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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기다릴 뿐이다. 새장 안에 갇혀서 날지 못하고 주인님이 먹이를 줄 때만을 기다리는, 주인님만을 기다리는 새처럼.
하지만 그 새와는 다르다. 그 새는 억지로 갇혀 자유를 꿈꾸지만, 이것은 자신이 스스로 택한 길이다. 낮에 햇살을 받고 깨어나는 것이 아닌, 빛을 피해 빛이 어둠에게 먹혀들어가는 밤에 깨어나서 기나긴 시간을 살아가는 길을 택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인간과 그들의 경계에서 그들을 향해 겨눈 총 끝을 거두고 인간이 아닌, 그들이 되기를 택한 것도 자신이다. 피를 탐하는 그들을 잘 알면서도―.
영원한 피의 갈증의 길을 택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인 것이다.
노엘은 깊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이제는 익숙한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깨닫고는 몸을 일으키고 잠을 깨웠다. 그리고 세면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렇게 방 안의 창가에서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 그에 반응하듯이 익숙하게 그 시간에 맞춰서 자신의 시중을 드는 시녀가 옷과 그 밖의 여러 가지를 들고 들어왔다.
“노엘님, 일어나셨군요.”
일상적인 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어떠한 감정도 깃들어있지 않다. 그녀는 시녀이기 때문에, 주인에게 어떠한 감정도 갖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엘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시중을 들던 시녀가 지금 눈앞에 있는 시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예전 시녀와의 일을 모두 잊은 것이다. 오늘도 그녀를 찾아올 그의 힘으로 인해.
“오늘 카인 전하께서 들르시겠다고 연통을 하셨습니다. 그럼 전 이만.”
짤막하게 카인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돌아서는 그녀를 보며 노엘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왠지 그랬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그녀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같은 복장을 한 시녀라면 얼마든지 있다. 자신이 착각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하루 일과는 아주 익숙하니까 착각할 만도 하다.
“하아, 그럼 또 이걸로 시간을 때워볼까?”
시녀가 사라지고, 서랍에서 하다만 자수를 몰래 꺼내들고는 노엘은 바늘을 들었다.
최근, 할 일을 찾던 와중 다른 귀족들이 한다고 하는 여러 취미들 중 자수라는 말이 나오자 시녀의 추천대로 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취미는 자신이 할 줄 모르는 것이나 서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수도 그렇게 할 줄 알거나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나마 그 취미들 중에서는 나은 것이었고 여학교에서 교양으로 자수를 하기도 했기 때문에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한 적도 있어서 택했다.
「노엘님. 소중한 분에게 자수를 놓아 선물하시는 건 어떨지?」
그리고 이왕 할 바에는 시녀의 이야기대로 자수를 놓아 선물하기도 한다니까 자수를 놓아서 선물할 생각으로 좀 난이도 있는 것을 택했다.
정말로 아름다운 붉은 장미의 문양. 왕가의 문양을 노엘은 자수로 놓고 있었다.
“휴우.”
문양이 복잡한 만큼 조금만 잘못 해도 모양이 이상해진다. 정신을 최대한 집중해서 하지 않으면 실수가 다반사다.
하지만 싫지 않은 느낌이었다. 정말로 소중한 펜던트. 그 펜던트를 보면서 자수를 놓는다는 것. 추억의 상징이기도 한 그것의 문양을 놓는다는 것.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그 문양을 새긴 손수건을 건네줄 생각을 하면은.
“노엘.”
“아!”
너무 자수에 집중한 나머지 누가 다가오는 기척마저 느끼지 못했다.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노엘은 놀란 나머지 실수로 자수를 하다가 바늘로 손을 찌르고 말았다.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간다. 뱀파이어에게 유혹적인 냄새.
무심결에 노엘은 냄새의 자극에 자수를 잡던 손을 놓고 말았다. 자수가 자수틀과 분리되어 자수틀은 떨어져 바닥에 굴려갔고 자수는 사뿐히 바닥에 떨어졌다.
“놀라서 해서 미안해, 노엘.”
갑자기 들린 카인의 목소리에 놀란 노엘이 바라보자 카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자신의 손을 보고 카인은 조용히 다가와서 손을 낚아채서 붙잡았다.
“곧 아프게 않게 해줄게.”
카인의 손이 닿자 노엘의 손에 바늘로 찔린 상처가 점점 사라졌다. 전에도 상처 입었던 자신에게 카인이 써준 능력이다.
순수혈통이 아니라, 본디 인간이었으나 카인으로 인해 뱀파이어가 되고 카인의 피를 마신 노엘은 혼혈 귀족정도와 비슷한 힘을 가지게 되긴 했다. 하지만 원래 인간이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상처가 치유가 되기는 되지만 그 속도는 느렸다. 인간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물론 순수혈통, 그것도 왕족으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카인은 바로 상처가 나아버린다. 다른 순수혈통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들이 경외 받고 두려움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고마워.”
몸을 숙여 자수틀과 자수를 집어 노엘에게 내민 카인에게서 바로 낚아채서 숨기고는 억지로 노엘은 웃어보였다. 카인은 재빨리 낚아챈 덕분에 그게 자수인 건 알았지만 모양까지는 보지 못했다.
노엘은 카인을 문뜩 보다가 뭔가 카인이 이상함을 느꼈다. 옷차림이 조금 달랐다. 좀 소박하다고 생각되는 차림이었다. 일반 서민 같은 옷차림이었다. 카인하고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 이건.”
노엘의 시선을 깨닫고 카인은 잠깐 웃어보였다. 그리고 노엘에게 옷을 내밀었다.
“이건?”
“서민의 옷이야. 하인을 시켜서 구했어. 그동안 답답했을 거야.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 ‘크로스’라는 도시의 모습을.”
이곳으로 올 때 마차 밖으로 살짝 보였던 ‘크로스’의 풍경. 성에 들어와서 그 풍경을 동경하고 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항상 갇혀있는 것이 답답하고 어딘가 불안했다.
그리고 깨달은 사실. 카인은 내겐 너무나도 먼 존재라는 것.
“알았어. 갈아입을 테니까―. 자, 자. 나가서 기다려.”
애써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을 지우고서 웃으면서 노엘은 카인의 등을 떠밀었다. 노엘의 그런 모습이 재밌는지 카인은 순순히 떠밀려가서 문을 닫는 노엘을 지켜보았다.
문이 닫히고 노엘의 모습이 사라지자 카인은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억지로 기억을 지워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가 없었다. 그게 그녀에게 안 좋은 바라고 멋대로 판단하고 기만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더 이상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고통을 안겨주기 싫었다.
“미안, 노엘.”
카인은 들리지 않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노엘에게의 진심어린 사죄.
“하지만, 또다시 같은 일이 생긴다면……. 난 똑같이 할 거야.”
기만하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속이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진심으로 웃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고―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라면 몇 명이든 손을 피로 물들일 수 있다.
“카인.”
들려오는 다정한 미소와 목소리. 노엘을 바라보며 거짓된 웃음을 억지로 지으면서 카인은 노엘에게 다가갔다.
‘다른 이에게는 잔혹하다고 해도 상관없어. 난 단지 이 미소를 지킬 뿐이니까.’
그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혼자 죄를 저지르고, 그 죄를 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안녕하세요? 은빛카린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또 금요일날 성실히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써둔 분량이 좀 되서 말이지요. 다음주까지는 성실히 올릴께요.
여러분은 아픈 진실을 잊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알고 극복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
각하시나요?
카인은 전자의 경우이기를 바랍니다. 그렇기에 기억을 지우는 길을 택했습니다. 모든 것을 잊기를.
여러분이 카인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하실 건가요?
ps. 열심히 소설 폐인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타, 지적사항, 감상평 환영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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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레코]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1.19 지금 그 부분에서 고생 중입니다...으윽. 너무 발랄하지도 않게, 너무 어둡지도 않게 조절하는 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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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노마라드]진일진문자 작성시간 09.01.20 오오옷! '크로스' 묘사가 기대되갑니다아~ 홧팅요오 'ㅅ ' PS : 소설폐인화 대축하요오~!!!(퍽!!) 큼;; 어쨋든 힘내세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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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레코]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1.20 소설 폐인화...와 동시에 소설 줄창 읽기도 발동을...[...] 열심히 쓸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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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부지기]네드발백작 작성시간 09.01.23 여기 카인도 기억에 관련되어 있어! 서랍에서 하다 만 자수를 '몰래' 꺼내들고. 몰래의 위치는 이쪽으로 와야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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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레코]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1.23 지적 감사드립니다'ㅅ'! 그나저나 뭔 기억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