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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루페의 최고봉 엘 커피탄(el capitan) 광활한 미국 서부엔 스페인의(한 때는 멕시코 통치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스페인통치의 잔재가 뿌리깊게 남아 있다. 일본 통치 36년 동안 민족이 핍박받고 패망한 일본이 물러간 뒤에도 청산을 해도 해도 찌든 때 처럼 덜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일본 잔재인데 하물며 뉴 스페인의 400년 치세는 말해 무엇할까? 스페인은 지난 1521년 무적함대를 앞세워 북미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던 아즈텍(Aztec)왕국을 허망하게 무너트린 뒤 377년 동안 서부와 플로리다를 통치해왔다. 미국 전역에서 영어를 쓰고 있지만 두 지역에선 스페인어가 제 2외국어로 통용되고 있고 웬만한 놀이공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는 영어에 이어 스페인어 안내방송이 나오고 안내문마다 스페인어가 병기돼 있다.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플로리다(스페인어로 꽃을 의미), 엘파소, 산 미구엘, 라스베가스 모두가 스페인식 지명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텍사스 최북단에 있는 텍사스에서 가장 높은 산에 엘 커피탄(el capitan, 2464m)이란 이름을 붙이고 이 산을 포함해 뉴멕시코에서 텍사스에 걸친 전체 산맥을 과달루페(Guadalupe)라고 명명했다. 스페인 문화권에서는 ‘과달루페’가 인기있는 여자 아이의 이름으로 널리 불리고 있지만 그 속엔 북아메리카 남부 아즈텍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 이야기도 녹아 있다.
가까이서 본 과달루페 멕시코인들은 유난히도 ‘과달루페’를 사랑하고 숭배한다. 패트리스 윈(Patrice Wynne)이 쓴 ‘과달루페 이야기’란 글을 보면 멕시코인들은 과달루페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멕시코의 성녀 과달루페는 옷과 의복, 주유소, 경찰서, 택시 승강장, 버스, 비누조각, 티셔츠, 문신, 양초, 각종 갤러리에서 거울처럼 반영되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나무와 주석과 종이, 플라스틱, 타일, 구슬, 쇠, 돌, 진흙, 가죽 등으로 만들어 지고 있다. '당신은 멕시코에서 성녀가 어디있는 지 찾는 것보다 없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 것이 오히려 현명할 것이다'. (중략)아마 어떤 문화권에서 과달루페 만큼 많은 장소에서 많은 방법으로 복제된 종교적 상징은 없을 것이다”.
그는 또, “과달루페는 멕시코인 믿음의 근원이고 그녀 없는 인생은 상상조차할 수 없다. 그녀의 이미지는 멕시코 국기보다도 더 상징적이다. 멕시코인들은 멕시칸의 어머니, The Americas의 여제인 그녀가 보여주는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조차 어울리지 않을 그녀와 그녀의 고결함에 충성심을 나타낸다”고 적고 있다.
멕시코인들은 왜 과달루페를 성녀, 그들의 어머니로 받들까? 어떤 이유 때문에 과달루페는 성녀로 불릴까? 아즈텍 인디언들은 제국주의 침탈 경쟁에 뛰어든 유럽인들에 의해 그들의 터전을 무참히 짓밟히고 그들의 땅을 잃는 고통을 겪게 된다. 제국주의 스페인의 침략에 대항해 결사항전해 보지만 워낙 큰 기술격차와 무기체계의 열세 때문에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주권을 내주고 만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즈텍 번영의 상징인 테노치팃랜(Tenochititlan)오늘날의 멕시코시티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듯 파괴하고 그 위에 뉴-스페인의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는 한편으로 인디언 사회의 제도와 문화에 대한 대대적 개조작업을 서둘렀다. <위 사진은 과달루페 성녀 출처=관련 인터넷 사이트>
인디언들은 전통종교 대신 로마 가톨릭을 믿어야 했고 그들의 모국어(Nahuatl)대신 스페인어를 배우고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하루 아침에 조국을 빼앗기고 종교와 언어 마저 잃어버린 인디언 사회는 참담한 절망과 실의에 빠져 조타수 없는 배처럼 표류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상처입은 영혼들은 위로받을 길 없이 방황했다. 이 때 그들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것이 바로 과달루페 성녀였다. 과달루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70여년전 아즈텍이 패망한 지 10년만인 1531년 12월 9일 시작된다.
이날 후앙 디에고(Juan Diego)란 이름의 한 인디언은 이른 아침 옥수수의 여신, ‘Tonanzin’을 경배하던 성스러운 언덕(Tepeyacac)에 갔다고 한다. 그녀의 사원은 가톨릭 주교 주마라가(Zumarraga)에 의해 황폐화됐다. 그런데, 어디선가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들리더니 성자를 상징하는 후광을 가진 여인이 나타나 “나는 동정녀 과달루페이다, 작은 아들 후앙 디에고야 가서 주교에게 나를 위한 성당을 지어라고 요구해라, 무너진 여신의 사당이 있던 자리에 지어질 성당은 내가 인디언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나타내기 위함이다”고 인디언 언어로 말했다. 디에고는 주마라가 주교를 찾아가 성모 마리아의 뜻을 전했지만 주교는 한낱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디에고를 내치고 말았다. 후앙 디에고가 다시 언덕을 찾아가 “나는 꼬리의 끝, 한 잎사귀에 불과한 인간”이라며 자책하자 성녀 과달루페는 “방해받은 것은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했고 그 후로도 디에고는 3번을 찾아가 간청했지만 주교는 언덕에 나타난 그녀가 신의 어머니란 증거를 가져오라고 요구하며 귀 기울이지 않았다.
성녀 과달루페는 다시 디에고에게 “가서 그 기후에서 살 수 없지만 주변에서 풍부하게 자라는 카스틸리안(스페인의 지역명) 장미를 주으라”고 말했다. 주마라가 주교는 디에고가 가져온 장미꽃이 동정녀의 기적임을 알아채고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언덕위에는 13일만에 성녀 과달루페를 위한 조그만 교회가 지어졌고 그로부터 2년후 큰 교회가 그 자리에 세워졌다.
이 일이 있고난 뒤 멕시코에서는 10년만에 아즈텍 인디언 900만명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이(인디언) 믿어 의심치 않던 그들의 신들도 그들이 복종했던 왕도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정복자들이 믿고 있는 과달루페가 직접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데 감동했기 때문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절망의 터널에서 작은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다고 여겼을 지도 모른다.
1709년 과달루페가 나타났던 장소 부근에 과달루페 성당이(The Basilica of Guadalupe)세워졌고 1754년에는 로마교황청이 교서를 통해 과달루페를 아메리카의 여제로 선언했다. 그리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해 오랜 식민의 역사를 끊어낸 멕시코의 영웅 ‘Father Hidalgo’는 멕시코의 승전 개선행진 때 과달루페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이미지가 그려진 깃발을 올렸다. 그녀를 기리는 축제날인 12월 11일과 12일 이틀동안 전 멕시코에서 500만명이 그녀를 경배하기 위해 몰려들고 세계 곳곳에서 연간 1000만 경배자가 이 회당을 찾고 있다. 로마 교황청에 따르면, 이 성당은 전 세계 동정녀 마리아 회당 중 가장 인기있고 바티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성소로 전해진다.
교황청은 2002년 7월 후안 디에고(Juan Diego)를 성인으로 선포해 아메리카 토착민 가운데 첫 번째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고 한다.
사막 위를 달리듯 뻗어나간 과달루페
과달루페란 이름은 언덕 위에 나타난 성녀가 자신을 밝히는데 이용한 말, 인디언 언어를(Nahuatl) 스패니쉬로 번역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Nahuatl어 "coatlaxopeuh"는 스페인어의 과달루페와 발음이 아주 비슷하다고 한다. 가톨릭 역사학자들은 ‘Coa’를 뱀으로 해석하고 ‘tla’는 the로 ‘xopeuh’는 짓밟다로 해석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과달루페는 본래 사랑의 강을(river of love) 의미하는 아랍말이다. 과달루페 산맥은 이름에서 풍기는 성스러운 이미지와 같이 자연이 매우 잘 보존된 미국의 대표적 국립공원 가운데 한 곳이다. 2009년 11월말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비지터센터에서 받아본 가이드에는 “관광객들이 사막 가운데 있는 지정된 야생보호구역에 들어가지 않고 칼스바드로 가는 길에 길 옆에 있는 뛰어난 경치쯤으로 과달루페 공원을 경험할 것이다” “공원을 관통하는 시닉 드라이브가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무엇을 얻고, 더 중요한 무엇을 잃겠는가? 간단하게 야생지역을 길들일 때마다(개발할 때마다)잃은 것을 잃을 것이다. 거대한 땅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 해도 굳이 거리를 따지자면 멀어도 당신의 집 문에서 200마일 안에 위치해 있다. 스미스 스프링(Smith spring)의 깨끗한 이끼냄새, 맥키트릭(Mckittrick canyon)의 시원한 그늘, 앨 커피탄을 맴도는 바람의 어르렁거림은 부산한 도심으로부터 차로 두시간 이내 거리이다”. 과달루페와는 지형이나 여러 가지 조건들이 다르지만 미국의 유명한 요세미티나 그랜드 캐년, 브라이스 캐년, 자이언 캐년 등 많은 수의 국립공원에는 시닉 드라이브란 이름의 도로가 공원을 관통하고 있다. 반면 과달루페 산맥에는 산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없다.
과달루페 산맥은 산호초 처럼 길죽하게 뻗어 산의 총길이가 무려 25마일이나 되고 이 때문에 산을 관통하는 도로 건설의 필요성이 더 시급하지만 많은 지역이 야생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도로건설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78년 지정된 과달루페 일대의 보호구역은 총 46850에이커(5700만평)로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국립공원측은 “과달루페 꼭대기로 이어지는 도로를 건설하면 아마도 과달루페 산맥 국립공원 방문객은 지금보다 열배 스무배 서른배는 늘어나고 공원의 예산과 직원도 열배이상 증가하겠지만 야생의 정수를 보존하기 위해 보호구역을 설정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연이 철저하게 보존된 만큼 과달루페엔 인간의 흔적이 적다. 보통 트레일(Trail)코스는 포장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어도 가지런히 정돈된 길이 많지만 과달루페에 있는 총연장 85마일의 트레일은 자갈 바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길 주변으로는 노루나 사슴 같은 야생동물들도 자주 목격된다. 비지터센터에서 가까운 테자스 트레일(Tejas)은 2550미터의 헌터스 픽을 왼쪽으로 돌아 테자스, 메스켈레로(Mescalero) 캠프사이트를 거쳐 독 캐년(Dog canyon)까지 이어지는 10여 킬로미터의 길. 한정된 시간 여유 때문에 약 1킬로미터 정도 산행했지만 산호초가 융기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바위와 절벽들 인간에 때묻지 않은 대자연이 멋진 곳이었다.
페름기에 북미대륙 내해에 400마일 길이의 환상형 산호초 'Capitan Reef'가 형성된다. 바닷물이 마르고 산호초 위로 흙이 덮인 상태에서 융기한 것이 과달루페와 아파치 산맥, 글래스 산맥(glass Mts.)이고 땅속에 묻힌 채 산성수에 의해 석회석이 녹아 형성된 동굴이 바로 칼스바드이다.
그래서, 과달루페는 칼스바드 동굴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해 텍사스의 최고봉 엘 커피탄까지 이어지는 20여마일의 길쭉한 형태를 띠게 됐다. 그리고 과달루페 주위로 치화환 사막의 황량함과 남쪽으로 멀리 델라웨어 산맥을 바라보는 뷰는 정말 놓치기 아까운 비경이다. 그리고, 과달루페 산맥의 서쪽엔 알칼리 레이크와 솔트레이크로 명명된 호수가 있었지만 물이 말라 거대한 평원으로 변했다. 물 마른 호수를 사이에 두고 멀리 보이는 과달루페는 한 폭의 그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