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 음력 7월 초하루 법문(2010.8.10)-생각이 생멸하는 그 곳이 빛의 정원(寂光土)이다
허공, 밝게 아는 허공’ 즉 공적영지(空寂靈知)입니다.
우르겐(Uddiyana, Urgyen)왕국엔 부유하고 강한 왕과 왕비 그리고 왕자와 현명한 신하가 살고 있었습니다. 왕국은 광대하고 권세는 엄청났으나 왕자는 어리석었습니다. 어느 날 왕자는 왕궁 근처에서 벌어지는 마을 축제에 갔다가 마술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마술사는 기이한 물건과 정신집중과 주문으로 열심히 장사를 하고 있었죠. 능수능란한 마술사의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마술에 왕자는 넋을 잃고 기억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잊어버린 왕자는 거지가 되어서 주위 환경과 사람들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죠. 정신 나간 왕자는 수행원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거지가 된 왕자는 온갖 고생을 하면서 수년을 방황하고 다녔죠. 그러는 사이에 왕위 계승자를 잃어버린 왕은 늙어갔고 왕국은 쇠퇴해져 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거지왕자가 우연하게도 옛날 현명한 신하의 집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현명한 신하는 왕자를 알아보고 그의 참 모습을 깨닫게 해주려고 무진 애를 썼지요. “당신은 왕자이십니다! 집으로 돌아오세요! 아버지가 당신을 기다리십니다!”
자신이 쓸모없는 거지라고 믿는 왕자는 신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는 거지왕자에게 사건의 발단은 마술 때문이며, 왕자가 어떻게 해서 방황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신하는 왕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했지요.
“당신이란 존재의 근본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당신의 참된 모습은 무엇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왕자는 이런 질문 앞에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한 생각, 간절한 한 생각이 한길로 이어져 오롯하다가 홀연 생각이 끊어지면 문득 탁 트인 지평이 열리는 법이니 그 자리에 자신의 정체가 당당하게 드러납니다.
거지라는 신분을 버리지 않고 그 즉시 왕자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본래로 왕자이다“ ”나는 이제까지 거지가 된 꿈을 꾸었고 이제는 꿈을 깬 왕자로다“. 노숙자의 고통은 사라지고 왕국과 신하들은 그의 통치 아래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거지가 된 왕자는 우리의 현재 모습을 상징합니다. 젊은 왕자는 환영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마술에 홀려서 의식의 참된 본성인 고향을 등졌던 것입니다. 냄새도 소리도 색깔도 없으며 형체도 없는 마음이 온갖 것을 나타내고 있으니 마음이야말로 마술사입니다. ‘생각에 휘둘리지 말고 일어나는 생각을 주시하라. 생각의 근원을 찾아보라. 그러면 의식의 흐름이 끊어진 곳에 마음의 근본 상태, 원초적인 지혜가 찬연히 빛나고 있다’라고 현명한 신하가 지시합니다. 현명한 신하는 우리 마음의 본성을 깨우쳐주는 영적인 스승이며 안내자입니다. 거지왕자의 우화는 지성의 빛을 밝혀 본각(本覺)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즉 깨달음의 길은 급진적이기도 한 동시에 점진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의식을 확장하여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차근차근 따져 봅시다.
첫째, 독서입니다. 독서는 좁은 자아에 갇힌 견해와 관점을 지성의 광장으로 끌고 나와 사물의 다양성과 복잡성, 광대함과 다양성과 접촉하게 해줍니다. 독서는 나의 지성에 수혈을 하는 것과 같아서 나를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해줄 것입니다. 불교는 지성적인 가르침이기에 건전한 지적 욕구가 권장되어야 합니다. 불자들은 독서를 해야 합니다. 불교서적과 교양서적을 읽어서 안목과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둘째, 토론입니다. 자아에 갇힌 견해는 고루하고 편협해질 수 있습니다. 대화와 토론은 다양한 견해와 관점을 소통시켜 보편적인 진실에 접근하게 해줍니다. 토론을 통하여 지혜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지혜를 공유하는 집단이 곧 화합승가입니다. 불교교리 강좌시간에 강사와 학생사이에 대화가 있는 교수가 바람직하며 불자들끼리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모임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대화와 토론은 민주시민이 되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불자는 먼저 의식 있는 민주시민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사회적인 열반(Social Nirvana)을 실현하려는 불자의 실천이 있게 됩니다.
셋째, 여행입니다. 여행은 세계와 사람들에 대해 열려진 관점을 갖게 해주어 이해와 사랑을 넓혀줍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보살의 서원은 더 깊어질 것이며 구도심은 더 간절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성지순례와 구도행각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지리적인 여행은 정신적인 여행으로 연결되고 영적인 각성으로 이어집니다.
넷째, 성찰과 반조입니다. ‘내 생각이 어디서 시작 되었나‘, ’지금 내 마음위에 흘러가는 이 생각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 생각이 일어난 그 곳을 되돌아 살펴보는 것이 반성적 사유이며 반조(Reflection)입니다. 생각이 일어난 곳을 찾아보면 바로 그 생각이 소멸합니다.
생각이 일어난 곳이 바로 생각이 소멸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주시하는 자 없는 주시, 바라보는 놈이 없는 바라보는 기능만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불생불멸의 빛나는 각성(Rigpa)입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담담히 지켜보는 것, 생각과 감정을 일어나는 대로 알아차리고 깨어있음을 유지하는 것이 이른바 위빠사나(Vipassana)수행, 마음챙김(Mindfulness), 알아차림(Awareness)수행입니다. 결국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반조의 수행이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고 내 생각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사슬에 묶인 코끼리(An elephant in chains)'라는 의미심장한 우화가 있습니다. 코끼리 네 다리 중 하나의 뒷다리에 사슬을 묶어 놓고 주인이 매일 ‘너는 사슬에 묶여 꼼짝 못한다’고 이야기 해줍니다. 그러면 코끼리는 자기가 힘을 조금만 주어도 사슬을 묶어놓은 말뚝을 뽑아버릴 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꼼짝없이 묶인 채로 지냅니다. 우리는 사슬에 묶인 코끼리와 같아서 우리가 가진 진정한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든지 내가 일으킨 생각이든지 무슨 생각이든지 그것을 붙잡고 ‘내 것’이라고 ‘나 자신’이라고 집착하면 나는 곧 사슬에 묶인 코끼리가 되어 코끼리가 가진 강력한 힘을 잃어버리고 강아지로 전락합니다. 생각에 집착하는 즉시 무한한 관점이 좁아져서 우물에 갇힌 개구리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티벳의 성자 밀라레파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지어낸 생각이 되돌아 나를 구속하지 않게 하소서”
"잡으려는 습관을 놓아라(Let go of holding)."
“어떤 것도 붙들지 않고(Do not hold onto anything)
생생하고 분명하게(Vividly and clearly).
활짝 깨어 있어라(Be open and awake)!"
무슨 생각이든, 무슨 감정이든지 붙잡지 않으면 그것은 흔적 없이 사라져 갑니다. 마음은 접착제처럼 끈적끈적 하지 않습니다. 어떤 생각이라도 달라붙지 못합니다. 달라붙은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는 분명하게 깨어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자연 상태로 둡시다. 간섭하거나 잔소리를 하지 말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두어 봅시다. 마음을 그냥 무한 공간 속에 던져 내버려 둡시다. ‘한 방울의 물을 마르게 하지 않으려면 바다에 던져라(How can one prevent a drop of water from ever drying up? Throw it in the sea.)‘는 티벳의 속담이 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마음의 바다에 던져버리고 곧 바로 바다가 됩시다. 바다인 마음에 푹 쉽시다. (잠시 명상음악을 들으면서 바다에 잠긴 삼매에 듭시다)
여름이 다 가고 있습니다. 벌써 입추를 지났어요. 이 여름에 성숙해져야 가을에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이틀만 더 남국의 햇살을 주시어 포도에 단 맛이 배이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한 릴케처럼 우리도 한 여름의 열기로 정신의 포도나무가 숙성되도록 합시다. 깨어난 불자가 사회에 영향력을 미쳐야 합니다. 깨어있는 불자여러분, 붓다에너지를 결집하고 연대하여 희망찬 한국의 미래를 선도합시다. 불자들이여, 생각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자신의 삶과 세계의 주인이 되어 평등과 자유가 충만한 진정한 공화국-불국정토를 건설합시다. 감사합니다.
<참고>
*홍세화(1947년 1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언론인, 평론가이다.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 망명생활 중 쓴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국내에 알려졌으며, 2002년 귀국하여 아웃사이더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2009년 현재,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진보신당의 당원이기도 하다. 2010년 민주노총과 한신대학교에서 기획한 노동자 대학에서 강의를 맡아서 하기도 하였다
저서
• 《생각의 좌표》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빨간 신호등》
공저
•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작은책 스타가 바라본 세상)》
• 《21세기 첫 십년의 한국(우리시대 희망을 찾는 7인의 발언록)》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간에 따르기만 할 뿐이다. 민주주의는 한국인에게 적절한 시스템이 아니다. ‘Koreans are like field mice, they just follow whoever becomes their leader. Democracy is not an adequate system for Koreans. 광주 민주화항쟁을 진압했던 주한 미군사령관 존 위컴이 1980년에 한 말입니다.
*아더 케슬러Arthur Koestler (1905-1983)
헝가리에서 태어난 영국의 소설가, 저널리스트 및 평론가, 공산당과 결별하고 이념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건을 반영하는 베스트셀러 소설 <어둠의 정오 (1940)>로 유명해졌다. 20세기 초 냉전시대에 소련을 지지했던 사르트르와 브레히트와는 다르게 소련 공산당의 전체주의적 정책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그는 유럽의 양심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었다.
주요저서:
THE GLADIATORS, 1939 검투사
DARKNESS AT NOON, 1940 정오의 어둠
THE SCUM OF THE EARTH, 1941 대지의 쓰레기
THE YOGI AND THE COMMISSAR 1945-요기와 인민 위원
THE GOD THAT FAILED, 1949 실패한 神
ARROW IN THE BLUE, 1952 푸른 화살촉
REFLECTIONS ON HANGING, 1956 교수형에 대한 반성
THE SLEEPWALKERS, 1959 몽유병자
THE LOTUS AND THE ROBOT, 1960 연꽃과 로봇
CONTROL OF THE MIND, 1961 마음의 제어
SUICIDE OF A NATION? 국가의 자살
THE GHOST IN THE MACHINE, 1967 기계 속의 유령
DRINKERS OF INFINITY, 1968 무한의 술꾼
BEYOND REDUCTIONISM, 1969 환원주의를 넘어서
THE CASE OF THE MIDWIFE TOAD, 1971 산파 두꺼비의 경우
THE ROOTS OF COINCIDENCE, 1972 -우연일치의 뿌리
THE THIRTEENTH TRIBE, 1976 열세 번째 지파支派
LIFE AFTER DEATH, 1976 사후의 생
JANUS - A SUMMING UP, 1978 야누스 -요약
*누(Wildebeest)
크기 약 1.5m~2.0m
체중 약 230.0kg~275.0kg
초식성동물
*Uddiyana: 우디야나 왕국, ‘우르겐’, ‘우젠’으로 발음되기도 한다,
오늘날 파키스탄 스와트(Swat Valley)에 7세기에서 8세기까지 존재했던 불교왕국, 특히 금강승 불교(바즈라야나,Vajrayana)가 성행하였으며, 다키니(Dakini空行母)들의 왕국이 여기에있다고 한다. 위대한 파드마삼바바Padmasamabhava 존자는 본래 우디야나 왕국의 왕인 인드라부티Indrabhuti의 아들이었다.
*캥거루(Kangaroo):
*명상음악: Liquid Mind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1900년경의 모습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작가이다.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고독한 소년 시절을 보낸 후 1886년부터 1891년까지 육군 유년 학교에서 군인 교육을 받았으나 중퇴하였다. 프라하·뮌헨·베를린 등의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일찍부터 꿈과 동경이 넘치는 섬세한 서정시를 썼다.
그의 생애는 대략 4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시집 《가신에게 바치는 제물들》, 《기수 크리스토프 릴케의 죽음과 사랑의 노래》 등을 발표한 시기이며,
제2기는 뮌헨에서 만난 러시아 여자 살로메에게 감화를 받아 러시아 여행을 떠난 후, 러시아의 자연과 소박한 슬라브 농민들 속에서 《나의 축제를 위하여》,《사랑하는 신 이야기》,《기도 시집》,《형상 시집》 등을 발표한 시기로 볼 수 있다. 1902년 이후 파리로 건너가 조각가 로댕의 비서가 되었는데, 그는 로댕의 이념인 모든 사물을 깊이 관찰하고 규명하는 능력을 길렀다.
제3기에 그는 조각품처럼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우주와 같은 시를 지으려고 애썼다. 1907년 《신시집》, 《로댕론》을 발표하고 이어 1909년 파리 시대의 불안과 고독, 인간의 발전을 아름답게 서술한 《말테의 수기》를 발표하였다.
제4기는1913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였다. 그 때까지 작품 활동을 중지하고 있던 릴케는 10년간의 침묵 끝에 1923년 스위스의 고성에서 최후를 장식하는《두이노의 비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발표하였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영혼의 부르짖음으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릴케는 수많은 사람들과 편지로 교류를 하였다. 당시 삶과 예술, 고독, 사랑 등의 문제로 고뇌하던 젊은 청년 프란츠 카푸스에게 보낸 열 통의 편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독일은 물론 미국에서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