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꽃이라고 이른 들 허담일까 아담 손 아화 발을 짝지은 혼수일까 예수님 하 배고파서 숨다살은 솜사탕
무화과는 과일이 아니라 뒤집힌 꽃이다. 무화과 나무는 사과나 복숭아처럼 꽃이 피지 않는다. 무화과 꽃은 배 모양의 꼬투리 안에 피고, 그게 자라면 우리가 먹는 무화과가 된다. 꽃 하나마다 씨가 하나 있고 껍질이 단단한 과일 하나를 만드는데 그걸 수과(瘦果)라고 한다. 무화과를 먹을 때 바삭바삭한 느낌을 내는 것이 이 수과다. 무화과 하나는 여러 개의 수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화과를 먹을 때는 과일 여러 개를 한꺼번에 먹는 셈이다.
무화과 말벌 암컷이 알을 낳으러 숫무화과에 들어간다(참고로 우리는 숫무화과는 먹지 않는다). 숫무화과는 말벌 알을 낳기 좋게 생겼다. 말벌 암컷이 무화과의 작은 입구로 들어갈 때 날개와 더듬이가 부러지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고 나면 나갈 수가 없다. 새끼 말벌들이 생애 주기를 이어가야 한다. 말벌 수컷 새끼들은 날개가 없이 태어난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암컷들(말하자면 자매들)과 교미하고 무화과에 구멍을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암컷 새끼들이다. 몸에 꽃가루를 묻히고 나온다.
무화과 말벌이 실수로 숫무화과가 아니라 우리가 먹는 암무화과에 들어갈 경우, 그 안에는 생식을 할 자리가 없다. 그리고 날개와 더듬이가 부러졌기 때문에 나올 수도 없다. 그러면 말벌은 무화과 안에서 죽는다. 안타깝지만 말벌이 무화과 안에 들어가야 우리가 무화과를 먹을 수 있다.
무화과 속의 바삭바삭한 것이 죽은 말벌은 아니니 걱정 말라. 무화과는 피신이라는 효소를 사용해 말벌을 분해해 단백질로 만들지만, 외골격이 언제나 다 분해되는 것은 아니다. 무화과를 먹을 때 엄밀히 말하면 무화과 말벌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화과 말벌은 엄청나게 작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구할 수는 있다. 비건 중에서는 이 이유로 무화과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무화과는 인류가 재배한 최초의 과일 중 하나. 유럽의 지중해 지역과 중동에서 많이 먹는 과일이고 한국에서도 전남 지방으로 가면 생산철 (9월 전후) 에 흔히들 먹는 과일이다. 이쯤 해남 등지에 가면 길거리에 말 그대로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성경에 자주 출연해 유명하다. 구약에서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수치심을 느끼고 옷 대신 입은 것이 무화과의 잎. 이러한 이유로 선악과가 무화과라는 전승도 있다. 예수가 무화과나무를 말린 바 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예수의 일행은 그 무화과나무 곁을 지나다가 그 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선생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 너희가 일어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생각나거든 그를 용서하여라.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마르코 복음서 11장 12~14절, 20~25절 (공동번역성서)
[편집]
기독교쪽 해석으론, 무화과는 팔레스타인과 유대인들, 즉 이스라엘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내용은 예수의 성전 정화와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서의 11장을 보면, 예수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이야기의 전반부(12~14절)가 소개된 뒤,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가 성전을 정화하는 장면(15~18절)이 나오고, 이튿날 다시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다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19절~21절)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서술된 것이다.
여기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 성전, 즉 당시의 교조주의적이고 돈에 물든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을 비유하는 것이다. 열매를 맺어야 할 철에 싱그럽게만 보이던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예수가 저주하는 장면은, 당시 예수의 복음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의 성전 정화 때 시장통과 다름 없었던 예루살렘 성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유대교의 핵심 지도자인 대제사장과 그의 장인인 전 대제사장의 묵인하에 성전 제물용 가축이 성전 뜰에 버젓이 상품으로 널려 있었고 그걸 웃돈을 얹어 팔아 대제사장을 비롯한 성전 제직들이 뒷 이익을 챙겨 떵떵거리는 상황이었다.
현실로 따지면 거의 수 억의 돈으로 환산 될 액수라고 하는 성서 고고학자들의 연구도 있었다. 로마의 식민지 시대라는, 유대인 입장에선 팍팍한 현실에 길거리에 과부와 고아, 병자가 널려 있는 상황에서 민족 중의 장자로 임명받았던(겉보기엔 푸르고 멀쩡한) 유대민족(무화과나무)이 제대로 열매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3장에서도 예수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비유를 한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3년 동안 실과를 구해도 구할 수 없어 찍어버리라고 한다.
무화과나무는 유대인들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는 예수가 3년 동안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하러 왔으나 그를 배척하고 결국엔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을 저주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유대교 역시 무화과나무처럼 저주받아 말라버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후에 이스라엘은 좋지 않은 미래를 맞이하게 된다. 수십 년 뒤 A.D 70년에 이스라엘은 로마 티투스 장군의 정복으로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더 나아가 2차 세계대전에 유대인들은 나치에 의해 600만 대학살이라는 홀로코스트를 겪는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제자들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무화과에 저주를 내린 것이라는 것도 있다. 예수가 무화과가 마르는 기적을 보여준뒤에 "너희도 믿음이 강하면 산보고 바다에 던져지라고 해도 던져진다."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 그 근거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저 즈음은 본래 열매가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무화과는 심고 3년이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고, 1년에 2~5번 정도 열매를 맺는다. 철 이른 무화과를 비쿠라(בכורה)라고 부르며 보통 먹지 않고 버리고, 늦게 열린 무화과를 테에나(תאנה)라고 부르고 먹는다. 예루살렘 입성을 3월 말에서 4월 초로 본다면 비쿠라가 있을 시기이긴 하다. 그런데 성경 본문에는 저 시점이 무화과가 열리지 않을 시기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 '무화과가 열리지 않을 시기'라는 것은 테에나가 열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비쿠라를 무화과로 취급하지 않았고, "무화과의 전령"이라 불렀다고 한다. 익지 않아서 안 먹는 것이니 배가 불러서 그랬단 오해는 말자(...). 사실 먹긴 먹었다. 테에나만큼 달진 않았지만 어린이들의 좋은 간식이기도 했고 가난한 이들과 여행자를 위해 비쿠라는 남겨두는 것이 관례였다.
어쨌든 얼핏 보기엔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으나 사실 전체적으로 봐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성경구절들은 이상하거나 당황스러운 내용도 상당히 많다고 하며 기독교 관점에서 이상할 것이 없다 주장한다. 다른 견해로는 그럴듯하게 듣기 좋은 구절은 해석을 요하지 않는 이중잣대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만화 세인트 영멘에서는, 예수가 이 말을 한 이유는 진짜로 공복이라서 홧김에 한 거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를 보필하는 천사들도 이걸 따라한다. 가령 고추냉이를 잘못 먹고 예수가 뻗자 우리엘이 뛰쳐나와선 '저주받을지어다! 고추냉이는 앞으로 영원히 열매맺지 못하리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곧 예수가 고추냉이의 참맛을 알게 되자 '열매를 맺어도 좋다' 고 했단다.
동의보감에도 등장하는 과일로, 이미 한반도에서는 오랜 역사 동안 약재/과일로 소비가 많이 있었던 과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예전부터 부산, 경남의 동남해안 일대와 서남해안 일대(나주시 이남 지역)의 좁은 지역에서 많이들 자생하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고르곤졸라, 프로스키토, 양파 등과 같이 곁들여 피자로도 먹는데 부드러운 치즈 맛과 프로스키토의 짭짤하면서 담백한 고기, 거기에 달콤한 무화과가 겹쳐지면서 상당히 좋은 맛을 자랑한다. 보통 피자를 시켜서 자른 무화과를 얹어 먹어도 신세계다. 파이를 만들면 맛있다. 피칸파이나 애플 파이에서 재료만 무화과로 바꾸는 것. 파이 반죽에 무화과 잼을 바르고, 무화과를 썰어 덮은 뒤 오븐에 넣고 구우면 끝이라 만드는 것도 간단하다.
소주와 설탕을 넣고 술을 담가도 된다. 실제로 무화과 담금주도 있으며, 무화과 철에 베이커리엔 무화과파이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의외로 괴악해보이는 생김새와 달리 무화과의 맛은 꽤 괜찮으며 채소와 과일의 중간맛이 난다고[4] 하기도 한다. 무화과를 다 먹고 난 후 그 향을 입 속에서 굴려보면 코코넛 밀크와 유사하지만 코코넛 밀크 특유의 느끼한 느낌 없이 상큼한 향이 올라온다. 또한 과육은 신맛 없이 달고 진하며 멜론처럼 생햄과 같이 먹으면 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얼려서 샤베트로 먹어도 맛있다! 다만 나무에 매달려 속살을 드러낼 정도로 익어 벌어진 무화과는 이미 곤충에게 점령당해 있을 가능성이 99% 이상이다.[5] 품종 별로 색은 다르지만, 정말로 푹 익어 진보라색이 된 무화과는 안의 과육이 붉은빛을 띤 황금색이며 그야말로 잼같이 달다. 하지만 만약 덜익은 무화과를 맛 보게 된다면, 세상에서 그보다 맛 없는 과일도 없을 것이다. 아랫 문단에서 설명하듯 시중이나 거리 트럭에서 파는 무화과가 대개 맛이 없거나 덜한 이유가 덜익은 것이기 때문.
완전 농익은 무화과를 먹었을 시에는 문제가 없지만, 시중에 파는 무화과는 저장 문제로 인해 약간 덜 익은 채로 수확하는데, 이 경우 열매의 꼭지에서 흘러나온 끈끈한 흰 유액이 입술 등 피부에 묻으면 가렵고 부르트니 주의할 것. 비누로도 잘 씻기지 않는다. 특히 좀 많이 설익은 무화과의 경우 껍질 쪽에서도 유액이 나오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다만 사람 체질에 따라 달라서 어떤 사람은 조심해서 먹어도 입술이 부르트고 어떤 사람은 대충 먹어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유튜브에 "무화과 먹는 법"이라며 껍질 벗기는 동영상도 올라와 있을 정도로 껍질을 벗겨먹어야 하는 줄 아는 사람이 꽤 많지만 다 익은 무화과는 그냥 껍질 채 먹어도 된다. 껍질은 아주 얇은 복숭아 껍질과 비슷한 질감이다. 생각해 보면 건조 무화과는 껍질을 못 벗겨 먹지 않는가? 그리고 무화과는 농약을 치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농약을 치지 않고 재배하므로 껍질째 그냥 먹어도 괜찮다. 다만 모든 과일이 그렇듯 야외에서 재배하고 유통시키는 특성 상 먼지나 이물질 때문에 아예 안 씻고 먹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껍질까지 먹는 게 찜찜히면 키위마냥 칼로 반을 세로로 잘라서 티스푼으로 퍼 먹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