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가족들 (열왕기상 21장 1-16절)

작성자강효주|작성시간26.06.22|조회수30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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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11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말씀 강설 스크립트

 

열왕기상 21장에서 나봇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스르엘이라는 동네에 사는 나봇에게는 포도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포도원은 아합이라는 사악한 왕이 사는 왕궁에서 가까웠습니다. 아합 왕은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합 왕이 나봇에게 말했어요. “네 포도원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나에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나봇의 포도원을 넘겨 주면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거나 돈을 주고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포도원은 나봇의 부모님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으로 받은 땅이었습니다. 그것을 팔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었기 때문에, 나봇은 팔 수 없다고 아합에게 대답했습니다. 나봇이 포도원을 넘기는 것을 거부하자 아합은 왕궁으로 돌아와 근심에 잠겼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여왕 이세벨은 자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맞습니까? 내가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습니다. 교활한 여왕 이세벨은 나봇을 불러내서 백성들의 주목을 받게 한 뒤에 불량한 사람 두 사람을 세워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으로 증언하게 했습니다. 두 증인이 있었기 때문에 나봇은 즉시 처형되었습니다. 결국 아합과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19절).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죄를 지으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아홉 번째 계명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뜻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것도 포함되지만 제9계명은 사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할 때, 히브리어로증거하다(ta‘ăneh)”라는 단어는쳐다보다, 생각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듣는다, 주다, 의사 소통하다”와 같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홉 번째 계명은 거짓 증거를 일부러 듣거나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거짓 증거를 만들어 내거나, 거짓 증거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그것을 생각하거나 퍼뜨리는 것 모두를 금지합니다. 거짓 증거를 머리로 생각하지도 말고 마음에 두지도 말고 입술로 전하지도 말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만약 우리 마음 속으로 어떤 사람의 잘못에 대한 과장된 생각이나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면 우리는 이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지 않아도 우리 머리 속으로 거짓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조차도 이미 “거짓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9계명은 단순히 거짓말만 안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의 가족들”을 모두 금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리문답을 함께 읽으면서 거짓말의 가족들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12문답의 질문을 제가 읽으면 답변을 함께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112문: 제9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뒤에서 헐뜯거나 중상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성급히 정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성급히 정죄하는 데에도 참여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하지 않기 위해 본질적으로 마귀의 일인 모든 거짓과 속이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법정에서나 기타 다른 경우에도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고백해야 하며,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고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9계명으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첫번째 문장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뒤에서 헐뜯거나 중상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성급히 정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성급히 정죄하는 데에도 참여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한 구절씩 무슨 의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거짓말의 가족들: 거짓 증언과 하얀 거짓말

 

먼저 교리문답에서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라고 했습니다. 법정에서 증인으로 선 사람이 거짓 증언을 하면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 읽었던 나봇의 처형 사건에서 거짓 증인들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나봇은 죽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스데반도 거짓 증인들 때문에 억울하게 처형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일어난 일이지만, 주 예수님도 거짓 증인들의 거짓 증언 때문에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열 여섯 번이나 “거짓 증언”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거짓 증언이 성경에서 결코 작은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업 상의 거짓말) 제9계명은 우리가 이득을 얻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하여 고의로 사실들을 왜곡하는 모든 종류의 거짓말과 속임수들을 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혹은 사업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들도 포함됩니다. 이전에 현수막 주문을 위해 몇 개의 관련 업체들에 연락을 했을 때 대부분의 업체가 그 현수막이 필요한 시간이 며칠 안 남았기 때문에 그 기한 안에 작업을 완료할 수 없어서 주문을 받을 수 없노라고 답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정직하고 현명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업체는 그 주문을 받을 수 있노라고 했습니다. 정해진 시일 안에 현수막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수막을 받아서 설치해야 하는 날에 전화를 하고 그 업체를 찾아 갔을 때 아직 작업을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라서 저의 전화를 받고 그제서야 작업을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바빠서 그랬나 보다” 생각하고 다음 번 주문 때는 더 길게 시간을 잡고 찾아 갔지만 약속한 기한은 자꾸 연기될 뿐이었습니다. 사업상의 이익을 위해 정직하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제9계명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이러 이러한 봉사와 섬김에 참여하시겠습니까?” 질문을 받았을 때, , 그러죠. 이름을 올려주세요라고 말은 했지만 그 사람이 모임에 나타나질 않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이런 저런 이유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할 의도가 없으면서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사업상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소위 말하는 “가라(false)”로 문서 처리를 하거나 법에 걸리지만 않을 정도로 눈가림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제9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일을 처리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얀 거짓말) 거짓 증언과 관련된 또 다른 사탄의 유혹은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변명으로 소위 말하는 “하얀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정도는 정말 작은 거짓말이라고 둘러대면서 그렇게 해도 되는 합당한 이유들을 우리 마음에 심어줍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성경 구절까지 언급하며 “하얀 거짓말”이 괜찮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성경 구절들 중 하나는 이집트의 산파들이 히브리 백성의 아들들을 죽이지 않고 이집트 왕에게는 산모가 너무 빨리 아기를 낳아서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출 1:15-20). 그들이 사용하는 또 다른 성경 구절은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 주고 여리고의 군병들에게는 그들이 성문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수 2:4-6). 그러나 이집트의 산파나 라합은 전쟁의 때나 학살의 현장에서 죄가 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는 것을 막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전쟁이나 학살의 때가 아닌데, 죄가 없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닌데 거짓말을 합리화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실이 아닌 변명을 늘어놓도록 유혹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직과 진실함이라는 덕목을 땅에 떨어지게 하기 위해 사탄이 아주 즐겨 사용하는 공격입니다.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거짓 변명을 하는 사람은 어느새 스스로 거짓을 사실이라고 믿고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분명히 거짓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그런 거짓 변명은 우리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만들어서 어느새 작은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상황을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거짓말의 가족들: 왜곡된 말과 과장

 

두번째로, 교리문답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라고 했습니다. 남의 말을 왜곡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하든지 우리 자신은 영웅이고, 다른 사람들은 악당인 것처럼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사건의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그 사건에 대해서 말하면서, 우리 자신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가혹한 말을 한 것은 쏙 빼놓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심한 말을 한 것만 부각시키곤 합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마치 명백한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는 습성이 바로 왜곡된 말이고, 거짓의 가족입니다.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사실을 적당히 조작하여 우리는 좋아 보이게 하고, 다른 사람은 나빠 보이게 합니다. 정치인들이 종종 그런 일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말을 조작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일”은 유명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고 사실 우리도 흔히 하고 있는 일입니다.

 

(과장) 모든 거짓의 아비인 사탄은 눈에 드러나는 거짓말뿐만 아니라 사실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습관을 만들게 해서 우리를 노예 삼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도록 유혹하는 사탄의 전략에 대해서 잘 알고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은 종종 우리에게 “과장”이라는 거짓 증언을 하게 만듭니다. 사실을 과장해서 표현함으로 자기 자신을 자랑하거나 매력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력서를 쓸 때, 혹은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혹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과대하게 포장해서 표현하는 것은 분명히 거짓 증언의 죄입니다. 또한 사탄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조금씩 과장해서 험담하기 시작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거짓 증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이 아닌 것을 덧붙여서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죄를 짓는 모습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니 왜곡된 말이나 과장은 험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짓말의 사촌들입니다.  

 

험담이나 중상

 

세번째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12문답에서 제9계명이 요구하는 것들 중 하나는 뒤에서 헐뜯거나 중상하지 않으며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에서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말씀은 “험담이나 중상하지 () 것을 말합니다. 험담과 중상은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사실을 불필요하게 이야기해서 널리 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거짓 비방과 중상을 심각한 죄로 여기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마 15:19-20).

 

레크레이션 게임 중에 “단어 릴레이”라는 게임에서 진행자가 “돼지”라는 단어를 맨 앞에 있는 사람에게 보여 주었는데 뒷 사람에게 그 단어를 전하고, 또 다른 사람이 뒷 사람에게 전하다 보면 제일 마지막에 있는 사람은 “다람쥐”와 같은 엉뚱한 단어를 말하게 됩니다. 이처럼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면 사실은 어그러뜨려 지기가 쉽습니다. 어떤 마을에 흉년이 들어서 사람들이 고기를 구경조차 못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장에 가서 실수로 “내가 오늘 물고기를 보았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다른 사람들을 거치면서 “그 사람이 시장에서 황소를 보았대”, “글쎄, 그 사람이 고래를 보았대”라고 어그러졌습니다. 결국 그 말은 “그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었대”라는 무서운 소문으로 변해서 관아에 끌려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확하지 않은 말을 사실인 것처럼 퍼뜨리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막대기와 돌로는 나를 상하게 있지만 말로는 나를 상하게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거짓말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줍니다. 특히 어떤 사람에 대해 고의로 거짓을 퍼뜨리는 것은 중상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도를 오해해 놓고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중상입니다. “그 사람이 보낸 카톡을 보니 이러저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이나 “그가 화가 났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나를 바라보는 표정을 보면 분명히 화가 났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중상입니다.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참된 증언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모르는 사실은 절대 말하지 않아. 누구와 누가 서로 좋아한다는 말이나 누가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켜서 교무실로 끌려갔다는 말은 모두 사실이니까 결코 험담이 아니야.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라구. 이런 사람은 스스로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과연 필요할까?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사실을 전하면 당사자인 사람이 과연 행복해할까?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만일 그 사람이 학교에서 1등으로 졸업했거나 상을 탔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면 얼마든지 알려도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나쁜 소식일 때는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알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보통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너한테만 말해주는 건데”라고 하면서 나쁜 비밀을 공유합니다. 세상은 친구를 가장 빨리 사귀는 방법은 공동의 적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친구가 되고 나면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단지 사실을 말할 뿐이에요”라고 말한다고 해도 과연 그런 말을 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인도에서 도나부르 공동체를 만들어 고아들을 돌보았던 에이미 카마이클 선교사는 함께 사역하는 사람들끼리 험담하는 일이 많아지자 그 공동체에서 하나의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당사자에게 직접 말할 아니라면 사람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우리도 당사자에게 직접 말할 게 아니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의 험담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명예를 도둑질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제9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직접 험담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을 험담하는 것을 듣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잠 18:8). 다른 사람의 결점이나 약점을 비밀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기름보다 더 미끄럽게 삼켜져서 우리 마음 깊숙이 심겨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친한 사람이 말하는 험담을 뿌리치는 것은 어렵습니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잠깐!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핀잔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모르겠어서 그래요”라고 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험담을 묵묵히 듣고 있는 것도 험담만큼 큰 잘못일 수 있습니다. 친한 친구나 배우자가 험담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잠깐만요, 우리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요”라고 용기 있게 말해야 합니다. 제9계명은 험담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잠자코 험담을 듣는 것도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섣부른 판단과 정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12문답은 제9계명의 의미를 말하면서 “다른 사람이 성급히 정죄하는 데에도 참여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정보를 면밀하게 살피지 않고 친한 사람이 말한 것만 근거해서 판단하고 섣불리 결론을 내린다면 거짓 증언을 하는 것과 같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산상 수훈에서 주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1). 주 예수님의 말씀은 생각을 완전히 중단하고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아무런 평가도 내리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판단의 기준을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말을 왜곡하거나 우리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잠깐만요, 제가 사람을 아는데요, 당신이 사실을 바르게 알고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군요”라고 말해 주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이웃이 나의 명예를 지켜 주기를 원한다면 나도 똑같이 이웃의 명예를 지켜 주어야 마땅합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잠 22:1). 집이나 자동차나 동보다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명예를 쌓는 데는 일평생이 걸리지만 그것을 잃는 데는 반나절이면 족합니다. 인터넷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사람 몇 명과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들 몇 십 명만 있으면 한 사람의 명예를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악한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항상 진실을 말함으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지켜주며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삼상 15:29) 하나님께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이유 중 하나는 그분이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은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라고 했습니다 (롬 3:4).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 예수님 자체가 진실이십니다.

 

반면에 마귀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마귀는 거짓의 아버지입니다. 진실을 왜곡하거나 속이는 것이 마귀가 주로 하는 일입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이 참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더나?라고 말하며 속이는 일을 했습니다 (창 3:1). 거짓은 마귀의 일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12문답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하지 않기 위해 본질적으로 마귀의 일인 모든 거짓과 속이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노골적인 거짓말은 물론이고 절반만 진실인 말이나 모호한 말로 교묘히 속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언제나 거짓을 교묘하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거듭나지 않아서 언제나 거짓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거짓과 가식의 가면을 벗겨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슬람교도들은 거짓말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거짓을 큰 죄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타끼야(tagiya)”라는 교리가 있어서 이슬람교를 보호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거짓과 위장 전략은 죄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이슬람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거짓말은 어떤 것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각 지역마다 커다란 건물을 짓고 들어서는 “하나님의 교회”의 탈퇴자들과 전문가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포교 방식을 “조직적 기만”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정체를 숨기고 클린 월드(Clean World)와 같은 환경운동이나 위러브유(We Love U)와 같은 자원 봉사단체를 앞세워서 연락처를 확보하고 친분을 쌓은 뒤 포교합니다. 그러한 거짓을 지혜롭다고 여깁니다. 신천지도 거짓말 전략을 “모략 교리”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과 전도를 위해서라면 거짓말, 신분 위장, 상황 조작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거짓말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이슬람교나 하나님의 교회와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은 누구를 따르고 있는 걸까요? 거짓의 아비인 원수 마귀가 그들의 주인일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주위에 누군가가 교회를 출석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요즘 같은 세상에 약간의 거짓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혹은 거짓말이 때로는 융통성 있고 지혜로운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이 현재 누구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진실함을 원하시는 진실하신 하나님

 

우리는 말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말을 읽거나 듣거나 보면서 살아갑니다. 말을 만드신 분이 누구일까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의사를 소통하십니다. 요한 사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말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표현했습니다.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말과 참된 말이 아주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려면 참된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은 오직 진실만을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자기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모습을 정직하게 보아야 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절대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칭찬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즐거워하며 그것을 위해서 삽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외모와 본질이 정확히 같다고 계속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아, 주제넘음과 부정직함이여! 만일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여러분의 생각의 비열함과 여러분의 상상력의 누추함을 알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여러분의 과거 지나온 삶에 대한 모든 상세한 기록들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여러분의 가족들이 알고 있는 바대로 여러분을 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을 알고 있는대로 그들이 여러분을 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깊이에서 여러분이 보는 바대로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만일 여러분의 정체가 드러나면 어떻게 하렵니까? 만일 여러분의 모든 행동과 생각이 갑자기 그들 앞에 드러나게 되면 그들은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하루 동안 만이라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들어와서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이 여러분의 공적 생활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은밀한 삶을 알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으로 계속 만족해 하는 한, 여러분 자신을 대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직하게 여러분 자신을 대면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여러분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을 진실하게 알고 우리 자신에 대하여 정직하지 못한다면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구세주를 찾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거짓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누가 죽으셔야 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거짓의 아비에게 속해 있던 우리를 건져내시기 위해, 우리의 거짓에 대한 형벌을 구세주께서 대신 받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된 우리 자신을 온전히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구하며 완전하게 진실하신 예수님의 의로움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진실함은 하나님께 참으로 소중합니다. 진실함은 우리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도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거짓 증거를 하게 만드는 사탄의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 마음에 거짓을 제안할 때,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그것을 품으려고 할 것이고, 그 때 우리의 양심이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5:17) 양심에 찔림이 있을 때, 거짓 증거를 멈추고 우리의 혀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거짓 증거의 유혹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항상 신뢰할 수 있는 말을 해야 우리가 성경이 진리라고 전할 때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이신 주 예수님을 믿고, 진실하신 주 예수님을 닮아서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여, 거짓된 세상에서 진실 그 자체이신 주님의 참된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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