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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도시]언덕위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작성자jaeki|작성시간10.01.12|조회수599 목록 댓글 0

 

     샌프란시스코 명물 케이블카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늦은 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시에서 바라보는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은 아름답다기 보다 뭔가 색다른 느낌을 준다. 두 도시 사이에 가로 놓인 샌프란시스코만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샌프란시스코 반도 북쪽에 몰려 있는 마천루들이 뿜어내는 불빛은 그대로 바닷물에 반사돼 도시 전체가 연 주황빛 가스에 휩싸인 것 같은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오클랜드과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Bay Bridge를 따라 미끄러지듯 샌프란시스코시를 감싸고 있는 연 주황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인적이 드문 밤거리, 로마 성베드로성당의 큐폴라를 옳겨 놓은 것 같은 시빅센터를 지나쳐 남쪽으로 Glen Park까지 차를 몰아갔다.

 

시가지와 건물들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도보로 관광할 생각으로  메트로폴리탄 일대를(인구 740만명) 운행하는 전철 ‘바트’역 주변에 있는 숙소를 잡기 위해서 였다. 마땅한 호텔을 잡지 못해 결국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사우살리토로 건너갔지만, 야심한 밤 시내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파웰하이드선 언덕길이 가파르다

 

                            뒤로 피셔맨스워프와 샌프란시스코만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다른 도시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은 시내에 언덕이 한 두 곳이 아니란 점, 그리고 모든 도로가 격자형으로 건설돼 시가지가 바둑판 같다는 느낌을 준다.

 

121평방킬로미터 밖에 안되는 좁은 면적에 언덕이 43개나 되니까 언덕이 많다는 말보다는 샌프란시스코가 언덕위에 세워졌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시내 중심가에서 가장 높은 언덕 Nob Hill은 해발 고도가 100m로 언덕이라기 보다는 조그만 산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다. 언덕이 워낙 가파르고 높아서 중턱쯤에 평평한 길을 닦아 계단식으로 도로를 만들었다. 예외없이 언덕 길 옆에는 차들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채 가로 주차돼 있고 언덕위에는 빼곡하게 집들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한국의 달동네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고급스러운 유럽풍 집들이다.

 

도시 면적 자체가 121평방킬로미터로 좁고 그에 비해 인구는 80만명을 넘어 밀도가 아주 높기 때문에 건물은 대부분 3층 아니면 4층짜리다.

 

 

가장 높은 언덕 Nob힐의 nob는 고관, 부자란 뜻으로 noble과 같은 말인데 이 언덕에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노브힐로는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카 파웰하이드선(powelhyde cable car line)이 지나간다.

 

파웰하이드선은 샌프란시스코 북쪽 피셔맨스워프에서 남쪽으로 마켓거리까지 뻗어 있고 피셔맨스워프와 러시안힐, 롬바드거리, 케이블카 박물관, 노브힐, 유니언 스퀘어, south of market(SOMA)등 관광포인트가 많다.

 

파웰하이드선의 북쪽 종점 티켓 판매점(키오스크)에서 1인당 11달러를 주고 1일권 뮤니패스를 구입했다. 뮤니 패스로는 정해진 기간 동안 케이블카는 물론이고 뮤니 버스든 뮤니 메트로든 자유롭게 환승할 수 있다. 뮤니는 Municipal의 줄임말로 즉 시립 대중교통수단이란 의미다.

 

 

파웰하이드선 상 러시안힐 부근 도롯가에 차를 주차한 뒤 케이블카 종점에서 근 1시간 이상을 기다려 명물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마침 땡스기빙 연휴라 가족단위의 나들이 객들이 길게 줄지어 케이블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우리 앞에 기다리던 일 가족은 숫자가 무려 22명, 할아버지에 아들 딸 사위 손자들까지 온 가족이 총출동한 것 같았다. 명절을 맞이해 온 가족이 시내 관광에 나선 것.

 

종점에 도착한 케이블카를 커다란 원형 데크위에 올려놓고 한 바퀴 돌려 방향을 바꾸는 것도 재밌는 구경거리다. 케이블카는 1900년대 초반부터 운행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매우 낡아서 인지 도로바닥에 설치된 케이블 위를 달릴 때 연신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낸다.

 

케이블카의 묘미는 차의 난간에 매달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 도심과 샌프란시스코만을 구경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케이블카 안에서

 

                            시 직원이 케이블카를 밀어 돌리고 있다

 

언덕 몇 개를 넘었을까? 탑승한 지 20에서 25분쯤 지나 유니언 스퀘어에 도착했다. 유니언 스퀘어는 포스트거리와(post st)와 파웰거리 등 동서남북으로 4개 도로에 둘러싸인 그렇게 넓지 않은 아기자기한 도심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스페인과의 전쟁에 참전했던 듀이제독을 기리는 탑이 우뚝 서 있다.

 

                                      유니온 스퀘어

 

우리가 도착한 때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11월말이라 광장 한 켠에 거대한 트리가 서 있었고 한 쪽으로 아이스링크가 설치돼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얼음을 지치고 있었다. 유니언 스퀘어는 위치나 규모, 시설 등 여러 가지 점에서 서울의 중심에 조성돼 있는 서울광장과 닮은 꼴이었다. 서울광장에도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스케이트장이 설치된다.

 

유니언 스퀘어 주변으로는 메이시 백화점과 살바토레 페라가모, 코치 등 유명 브랜드 숍이 즐비해 쇼핑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유니언 스퀘어에서 피셔맨스워프 쪽으로 돌아갈 때는 케이블카 박물관 지점에서 파웰 하이드선과 갈라지는 ‘파웰메이슨’선을 이용했다. 샌프란시스코 시가지를 걸어보기 위해 파웰하이드선과 종점이 3블록 떨어져 있는 메이슨 선을 선택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서쪽으로 러시안힐을 바라보며 걷는데 언덕의 경사가 숨이 가쁠 정도로 가팔랐다. 도롯가 언덕위의 집들은 비록 좁지만 디자인이나 채색, 조경이 아름다웠고 집 정원마다 아름드리 정원수들이 즐비해 샌프란시스코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길 오른쪽으로는 담쟁이 덩쿨이 무성하게 덮인 샌프란시스코 예술 학회(art of institute)가 자리잡고 있었다. 전시된 그림이나 조각들이 특이해 예정에 없었던 관광이었지만 인상적이었다.  

 

 

                   Art of institute

 

오늘날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도 가장 유럽적인 도시로 손꼽히면서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멋진 도시로 변모했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아픔과 고통의 세월이 있었다.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멕시코, 다시 미국으로 주권이 넘어가면서 적지 않은 굴곡의 역사를 갖게 됐다. 샌프란시스코 일대 캘리포니아 땅의 본디 주인은 Ohlone 아메리카 인디언, 하지만 Captain Juan Bautista de Anza와 Father Francisco Palou같은 정복자들이 군함을 앞세워  식민지로 개척하면서 이들은 강제된 일과 기독교를 믿을 것을 강요받았고 스페인의 캘리포니아 통기기간 동안 원주민 인구의 3/4이 스페인 서구 사회로부터 들어온 질병에 감염돼 죽는 등 약자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피해가 너무나 컸다.

 

샌프란시스코 원주민 선교사(史)에 따르면 스페인 선교사들은 칼을 앞세운 군대의 정복에 뒤이은 선교를 통해 1845년까지 6700명의 원주민을 기독교로 개종시킨 것으로 집계됐지만 스페인도 인디언도 이 땅에서 번영을 누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개발시대로 접어든 것은 1848년 미국이 Guadalupe Hidalgo협정을 맺음으로써 멕시코와의 2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부터이다.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미국 서부 개발에 기름을 부은 것은 한 편의 신문기사였다.

 

184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120마일 떨어진 Sutter's mill 제재소를 건축하고 있던 'Coloma'란 곳에서 인부들이 강 하류에서 사금을 발견했다. 부동산 투기꾼이자 Mormon Tabloid지 사주인 Sam Brannan이 습지 부근에

다운타운 풍경

 

있는 자신의 땅을 좀 더 비싸게 팔려는 목적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그런데, 보도가 있고 난 후 수주만에 사람들이 너도 나도 금 찾기 대열에 합류하는 바람에 샌프란시스코의 인구가 200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약삭빠른 Brannan은 모든 가용한 삽과 사금을 치는 팬(PAN)을 사들여 서트 포트 근처에다 가게를 열었는데 첫 두 달여만에 3만 6천 달러 오늘날 가치로 100만달러나 되는 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Gold Rush가 일어나자 전세계 신문들은 앞다퉈 샌프란시스코 금광산 얘기를 싣기 시작했지만 어느 누구도 신중하게 팩트(사실)를 찾아 보도하는 데가 없었다. 보도가 나간 몇 달 만에 금을 쫓는 사람들을 가득 태운 배들이 유럽에서 호주에서 중국에서 속속 도착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내에서만 '49er'라 불리는 4만명이 금광을 찾아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들었다.

 

당시 기록에는 늘어나는 인구로 말미암아 광산관련 제품은 10배나 가격이 뛰었고 음식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계란 12개 한 판의 값이 1849년 당시 10달러나 됐다. 1849년 800명에 불과하던 샌프란시스코 인구는 1850년 25000명으로 증가했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도시 주거환경이 급속히 악화됐지만 살롱과 극장 등 유흥시설은 날로 발전해 금광에서 번 돈을 도박과 여자 술로 탕진하는 젊은이가 부지기수였다.

   

‘골드러시’는 스페인 치세부터 시작된 ‘선교’ 그리고 1906년 발생한 ‘지진’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의 오늘이 있게 한 역사의 산 증인이다.

 

 

사실 선교의 역사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The Misión San Francisco de Asís는 1776년 6월 29일 설립됐다. 영어로는 St. Francis of Assisi다. 부근에 Arroyo de los Dolores, 또는 "Creek of Sorrows“란 이름의 강이 있어 오늘날 ‘Mission Dolores’로 불린다.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교회다.

 

이 건물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시경계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묘지이자 교회다. 인디언 부족인 Ohlone이나 Miwok, 그리고 다른 초기 캘리포니아 개척자들의 마지막 안식처 였지만 역으로 그들의 비극적인 삶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슬픈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19세기 중엽 골드러시와 함께 도시로서 틀이 잡힌 뒤 근대도시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화재와 지진의 재해를 입기도 했다. 1851년 화재로 말미암아 시내 20블록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그로부터 50년이 넘은 1906년에는 리히터 규모 8의 강진이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해 도시가 쑥대밭이 되고 가스관 파열로 화재가 발생해 도시 전체로 불이 번져 나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샌프란시스코는 재해 무방비 도시였다. 화재진화를 위한 유일한 수원은 샌프란시스코 출신 오페라 디바 Lotta Crabtree가 기증한 분수뿐이었다. 사람들이 버켓으로 불을 퍼나르지만 노브를 비롯한 높은 언덕으로 나르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인상파 화가들의 걸작이 소장된 한 맨션도 당시 연기로 사라졌다고 한다.

 

사상자수만 3천명 전체 시민 30만명 가운데 10만명 이상이 집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당시 시민들은 샌프란시스코 영광의 날은 끝났다고 한탄했지만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지금 샌프란시스코의 영광은 과거의 그것 이상으로 재현됐다.


샌프란시스코 시내 러시안힐 중턱쯤에 주차해 둔 차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구불구불한 길이란 명성을 가지고 있는 롬바드거리로(Lombard) 달려갔다.

 

롬바드 거리는 자동차의 회전반경이 거의 40-50도 수준에 이르러 구불구불하다는 말보다는 길의 커브부분이 뾰족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40도가 넘는 일방(one way) 경사길에서 자동차들이 지그재그로 운행하는 모습 자체가 볼거리다.

 

                                      제일 앞 아발론이 우리 차

 

그리고 롬바드 거리를 수놓고 있는 아름다운 꽃들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주위의 아름다운 집들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꼭 이 곳을 들른다고 할 정도로 관광지로 인기가 높은 곳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차를 몰아 롬바드거리에서 이색적인 드라이브를 했는데 수 많은 관광객들이 굽은 길을 줄지어 운전하는 모습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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