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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생애 강설

계획을 세운 요셉 (창세기 41장 37-57절)

작성자강효주|작성시간26.06.10|조회수43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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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37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47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49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53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55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말씀 강설 스크립트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노예로 왔을 때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39:3).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창세기 39장 23절에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39:23).

 

하지만 하나님이 그냥 덮어 놓고 요셉과 함께 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셉에게 초점을 맞추어 볼 때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계셔야 할 만큼의 경건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 노릇을 할 때 요셉은 일개 노예였습니다. 가정 총무였지만 노예였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시키는 일을 하는 위치였습니다. 그 집이 잘 되고 못 되는 문제에 대해 한낱 노예가 일일이 간섭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디발이 보고 알았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보디발은 자기의 소유를 요셉에게 모두 맡겼습니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간수장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고, 그에게 모든 사무를 맡겼습니다. 요셉이 잘해서 복을 주셨다는 것이 아니라 요셉에게 자비를 베푸사 주어진 상황에서 주님 앞에 진실하게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그 자리로 부름을 받았는가?

요셉은 보디발의 눈에 들어서 가정 총무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간수장의 마음에 들어서 감옥에서의 모든 사무를 맡게 되기를 갈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이집트의 총리가 되기를 갈망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요셉에게는 목표도, 비전도, 야망도 없었습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실함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날 번영 신앙을 가르치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인이 큰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마치 요셉이 어릴 적부터 큰 꿈을 가졌기 때문에 결국에는 총리가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큰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은 요셉이 일부러 가진 야망이 아니라 성경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았던 시대에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계시였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 파라오 앞에서 그의 꿈을 해석할 때조차도 요셉은 아무런 야망도, 비전도 없었습니다. 요셉에게는 역대 이집트 총리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갈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노예로 살던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파라오 앞에서도 요셉은 그저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했을 뿐입니다. 요셉은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일을 맡았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형통하고 부유한 삶을 얻어 내려고 그렇게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위대함이 아니라 신실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사랑했기 때문에 보디발의 아내가 달콤하게 유혹을 했을 때에도 “내가 어찌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며 뿌리치고 도망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 39:9).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감옥에서 아무런 기약도 없이 갇혀 있을 때에도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쓰디 쓴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파라오에 의해 이집트의 총리로 임명이 되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요셉은 애초에 총리라는 직위를 자기 인생의 보람으로 생각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총리 대신으로서 큰 일을 잘 수행하는 것 자체를 자기 일생의 위대한 비전으로 여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에게 그 직위는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 자리에 앉았으니 한번 위대한 정치를 멋지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여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하시려고 자리를 주셨습니까? 제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떠한 임무를 이행하도록 하시려고 이런 지위를 허락하셨습니까?”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여왕이 된 것은 그의 생명을 걸고 유다 백성을 학살에서 건져낼 그 한때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에 4:14).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말한 것처럼, 요셉도 자기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가 세상에서 받아 누리는 위치를 최종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김홍전 목사님이 말했듯이, 참된 그리스도인은 사회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한 위치에 서서 책무를 수행해 나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가 최종으로 안도할 자리가 아니요, 최종의 보람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떠한 자리를 차지한 것 자체를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표로 하던 자리를 차지하면, 더 높은 자리를 목표에 둡니다. 그러나 세상과 구별되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차지하는 자리 자체를 보람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한때를 위하여 나를 이리로 인도하셨구나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요셉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자기가 처한 위치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의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위치를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도구로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주님께서 자리에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직장에서 어떤 사업이나 회사의 직위를 받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배우자나 부모의 자리를 받은 사람들도 해당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에게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부모인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이 부모입니다. 배우자가 있으신 분들은 나에게 배우자를 허락하셨을까? 하나님은 배우자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아직 결혼을 안 하셨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분들은 하나님이 인생에 어떠한 뜻을 가지고 계실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당장 앞에 어떤 직업을 갖기를 원하실까? 누구와 결혼하기를 원하실까?”를 고민하며 인도하심을 구할 뿐만 아니라 나는 무엇을 위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야 할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풍년 뒤에 다가올 흉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요셉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옥에서 24시간 상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머리카락도 수염도 깎지 못하고 감옥에서 족쇄를 매고 있는 죄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셉은 이집트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조언을 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34절에 요셉의 컨설팅의 내용이 나옵니다.바로께서는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일곱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이와 같이 곡물을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 41:34-36)”

 

주석가들이 말하듯이, 요셉은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 일하면서 이집트에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감옥에서 간수장의 사무를 맡아서 일을 처리하면서 이집트의 법에 따라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를 배웠습니다. 감옥에서 만난 두 명의 관원장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집트가 어떤 법을 가지고 어떻게 다스려지고 있는지를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이 훈련시켜 주신대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따라, 다가올 풍년에 곡식에 대한 세금을 어떻게 거두고, 풍년이 끝나고 흉년이 다가올 때 어떻게 곡식을 팔아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흉년이 다가올 것을 물질적으로 준비해야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에게 다가 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영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세는 시편 90편을 기록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 90:12)” 젊은 분들은 목사님은 90세를 수명으로 생각할 절반을 넘게 사셨지만 우린 아직 절반도 살지 않았어요. 아직 남은 날들이 많습니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지금 20대 초반이신 분들이 손광식 교우님처럼 오래 사신다고 가정하고 앞으로 70년이 남았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남은 시간이 이제 3천 6백 7십 9만 2천분 남았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천 2백 3십만분을 더 잠을 잘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3백만 분동안 식사를 하며 음식을 먹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천 3백만분 동안 일을 하실 것입니다. 상당히 긴 시간처럼 여겨지는데요, 그 시간들이 끝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일주일에 1시간 40분동안, 한달에 400분동안, 일년에 4,800분동안 여기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의 유익을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 영혼의 흉년이 얼마나 빠르게 다가올 지 계산하고 계십니까? 이 땅은 영적인 흉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교회는 많고 어느 교회를 가든지 성경이 강설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지난 달에 있었던 합신 교단 목회자 수양회 때 이단에 대해서 강의를 해 주신 목사님의 교회에 이단에 몸 담고 있다가 그곳의 부조리를 보고 이단을 떠나서 그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 하는 분이 다른 교우님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교회당에 오기 전에 동네에 있는 이단이 아닌 열두 개의 교회당의 예배에 출석해 보았는데, 성경의 본문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는 교회밖에 없어서 여기로 왔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영국에도, 45분동안 찬양만 하다가 10분만 설교를 하고, 설교를 하려고 강단에 선 사람이 성경을 펴지 않고 사람들에게 감동이 될만한 이야기들만 하다가 끝이 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을 배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은퇴하게 되면 주님의 나라를 위해 정말 헌신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평생을 살며 은퇴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베이비 루스”라는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선수는 말년에 죽을 때가지 휠체어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요양원에서 티타임에 지나가다가 베이비 루스를 만난 사람이라면, 그가 65년 전에  714개의 홈런을 쳐서 메이저 리그 역대 3위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활약을 했는지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그 당시의 경기 상황을 중계해 주었을 것입니다. 65년 전에 있었던 일을 말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7년의 끔찍한 흉년을 요셉이 어떻게 준비하라고 했는지 듣고 요셉을 향해 박수를 치고 싶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날들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앞으로 다가올 도전들을 어떻게 맞닥뜨려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오늘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을 앞으로도 가질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7년간의 풍년이 그치고 흉년이 찾아 왔을 때, 55절에 애굽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고 했습니다. 그 때 이집트의 왕이 백성들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55절 후반부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 41:55)” 요셉은 앞으로 우리 삶에 영적인 흉년을 맞닥뜨리게 될 때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야 하는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께로 가서 그분이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이것이 성경이 저와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바 입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6:35)” 주 예수님은 유월절의 마지막 날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7:37)” 그러니 주 예수님께로 가셔서 그분이 이르는 대로 하셔야 합니다.

 

만약 저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언젠가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마태복음 25장에서 바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다섯 명의 지혜로운 처녀들과 다섯 명의 어리석은 처녀들이 결혼식 날 등불을 켜고 신랑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올 때 등불을 켜고 준비가 된 사람들만 잔치에 참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정에 “신랑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모두들 정신을 차렸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기름이 떨어 졌으니 우리에게 기름을 주시오.” 지혜로운 처녀들은 우리 모두를 위한 기름은 부족하니 가서 기름을 사서 오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여기 저기서 수소문하며 기름을 찾고 있는 동안 신랑은 도착했고, 어리석은 이들이 잔치집에 들어가고자 할 때 문은 굳게 닫혀서 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너무나 싫어하는 이 시대에 죽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죽어가고 있는 교우님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문이 닫히고 나서 그들은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말했으나 그들이 들은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날과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 25:13)”

 

몇 천년 전에 이집트에서 있었던 심각한 흉년 앞에서 지혜롭게 행동한 요셉을 보면서 우리는 요셉이 가리키고 있는 분을 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너의 영혼의 흉년을 경험하는 때에 나에게 오너라. 너의 허무함과 공허함을 가지고 나에게 오너라. 나에게 오면 내가 너에게 쉼을 주리라.”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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