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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편 1-50절)

작성자강효주|작성시간26.06.08|조회수63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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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7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들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8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9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10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
11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12   그 앞에 광채로 말미암아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고 지존하신 이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을 내리시도다
14   그의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그들을 깨뜨리셨도다
15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16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2)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7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18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19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20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21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2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3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2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25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27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5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6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37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가리니 그들이 망하기 전에는 돌아서지 아니하리이다
38   내가 그들을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리이다
39   주께서 나를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이 내게 굴복하게 하셨나이다
40   또 주께서 내 원수들에게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끊어 버리게 하셨나이다
41   그들이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42   내가 그들을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서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43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여러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44   그들이 내 소문을 들은 즉시로 내게 청종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45   이방 자손들이 쇠잔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46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47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48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말씀 강설 스크립트

 

오늘 읽으신 시편 18편은 다윗의 감사의 찬송이 담긴 시편입니다. 사무엘하 22장에서 거의 동일한 내용의 찬송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편 18편 1절의 위에 적힌 설명을 보시면, 여호와의 다윗의 ,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을 “여호와의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18편의 마지막 절에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말씀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 시편은 다윗보다 더 위대하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원수들로부터 건져 주신 하나님에 대한 찬송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절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을 바탕으로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1절에서 다윗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시편 18편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아니라 “나”라는 1인칭 단수 대명사를 계속 사용합니다. 다윗 자신의 개인적인 고백임을 알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모든 일들을 생각할 때, 다윗의 마음에 솟아오르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한 고백입니다.데이빗 딕슨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믿음의 최고의 열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믿음의 가장 좋은 열매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마음과 그분을 향한 사랑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믿음의 최고의 열매이지만, 그렇다고 가장 믿음이 좋은 사람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 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8:42). 주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권리가 없습니다. 이 사실은 유대인들에게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 사도에게 세 번이나 물으신 질문은 이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21:15-17)”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신 질문은 너가 나를 믿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너가 정말 회개했느냐?”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나에게 순종하겠느냐?”도 아니었습니다.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신앙이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은 단순하지만 사실 가장 예리한 질문입니다. 이것은 가장 지식이 적은 사람도, 가장 가난한 사람도 이해할 만큼 쉽고 분명한 질문입니다. 동시에 가장 탁월한 사도가 가진 신앙의 실재를 가늠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1)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구원을 얻는 믿음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도 마귀의 믿음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마귀의 믿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믿음을 의미합니다. 사탄 마귀도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을 얻는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믿음이 있는 곳에는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사랑도 있는 법입니다.

 

(2)진실로 용서 받은 사람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서 주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던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은 주님께 발 씻을 물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집까지 주님을 찾아 온 여인은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손님에게 통상적으로 입맞추며 인사하는 것이 의례적인 일인데 시몬은 주님을 만났을 때 입도 맞추지도 않았지만 그 여인은 주님의 발에 입을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시몬은 손님으로 오신 주님의 머리에 감람유를 부어 드려야 마땅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가장 값비싼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주님은 그 일을 경험하시고 나서 사함이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7:47). 정말로 용서 받은 사람이 주님을 정말 사랑합니다. J. C. 라일이 말했듯이,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3)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일과 섬김의 원천입니다. 의무감 때문에, 또는 옳고 바른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습니다. 손을 움직여서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마음이 움직여야 합니다. 잠시 얻은 감동으로 일시적이고 즉흥적으로 일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없이는 선한 일을 끝까지 잘 해 낼 수도 없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도 자기의 의무를 적절히 잘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환자에게 때맞춰 약을 줄 수 있고, 주사를 주고 열을 체크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음식도 먹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의 병상을 지키는 아내와 간호사는 아주 다릅니다. 죽어가는 자녀를 돌보는 엄마와 간호사는 아주 다릅니다. 간호사는 급여를 받기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엄마나 아내는 사랑하기 때문에 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4)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다윗의 고백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점검하게 만듭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이라는 찬송가를 작사한 윌리엄 카우퍼는 그가 지은 다른 찬송시에서 “주님을 향한 저의 사랑은 너무나 약하고 사그라들곤 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카우퍼의 고백이 진실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약하고 흔들릴 때도 있지만,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서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홀로 기도하고 신음하며 “그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며 같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을 우리 자녀들이 볼 때 우리 자녀들은 나는 아직 믿음이 없지만 우리 엄마, 우리 아빠는 정말 크리스천이야하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가식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느니 차라리 아예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른 해결책이 아닙니다. 율법사 한 명이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답하셨습니다 (마 22:37).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할 이유를 분명히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사랑하신다면 어떤 이유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시나요?

 

(1)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이루신 모든 때문에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피흘림을 통해 그를 모든 죄책과 죄의 권세와 그 결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그를 부르십니다. 성령님은 그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회개와 믿음과 희망과 거룩에 이르게 하십니다. 또한 세상과 육체와 마귀의 속박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또한 지옥의 낭떠러지에서 데려다가 좁은 길을 가게 하시고, 천국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흑암 대신에 빛을, 죽음 대신에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2)참된 그리스도인은 그저 먼 옛날에 있었던 일을 추억하며 그분이 그랬지, 그래서 내가 고마워하고 그분을 사랑해야 마땅하지라고 어렴풋이 회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시는 때문에 그분을 사랑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날마다 자신의 무수한 허물과 죄악을 깨끗하게 하시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위해 간구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주님은 날마다 영혼의 필요를 채우시고 끊임없이 자비와 은혜를 더하십니다. 주님은 날마다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연약하고 무지할 때마다 오래 참으시며, 넘어지고 자빠질 때마다 일으키십니다. 주님은 무수한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며, 그 영혼을 위해 천국에 영원한 거처를 마련하십니다. 거르니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시편 18편 2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 나의 하나님, 나의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 나의 산성”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2절에 열거된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에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만이 다윗이 안전하게 거할 있는 유일한 피난처”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었는데 우리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유일한 피난처로 삼았대라고 말하며 그분을 “피난처”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의 경험 속에서 피난처가 되신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겨다니면서 동굴과 바위 사이에 많이 숨었던 다윗은 그 날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 ,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었지. 하나님이 나의 요새가 되어 주셨지.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셨지. 나의 방패가 되어 주셨고 산성이 되어 주셨지”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있는 분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4절과 5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경험했던 고난의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어맸다”는 생동감 있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죽음의 위협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몸이 꽁꽁 동여 매여 있어서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고통 가운데 무기력했는지를 말해줍니다. 4절에 “불의의 창수”라는 구절은 직역하면 “벨리알의 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해를 하고 있던 배가 엄청난 태풍 가운데 떠내려가서 거의 파선될 거 같은 위급하고도 감당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을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의 상황을 그저 시적으로 과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상 20장 3절에서 다윗이 가장 믿을 만한 친구인 요나단에게 “나와 죽음 사이는 걸음 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다윗은 정말 언제든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고통 가운데에서 다윗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6절에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소리를 들으심이여”라고 했습니다. 불교인들이 공양을 많이 하고 삼천배를 할지라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부처상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우상일 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에 마호메트가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며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한 것을 받아 적어 놓은 “꾸란”이 말하는 그들의 신 알라는 그들이 하루에 다섯번 절하며 기도해도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줄 수 없습니다. 최근에 대순진리교에 속한 어떤 아주머니께서 구곡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도활동을 하다가 저희 가정이 있는 사택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대순진리회는 강일순, 조철제, 박한경으로 이어지는 “삼위”의 교주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의 체계를 정립했다고 하는 조철제씨의 어머니 민씨 부인이 하늘로부터 밝은 불빛이 몸을 비추는 상서로운 태몽을 꾼 후 그를 잉태했다고 해서 민씨 부인의 고향인 여주에 대순진리회의 본부를 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 찾아오신 아주머니께서 제 아내에게 “여주를 거꾸로 말해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여주를 거꾸로 하면 “주여”이기 때문에 조철제씨가 재림주라는 주장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되지만, 대순진리회는 얼마 전에 경기도에 있는 어느 종합 대학교를 돈으로 거의 사들여서 그 대학교에 있는 신학과를 없애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주들이 죽고 나서 분열되고 있는 대순진리회에 속한 사람들이 강일순씨나 조철제씨나 박한경씨에게 간구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가 도달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 3:9). 야고보서 5장 4절에서는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고통당하는 주님의 자녀들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감옥에 갇혀 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친구가 나타나서 나를 대신해서 모든 빚을 갚아 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대주고 자신을 동업자로 받아 준다면, 그 친구를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에 보면 고아원에서 18년 동안 살았던 제루샤를 대학에 입학 시켜 주고 등록금과 생활비와 용돈과 모든 필요한 옷과 물품들을 아무 조건 없이 풍성하게 제공해 주었던 키다리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그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는 제루샤의 마음은 얼굴도 알지 못하는 그분을 향한 존경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회중에 전쟁을 경험해 본 분이 많지 않지만, 만약 여러분이 전쟁 중에 군인으로 참전 했다가 포로가 되었는데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적진을 뚫고 여러분을 구출해 준 전우가 있다면 그에게 고마워하고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19절에서 다윗은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라는 표현은 마치 납치를 당하는 사람이 풀려난 것과 같은 인상을 줍니다. 납치를 당해서 조그만 방에 갇혀서 고통을 당합니다.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경찰이 와서 그를 그 좁은 방에서 꺼내줄 때 넓고 자유로운 공간으로 나오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의 권세 아래에서 사슬에 얽매여서 고통하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자유를 얻었을 때 동일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사랑할 이유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구원이 없고,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정죄 아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분명히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과 외모와 성품과 의견과 입장과 직업 등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 앞에서 아른거립니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자주 생각합니다. 연예하시는 분들이나 결혼하신 분들은 그런 경험을 해 본 적 있지 않으십니까?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누리는 관계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당에 올 때만 잠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셔서거의 날마다 그분을 생각합니다 (엡 3:17).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을 자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의 때와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그분의 백성이 있음을 기억할 뿐 아니라 자신이 바로 그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억지나 강요에 의해, 혹은 그럴 필요가 있을 때만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평생토록 날마다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듣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와 관계된 어떤 말이라도 그의 관심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말하고, 그의 방식과 말과 행동과 계획을 말하면 귀를 쫑긋 세웁니다. 다른 사람은 흘려 들을지 몰라도, 그의 가슴에는 그 이름 석자가 또박또박 들립니다. 참된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기 주님에 대해 듣는 것이 기쁩니다. 그리스도로 넘쳐 나는 설교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에 대한 것을 말하는 모임을 가장 즐거워합니다. 요즘에는 웨일즈 사람들이 많이들 영어도 할줄 알지만 과거에 웨일즈에는 영어를 전혀 모르고 웨일즈어만 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나이 많은 웨일즈 신자가 웨일즈어로 설교하는 교회가 그 지역에 없어서 영어를 한 마디도 모르면서 매 주일 1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서 영국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누군가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그 목사님이 설교 중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주 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름을 듣는 것이 그저 좋아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구주의 이름조차 사랑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써 놓은 글 읽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 그 당시 연인 사이는 아니었고 친구 사이였지만 제가 아내에게 편지를 여러 통 썼고 아내도 저에게 답장을 잘 써주었습니다. 아내의 편지를 받았을 때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편지들에 별 가치를 두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물과 같습니다. 편지를 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편지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군생활 중에 아내에게서 받은 그 편지를 보물처럼 지니고 다니면서 틈나는대로 꺼내 보았습니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관계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경 읽기를 즐겨합니다. 성경이 바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자기 구주에 대해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성경 읽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성경을 연구하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을 더 잘 알고 싶어서 관련된 자료나 유익한 경건 서적을 목 마른 사람처럼 찾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이 없이는 전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분인 그리스도에 대해 성경이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모든 마음을 다 털어 놓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저 주저하고 말을 못할 것도, 사랑하는 벗에게는 아주 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무리 자주 만나도, 만나서 이야기할 주제가 없어서 당혹스럽거나 하지 않습니다. 항상 말할 것이 많고, 물어볼 것도 많고, 설명할 것도 많고, 나눌 것도 많습니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관계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기 구주와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날마다 그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 말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그리고 낮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로 그분께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바램과 소원을 말씀드리고, 자신의 슬픔과 마음의 두려움도 말씀드립니다. 어려움 가운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고통 중에 위로를 구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구주와 끊임 없이 대화하지 않으면 중간에 낙심하고 지치고 말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다윗도 우리처럼 죄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다시 힘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자기 연민에 빠집니다. 우리를 불쾌하게 한 사람에게 날카로운 대답을 돌려주곤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 준 것에 대한 생각을 마음 속에서 잘 지우지 않습니다. 용서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과장하기도 합니다.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낼 때도 많습니다. 육신의 정욕에 빠지고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우리 자신을 내어 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받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용서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우리를 악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도 온유하게 대답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가 원래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훈련장으로 이끄시고 우리를 시험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교만함을 낮추십니다. 우리의 날카로운 성품을 부드럽게 깎으십니다. 우리의 게으름을 부지런함으로 바꾸십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주님은 우리의 힘이십니다.

 

주님은 부엌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주님은 서재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직장 사무실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사업장에서 회의를 할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자녀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교회당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운전할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질병으로 인해 아플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가난할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부유할 때도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은 우리의 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힘이시기에 우리는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주님을 사랑하시고 주님께 감사하시고 다윗처럼 주님을 찬양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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