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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생애 강설

선물이 우상이 될 때 (창세기 41장 45-52절)

작성자강효주|작성시간26.06.22|조회수28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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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47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49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말씀 강설 스크립트

 

지난 주일에 이어서 창세기 42장의 본문을 다루려고 하다가 잠시 창세기 41장의 몇 구절을 살펴보고 넘어가려고 오늘 본문을 정했습니다. 요셉은 우상이 가득한 나라에서 총리가 되었지만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을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이집트의 왕은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삼고 이집트의 제사장 보디베라에게 명령해서 그의 딸과 요셉이 결혼하도록 했습니다.

 

보디베라 가정은 이집트의 태양신 “라(Ra)”를 숭배하는 가정이었습니다.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의 이름은 “이집트의 여신 네이트(Neith)에게 속한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요셉과 아스낫의 혼인은 이집트 왕의 명령이었습니다. 요셉이 선택한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에 요셉이 이집트의 제사장의 딸과 결혼한 것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후반기에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여 이방 신상을 섬기는 오류에 빠졌지만, 요셉은 이방 여인과 혼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우상이 되어 아내의 우상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셉은 이집트 여자와 결혼했지만 자녀들의 이름을 자신의 신앙의 고백으로 정했습니다. 첫째 아들 므낫세는 하나님이 내게 모든 고난과 아버지의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의미로 그 이름을 정했습니다. 둘째 아들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의미로 그렇게 정했습니다. 1세기에 이집트에서 살았던 필로(Philo)라는 유대인 철학자는 요셉의 아내 아스낫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회심한 것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판단해 보았을 때, 요셉의 아내 아스낫이 요셉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셉은 자신의 첫째 아들 므낫세와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사랑했지만, 이삭처럼 첫째 아들을 우상 삼거나 리브가처럼 둘째 아들을 우상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첫째 아들 므낫세가 아니라 둘째 아들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려고 할 때 그것을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겸손히 받아 들였습니다 (창 48:17-20). 요셉은 이집트에서 우상 숭배에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을 우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우상으로 삼게 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현대판 우상 숭배

 

2026년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이번 월드컵은 이전과 다르게 캐나다와 미국과 멕시코에 있는 열 여섯 개의 도시들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약 7백만명 이상의 관중들이 경기를 직접 관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물론 영상을 통해서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관람을 하게 될 것이고 15억 정도의 사람들이 결승을 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스포츠가 어떻게 이런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요? 스포츠는 사람들의 감정을 몇 시간 안에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도 있습니다. 2002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했을 때, 특히 한국팀이 4강에 진출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마다 거리와 음식점에 와서 응원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스포츠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스포츠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몸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통해 즐거워하도록 돕는 좋은 선물입니다. 4년마다 한번씩 있는 하계, 동계 올림픽도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4년 마다 한번씩 있는 월드컵은 수억 명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 세계적인 토너먼트 경기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고 야구를 더 좋아해서 월드컵 시즌에도 메이저 리그 경기에 더 관심이 있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가 우상이 되지 않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좋아하고 즐기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 우리의 우상이 되지 않고 그것을 바르게 즐길 수 있는 법을 아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떤 것이 우리의 우상이 되어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세 가지 측정 기준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그것이 우리의 감정을 통제하면 그것은 우상일 확률이 높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했던 순결한 요셉은 자신의 아내가 된 아스낫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집트 제사장의 딸이었던 아스낫이 어릴 때부터 섬겨 온 우상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사랑의 감정이 요셉의 믿음을 통제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좋은 선물이 우리의 감정을 통제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나쁜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경기의 결과가 우리의 감정을 주관하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면 그것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런던의 오크 힐 신학대학에서 행정 업무를 하고 있는 조니 레이드(Jonny Reid)는 자기가 방에서 축구 시합 중계를 보고 나서 나오면 자기 아내가 그 시합의 결과를 즉시 예측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기분이 좋아서 나오고, 지면 우울한 표정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어떤 경기의 결과로 인해 잠시 기뻐할 수도 있고 아쉬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진 것에 대한 실망감이 몇 시간, 며칠 동안 계속되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관련하여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다가오는 토요일에 있는 경기나 이벤트를 기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일에 있을 세례식을 기대하고 있는가?” 이것은 축구 경기만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뜻밖의 회심>의 저자인 로자리아 버터필드는 회심한 이후 남편 켄 버터필드와 네명의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기도하는 그 시간이 하루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하루 중 가장 기대가 되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한 주를 살면서 가장 기대가 되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이러한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이 시대의 풍조가 하나님의 것보다 세상의 것에 더 마음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더 쏠리는 쪽이 우리의 우상일 확률이 높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두번째로, 우리의 우선순위를 바꿔 놓으면 그것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흉년이 왔을 때 요셉은 이집트에 있는 사람들과 식량을 구하러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집트의 총리로서 역대 이집트 총리들이 세우지 못한 커다란 공헌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마음은 이집트에 있지 않았습니다. 17세에 이집트로 팔려 가서 30세에 총리가 된 요셉은 110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약 70-80년간 이집트라는 강대국의 총리였던 요셉은 죽기 전에 무슨 말을 남겼을까요? “나를 이집트에서 가장 높은 피라미드에 묻어다오”라고 했을까요? 혹은 “나를 미이라로 만들 , 가장 고급 천과 염료를 사용해서 시체가 썩지 않게 보관하도록 하거라. 혹은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아내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반씩 나누어 주도록 해라”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에 보면,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50장 24절에서도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고 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집트에 있지 않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오래 살았습니다. 이집트에서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가 있었습니다. 부유했을 것이고 이집트의 여러 문화적인 혜택들을 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나 할아버지 이삭으로부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들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동안 자손을 괴롭히리니…(16절에) 자손은 사대 만에 땅으로 돌아오리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요셉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요셉은 믿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화려한 문명의 혜택과 부유함 속에서도 요셉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이 많고 너무 행복해서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친구가 좋고, 가족이 좋고, 게임이 좋고, 이 세상의 즐거움에 심취하여 천국은 먼 나라 이야기같이 여겨지고, 천국에 가면 좋고 안 가면 어쩔 수 없는 그런 곳이 되면 여러분의 영혼은 위험한 상태에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의 계좌에 있는 돈을 계산하고, 그의 달력에 일정을 쓰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 보면 그 사람이 정말로 숭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함 다니엘즈라는 사람은 축구경기와 관련된 복음 전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전도지에 실화를 담았습니다. 미국 알라바마 대학의 축구팀을 응원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고 그들은 축구 경기 관람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축구 경기를 관람하려고 4억 5천만원짜리 티켓을 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딸의 결혼식이 축구 경기와 겹쳐서 결혼식에 참석하기를 포기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딸의 결혼식까지 포기할 정도로 스포츠의 광팬인 사람들은 드뭅니다. 그러나 은혜의 수단으로 주신 교회와 기도와 성경 읽기와 헌상 같은 것들보다 어떤 TV 프로그램이나 경기를 보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것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평일에나 주일에나 여러분의 우선 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면 여러분이 정말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전까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너무 바빠서 경건과 신앙과 관련된 것을 하지 못했을 때 여러분을 바쁘게 만든 그것들은 무엇과 관련이 있습니까? 삶의 우선 순위를 보면 여러분의 우상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우리의 말하는 방식을 바꿔 놓으면 그것은 우상일 확률이 높습니다.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간 사람들은 보통 누가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어떤 직위를 가졌으며 어떤 가정을 이루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예비군복을 입으면 평소에 하지 않던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축구 경기장에서 여러 관중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평소에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상대팀을 향해 야유를 날리고 상대팀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욕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나서 그 다음 날 교회에 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기 전이나 총리가 된 후나 동일하게 진실하고 겸손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디발의 노예로 지낼 때에도 요셉은 성실하고 겸손하게 일하고 말했기 때문에 그의 주인이 그를 보며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창 39:3). 심지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고 늘어질 때조차도 그 여인을 향해서 욕을 하거나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내가 어찌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외치며 여주인이 붙잡은 옷을 벗어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런 요셉은 감옥에서도 신실하게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이집트의 높은 정치인들이었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도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이 근심할 때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창 40:7). 간수장을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한결 같이 성실하게 겸손하게 행동했기에 간수장이 모든 사무를 요셉에게 맡겼을 것입니다.

 

 그런 요셉이 총리가 되고 나서 아래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행동했을까요? 어떤 정치인들은 선거 전과 선거 후가 매우 다르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선거 전에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선거유세를 하다가 당선이 되고 나서는 어떤 일에 고초를 호소하는 시민들에게 “입 다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경우에는 요셉의 높은 직위가 요셉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그 직위가 요셉의 우상이 아니었고, 총리가 된 후에도 권력이 그의 우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인터넷을 켜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누군가에게 악플을 달거나 비판과 쓰디 쓴 말을 쓰고 있다면, 만약 여러분이 운전대를 잡고 매너 없이 끼어 드는 사람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다면, 만약 여러분이 스포츠 경기를 보며 상대편 선수들을 향해 비난과 조롱의 말을 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일 없는 듯이 주일 날 하나님을 찬양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은 아무 일 없는 듯이 찬양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님이 아니시고 벙어리도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아버지를 찬송하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 3:8-10)”

 

참되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심지어 고난 중에서도 다른 것을 우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욥기 13장 15절에서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라고 욥은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 23:4)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보내신 독생자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는다]고 하셨습니다. 천국도 보이지 않고, 지옥도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믿는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우상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감정을 좌우하게 만드는 그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우선순위를 바꿔 놓는 그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태도와 입술의 말을 바꿔 놓는 그 것은 무엇입니까? 당장 눈에 보이는 도움이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 우리를 편안하고 안락하고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주신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충성되이 섬기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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