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6)-자존심

작성자천국중개사|작성시간17.12.17|조회수230 목록 댓글 0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존심이 있습니다.

이 자존심이 상실되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 심한 자괴감과 우울감이 밀려올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분노과 적대감으로 표출하기도 하구여, 때로는 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지요.


그러나 믿는 자들이 갖는 자존심은 세상 사람들이 갖는 자존심과 달라야 합니다. 그럼에도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주는 자존심으로 '나'라는 존재를 가지려고 하니 말썽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하고는 생각과 마음이 달라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경에서 말하는 자존심과 세상에서 말하는 자존심은 거꾸로인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높여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를 높일 수 있을때 높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기회를 놓치거나 활용하지 못하면 '멍청이', '바보', '순둥이'라고 조롱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성경은 자기를 낮추라고 합니다. 자기를 낮추면 하나님께서 높이신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주변을 힘들게 해서라도 높아지려고 합니다. 주변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이간하거나 노략질하거나 때로는 술수를 써서 짓밟기도 하려고 하지요. 그래서 높아지면 그 높음을 자랑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높아지고 싶으면 오히려 섬기라고 합니다. 남이 나보다 더 낫다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섬겨나갈때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세상에서 볼때 매우 우습고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몇번 섬겨주고 말 들어주고 해보았더니 상대는 오히려 자기를 바보로 여기고 만만하게 본다고 역성을 내지요. 하나님이 높여주기는 커녕 오히려 자기는 더 초라해지고 비천해지고 볼품없는 존재로 여겨진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도 몇번은 하나님 말씀대로 낮아지고 섬겨보려고 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돌이켜 세상 방법으로 자기를 높이고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해서 정말로 자신이 높아지던가요?


그 높아지는 과정에서 얼마나들 상처를 주고 받으며 마음이 완악해지고 경직되고 굳어지는지요. 세상에서 사용하는 높아지는 방법은 오히려 자기 마음을 악하게 만들어 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복수하는 것을 정의로 여깁니다. 한대 맞으면 나도 한대 이상은 때려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요 잘하는 짓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맞으면 더 맞으라고 합니다. 오른편 뺨을 맞으면 왼편 뺨을 돌려대주어서 맞으라고 합니다.


이 말 역시 세상에서 들으면 웃음거리가 됩니다. 심지어 이런 구절을 악용하여 어떤 이들은 믿음의 아내나 자녀들의 뺨을 때리고는 다른 뺨도 대라고 하면서 후려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가족이 있었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한대 맞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로 재밌게 놀다 맞은건지 싸우다 맞은건지 아이는 말하면서도 대수롭지않게 그 날 일들을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아빠는 기분이 언짢은듯 아이에게 강하게 말합니다. 앞으로 친구가 한대 때리면 너도 주먹을 쥐고 한대 때려라. 절대 맞고 다니지 말아라. 맞고 다니는 것은 바부다. 반듯이 한대 이상 때려라. 라고 훈계를 하더군요.


그런데 성경은 자기를 때린 사람이라해도 용서하라고 합니다. 이건 정말 믿는 자라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용서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용서가 아니될때에는 같이 적대하거나 피해버리거나 비난하게 되지요. 하나님 말씀이라 해도 자기 힘으로 지키려고 하면 몇번 해보다가도 안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이치와 말씀이치는 거꾸로인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존심이라는 것도 세상이치와 말씀이치는 다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치 않은 불신자 시절에서는 세상에서 말하는 자존심을 갖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한대 맞으면 나도 한대 때려야 했구여. 높아지기 위해서라면,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주변을 힘들게 해서라도 어찌하든 높아지고 그 높임을 누리며 자랑하고 싶어했지요.


세상에서 만들어진 자존심을 내 안에 얼마나 많이 강하게 가지고 살아왔느냐에 따라 자존심이 상할때 그 사람의 표정과 언행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각양각색입니다. 그 표정과 언행은 악하기 마련이고 사단의 주관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게 됩니다.


그럼 믿는 자들은 자존심도 없이 이제는 허허 늘 웃으면서 그렇게 바부같이 행동해야 할까요? 그런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총명하고 지혜롭고 떳떳하고 덕이 많은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그저 생각없이 개념없이 허허 웃고 다니는 그런 습성을 가진 사람을 선하다고 인정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인 자존심이란 무엇일까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첫째, 마귀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영적 세계의 실체를 알아가게 됩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마귀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마귀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혼미케하여 죄를 짓게 하여도 그것이 죄인줄 알지 못했고 그 죄를 조장하는 주체가 마귀라는 악한 영이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세계로 들어오고 나서는 악한 영이 존재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악한 영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칫 죄를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에는 죄를 범하여도 자기 양심에 조금 가책을 느꼈을 뿐이고 이내 잊어버리고 맙니다. 남들도 다 하는 것인데 머 하면서 자기를 안위하지요.


그러나, 믿음안에서는 이제는 마음속에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니 그 탄식소리로 인하여 마음이 곤고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죄구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회개기도를 하게 되지요.


마귀에게 속아서 죄를 지어본 사람은 분명히 알 것입니다. 죄를 짓고 싶어서 죄를 지었으니 마음이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오히려 마음이 곤고하고 탄식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적 자존심이 훼손되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빛이신 예수님 안에서 날마다 빛의 자녀로 변화되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그럼에도 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때 어떤 이들은 내가 지금껏 믿노라 하면서도 이런 죄에 쉽게 넘어지는구나 생각이 들면서 지금껏 쌓아온 자신의 믿음과 기도생활을 허무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마귀는 믿는 자들이 죄를 지으면 생각에 정죄감을 불어넣어주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패배감과 낙심감으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기도생활 하지 못하게 만들고 교회와 예배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 갑니다.


마귀는 이렇게 믿는 자들의 영적 자존심을 건드리고 훼손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도 일어나는 이치와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존심이 상하면 지금껏 잘해 오다가도 이내 마음이 틀어져서 하던 일을 멈추어 버리거나 다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마귀에게 속았을 경우에도 동일하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생활을 안하게 되고, 예배에는 충만함을 잃어버리고, 자괴감과 정죄감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지요.


믿는 자들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아냐, 믿는 자라해도 연약하니까, 사람이니까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믿는 자라해도 죄를 지어도 된다라는 식으로 가르치는 교회나 목사가 있다면 속히 떠나시는 것이 자기 영혼 구원에 이로울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믿는 자들이 죄를 지어도 된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오히려 신약성경 전반에 걸쳐 믿는 자들이 죄에서 멀어져야 함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적 믿음이 있는 사람일수록 마귀에게 속는 일이 줄어들겠지만 혹 믿음의 분량이 온전치 않아 마귀에게 속은 경우라해도 신앙 자존심이 훼손되었다하여 하나님과 멀어지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하는 마음은 마귀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영적 자존심에 훼손을 주어 낙심하는 마음을 불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낙심하면 기도를 끊고 예배도 안다니고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버리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영적 자존심은 마귀에게 속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마귀에게 속지 않으려면 죄를 버리는 성결의 연단과 능력을 예수님께 받아야 하고 여전히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는 여전히 주님의 자녀라는 영적 자존심이 상처받지 말아야 합니다.


반면, 세상 사람들은 영적 자존심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마귀에게 속아도, 죄를 지어도 전혀 영적 자존심에 훼손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죄를 자랑하거나 더 자주 지으려고 모의하기도 합니다.


영이 죽은 자들은 영적 자존심이 없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하나님의 품안에 있어야 한다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마귀가 주는 죄를 먹고 살아가다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게 되니 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들입니까.


둘째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는 영적 자존심중에 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에는 내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면 화나는대로 말을 뱉어버렸고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쁜대로 입술에서 험악한 말들이 나왔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기분 나쁘게 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판단과 정죄를 하였고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거리기도 하였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을 악하다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믿는 자들은 입술을 지켜야 하는 영적 자존심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하면 기분이 나빠져서 입술에서 악한 말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마음에 악을 품은 자들은 입술로 그 악을 발해야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악을 품은 자가 악을 표현하지 못하면 그는 괴롭고 힘들어집니다. 어찌하든 욕을 하거나 비난하거나 소리를 질러서라도 악을 발해야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그것을 참으려고 하면 너무 힘들고 성격에 따라서는 술로 위로하거나 음란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자존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달라야 합니다.

기분이 나쁠때 내 입술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화가 날때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때에라도 생각과 마음을 성령님이 다스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입밖으로 내는 말들 중에는 마귀에게 속고 조정당해서 하는 말들도 꽤 됩니다.

마귀는 우리의 악한 말들과 비진리의 말들을 모아서 하나님 앞에 송사를 합니다.


저 사람은 믿노라 하면서도 이렇게 부정적인 말을 했습지요. 복 주면 안됩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 하면서도 저렇게 혈기를 내고 입밖으로 욕을 하고 있습니다. 벌 주셔야 합니다.

저 사람은 꾹꾹 눌러 참지만서도 생각속에 살인하고 있고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마귀는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과 생각의 말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송사를 하고 있다라는 것을 우리는 영적 실체를 알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한 우물에서 단물과 쓴물을 동시에 낼 수 없듯이 한 입에서 저주의 말과 찬송의 말을 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하고픈 말을 서슴없이 기분대로 감정대로 내뱉으면서도 그것이 죄인줄 모르고 그저 마음이 시원타 하겠지만 그래서 그들은 그런 말들로 자기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겠지만,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인하여 화가 나거나 억울하거나 속상할때에도 말을 지켜야 한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켜야 할 영적 자존심은 분노입니다.

야고보서 1장 20절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오늘날은 마음이 강팍하고 완악하고 굳어져서 쉽게 분을 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조금만 기분에 안맞으면 쉽게 화를 내고 삐지고 토라지고 몽니를 부리고 있습니다.


게임중독에 빠지고 약물 중독에 빠지고 인터넷에 빠지고 핸드폰에 빠지고 세상이 주는 각종 문명과 물질속에 빠져서 건강한 정신과 마음을 갖지 못하여 조금만 감정에 안맞아도 쉽게 감정이 폭발하고 분노를 표출하지요. 혹자들은 이정도는 아니라해도 직장에서나 교회안에서 분을 내며 다투는 모습들이 있거나 보았을 것입니다.


분을 내는 여러 결정적인 이유는 상대가 나를 안맞춰주니 감정이 상해서입니다. 내 마음에 안드니 분을 내는 것이지요. 이것은 다시 말하면 나는 상대에게 맞춰주지 못하고 있다라는 반증입니다.


또 하나 분을 내는 것은 마음에 혈기라는 죄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로부터 또는 자라오면서 내 마음속에 열등감이나 우월감속에 깊게 내려진 혈기라는 죄성이 남달리 강하기 때문에 분을 표출하지요.


다른 이유로는 못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와 기준이 강해서 그 기준에 사람들이 못따라오면 이내 마음과 생각에서 판단과 정죄가 나오고 이것은 싫은 감정으로 표현되면서 짜증과 분이 나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마다 환경에 따라 분을 내는 이유가 다른 것인데요, 사사로운 감정과 혈기속에서 분을 내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분을 내어도 누가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경찰이 출동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영적으로는 분을 내면 하나님께서는 죄라 하십니다. 그리고는 천사가 저 멀리 떨어져 있고 이내 사단이 출동합니다.


분을 내는 자들이 하는 말들은 영안이 열린 사람이 보면 그 입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그 검은 연기들이 사람들 심장에 박혀서 상대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어가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그 검은 연기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같이 기분이 나빠지게 만들어 갑니다.


세상에서는 분을 내고 싶으면 분을 냅니다. 분을 내서라도 자기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것이 세상이치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 성령의 법칙이요. 분이 날때 기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저도 혈기가 많은 사람인지라 분을 자주 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분을 내어서 일이 잘해결되느냐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분을 내면 오히려 더 일들이 틀어지고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런 내 모습을 주님께서 자주 드러내실때 마음이 많이 힘들었지만 이런 내 악을 인정하고 기도해가면서 주님의 도움을 구하니 점점 혈기 죄성이 많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마음안에 판단과 정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분을 자주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남의 것을 보면서 옳다 그르다, 싫다 좋다, 잘했다 못했다라고 말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어느덧 내 마음과 생각안에 판단과 정죄감을 쌓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혈기 부리는 것, 화를 내는 것, 짜증 내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성내는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 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요, 내 마음안에 주님의 온유함과 선과 사랑이 부족하다라는 것을 깨닫고 기도해가야 할 것입니다.


네째로 원망과 불평입니다.

야고보서 5장 9절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우리가 세상에 있을때에는 원망과 불평이 참 많았습니다. 나보다 남들이 더 많이 가지고 누리는 것을 볼때에도 불평이 많았고 , 남들이 잘하는 것을 볼때에도 시기와 질투가 나면서 불평이 많았지요.


이러한 불평들은 부모에게 원망으로 이어졌고 심지어는 하나님은 내게 왜 이런 것들을 안주시냐고 하나님에게도 원망하는 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안에 들어온 우리들은 이제는 입술에 불평과 원망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의 부귀와 안일함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것을 사랑하고 소망을 두는 사람들은 믿는다 하면서도 끊임없이 부자 되려고 애쓰며 살아갑니다.


지금보다 더 누리고 더 잘살고 더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이 주님 밖에서 이루려고 할때 이내 죄된 생각과 습성이 내 안에 들어온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주변에 주식을 투자하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것도 믿는 자들 말입니다.

믿는 자들도 주식투자 할 수 있습니다. 주식 투자 자체가 나쁘지 않습니다. 주식이라는 것도 경제를 공부해야 하고 나름대로 지식과 노력을 투자해야 벌 수 있는 영역이니까요.


그러나, 왜 자신이 주식을 투자하는가라는 자기 마음속을 들여야 보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순전히 더 돈 벌어서 노후 편하게 살겠다. 남들처럼 돈이 있어서 위세 부리고 싶다, 충분히 많이 벌어서 직장 얼릉 그만두고 싶다. 이런 못된 마음이라면 차라리 마음을 돌이켜서 그 시간에 성경보고 하늘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씨앗은 자기 마음이 못된 거에서 나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남을 비교하면서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더 누리고 싶은 탐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번은 세상에서 제가 좌절을 맛보고 있을 때입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찬송가 147장의 찬양곡조가 들리는데요,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둘 알고 버리네~

이 가사가 그렇게 내 귀가에 분명히 들리고 내 마음을 두들기는데요, 난 세상에 속한 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주님께서는 내 마음이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안에 탐심이 있고 욕심이 있으니 남들보다 가진것이 없고 누리는 것이 없다고 생각될때에 낙심이 되고 좌절감이 오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것을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이 나오지요. 나보다 더 가지고 누리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내가 현재 가지고 누리는 것을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에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그 눈이 열려야 우리는 비로소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을 이루어 가다가도 잘 되면 서로 칭찬하고 덕담을 나누지만 일이 트러지면 이내 상대를 원망합니다. 주변을 보면 게임을 하다가도 누구때문에 졌다라고 하면서 서로 다투는 것을 보곤 합니다. 자신이 더 잘했다면 팀도 도와주고 상대를 이겼겠지요. 이렇게 생각은 못하고 누가 못해서, 누구 때문에 졌다라고 불평하는 것을 볼때에는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것이 얼마나 악한 마음인지 알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더 가지고 더 누릴때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원망과 불평은 현재의 것을 감사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특히나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성경의 말씀처럼 구원받지못할 심판이 될 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감사하다라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정리해보면, 이렇게 우리 믿는 자들이 빛 가운데 산다 하면서도 영적 자존심을 지키지 못해 사단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4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믿는 자들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적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마귀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죄의 미혹과 즐거움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물리치는 능력으로 영적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로는 말입니다. 무익한 말, 희롱하는 말, 쓸데없는 말등 하나님과 담이 되는 말들을 하지 않음으로 영적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셋째로는 분노입니다. 마음안에 혈기죄성을 버려나감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드리는 영적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네째로는 원망과 불평입니다. 현재의 것을 감사하면서 미래의 것도 감사한 마음으로 구해나갈때 영적 자존심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빛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는 죄의 미혹과 말, 분노, 원망과 불평앞에서 입술과 생각을 지킴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적 자존심을 지켜 갈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4절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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