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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소외된 이야기들

작성자모모|작성시간09.04.03|조회수185 목록 댓글 0


『연애소설 읽는 노인』으로 더 잘 알려진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외』는 ‘아주 특별한 대화의 마당’에서 작가와 조우한 열린책들 편집장의 귀띔에 의하면 작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작품집이라고 한다. 혹자는 “출퇴근의 어수선한 공간이라는 환경을 고려하여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나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외』를 권한다.”고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다. 그가 ‘지하철의 명저’라고까지 추켜세운 『소외』는 세풀베다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실존 인물 서른다섯 명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세풀베다는 독일 베르겐 벨젠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안네 프랑크의 무덤을 찾아보지만 그녀의 무덤으로 보일만한 것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대신 수용소 한쪽 구석, 치욕적인 화장대가 세워져 있던 곳 아주 가까이, 까칠한 돌멩이 표면에 새겨진 글자, 누군가 칼끝이나 못으로 아주 처절하게 호소한 것, 그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를 그 흔적에서 세풀베다는 “그 어떤 글도 돌멩이에 적힌 그 글만큼 강렬하고 미스터리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돌멩이에 그 글자를 새긴 이의 생존여부조차 알 수 없지만, 여기서 세풀베다는 세상에서 잊혀진/소외된 고귀한 또 다른 존재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게 된다. 마치 김정한 『모래톱이야기』의 ‘나’가 오랫동안 교원 노릇을 해 오던 탓으로 우연히 알게 된 한 소년과, 그의 젊은 홀어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이 살아오던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 이들에 관한 그 기막힌 사연들조차, 마치 지나가는 남의 땅 이야기나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있는 데 대해서 까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었듯이. 이리하여 소외된 자들은 세풀베다의 붓끝에서 다시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불멸의 경지에 이른다.



칠레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1949~ )는 자유 투사이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영원한 방랑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대다수 중남미 작가들이 자국과 중남미에서 널리 알려진 후 미국과 유럽에서 인정받은 것과는 달리, 세계를 떠도는 방랑자답게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특이한 작가이기도 하다. 세풀베다는 실제의 삶에서는 ‘윤리’를, 작품에서는 ‘미학’을 강조한다. 그의 작품들은 인류학적 문화적 정치적 환경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작가가 현재의 현실 앞에서 어떤 윤리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의 소설들은 이국적이고 허구성이 강한 가르시아 마르케스 풍의 ‘마술적 사실주의’와 결별하고, 실제의 인물들과 무대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현실의 마술’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만든다. 이런 마술은 자연보호와 무책임한 자연말살, ‘야만적 문명’과 ‘문명화된 야만’의 대립을 통해 백인들의 ‘야만성’을 고발하기 위해 이용된다. 세풀베다의 윤리의식과 작품세계는 모두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서른다섯 편의 이야기에서 적어도 스무 편의 이야기에서 나는 감정흐름선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적어도 열세 편의 이야기에서는 코끝이 찡해졌으며, 아홉 편의 이야기에서는 목울음이 삼켜졌다. 세 편의 이야기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다 결국 조금은 소리 내어 울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이야기, 혹은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가 직접 만난 사람들이라는 것, 즉 실제 존재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데서 내 감정은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다.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흐르게 했던 세 편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과 더불어서 마침 작가 검색을 하면서 찾게 된 세풀베다와 송병선 교수의 대담 중에 인상적인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소외』에 대한 내 애증을 당분간 거두려한다. 그러나 때로는 삶이 팍팍해서, 때로는 누군가의 상처로 인해 설움이 목까지 차오른다면 나는 또 책장 앞에서 서성이다가 『소외』를 뽑아들 것이다. 그리고 세풀베다가 미처 다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 것이다. 


먼저,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라는 수식어가 붙은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에 나오는 통통하고 덩치가 큰 검은 고양이 소로바스가 『소외』네 번째 이야기 「사랑과 죽음」의 주인공이라는 것에서 머리 속이 하얗게 비어 버린다. 세풀베다의 집으로 배달된 초판본 소설이 다름 아닌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였는데, 그가 그 책을 보고 행복을 느낀 바로 그 순간에 고양이 소로바스는 수의사에게 검진을 받고 있었고, 결국 소로바스는 폐암 판정을 받게 된다.


- 나는 슬픔과 무기력에 젖어 소로바스를 쓰다듬었다. 소로바스는 내가 작업하던 수많은 밤들의, 수많은 페이지들의 증인이다. 소로바스는 소설을 끝낸 후 찾아오는 고독과 허망함을 나와 함께 나누었다. 나는 나의 불안을, 언젠가 쓸 시들을 소로바스에게 들려주었다. 소로바스. 내일, 우리는 사랑 때문에 크나큰 친구를 잃게 될 것이다. (28쪽)


세풀베다는 “왜 소로바스여야 하는 데요?”라는 아이들의 물음에 어찌 답할지 몰라 괴로워하고, 소로바스가 평소처럼 자신들을 굳게 믿으며 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있을 시간, 자신들을 하나로 묶은 사랑 때문에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 해준다. 소로바스를 영원히 잠들게 할 주사를 놓는 것으로, 소로바스는 바이에른의 밤나무 아래서 편히 쉬고 있다. ‘순례자이자 고양이들 중에서 가장 고귀한 고양이’로서!


여기서 또 우리는 민감한 사안 중의 하나인 ‘안락사’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풀베다가 이 단편의 제목을 「사랑과 죽음」으로 붙인 것과 ‘사랑 때문에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건대, 그는 안락사 찬성론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 안락사를 입에 올리고 있는 바로 이 순간도,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닥치지 않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지나친 기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아주 ‘이기적인’ 안락사 찬성론자라고 볼 수 있다. 나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 때문에’ 안락사를 적용시킬 자신은 도저히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을 내려야할 때가 닥치지 않으면 좋으련만, 바로 내 앞에 놓인 문제로 화할 때까지 고통스러우리만치 고민하더라도 내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지금의 나로서는 ‘내 죽음의 선택’이라는 단 하나만 빼놓고는 그 무엇도 자신할 수 없다.


두 번째 펼칠 이야기는 「엘베 강의 해적」이다. 이 이야기는 함부르크의 한 거리에 붙은 이름에서 시작된다. 세풀베다는 ‘북해 주변이나 베델, 블랙크니스의 따뜻한 카페에서 회자되는 수백 곡의 노래와 이야기들 속에 살아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되살려 낸다. 그 남자는 클라우스 슈토르테베커 해적, 바로 엘베 강의 해적이다. 그들은 한자 동맹의 반기를 들고 일어나 자유의 깃발을 달고 항해를 시작하며 ‘생명력의 형제’라 회자되었는데, 전리품들이 골고루 분배되고 그 절반은 엘베 강 주변이나 발트 해 연안에 사는 주민들에게 돌아가자 가난한 사람들은 슈토르테베커와 ‘생명력의 형제’들을 축복처럼 기다렸다. 당연히 한자 동맹에서는 해적에게 현상금을 걸었고, 결국 해적과 그의 부하들은 체포되었다.


부하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슈토르테베커에게 내려진 형벌의 일부였는데, 주홍색 수염을 기른 해적, 즉 슈토르테베커는 자신이 첫 처형자가 되겠다고 자처한다. 그리고 참형을 주도하고 있는 시장에게 한 가지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이 선 채로 참수형을 당하고 나서, 그 머리가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후,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부하들을 한 명씩 살려달라는 제안이었다. 참수형을 당한 엘베 강의 해적은 쓰러지기 전에 모두 열두 발짝을 떼었다. 그러나 함부르크의 한 거리에 붙어있던 이름은 해적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 참형을 주도했던 시장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거리를 6백 년이 지난 1999년 7월 첫 주, ‘백 번째’로 거리의 이름을 바꾸려고 시도한 젊은이 몇 명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거리의 이름을 바꾸려는 젊은이들의 시도는 백한 번째, 백두 번째, 백세 번째…… 거리의 이름이 <클라우스 슈토르테베커 거리>로 바뀔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세풀베다는 이 이야기를 자신의 손자들에게도 들려 줄 날이 올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삶이 짧고 허망한 건 확실하지만, 자존심과 용기가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 역시 확실하다. 생명력은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함정과 불행을 견딜 만하게 해준다.”라는 말로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단편은 「검은 머리 여인과 금발 여인」이다. 세풀베다는 ‘비야 그리말디’라는 피노체트 독재 때의 강제 수용소에서 만난 두 여인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두 여인은 첫 고문을 당한 후 벌거벗겨진 채 벌벌 떨며 두 눈을 가리고 있던 붕대를 살짝 들어올렸을 때 마주한 죽은 시간과 정지된 시간들에게, 세상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나는 말하지 않았어.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들은 나를 이기지 못했어.” 그들은 감방 안을 깜박거리며 내리쬐는 전등 아래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게 온기를 전해주며, 그 참혹한 시간들을 견뎌낸다.


25년이 지난 후 그들은 자신들이 했던 다른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검은 머리 여자가 금발 여자의 보랏빛으로 멍든 눈을 어루만지면서 “아이라인이 번졌어”라고 말했고, 금발 여자는 검은 머리 여자의 부은 입술을 어루만지며 “립글로스가 안 좋은가 봐”라고 말했다는 것을. 세풀베다는 두 여인이 베네치아를 거니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라며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영혼과 희망을 함께하는 동료’였기 때문이리라.


사실 이 두 여인의 이야기에서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한 청년은 알고 보니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졌고, 그는 민주화 투쟁의 불씨가 된 23살의 ‘영원한 청년 박종철’이 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우연히도 박종철의 49제에 참여하기도 했기에 인연이 더 남다르게 느껴진다. 시험이 끝나고 일찍 하교한 날 시위하는 군중들을 따라나섰던 용기는 여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박종철의 죽음 은폐에 온몸으로 저항하고자 거리로 나왔던 이한열은 전경이 쏜 최루탄 직격탄이 뒷머리에 꽂혀 거리에서 쓰려졌다. “뒷머리가 몹시 아프다.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한 그가 분노하던 세상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서른다섯 편의 이야기 속에는 많은 질곡의 삶이 숨어있다. 끝내 아쉬워서 그 중 하나만 더 소개하려 한다. 망명자의 신분으로 네루다의 시집 몇 권을 넣어 다니던 아들을 고문의 후유증으로 잃은, 칠레 남쪽의 작은 시골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던 갈베스 선생은 아들의 무덤 앞에 서서 세사르 바예호의 시를 읽는다. 그리고 큼지막한 손가락으로 하늘에다가 ‘동료들, 만세’라고 쓴다.


세풀베다는 갈베스 선생이 폐렴에 걸려 죽기 전, 그의 작은 아파트를 방문했는데, 그는 행복한 꿈에 부풀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나는 조그마한 학교에서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규칙 동사들을 가르치는 꿈을 꾸었네. 그러나 깨어나 보니 손가락에 분필이 잔뜩 묻어있었네.”라고 한다. 삶을 갈가리 찢어 놓은 범죄 25주년을 맞이해서 세풀베다는 “돈 카를로스 갈베스, 건배! 갈베스 선생님 건배!, 건배! 동료들, 만세!”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소외』를 읽으면서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같은 칠레 작가인 아리엘 도르프만이 빚어낸 또 하나의 옹골진 소설집 『우리 집에 불났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이 단편들은 도르프만이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말미암아 칠레에서 쫓겨나 망명 중이던 시기에 씌어졌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기나긴 군부독재 시절을 거친 칠레의 생활상들이 작품 곳곳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서 읽는 내내 가슴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나는 오래전, 아리엘 도르프만 소설집을 제자리에 꽂으며 이렇게 썼다. “조국에서 내쫓긴 예언자와도 같은 것이 시인이든, 소설가이든, 극작가이든 그들이 외부의 압력에도 부러지지 않고, 때론 휘어지기도 하면서, 그 휘어짐을 굴욕이라 비하하는 무리들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고, 가만히 쏟아낸 작품들이 새로운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불멸의 진리이다.”




송병선 = 당신은 문학이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영역이라고 항상 주장한다. 문학이 민주주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가?


세풀베다 = 나는 문학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문학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든 유희와 여러 생각, 그리고 여러 가치가 허용된다. 그러나 20세기에 태어난 우리는 항상 승리자가 이야기하는 단일적인 역사와 진리만을 배우기 때문에, 우리 민중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알지도 못하고 역사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공식 역사와는 다른 이야기를 써야 하고, 그것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나는 지금의 상태에 만족한다고 말하고 싶고, 그래서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고, 그렇기에 작가의 윤리적 입장이 중요한 것이다.


송병선 = 당신의 윤리는 어떤 것이고, 작품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세풀베다 = 현실 속에서의 윤리는 작가의 사상이다. 윤리적 입장에서 삶을 수용하지만, 작품은 미학을 지녀야 한다. 이것들은 문학에 윤리적 입장을 투영함으로써 하나가 된다. 나는 바로 내 작품에서 이런 것을 시도한다. 나는 내 작품을 선전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면 사회적 리얼리즘처럼 판에 박힌 작품이 된다. 나는 윤리의 미학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바로 저항의 행위이다. 나는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저항하는 행위 속에 바로 작가의 윤리가 있다.


송병선 = 당신의 작품에는 주변인들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들 역시 저항의 미학에서 비롯된 것인가.


세풀베다 = 잊혀진 사람들, 그 누구도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을 사람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주변인들로 가득하다. 한국에 와서 우연히 젊은 미군들이 드나드는 술집에 간 적이 있다. 그들은 미국인들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이었다. 그 군인들은 한국을 야만적인 국가라고 여기고 있으면서, 이라크로 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에 관한 책을 한 권만 읽었더라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렸을 텐데, 그들은 자기들이 어느 땅을 밟고 있는지, 자기 주변에 누가 있고, 자기가 어느 곳에 있는지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인물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어제 오후 호텔에서 「서울 비망록」이라는 글을 썼다. 이걸 내 작품으로 구상해보고 싶다.


송병선 = 당신은 전 세계에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독자들이 당신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세풀베다 = 보편성은 판매 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외국의 독자들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작품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 비로소 보편성을 띠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쓸데없이 분량을 늘리려고 하지 않으며, 그것이 작가의 기본 윤리라고 여긴다. 그래서 내 문체는 직접적이며 정확한 헤밍웨이 스타일이다. “100달러짜리의 미사여구로 소설을 쓰는 것보다 50센트짜리의 단어로 훌륭한 소설을 쓰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헤밍웨이의 말은 나의 신조이기도 하다.


송병선 = 당신은 소설가라는 말 대신 연대기 작가 혹은 이야기꾼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그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말해 달라.


세풀베다 = 초월성에 대한 허영은 버린 지 오래다. 나는 내가 살아야만 했던 모순적인 현실을 소설 속에서 기록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내년 4월에 『실패의 대가』라는 탐정소설과 10월에 『행복한 시절』을 출간할 예정이다. 『행복한 시절』은 6년간이나 써 왔던 작품으로 내가 속한 세대의 투쟁의 기록이다. 커다란 꿈을 가졌지만, 결국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세상은 바뀌었어도 우리를 바꾸지는 못했다.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한 세풀베다와 송병선 교수의 대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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