습니다.

 

 

 

오이지스: 아저씨, 보리스를 데려왔어요.

제로: 고맙다, 오이지스. 이것, 네가 모르페 사제님께 맡겼던 거지?

 

            [완성된 검 한 자루를 받는다.]

 

제로: 네가 가져다 준 두 동강이 난 검을 모르페 사제님이 이렇게 고쳐주셨다.

        사제님이 검에 대해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들어 잠시 맡아두었는데,

        역시 이건 네 손에 들어가야 마땅해.

보리스: 결국 이 검의 정체는 무엇이었습니까?

제로: 검의 정체? 정체라고 할 것도 없어.

        눈이 먼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평범한, 달의 섬 어디에나 있는 검일뿐이다.

보리스: 역시 블라비 수도사님은 아무 잘못이 없으셨어요.

           그 일만 아니었더라면…혼자 숲에 나갈 일도 없으셨을 텐데…….

           게다가, 게다가 전 편하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그의 몸에 칼을…….

제로: 그런 생각 하지 마라, 보리스. 그의 성격에, 광증에 걸린 괴물이 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을 게다. 그리고 어쩌겠니, 골모답은 한 마을을 절멸시킨 것도

        모자라 달의 섬이 낳은 희대의 천재까지 앗아가 버린 적이 있다.

         골모답이란 그런 존재다. 하지만 너는 그 괴물에 맞서 아주 잘 싸워주었고,

         우리 순례자들의 운명 역시 구해주었어.

         그러니 심하게 자책하지 마렴. 대신 블라비 수도사에 대한 추억은 항상 지금처럼

         간직해 주길 바란다.

보리스: 아저씨… 이 검, 수도사님의 무덤에 놓아드리겠어요.

           그분이 먼 훗날 다시 형을 만났을 때, 이 검을 가지고 형과 함께 꿈꾸었던 검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겠죠?

제로: 그래. 그도 분명 기뻐할 게다.

        우리가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보리스.

        오이지스가 퍽 섭섭해 하겠지. 마지막까지 그 애와 잘 놀아주렴.

보리스: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정말…감사했습니다.

 

 

 

데스포이나: 여기 한 순례자가 영원한 사명에서 벗어나 달여왕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여왕이시여, 부디 당신의 빛으로 그를 어루만져 주시고,

                 당신의 눈 안에 그를 담아 영원히 기억되게 하소서.

 

              [완성된 검을 무덤 앞에 놓아준다.]

 

페이스마: 미안하오, 블라비 수도사. 당신은 골모답을 불러들이지 않았소.

              이제 당신이 사랑했던 달여왕의 곁에서, 우리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봐주시오.

 

이솔렛: 그대, 물 위에 흐드러진 달빛의 계단이 보이는가.

           어린 잔디 같은 가뿐한 발걸음으로, 금빛의 조각 사뿐히 밟고 올라,

           새들만 다다를 수 있는 그곳에 영원히 돌아가리라.

데스포이나: 고맙구나, 이솔렛. 하필이면 왜 이렇게 날씨는 맑은지….

 

 

 

데스포이나: 너희들의 임무는 모두 끝났다.

                 그렇다는 말은 이제 곧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보리스: 알고 있습니다.

데스포이나: 네냐플에 너희가 대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 놓았다.

                 지금 출발해도 편지보다는 훨씬 늦을 것이다. 그러니 바로 떠날 채비를 하여라.

보리스: 바로…말입니까?

데스포이나: 그렇다.

                 너희를 섬에 들인 까닭은 오직 골모답을 처치하기 위함이었고, 이제 골모답은 없어졌지

                 않느냐. 실은 골모답이 소멸되는 즉시 너희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간의 공을 생각해 며칠의 유예를 더 준 것이니라.

                 달의 섬은 외부인에게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보리스: …알겠습니다.

데스포이나: 준비가 되면 공회당으로 오거라.

                 참, 이 말을 잊었구나. …나는 네가 와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후]

 

보리스: 이솔렛. 전 이제 떠나야 해요.

이솔렛: ….

보리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해도 돼요?

이솔렛: 하늘다리에서 보자.

 

 

 

 

스카이볼라: 장례식은 잘 다녀왔느냐, 리리오페.

리리오페: 네, 아빠.

스카이볼라: 하지만 그런 곳은 가서 좋을 것이 없다.

리리오페: 어때서요? 저도 이제 다 컸고 아빠의 후계자가 되기에도 충분하잖아요.

              앞으로 훌륭한 섭정이 되려면 사람들이 슬퍼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

              장례식은 어떤 식으로 치르는지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카이볼라: 기특하구나. 한동안 시무룩하기에 이 아버지는 잠시 걱정했다.

                 혹시 그 소년 때문인가 하고.

리리오페: 아빠! 아니에요! 이제 그런 애는 자루 째로 갖다 줘도 싫다고요.

              저는 그저…아빠가 걱정이 돼서 그래요.

              저한테 이제 남은 사람은 아빠밖에 없는데, 아빠마저 안 계시면 저는 어떡해요?

              그러니까 오래 사셔야 돼요.

 

 

 

보리스: 골모답은 왜 하필 블라비 수도사님을 공격했던 걸까요?

이솔렛: 그의 오두막 옆에 골모답의 근거지가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비록 골모답은 사라졌지만, 그가 왜 나타났는지는 아직 알 수 없어.

보리스: 어쩌면 달의 섬에는 골모답 외에 다른 위협이 존재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이솔렛: …보리스.

보리스: 네?

이솔렛: 할말은 그것 뿐이야?

           골모답이나, 섬이나,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한 얘기.

보리스: 아, 사실 하고 싶은 말을 잔뜩 생각해 왔는데…….

           막상 당신과 마주보고 있으니 긴장이 돼서…

           털실처럼 엉킨 생각들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솔렛: 긴장할 필요 없어.

보리스: 왜 긴장이 되지 않겠어요?

           이곳에만 오면 당신에게 겨우겨우 찬트를 배우던 생각이 나서 저절로 식은땀이 나는 걸요.

이솔렛: ……보리스 , 떠나기 싫은 거지?

보리스: !

          이솔렛…네, 맞아요. 달의 섬을 떠나기 싫어요. 정확히는 당신과 헤어지기 싫어요.

이솔렛: 하지만 이젠 알아. 너 역시 알겠지.

           대륙에는 너의 생활이 있고, 이곳에는 나의 생활이 있다는 것을.

           이곳의 삶과 대륙의 삶은 둘 사이에 놓여진 바다만큼이나 넓고 멀어.

           그런 점을 무시한 채 너를 강제로 달의 섬에 살게 할 수는 없어.

보리스: 예전에는 제가 잊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만나지 못할 테니까, 두번 다시 볼 수 없을 테니까,

           당신에 대한 제 감정을 억지로 눌러 가뒀다고요.

           차마 당신에 대한 마음을 펼쳐보기조차 두려웠고,

           혹시나 펼쳐보는 날에는 더 이상 주체할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간신히 숨기고 감춰왔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다시 당신을 만났잖아요.

           죽을때까지 볼 수 없을 줄만 알았던 당신이 지금 이렇게 제 앞에 서있잖아요.

           그러면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바다만 건너면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예전처럼 제 마음을 억지로 감출 수 있을까요? 아니, 힘들어요.

           당신을 만나는 순간 그 동안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제 마음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요.

           예전처럼 억지로 누르기엔 불가능해요.

이솔렛: 보리스, 넌 네냐플에 돌아가야 해.

           네가 달의 섬에 다시 온 것은, 어디까지나 그곳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어.

           개인적인 일 때문에 임무를 그르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보리스: 하지만 이솔렛!

           예전에 당신이 제게 다시 섬으로 돌아오라고 했잖아요. 왜 이번에는 그렇지 않죠?

           당신이 그 한마디만, 한마디만 해 주었더라면, 저는 바로 알겠다고 대답하고

           당신을 품에 안았을 텐데! 당신을 앞에 두고, 제가 지금 이렇게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당신은 알고 있어요?

이솔렛: ……나 역시 힘들었어!

           달의 섬에 온 너희들을 책임지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내가 다짐했던 것은,

           너를 사무적인 감정으로 대하자는 거였어. 섬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었으니까.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끼어들어서는 안 됐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내 마음은

           그럴 수 없었어.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던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에 당혹스러웠지.

           그래서 생각해 보았어. 내가 어떻게 임시 검의 사제 일을 맡는 것도 모자라

           대륙에 나가 너희를 섬으로 데려오기까지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째서 변했을까? 그리고 곧 깨달았지. 그건 모두 너를 만난 덕분이라고.

보리스: 이솔렛…….

이솔렛: 오히려 상황은 나아졌다고 생각해.

           네가 골모답을 처치해 주었기 때문에, 사제님들도 과거의 일을 어느 정도 용서하셨을 거야.

           게다가 이번 일로 네냐플과 달의 섬 간의 관계 역시 돈독해졌고, 골모답이 등장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지. 따라서 둘 사이에 교류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는 할 수 없어.

           넌 네냐플에 있고, 난 달의 섬에 있어. 그러니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너를 만나러 가면 돼.

보리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이솔렛,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쉽게 만날 수 없다 해도 이것만은 영원히 기억해줘요.

           당신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한 약속을요.

이솔렛: …물론이야. 이만 내려갈까.

           사제님들이 공회당에서 기다리고 계셔.

보리스: 조금만 더…당신과 있고 싶어요.

이솔렛: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가야 돼.

 

 

 

데스포이나: 아이들아, 너희는 성공적으로 골모답을 섬에서 몰아냈다.

                 달여왕께서 관용을 베풀어 너희들을 허락하셨기에 오늘날 달의 섬이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었으니, 역시 달여왕께서는 언제나 현명하고, 지혜롭게 우리를 가르치신다.

                 애석하게도 골모답이 섬에 나타난 이유는 아직 짙은 안개처럼 모호하고 탁하여

                 알 수 없지만, 허나 그것은 이 섬에서 살아나가고 있는 우리 섬사람들이 밝혀내야

                 하는 몫일 터. 그러니 너희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대륙에 돌아가서도 진실됨과 겸손한 마음을 잊지 말고 계속 올바르게

                 정진 하도록 하여라.

티치엘: 알겠습니다.

아나벨: 네.

보리스: 명심하겠습니다.

 

오이지스: 있잖아, 보리스. 내 이름은 아픔이라는 뜻이잖아?

              하지만 난 이제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아픔을 이해하는 자가 되기로 했어.

              네가 나를 깨닫게 한 덕분이야. 고마워, 보리스.

              네게 다시 작별 인사를 해야만 한다면, 울거나 슬퍼하는 대신 꼭 이 말을 전해주고 싶었어.

보리스: 오이지스….

로코: 저, 저기. 저도…!

        저는요, 지금까지 약한 사람은 당연히 강한 사람에게 굴복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약한 사람을 못살게 구는 건 진짜 강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앞으로 저는 진짜 강한 사람이 될 거예요! 형처럼요!

보리스: 꼭 그렇게 되길 바랄게.

테스모폴로스: 선착장에 배를 대어 놓았다.

보리스: 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테스모폴로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보리스: 아…이솔렛! 배가 모조리…….

이솔렛: 불타고 있어…….

 

 

 

 

 

- EP3 Chapter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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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칸]aSurely | 작성시간 14.08.06 정말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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