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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설

행함이 있는 믿음 (야고보서 2장 14-17절)

작성자강효주|작성시간26.06.18|조회수34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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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씀 강설 스크립트

 

야고보서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부터 11절에서 우리는 참된 믿음은 인생의 여러가지 시련들 가운데 기뻐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참된 믿음은 고난 가운데 인내를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부터 18절에서 참된 믿음은 하나님이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이라는 것을 믿고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처럼 참된 믿음은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초반부에서 살펴 보았듯이, 말씀을 듣기만 하지 않고 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혀를 통제하고 경제적인 형편과 상관없이 모든 신자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고보는 주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주님의 법을 따라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 2:17)” 믿는다고 말은 하는데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14절). 알렉 모티어는 오늘날 우리가 야고보서라고 부르는 야고보의 편지를 받았던 첫번째 독자들은 교회에서 그 편지가 설교의 형식으로 전달되었을 것이고, 만약 그랬다면 청중이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제 막 야고보의 말을 들은 독자들에게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충격파가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행함이 있는 믿음의 케이스: 라합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라합입니다. 25절에서 야고보는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 살고 있던 이방인이었고 창녀였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신앙적인 배경이 전혀 없는 무신론자로 문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창녀가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하신 일을 듣고 그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정말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저 복 받으려고 머리로만 믿으면서 예배만 드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라합의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라합은 여호수아가 여리고로 보낸 정탐꾼을 숨겨 주었고, 정탐꾼들을 체포하기 위해 왔던 군병들로부터 정탐꾼들을 지켜주었습니다 (1-7절). 라합 덕분에 정탐꾼들은 여리고 성의 왕이 보낸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라합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정탐꾼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라합과 라합의 가족들을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라합은 줄로 매달아 정탐꾼들을 창문 밑으로 몰래 내려주어 도망가게 했습니다.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여리고성을 침략하러 올 때,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라합과 라합의 가족들은 살아남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을 때, 라합은 정탐꾼들과 약속한 대로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 놓았고, 라합과 라합의 가족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정탐꾼들이 라합의 도움을 받고 여리고에서 무사히 빠져 나오면서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를 침략할 때 라합의 집을 구별하기 위해, 라합에게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 내려 놓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라합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냥 줄도 아니고 붉은 줄이어야 했습니다. 라합은 붉은 줄 대신 파란색이나 초록색이나 흰색을 매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정탐꾼들이 반드시 붉은 줄을 매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아주 작은 일에 순종하는 것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작은 순종이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리처드 로저스라는 믿음의 사람이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로저스, 자네를 좋아하네. 그런데 자네는 너무 철저해.” 그러자 리처드 로저스는 그분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철저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그분이 명령하신 것을 정확하게 지키는지 보시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돌을 향하여 말로 명령하여 물이 나오게 하라고 명령하셨는데 모세는 지팡이로 돌을 치며 물이 나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하신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출석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가볍게 여깁니다. 엄마가 자녀를 사랑해서 음식을 먹이는데 자녀가 그것을 먹지 않으려고 하며 젤리나 사탕만 달라고 할 때, 자녀를 사랑하는 엄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말대로 먹지 말고 젤리나 사탕만 먹어라고 하며 밥 대신 젤리와 사탕만 줄까요? 아닙니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가 원하지 않아도 밥을 먹으라고 하고 밥을 먹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자녀가 엄마의 사랑을 안다면 엄마가 밥을 줄 때 엄마를 믿고 엄마의 말씀을 따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밥 먹어라” 했는데 “맛없어! 안먹어!”라고 하는 아이와 “엄마 맛있어요! 최고에요!”라고 말하는 아이의 차이는 작아보입니다. 그러나 작은 행동의 차이는 마음의 큰 차이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에 매우 주의 깊게 깨어서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망설이지 말고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인 것은 정확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작은 순종이 모여 모자이크처럼 큰 그림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희 가정이 통영에서 살 때 배 타고 20분만 가면 한산도에 갈 수 있었습니다. 통영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관광지가 꽤 있었고, 저희 아들들도 이순신 장군을 참 좋아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병사들에게 “9시 방향으로 대포를 쏴라”고 명령했는데 병사들이 대충 자기 마음에 내키는대로 대포를 쏘았으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병사들이 장군님은 너무 엄격합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우리는 전쟁에서 살아남을 있습니다라고 말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군인이 대장에게 복종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군병인 우리는 대장이신 주님께 정확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라합은 아주 작은 문제에 순종했습니다. 라합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창문에 어떤 종류의 줄을 매달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줄을 매달지 않고 그냥 두면 어떨까? 나는 믿음이 있고 정탐꾼들을 숨겨주었는데 설마 하나 매달지 않았다고 죽게 되지는 않겠지!” 그러나 라합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이 명령했던 정확히 그 붉은 줄을 매달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으니까 믿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하는 의무를 생략하면 안되냐고 묻곤 합니다. 그 이유인 즉 그거 하지 않았다고 구원 받는 아니잖아요?” 입니다. 악한 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아빠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고 설마 아들의 자격을 없애버리겠어? 아빠가 시킨대로 하지 않아도 여전히 밥도 주고 옷도 사주시겠지.” 이런 식으로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배울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같은 공간에 둘이서만 있으면 위험하다고 했지만, 요즘 같은 때에 공간에 남녀가 단둘이 같이 있으면 어때?” 또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거짓 증언하지 말라를 계명을 배울 항상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말한 절반은 사실이니까 사실을 말한 아니겠어? 어디 이런 걸로 지옥가겠어?” 라합은 그런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정탐꾼들과 약속한 장소에 약속한 붉은 줄을 잘 매달아 놓았습니다. 정확한 순종을 하는 사람이 라합이었습니다. 그래서 라합과 라합의 가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그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참된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증거들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찾으려면 말씀을 통해서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성경을 어떻게 읽고 연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먼저 성경을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맥체인 성경 읽기표와 같은 성경 읽기 스케줄을 따라 하루에 일정한 분량을 매일 읽는 것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읽고, 개인적으로도 읽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맥체인 성경 읽기표를 따라 성경을 읽고 가족들과 함께 매일 잠언을 한 장씩 읽고 있습니다. 제가 매일 보내드리는 성경 읽기 가이드를 통해서 성경의 특정 본문이나 구절을 깊이 생각해 보고 우리 삶에 적용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교를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듣고, 인터넷을 통해서 목회자가 추천하는 좋은 설교를 다운로드 받아서 듣거나 주일에 들었던 설교 파일을 교회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아서 듣는 것도 좋습니다. 좋은 설교집을 추천받아서 읽어도 유익합니다. 성경을 읽는데 도움을 주는 경건서적이나 스터디 바이블도 도움이 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 갑니다. 시편 119편 1절에서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라고 했습니다. 3절에서는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말씀을 머리로 아는 것만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내 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쓰고 있는 선풍기가 작동이 잘 안되는데 유튜브 영상을 통해 혹은 서비스센터 직원의 지시를 받고 어떻게 수리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되면 직접 실행해 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고나서는 그 말씀에 순종 하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배웁니다. 그리고 성경을 배운 것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쌓아갑니다. 시편 119편 11절에 보시면,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나이다.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 하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며, 그 말씀을 외우면 말씀이 우리 마음에 쌓이게 됩니다. 그렇게 말씀이 우리 마음에 쌓이면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과 삶의 방향이 말씀에 의해 통제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과 삶의 방향이 말씀에 의해 통제되면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말씀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3절에서 시편의 저자는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설교자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기 안에만 말씀을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합니다.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서 말씀을 선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면 우리는 그것을 전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여리고 성에서 라합은 정탐꾼의 말을 듣고서 집안 은밀한 곳이 아니라 창문에 붉은 줄을 매었습니다. 물론 여리고 성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라합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은 아닙니다. 오직 붉은 줄을 매어 놓으라고 했던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아차렸습니다. 그 신호를 꼭 보아야 할 사람들이 훤히 볼 수 있도록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고 공개적으로 신호를 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주 예수님을 믿지만 누가 그 사실을 알까봐 두려워하거나 염려하고 있습니까? 자주 만나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굳이 자기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놀랍게도 주 예수님은 여러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주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맡아 우리를 대신해서 죽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오히려 담대하게 시인하십시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과 저를 몇 개월 동안 알고 지냈는데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여러분이 받을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다는 것을 정말 믿는다면, 사람들은 여러분과 잠시만 대화를 나눠도 여러분이 진실로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몇 분 동안만 같이 있어도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반면에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들을 즐거 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 119:14-16) 성경을 읽고 성경을 연구하며 성경 말씀을 따라 살고 성경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면 그것 자체가 우리의 즐거움이 됩니다.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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