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하우스 입구
아열대의 파라다이스, 미국의 땅끝, 한 때 플로리다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 여러가지 수식어가 붙는 키웨스트는 그 유명세에 손색이 없을 만큼 아주 특별하고 인상적인 곳이다. 바쁜 여정 때문에 한나절 동안 아주 컴펙트하게 키웨스트를 훑어 봤지만 플로리다주에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가장 강한 곳이 바로 키웨스트란 인상을 받았다. 좀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마이애미나 템파는 물론 미국 내의 다른 어떤 도시와도 다르다는 것이다.
북위 24도 멕시코만 가장 자리에 위치한 키웨스트는 전체 면적이 19제곱 킬로미터 밖에 안되는 아담한 섬이다. 섬의 모양은 길쭉한 소라를 닮았다. 면적이 좁고 고층건물이 없어 도시 같지 않고 아름다운 주황색 꽃을 피우는 코르디아 세베스테나(CORDIA SEBESTENA)나 부겐빌레아, 유칼립투스(Eucalyptus) 그리고 이름 모를 아열대 고목들이 집집마다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겨울이지만 거리마다 빨강 노랑 보라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펴 도시 전체가 풍성하고 싱그러웠다.
코르디아 세베스테나 유칼립투스
성냥갑을 포개 놓은 것 같은 우리나라의 집보다는 미국의 집들이 멋있어 보이지만 키웨스트에 있는 유럽풍 건물들은 디자인과 아름다운 외관에서 미국식 건물들을 압도한다. 1521년 스페인의 식민지로 편입됐고 1763년 영국, 다시 스페인령으로 유럽국가들에 의해 초기 도시개발이 이뤄져 키웨스트 구 시가지엔(Old Keywest)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유럽풍 건물이 많다.
키웨스트 역사예술 박물관
키웨스트 거리
난파선 박물관 전망대에서 키웨스트 북쪽 바다를 보고 있는 아이들
하루뒤인 12월 27일 날짜로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에 캠프 그라운드가 예약돼 있었고 키웨스트 관광보다는 바히아 혼다에서 해수욕에 더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 그래서 키웨스트에서의 체류시간은 단 한 나절이었다.
독특한 시가지 외에도 카약이나 스노클링, 바다낚시, 아쿠아리움 같은 즐길거리가 풍부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어 선택한 것이 콘치트레인이었다. 기차 처럼 생긴 자동차를 타고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헤밍웨이 하우스와 미국의 최남단 포인트, 트루만 대통령의 Little White House, 등대박물관, 바하마 빌리지(Bahama Village) 등 시내 주요 관광 포인트를 돌아보는 것이다.
콘치 트레인
콘치 트레인을 타고 짧은 시간에 키웨스트를 돌아볼 수 있었지만 아쉬웠던 것은 도중에 차에서 내릴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헤밍웨이 하우스도 땅끝 포인트도 리틀 화이트하우스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당연히 풍경 사진 외엔 사진도 찍지 못했다. 그나마 풍경사진도 도둑을 맞아 남은 사진이라곤 한 장도 없다.
콘치들은 시내 화이트헤드 스트리트와 안젤라, 페트로니아, 올리비아 스트리트 일대 바하마 빌리지에 많이 살았다. 바하마 빌리지는 건물이나 간판들이 핑크나 블루 그린 보라 등 카리비언풍의 밝은 색으로 채색돼 은은하면서도 화려하고 거리 이곳 저곳에서 자메이카 맥주와 스윗 코코넛 케익 같은 전통 음식과 트리니다드의 칼립소와 자메이카의 레게 선율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 뿐아니라 해이티(Haitian)나 카리브 예술도 접할 수 있다. 바하마 빌리지에서 한 두 블록 남쪽으로 내려가면 어떤 거대한 사상보다는 불굴의 인간의지를 소설로 잘 그려낸 20세기 미국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가장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했던 헤밍웨이 하우스가 나온다. 다운타운의 중심거리 듀발(Duval)스트리트와 트루만(Truman) 애비뉴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가 미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명성 만큼 헤밍웨이의 흔적을 보기 위해 이 집을 찾는 관광객도 많았다. 헤밍웨이는 주로 오후에 저술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키웨스트 시몬톤 스트리드(simonton st.) 314번지에 있는 포드 딜러샵의 전시실 위에 살던 시절 명작 '무기여 잘있거라'를 저술했고 대공황기의 키웨스트는 그의 작품 소유와 무소유(To Have and Have Not)의 배경으로 이용됐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와 킬리만자로의 눈, 프란시스 매콤버의 짧은 행복(The Short Happy Life of Francis Macomber)도 이 시기에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밍웨이는 생전 스노우볼(Snowball)이란 발가락이 일곱개 달린 희귀한 고양이를 데리고 살았는데 시 당국이 고양이가 서식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줘 관광객들의 볼거리가 되고 있다.
헤밍웨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볼거리는 그린 스트리트(Greene Street)모퉁이에 있는 '슬로피 조의 바'(Sloppy Joe's Bar), 1935년 문을 연 이 바가 유명해진 것은 헤밍웨이와 악명높은 럼주 밀매업자 하바나 조(Habana Joe)가 단골이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 외에도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란 희극을 써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테네시 윌리엄스는(Tennessee Williams)키웨스트에서 작품의 초안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웨스트의 최남단이라고 부표를 세워뒀지만 사실은 이 곳보다 더 남쪽이 있어서 하나의 상징일 뿐 실제로 최남단 지점은 아니라고 한다. 실제 최남단은 부표 바로 서쪽 트루만 에넥스의 해변이고 플로리다의 남쪽 끝은 키웨스트 서쪽 10마일 해상에 있는 'ballast Key'이지만 개인섬이기 때문에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시가는 쿠바의 하바나산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키웨스트가 하바나를 위협할 정도로 대량의 고급 시가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거리가 가깝고(94마일) 스페인 치하에서 인구, 문화 등 여러가지 점에서 동질성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키웨스트는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보다 쿠바의 하바나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인구의 절반은 쿠바 출신, 즉 고향이 쿠바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키웨스트 시장 가운데 쿠바 사람이 많았다. 쿠바공화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카를로스 마누엘 데 세스페데스(Carlos Manuel de Céspedes)는 1876년 시장에 선출됐고 1800년대 후반에는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하기 위해 키웨스트에서 징병도 했을 정도였다. Pan American Airlines은 1926년 키웨스트에서 하바나로 승객들을 실어가기 위해 설립된 항공사이고 쿠바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양국간 정기 페리와 항공서비스가 연결돼 있었다.
쿠바에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쿠바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탈출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 때문에 마이애미와 키웨스트의 쿠바인은 더 증가했다. 미국과 쿠바가 상호 이익대표부를 설치하고 관계가 호전되자 많은 쿠바인이 미국으로 넘어갔고 1980년 국내에서는(쿠바)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하바나 페루대사관으로 피난처를 찾아 몰려든 쿠바인이 만명에 이르렀다.
키웨스트 가는 길 바닷가 풍경
사정이 여기에 이르자 카스트로는 80년 4월 15일 떠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떠나라며 Mariel항을 개방했다. 미국은 난민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당시 'Mariel Boatlift'란 엑소더스를 통해 쿠바를 탈출 미국으로 입국한 사람은 12만 5천명이었다고 한다.
키웨스트는 미국 대통령들과의 인연도 많은 편이다. 해리 투르만 대통령은 1950년 3월 공식 방문을 포함해 재임중 11번 175일, 퇴임한 뒤에도 5~6번 방문하는 동안 트루만의 little whitehouse란 건물을 남겼고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한 뒤 한달만에 키웨스트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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