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미국 속의 이방인 아미쉬(Armish)

[jaeki]

 밭가는 아미쉬 농부

내가 아미쉬(Armish)란 말을 알게 된 것은 올해 초 였다. 지난(2010) 2월 어느 날 미국인 친구 샐리가 “아미쉬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아미쉬란 말은 듣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대답은 당연히 “노” 였다. 샐리는 아미쉬 사람들은 전기도 자동차도 휴대전화도 모든 현대문명의 이용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전기 대신 등잔이나 초를 자동차 대신 마차를 이용하고 음식도 자급자족하다고 알려줬다.

이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린피스 였다. 아미쉬 사람들 역시 그린피스 처럼 환경보호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 환경을 끔찍히도 생각하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미쉬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환경주의자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종교집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현대문명을 배격하고 스스로 고립시키는 이유가 환경에 있지 않고 종교적인 신념에 있다는 것이다.

샐리는 아미쉬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동생 재넷과 조만간 아미쉬 마을을 방문할 참인데 따라 나서겠느냐고 제안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샐리는 이미 한 두 번 아미쉬를 방문했었다. 그래서 그들의 아미쉬 여행에 나를 초대했다기 보다는 내가 미국 곳곳을 여행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샐리가 나와 가족을 아미쉬 마을로 안내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이미 그녀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도 받고 있었고 또 배려할 줄 아는 품성, 사심없는 마음이 좋아 이미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때라 흔쾌히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아미쉬 마을을 순례한 것은 그로부터 2달이 지난 4월말이었다.

그들은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을 뿐아니라 아미쉬 가옥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드 넓은 그들만의 땅에는 포장길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2월 말쯤이면 추위는 어느 정도 누그러져 바깥 나들이가 가능하지만 겨우내 내린 눈이 녹아 비포장길이 질척한 진창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 아래 물이 오를대로 오른 나무들은 가지 가지에 무성한 연녹색 잎을 피워 올렸다. 가장 먼저 새싹을 틔워 올리며 봄을 알린 잔디는 카펫을 깔 듯 온 천지를 녹색으로 채색해 간다. 마을 어귀의 개나리, 목련, 백일홍, 숲 속 이름 모를 꽃들은 봄 기운에 못이겨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트리고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는 한국의 봄을 연상시키지만 짙은 향기가 아쉽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의 기세에 눌려 한국의 봄은 올듯 말듯 천천히 오지만 미국의 봄은 한 순간에 오고 마는 강렬한 봄인 것 같다. 맹렬한 추위에 짓눌려 미처 봄을 생각할 겨를도 없을 때 불현듯 오는 것이 미주리의 봄이다. 4월말 어느 따뜻한 봄 날 아미쉬 마을로 봄 나들이에 나섰다. 아미쉬 마을은 미국 곳곳에 퍼져 있지만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미주리주 콜럼비아시 북부에 있는 클라크(Clark)란 자그만 타운(town)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곳.

고맙게도 집까지 태우러 와 준 샐리의 차를 타고 63번 고속도로를 따라 클라크로 이동했다. 도중에 콜럼비아시 북쪽 경계지점 근처에서 샐리의 동생 재넷을 태웠다. 재넷은 모벌리에 살고 있는데 유난히 말을 좋아하고 아미쉬 사람들과는 안면을 트고 지낼 정도로 친분이 있다. 아미쉬에 대해 아는 것도 많다. 샐리는 그녀를 우리에게 소개시키고 가이드도 맡길 겸 부른 것 같았다. 샐리와 재넷은 금발에 파란색 눈을 가진 50대 초, 중반의 백인 여성이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흑인보다는 백인에 대해 더 좋은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자매는 인종의 차이를 떠나 마음을 터 놓고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이스한 사람들이다. 나는 샐리를 보고 그의 동생인 재넷이 어떤 사람인 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고 재넷 역시 그의 언니를 믿는 만큼 우리를 스스럼없이 대해줬다.

샐리와의 만남은 내가 미국에 정착한 직후인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다. 어느날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샐 리가 지인과 함께 서 있었다. 그녀는 자기와 성경공부를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 때부터 9개월을 만나는 동안 나는 그들로부터 영어도 제법 배우고 미국 문화에 대한 궁금증도 풀었다.

사실 나는 교회를 믿는둥 마는둥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이 내게서 얻을 것이란 없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정말 열심히 찾아와 줬다. 서먹서먹하던 분위기는 점차 농담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로 누그러졌고 서로 가정사나 개인적인 안부까지 물을 수 있을 만큼 흉 허물 없는 사이가 됐다.

나도 그들도 40대, 50대니 사실 새로운 친구를 깊게 사귀기엔 적지 않은 나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내겐 그들이 미국인 친구이고 그들에겐 내가 한국인 친구이니 누가 누구에게 손해를 주고 이득을 볼 끈덕지나 인연 악연이 없는 사이다. 뭔가를 바라고 시작한 만남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완전히 터놓을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녀가 너무 많은 배려를 하고 많이 베풀어 좋지만 내가 줄 것이 없어 미안할 정도라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재넷의 집을 방문해 승마 체험을 한 오늘은(5,6)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샐리가 귀국날짜와 비행기편을 물어왔다. 그래서 세이트루이스 공항에서 시카고 오헤어를 거쳐 귀국할 예정이라고 했더니 세인트루이스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물론 이미 교통편을 생각해 뒀다면서 거절했지만 고맙고도 기분이 좋았다. ‘아 내가 미국에서 정말 친구를 한 명 얻었구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콜럼비아에서 세인트루이스까지는 자동차로 빨리 달려 2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니까 빈말이라도 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미쉬 마을을 방문한 날은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화창한 봄날이었지만 바람이 유난히도 강하게 불었다. 클라크에서 비포장길을 따라 아미쉬 마을로 들어갈 때 흙 먼지가 연기 처럼 뽀얗게 일어나 70년대 한국의 정감어린 시골길이 떠올랐다.

수 백 만평은 될 것 같은 넓은 땅에 민가가 띄엄띄엄 점처럼 흩어져 있어 인적이 드물었지만 간간이 버기(Buggy)라고 부르는 마차가 먼지를 날리며 오가는 모습에 아미쉬 마을을 실감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남자들은 대부분 길다랗게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재넷은 아미쉬 사람들은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거나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싫어하기 때문에 그들이 지나갈 때 촬영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주의를 줬다.

넓은 초원과 농장 중간중간에 서 있는 집들은 외형이 다른 지역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커다란 헛간은 지붕이 좀 특이한 유럽풍 건물이었다. 아미쉬 마을 곳곳에는 단층으로 자그맣게 지어진 학교 건물이 눈에 띠었다. 아미쉬는 보통 8학년을 마치면 국가가 제공하는 공식 교육을 마친다고 한다. 아미쉬의 주요한 생계수단은 농업과 목축이다. 그래서 마을의 구조는 집과 헛간, 그 주위로 나무 테울타리가 쳐진 목장이 있고 그 밖으로 농작물을 기르는 밭이 있다.

아미쉬 마을 어디를 가든 목장에는 소 외에도 여러 필의 말과 양이 방목되고 있다. 말은 주요한 생계수단이자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다. 곡식을 경작하기 위해 쟁기로 농토를 갈아 엎을 때도 말이 쓰인다. 주요 생계수단이 농업이고 트렉터나 바인더 같은 농기계를 쓰지 않기 때문에 아미쉬 사람들은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늘 힘겹게 일한다.

몇몇 가정은 손수 만든 빵이나 직물, 비누, 마구 또는 생활필수품, 가축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상인도 없는 것은 아니다. 아미쉬가 현대문명을 배격하는 생활태도를 유지해 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도 현대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가 들른 한 아미쉬 생활필수품 가게엔 그들이 직접 만든 물건 외에 외부 세계로부터 들여온 물건도 많다. 선반 위에 전시된 과도가 눈에 띠어 봤더니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

하지만, 적어도 먹거리 만큼은 메이드 인 아미쉬 가 믿을만하다. 집 한 켠을 가게로 꾸며 빵과 공예품을 판매하는 가게에 들러 빵 2 덩이를 샀는데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2-3일만에 곰팡이가 폈다. 그들이 입은 옷은 아주 단조로웠다. 여성들은 거의 연한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미국 홈 드라마 ‘초원의 집’에 출연한 부인들이 썼던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아미쉬가 문명사회와 동떨어져 자기들끼리 사는 점을 강조해 아미쉬 마을 아미쉬 컨츄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미쉬 컨츄리는 미국 내에서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다. 보통 미국인 가정도 서너명의 상대적으로 많은 아이를 기르는 편이지만 아미쉬는 가정당 평균 6.8명의 아이를 낳아 기른다. 풀어 기른 아미쉬 닭이 맛있다는 소문에 닭을 사기 위해 재넷의 인도로 한 집을 방문했는데 아이가 모두 9명이나 됐다.

독특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미국 속의 이방인 아미쉬는 누굴까?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아미쉬는 환경주의자가 아니라 하나의 기독교 종파이다. 스위스의 재침례(Anabaptist)교단에서 분파돼 나온 종파로 창시자 제이콥 암만(Jakob Ammann)은 1693년 교단에서 분파를 이끌고 나왔다. 암만을 따르는 사람들은 아미쉬나 아미쉬 메노나이트로 불렸는데 아미쉬란 이름도 그의 이름 암만에서 유례된 것이다.

미국에 있는 아미쉬들은 18세기초 독일어를 쓰는 스위스지역, 프랑스 알사스(Alsace), 팔라티네이트(Palatinate)로부터 이주해 온 아미쉬와 메노나이트(mennonite)이다. 메노나이트는 선교와 성직자로서의 사역을 목표로 삼지만 성인들(adult)에게 새롭게 침례를 하는 것이 타 교파와의 큰 차이점이다. 기성 교파를 부정하는 교리를 추구하다 박해를 받게 되자 박해와 종교전쟁, 그리고 가난을 피하기 위해 미국땅으로 이주를 한 것이다.

아미쉬가 첫 이주한 곳은 펜실베이니아주 벅스 카운티(Berks)였지만 인디아나와 켄터키, 미시간, 미네소타, 미주리 등 18개주로 퍼지게 됐다. 많은 아미쉬 그룹들은 비 아미쉬 세계로부터의 고립을 유지하고 교회와 가족의 유대를 아주 강조한다. 보험을 사지 않고 소셜시큐리티 같은 정부의 보조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아니라 무저항과 모든 형태의 군사서비스도 거부한다. 이같은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교회는 신도를 파문한다.

아미쉬들의 종교적 신념과 교파 내의 강력한 규율 그리고 아이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지 않는 그들의 전통이 30만명쯤 되는 아미쉬 사회를 오늘날까지 유지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지만 엄청난 인구증가율에 비해 새로운 세대가 농업을 영위하고 살아갈 땅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현대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은 그들에게 변화를 강요할 지도 모른다.

[avante]

미국에서 참 좋은 친구를 사귀었구나. 좋은 친구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재기 너와 가족들이 좋기 때문에 좋은 친구가 얻어진 것이다. 나도 아미쉬는 처음 듣는 말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그렇게 산다고 하더라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인공이 거의 가미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좋은 것 같다. 다만, 현대문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많은 자손들이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다소 걱정이 된다.
이제 어느덧 연수가 막바지로 접어든 것 같다. 마무리 잘하고 우리나라에 오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