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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야 』 님의 진달래꽃 전설 【 마야부인, 진달래꽃 피웠네 】

작성자슬픈영혼의 눈물|작성시간03.05.28|조회수481 목록 댓글 0
제목없음

마야부인,진달래꽃 피웠네

김태충 | 2003-05-23 오후 2:26:13 | 조회:24701
"마야아가씨"라고 불러야 옳으나,
각종 부인시리즈와 "운"을 맞추느라...죄송^^



****maya***
'마야'라는 이름의 여성 로커가 거리의 스피커를 달구네요.거리에서 뜨지 않고는 히트곡이 될 수없죠.
히트곡이 되려면 초등학생의 애창곡이 돼야 하며,대학생들의 핸드폰 벨소리로 넘버3엔 들어야 한답니다.
마야 아가씨(?)가 간드러지다가 씩씩하게 끝맺는 그 노래,'진달래꽃'.1집 4번 트랙에 걸려 있네요.힘있는 창법과 박진감넘치는 리듬,윤기나는 노랫말로 2003년 대한민국의 무더운 여름 스트리트 송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마치 5년 전 여름을 달군 클론의 "쿵따리샤바라"같은 열기가 감지되는군요.

진달래꽃!
이 노래의 작곡자의 이름은 'Unknown'으로 돼 있지요.일제시대의 명시인 김소월의 시에 리듬을 입힌 노래인데.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해요.

지난 주말.동네(일산)에서 점심 먹고 나오는 데 거리의 화장품 가게 스피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대요.어,이 노래?
-"어,이거 진달래꽃 아냐? 여보"
-"으응.학교 다닐 때 시위 집회장에서 나오던 노랜데"
-"어,시위노래라고? 아닐텐데...,이 노래 ...."

도대체 기억에 가물가물.멜로디와 가사는 익숙한데.기억 속에 이 노래는 이래요.
첫째 이 노래는 분명 시위 집회용 1980년대 운동가요가 아니다.(1980년대 초반까지 시위 현장에서 들어본 일이 없다)
둘째 이 노래는 구전가요이다.멜로디와 코드가 프로페셔널 하지 않다.
셋째 몇몇 대학가 그룹사운드들이 라이브 무대 같은 곳에서 불렀다.

그런데 왜 와이프는 이 노래가 집회 시위용이라고 기억했을까요?
어제(2003년 5월 21일)부터 여러 곳에서 탐문수사를 했어요.증거를 잡아 증인을 찾거든 꼭 인터뷰를 하고싶습니다.이 노래 작곡가를 말입니다.

대체로 접수된 진달래꽃에 관한 정보를 차례대로 늘어놓으면 다음과 같습니다.(참으로 오래된 추억을 건드렸으므로 이 노래는 수사를 당해야 쌉니다.)

①1985년 전후로 대학운동권의 집회용 공개 가요였다.
②1980년대 초반 동국대학 야구 응원단의 응원가였다.
③1970년대 후반 어느 고교 야구 응원단의 응원가였다.

①=집사람의 기억이 맞았어요.1983년 대학에 입학한 와이프 기억이 맞습니다.당시 대학가의 시위를 취재했던 모 선배의 기억에도 운동권 가요였대요.그런데 전 1983년 입대해서 1986년에 제대 한 바람에 그 노래를 현장에선 듣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②=동국대는 대학야구 강자였어요.김성한~이건열~이강철로 이어지는 라인은 강력했지요.1981~1982년 암울했던 5공 시절.동대문 야구장에 선 '진달래꽃'이 동국대 응원단의 응원가로 날렸어요.내로라 하는 '야구광'이던 김종건 스포츠서울 야구부장의 회상은 이렇습니다..
"야구장에서 연대 응원단이 라이너스의 '연'을 부르며 목소리가 쉬었듯,동대 응원단은 '진달래꽃'을 부르며 젊음을 불살랐었지.그래서 나는 그 노래를 동국대 응원가로 기억하거든.그 때 '진달래꽃'을 마이크에다 대고 부르며 응원을 리드했던 응원단 여성보컬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구만.."
라이너스는 1979년 MBC대학가요제 나와 '연'(동네 꼬마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위에 모여서~)을 부른 연세대 재학생 그룹이에요.1980년대 내내 연대 응원단의 단골 메뉴였지요.
③=프로야구 출범하기 전 1970년대 고교 야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어요.봉황기~황금사자기~대통령기 등 전국고교야구가 동대문에서 열릴 때 어느 고교의 응원단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는 증언이 있어요.그 고교가 어느 고교인지는 확인이 안됐는데,이 노래가 고교생들이 만들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왜냐구요?
함 생각해보세요.진달래꽃이 얼마나 자주 우리의 국어 시험에 등장한 현대시의 모델인지...
진달래꽃.비장감이니,한과 애상의 정조니,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라는 싯 귀절은 무수한 시험 문제의 하나였어요.시험의 스트레스를,야구팀을 가진 고교생들이 TV로 중계되는,어른들도 다 보는,운동장에서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풀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지요.
특히 이 노래의 원판(마야판엔 없음)은 중간 부분에 "진달래~진달래~진달래꽃 피었네"라는 반복 어구가 나오는데 이 대목에선 약간의 유치함과 함께 고교생 집단의 또래 공동체 의식을 얼핏 읽을 수 있었지요.
확신컨대 이 노래는 암울했던 1970년대말 당시 고교생 그룹사운드 가운데 어느 팀이 만들어 연주하고 부르다가 고교야구 현장에서 응원가로 인기를 끌었다고 봅니다.그것이 대학야구 응원가로,대학가 운동가요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지요.
대학생들이 만들었을 가능성? 입시 전쟁에서 이미 탈출한 대학생들이 굳이 김소월의 시를 응원가로 만들었을까 싶네요.
시위 집회 운동가요? 왜 굳이 소극적 비극적 애상 시인인 김소월을 운동가요로 만들었겠어요? 실제로 1980년대엔 김지하 김남주 백기완 문익환 등 저항시인의 시에 멜로디를 입히는 작업이 열기를 띠었고,멜로디 또한 저항적이었어요.'진달래꽃'처럼 21세기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 로커가 소화할 만한,초등학생들이 애창할 만한 어떤 정서와 '코드'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얘기지요.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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