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 곱게 핀 유월 높고 푸른데 마음이 무거운 건 유족들뿐이던가 현충원 입 다문 꽃들 눈물도 말랐어라 총소리 멈췄다고 긴장이 끝난 건가 전쟁 잊은 백성들 전우들만 서럽다 철책선 녹슨 핏빛들 눈 감는다 잊힐라 꽃 필 때도 아프고 꽃 질 때도 아프다 청춘은 눈을 감고 비석들 사열한다 충혼은 전설이 되고 현충화로 피었다 한국전쟁 컬러사진 권총을 든 미군 앞에서 손을 들고 항복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북한 소년병들의 사진. 1950년 9월 20일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에는 매복 중이던 미군에게 붙잡힌 북한 소년병들이 담겨 있다. 권총을 겨눈 미군 뒤로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던 탱크가 보인다. 1950년 8월 부산 방어선 전투에서 다친 군인을 들것에 실어 나르는 미군 병사들. 1950년 9월 미 해병대가 널브러져 있는 적군의 시체를 지나치는 모습도 보인다. 반자동 소총을 메고 가슴까지 흠뻑 젖은 미군이 논두렁을 달려가고 있다. 죽음이 일상인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1950년 11월 눈보라가 몰아치는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2주간의 혈투 끝에 중국군에게 패해 퇴각하던 미 해병대 제5연대와 제7연대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총을 들고 탱크에 올라 있는 사진 속 8명의 영국 군인은 중국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이날 전투에서 임진강을 건넌 600명의 영국군은 중국군 1만 명을 사살하고 59명의 사상자를 냈다. 인천상륙작전중인 모습. 한 소년이 추락한 북한 전투기의 잔해 위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1950년 여름, 인천상륙작전을 향해 가는 미 해군 상륙함. 파괴된 수원 화성 장안문. 탈환과 재탈환의 과정 속에 수원은 크나큰 피해를 입는다. 연합군의 주요 수송로가 수원을 통과했기 때문에 많은 군인이 이곳을 지날 때마다 기념촬영을 하곤 했다. 서울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폭격으로 파괴된 기차들. 철로 끝으로 서울역이 보인다. 국군 부대원들. 미 군사고문단의 감독하에 국군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훈련을 받고 있다. 그들은 여덟 내지 아홉 발 정도를 쏴본 뒤 부대로 배치되었다. 초창기 휴전 회담이 열렸던 개성의 모습. 영국군 왕실기갑연대 대원들이 전투에 임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51년 1월 중공군의 2차 공세를 앞둔 시기로 추정) 서울 북방 지역에서 미군 병사들이 북한군 포로들을 심문하고 있다. 북한군은 민간인 복장을 하고 피란민 인파에 잠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로들. 유엔 측이 1951년 초반에 세운 이 수용소는 총 28개 시설에 최대 17만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1951년 봄, 재탈환된 서울 시청 앞에 어린이들이 서 있다. 사진으로는 피해 상태가 경미한 듯 보이지만, 연희고지 등 북한군의 저항이 극렬했던 일부 지역은 유엔군의 집중포격으로 폐허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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