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수면개문장(落花水面皆文章), 그리고 개구즉착(開口即錯)>
의식은 강물과 같다.
생각은 흐르고, 감정은 흘러가며, 기억과 상상도 끊임없이 흘러간다. 언어와 문자는 그 위를 떠가는 꽃잎과 같다.
꽃잎은 강물을 따라 흘러가며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니, 옛사람이 말한 “낙화수면개문장(落花水面皆文章)”이란 바로 이러한 광경일 것이다. 세상은 글이 되고, 모든 만남과 이별은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러나 꽃잎은 강물이 아니며, 강물 또한 꽃잎이 아니다.
우리는 대개 꽃잎을 보면서 강물을 안다고 생각한다. 언어를 통해 세계를 파악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의식의 흐름에 휩쓸려 있는 동안에는 그 흐름 자체를 볼 수 없다. 흐르는 물속의 물고기가 물을 알지 못하듯이, 생각 속에 갇힌 사람은 생각의 바깥을 알 수 없다.
더욱이 언어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붉을 홍(紅)자는 붉지 않다. 매실(梅實)이라는 글자는 시지 않다.
강(江)이라는 한 글자는 결코 흐르지 않는다.
이름은 사물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를 언어를 통해 이해한다고 할 때, 사실은 안개 너머로 산을 보는 것과 같다.
산은 있으나 분명하지 않고, 비단장막 너머로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 형상은 있으나 직접적이지 않다.
언어는 진상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가린다. 보여주면서 감춘다. 가까이 데려가면서도 거리를 남긴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개구즉착(開口即錯)”이라 하였다. 입을 여는 순간 이미 어긋난다는 말이다. 또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하여 언어가 미치는 길은 여기에서 끊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말로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만일 침묵만이 진리라면, 부처님께서는 사십구 년 동안 설법하지 않으셨어야 할 것이다. 조사들은 수많은 어록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침묵만으로는 사람들에게 길을 가리킬 수 없다.
말이 진상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진상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손가락은 달이 아니다. 그러나 손가락이 없으면 달의 방향을 가리키기 어렵다. 뗏목은 강이 아니다. 그러나 뗏목이 없으면 강을 건너기 어렵다. 언어는 진리가 아니지만, 진리로 향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 이전에 말에 대한 태도이다.
말을 절대화하면 교조가 되고, 말을 부정하면 침묵의 독단에 빠진다. 말을 집착하면 문자에 갇히고, 말을 버리겠다고 집착하면 무언(無言)이라는 또 다른 문자에 사로잡힌다.
그러므로 가장 적절한 길은, 말하면서 말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꽃잎이 강물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꽃잎이 흘러가는 모습을 통해 강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전은 깨달음이 아니지만, 깨달음을 향한 흔적이 될 수 있다. 시는 진상이 아니지만, 진상 가까이에 이르는 향기를 머금을 수 있다.
노자는 “도를 말할 수 있으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고 말하였고, 선사는 “말하기도 어렵고, 침묵하기도 어렵다”고 하였다. 말하면 어긋나고, 침묵하면 더욱 숨는다.
그래서 대선사들은 때로는 설법하였고, 때로는 침묵하였으며, 때로는 꽃을 들어 보였고, 때로는 주장자를 세웠다.
말과 침묵 어느 한쪽에 머물지 않았다.
결국 진상을 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상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보게 하는 것이다.
새벽의 종소리를 설명하는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청음(聽音)이 낫고, 매실의 신맛을 설명하는 백 권의 책보다 한 번의 맛봄이 낫다.
물의 흐름을 설명하는 수많은 개념보다 한 번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낫다.
말은 문이지만 집이 아니며, 다리이지만 목적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사용하되 말에 갇히지 말고, 문자를 읽되 문자에 매이지 말며, 생각을 일으키되 생각 속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의식의 강물 위로 꽃잎은 계속 흘러간다.
꽃잎을 따라가다 보면 강물을 잊어버리고, 강물만 찾으려 하면 꽃잎의 아름다움을 잃는다.
꽃은 꽃대로 흘러가게 하고,
물은 물대로 흐르게 하라.
그러면 어느 날 문득,
붉을 홍(紅)자는 붉지 않지만 온 세상이 붉게 타오르고,
매실(梅實)은 시지 않지만 혀끝에 봄의 신맛이 살아나며,
강(江)은 흐르지 않지만 만물이 쉼 없이 유전(流轉)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말을 떠나지 않고도 언어도단이며,
입을 열고 있으면서도 개구즉착이 아닌 자리,
꽃잎과 강물이 둘이 아닌 자리에 서게 된다.
그곳에서는,
말해도 허공에 새 자취를 남기지 않고,
침묵해도 만법이 스스로 설법한다.
落花流水皆文章
不立文字亦何妨
開口雖知千錯路
一聲鳥語滿空香
흐르는 물에 뜬 낙화여, 살아있는 문장이라,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하여 무슨 상관이 있으랴.
입을 열면 천 갈래로 어긋나지만
새울음 한 소리, 허공엔 향기로 가득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