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총탄.....맥박은? 음......”
비가 차의 앞유리를 때리고있었다. 끊임없이 닦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엄청난 폭우에 시야가 어지러웠다.
"그래서......환자는 남자아이 한 명인가?“
“네 총격사건으로 부모는 즉사했습니다.”
“알겠네. 5분내에 병원에 도착할거야. 구급차가 도착하거든 구급담당 Dr.에케너에의 지시에 따라 즉시 CT스캔을......”
덴마는 급한 것들을 우선 지시해두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의 옆 좌석에 놓인 손수건이 언뜻 보였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에바를 집에 바래다주었을 때 그녀가 흘린 것이다.
원장은 문을 열어둔 채 현관에서 기다리고있었다.
“어머나, 아빠.”
덴마도 함께 내렸다. 그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이네먼 원장. 소중한 따님을 이런 시간까지......”
“무슨 소린가, 덴마. 에바는 이미 자네의 약혼녀가 아닌가? 잠시 들려 차라도 한잔 들고 가게나.”
하이네먼 원장은 덴마를 거실로 안내했다.
“내년 4월에 결혼식 택일을 하기로 한 것은 부모님께 말씀드렸나?”
“네...하지만 작은 규모의 병원이라 한 사람이라도 장기간의 휴진은 업무에 큰 차질을 빚기 때문에...독일까지 오실 시간이 있을지 어떨지......”
“형님이 아버지의 뒤를 이을 거라면서? 좋은 기회니까, 부모님께선 느긋하게 외국여행을 즐기시는 것도 좋지 않겠나?”
“그래, 우리 집에서 초대할 테니까.”
하이네먼 원장이 미리 말해두었던지 곧 세 사람 앞에 차가 한잔씩 놓였다.
“저는 단지 원장님의 논문을 읽고 감명을 받아 찾아왔던 레지던트였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이곳 하이슬러 기념병원 최고의 솜씨를 지닌 의사이지 않은가?”
덴마가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원장님껜 아무리 감사 드려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원장은 마주앉은 에바와 덴마를 번갈아 보며 흐뭇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참, 얼마전의 논문은 썩 잘되었더군. 지금은 <자주막하출혈후의 뇌혈관 연축>의 연구에 들어가 있다고?”
“아...네. 개를 자주막하출혈의 모델로 만들어서, 연축혈관을 보고 있습니다. 그 메카니즘의 일부라도 알고싶어서요......결국엔 치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호오.”
하이네먼 원장은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말했다.
“...하지만 그 연구는 캔슬일세.”
“...네?”
그가 웃었다.
“음...이번 <유럽 구급 의학회 총회>에서는 내가 심포지스트로서 발표하게 되었거든......테마는 <구급의료체제의 현상과 전망일세>. 자네에게 초고를 맡기겠네.”
“아......하지만, 조금만 더하면 <뇌혈관 연축의 연구>가 완성되려는 참인데......”
원장은 시선을 에바쪽으로 돌렸다.
“음, 정말이지 오늘 낮엔 난처하더군.”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빠?”
“......”
“<부정의료를 규탄하는 모임>인지 뭔지 모르지만, 수상쩍은 민간단체가 의료실수와 오진에 대한 피해자들을 위해 일어서겠다며 병원으로 들이닥쳤거든.”
“어머나......”
“음...그래. 얼마전의 오페라가수, 로젠바하의 수술에 관해서도 소동이더군. 먼저 실려간 토루코인 환자를 뒷전으로 했다며 트집을 잡는 게야.”
덴마는 그때의 그 노파와 소년을 떠올렸다.
하이네먼 원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이구...그런 놈들의 착각엔, 이젠 질려버렸어.”
“착각...?”
“의사를 무슨 사회사업가로 착각한다는 말이야......우린,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이전에 학자일세. 그렇지 않나, 덴마?”
“네?...아...네......”
그는 누구를 향해서인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개인적인 감정에 일일이 구애되고있으니 의료의 진보가 있을 턱이 있나?"
"아빠 말씀대로 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덴마?"
"아......그래."
"우리에게는 보다 넓은 시야에 서서 독일...아니, 유럽의 의학계를 이끌어나갈 중요한 사명이 있네. 그 때문이라도 이번 <유럽구급의학회 총회>에서는 유럽 전체를 뉴미디어로 묶는 구급의료네트워크를 제창할 생각이지."
"아...저어...원장님. 하지만 이제 곧 연구가 마무리될 참인데..."
"음...어쨌든 자네 연구는 캔슬일세. 내 논문을 부탁하겠네."
"......"
덴마는 무릎에 놓은 두 손이 꽉 쥐어지며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수치심일까? 아니면......
"자네에겐 기대가 커, 덴마군."
덴마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덴마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는 빗길에 미끄러져서 정지선을 넘어, 교차로 안쪽으로 들어섰다.
"끼기기기긱..."
차는 오른편 도로에서 진입 중인 트럭과 부딪히기 직전에 간신히 정지되었고, 트럭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던 듯 멈추지 않고 지나쳤다. 트럭은 덴마의 차를 지나쳐 가며 그제야 뒤늦게 경적을 울려대었다.
트럭의 육중한 뒷모습이 어두운 빗속에 녹아 어슴푸레하게 사라져간다. 다행히 다른 차량은 없었다.
덴마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문득 손에 들고있던 손수건을 옆좌석으로 던졌다. 하이네먼 원장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자네에겐 기대가 커, 덴...'
이것으로......정말 괜찮은 것일까?
"제길!"
앰뷸런스도 이제 막 도착한 듯했다.
"환자는?"
"방금 안으로!"
덴마가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호흡기에 연결된 호스를 소년의 기관 내에 삽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급히 다시 이동하려던 그들을 덴마는 서둘러 따라붙었다.
"아,Dr.덴마."
"용태는?"
"혈압72/50.맥박138!"
"총탄은, 전두부에서?"
소년은 머리전체를 붕대로 감고있었고 잠옷에는 머리에서 흘린 피가 그대로 굳어있었다.
"총탄이 머리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즉시 뢴트겐사진을!"
"알았어!"
일단 수술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덴마는 함께 실려온 듯한 응급환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환자를 다루는 움직임을 보아 그리 급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 아이는?"
"방금 그 남자아이의 쌍둥이 누이입니다."
"외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인 쇼크가 큰 듯한......"
덴마는 소녀의 바싹 마른 입술이 뭐라고 계속 웅얼거리는 것을 보고는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가느다란 숨결이 귓가에 느껴질 정도가 되어서야 희미하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날 쏴..."
"...뭐?"
"Dr.덴마? 두부사진과 CT스캔이 준비되었으니, 어서 사진실 쪽으로"
"아...알았어. 지금 가지."
"이건...전두부로 들어가서, 뇌의 최심부에 멎었군.
"흠..."
"...총탄이 좌중대뇌동파를 스치고 있어요...이거 힘들겠는데요?"
"뭣?"
"......과연 Dr.덴마의 말대로야. 이거 성가시게 됐는 걸..."
"총탄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파열해서 출혈할지도 모르겠군."
그때 사진실 안으로 한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Dr. 베크. 당직인 당신이 늦으면 어떡합니까?"
"아마 또 예의 간호사랑 같이 틀어박혀 있었겠지, 뭐."
"하..하...이거 정말 미안하네."
덴마는 사진들을 한동안 번갈아 보다가 중얼거렸다.
"양측 전두를 개두하고, 골편제거, 오염뇌의 제거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중히 총탄을 제거하고...손상혈관을 형성한다......"
덴마는 그제서야 Dr.베크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 인사 대신 가볍게 웃어주었다.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두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지요."
"좋아, 가세!"
수술에 들어가기 전, 덴마는 차가운 물에 손을 씻어 냈다.
"혈압 120/80. 맥박92. 양호합니다."
"마취했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
똑!똑!
"네?"
끼익...
"외과부장?"
그는 급히 달려온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Dr.덴마, 잠깐, 밖으로......"
"시장이......로데커 시장이 쓰러졌네. 휴양하던 별장에서. 지금, 헬기로 오고있네. 앞으로 10 이내에 도착할걸세"
"그럼, Dr. 보이어에게 연락해주십시오."
그가 언성을 높였다.
"내경동파폐색의 가능성도 있네! 만일 그렇게 되면 자네가 수술을 집도해야!"
"네? 하...하지만, 방금 저 아이의 수술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는 두툼해 보이는 주머니에서 무선 수화기를 꺼내었다.
"하이네먼 원장의 지시일세. 전화를 받아보게."
덴마는 주저하며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네...덴마입니다."
[ 아, 덴마군인가? 시장건을 잘 부탁하네. Dr. 아이젠과 Dr. 보이어에겐 이미 연락을 해두었네. 최선을 다해주게. ]
"하...하지만 원장님...저는 방금 다른 수술을 시작하려던 참으로......"
[ 그쪽은 Dr. 베크에게 맡기면 돼. ]
"지금, 시작하려는 수술환자는...그 아이는 총탄이 좌중대뇌동파를 스치고 있어서 상당히 어려운 수술이 될 것 같습니다. 로데커 시장은 Dr. 보이어에게 맡겨도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저 아이의 수술은 제가 집도하지 않으면 ...Dr. 베크에게 맡기는 것은 아무래도 좀..."
[ 어쟀든 최선을 다해 시장을 구해주게 ......로데커는 이번 의료심사 특별위원회에서 우리 아이슬러 기념병원에 대한 조성금을 대폭적으로 증액하기로 약속했거든. ]
"네? 그..그런..."
[ ...놈은 아직 죽어선 곤란하단 말일세. ]
"......"
[ 잘 부탁하네 덴마. 자네에겐 정말로 기대를 걸고 있다네. ]
딸칵.
"......"
-의사를 무슨 사회사업가로 착각한단 말이야...
우리는, 매일같이 타인의 죽음과 맞닥뜨려야 한다.
-우린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이전에 학자일세...그렇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의사는, 출세와 돈과 자신의 연구만을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는 말은.
-난 책임 없어...
-당연하지.
-그렇지?
언젠가, 누군가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기 훨씬 전부터 의사는, 내겐 당연히 가야 할 길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그러했고 나의 형들이 그러했듯이.
-사람의 목숨은 평등한 게 아닌걸...
원한는 연구를 하기 위해 출세를 해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수술을 성공시켜 입지를 굳혀야 했고.
-그따위 오페라가수보다는 내 아들이 먼저 실려 갔었어! 당신이 내 아들을 뒤로 돌린 거야!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생각하던 의사의 길이라는 것이 , 그렇게 변해버린 건...
-살려내! 내 아들을 살려내!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시장이 헬기로 도착했다! Dr. 보이어!"
"CT뒤에 즉시 뇌혈관 촬영을!"
"혈전폐색 부위의 확인을 부탁해!"
함께 수술을 집도하도록 지시 받은 Dr. 보이어와 Dr. 아이젠이었다. 두 사람은 가만히 서서 머뭇거리는 덴마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자네가 함께 한다니 마음이 든든하군."
"자! 준비하고 오게 Dr. 덴마!"
그들은 급히 수술실로 향하다가 덴마가 여전히 쳐져 있음을 깨닫고는 뒤돌아 섰다. 덴마는 눈의 초점이 풀린 채 멍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살려내야..."
"왜그러나 Dr. 덴마?"
덴마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나는... 먼저 들어온 수술이 저쪽에 기다리고 있어서."
"......?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던 그들은 덴마가 제 3수술실 쪽으로 돌아서자 그제서야 다급히 덴마를 불렀다.
"이...이봐, Dr. 덴마!"
"이건, 원장의 명령이야!"
"시장의 CT스캔이 방금 끝났습니다. 어서 사진실로..."
"아..알았어. 이것 보라고...Dr. 덴마!......덴마!"
쾅!
제3수술실의 문이 닫히고, 수술중임을 알리는 등이 켜졌다.
"...이런..."
"사전취재는 가능할까요?"
"당치도 않아요...아직은 무리랍니다, 형사님..."
두 사람은 힐긋 병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금 막 실려온 여자아이는 아직도 충격이 앙금처럼 가시질 않은 얼굴이었다.
1986년. 뒤셀도르프. 전 동독 무역국 고문, 리베르토 일가의 사건 당시.
열려진 창 밖으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는 부들거리는 총구를 보며 천진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곤 가볍게 고개를 숙여 머리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날 쏴..."
우라사와 나오키씨의 만화 몬스터를 제멋대로(--;) 소설화해본 것입니다. 창작란에다 올리기엔 엄청나게 찔려서 여기다 올립니다.
비가 차의 앞유리를 때리고있었다. 끊임없이 닦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엄청난 폭우에 시야가 어지러웠다.
"그래서......환자는 남자아이 한 명인가?“
“네 총격사건으로 부모는 즉사했습니다.”
“알겠네. 5분내에 병원에 도착할거야. 구급차가 도착하거든 구급담당 Dr.에케너에의 지시에 따라 즉시 CT스캔을......”
덴마는 급한 것들을 우선 지시해두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의 옆 좌석에 놓인 손수건이 언뜻 보였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에바를 집에 바래다주었을 때 그녀가 흘린 것이다.
원장은 문을 열어둔 채 현관에서 기다리고있었다.
“어머나, 아빠.”
덴마도 함께 내렸다. 그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이네먼 원장. 소중한 따님을 이런 시간까지......”
“무슨 소린가, 덴마. 에바는 이미 자네의 약혼녀가 아닌가? 잠시 들려 차라도 한잔 들고 가게나.”
하이네먼 원장은 덴마를 거실로 안내했다.
“내년 4월에 결혼식 택일을 하기로 한 것은 부모님께 말씀드렸나?”
“네...하지만 작은 규모의 병원이라 한 사람이라도 장기간의 휴진은 업무에 큰 차질을 빚기 때문에...독일까지 오실 시간이 있을지 어떨지......”
“형님이 아버지의 뒤를 이을 거라면서? 좋은 기회니까, 부모님께선 느긋하게 외국여행을 즐기시는 것도 좋지 않겠나?”
“그래, 우리 집에서 초대할 테니까.”
하이네먼 원장이 미리 말해두었던지 곧 세 사람 앞에 차가 한잔씩 놓였다.
“저는 단지 원장님의 논문을 읽고 감명을 받아 찾아왔던 레지던트였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이곳 하이슬러 기념병원 최고의 솜씨를 지닌 의사이지 않은가?”
덴마가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원장님껜 아무리 감사 드려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원장은 마주앉은 에바와 덴마를 번갈아 보며 흐뭇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참, 얼마전의 논문은 썩 잘되었더군. 지금은 <자주막하출혈후의 뇌혈관 연축>의 연구에 들어가 있다고?”
“아...네. 개를 자주막하출혈의 모델로 만들어서, 연축혈관을 보고 있습니다. 그 메카니즘의 일부라도 알고싶어서요......결국엔 치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호오.”
하이네먼 원장은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말했다.
“...하지만 그 연구는 캔슬일세.”
“...네?”
그가 웃었다.
“음...이번 <유럽 구급 의학회 총회>에서는 내가 심포지스트로서 발표하게 되었거든......테마는 <구급의료체제의 현상과 전망일세>. 자네에게 초고를 맡기겠네.”
“아......하지만, 조금만 더하면 <뇌혈관 연축의 연구>가 완성되려는 참인데......”
원장은 시선을 에바쪽으로 돌렸다.
“음, 정말이지 오늘 낮엔 난처하더군.”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빠?”
“......”
“<부정의료를 규탄하는 모임>인지 뭔지 모르지만, 수상쩍은 민간단체가 의료실수와 오진에 대한 피해자들을 위해 일어서겠다며 병원으로 들이닥쳤거든.”
“어머나......”
“음...그래. 얼마전의 오페라가수, 로젠바하의 수술에 관해서도 소동이더군. 먼저 실려간 토루코인 환자를 뒷전으로 했다며 트집을 잡는 게야.”
덴마는 그때의 그 노파와 소년을 떠올렸다.
하이네먼 원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이구...그런 놈들의 착각엔, 이젠 질려버렸어.”
“착각...?”
“의사를 무슨 사회사업가로 착각한다는 말이야......우린,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이전에 학자일세. 그렇지 않나, 덴마?”
“네?...아...네......”
그는 누구를 향해서인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개인적인 감정에 일일이 구애되고있으니 의료의 진보가 있을 턱이 있나?"
"아빠 말씀대로 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덴마?"
"아......그래."
"우리에게는 보다 넓은 시야에 서서 독일...아니, 유럽의 의학계를 이끌어나갈 중요한 사명이 있네. 그 때문이라도 이번 <유럽구급의학회 총회>에서는 유럽 전체를 뉴미디어로 묶는 구급의료네트워크를 제창할 생각이지."
"아...저어...원장님. 하지만 이제 곧 연구가 마무리될 참인데..."
"음...어쨌든 자네 연구는 캔슬일세. 내 논문을 부탁하겠네."
"......"
덴마는 무릎에 놓은 두 손이 꽉 쥐어지며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수치심일까? 아니면......
"자네에겐 기대가 커, 덴마군."
덴마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덴마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는 빗길에 미끄러져서 정지선을 넘어, 교차로 안쪽으로 들어섰다.
"끼기기기긱..."
차는 오른편 도로에서 진입 중인 트럭과 부딪히기 직전에 간신히 정지되었고, 트럭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던 듯 멈추지 않고 지나쳤다. 트럭은 덴마의 차를 지나쳐 가며 그제야 뒤늦게 경적을 울려대었다.
트럭의 육중한 뒷모습이 어두운 빗속에 녹아 어슴푸레하게 사라져간다. 다행히 다른 차량은 없었다.
덴마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문득 손에 들고있던 손수건을 옆좌석으로 던졌다. 하이네먼 원장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자네에겐 기대가 커, 덴...'
이것으로......정말 괜찮은 것일까?
"제길!"
앰뷸런스도 이제 막 도착한 듯했다.
"환자는?"
"방금 안으로!"
덴마가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호흡기에 연결된 호스를 소년의 기관 내에 삽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급히 다시 이동하려던 그들을 덴마는 서둘러 따라붙었다.
"아,Dr.덴마."
"용태는?"
"혈압72/50.맥박138!"
"총탄은, 전두부에서?"
소년은 머리전체를 붕대로 감고있었고 잠옷에는 머리에서 흘린 피가 그대로 굳어있었다.
"총탄이 머리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즉시 뢴트겐사진을!"
"알았어!"
일단 수술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덴마는 함께 실려온 듯한 응급환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환자를 다루는 움직임을 보아 그리 급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 아이는?"
"방금 그 남자아이의 쌍둥이 누이입니다."
"외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인 쇼크가 큰 듯한......"
덴마는 소녀의 바싹 마른 입술이 뭐라고 계속 웅얼거리는 것을 보고는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가느다란 숨결이 귓가에 느껴질 정도가 되어서야 희미하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날 쏴..."
"...뭐?"
"Dr.덴마? 두부사진과 CT스캔이 준비되었으니, 어서 사진실 쪽으로"
"아...알았어. 지금 가지."
"이건...전두부로 들어가서, 뇌의 최심부에 멎었군.
"흠..."
"...총탄이 좌중대뇌동파를 스치고 있어요...이거 힘들겠는데요?"
"뭣?"
"......과연 Dr.덴마의 말대로야. 이거 성가시게 됐는 걸..."
"총탄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파열해서 출혈할지도 모르겠군."
그때 사진실 안으로 한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Dr. 베크. 당직인 당신이 늦으면 어떡합니까?"
"아마 또 예의 간호사랑 같이 틀어박혀 있었겠지, 뭐."
"하..하...이거 정말 미안하네."
덴마는 사진들을 한동안 번갈아 보다가 중얼거렸다.
"양측 전두를 개두하고, 골편제거, 오염뇌의 제거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중히 총탄을 제거하고...손상혈관을 형성한다......"
덴마는 그제서야 Dr.베크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 인사 대신 가볍게 웃어주었다.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두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지요."
"좋아, 가세!"
수술에 들어가기 전, 덴마는 차가운 물에 손을 씻어 냈다.
"혈압 120/80. 맥박92. 양호합니다."
"마취했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
똑!똑!
"네?"
끼익...
"외과부장?"
그는 급히 달려온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Dr.덴마, 잠깐, 밖으로......"
"시장이......로데커 시장이 쓰러졌네. 휴양하던 별장에서. 지금, 헬기로 오고있네. 앞으로 10 이내에 도착할걸세"
"그럼, Dr. 보이어에게 연락해주십시오."
그가 언성을 높였다.
"내경동파폐색의 가능성도 있네! 만일 그렇게 되면 자네가 수술을 집도해야!"
"네? 하...하지만, 방금 저 아이의 수술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는 두툼해 보이는 주머니에서 무선 수화기를 꺼내었다.
"하이네먼 원장의 지시일세. 전화를 받아보게."
덴마는 주저하며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네...덴마입니다."
[ 아, 덴마군인가? 시장건을 잘 부탁하네. Dr. 아이젠과 Dr. 보이어에겐 이미 연락을 해두었네. 최선을 다해주게. ]
"하...하지만 원장님...저는 방금 다른 수술을 시작하려던 참으로......"
[ 그쪽은 Dr. 베크에게 맡기면 돼. ]
"지금, 시작하려는 수술환자는...그 아이는 총탄이 좌중대뇌동파를 스치고 있어서 상당히 어려운 수술이 될 것 같습니다. 로데커 시장은 Dr. 보이어에게 맡겨도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저 아이의 수술은 제가 집도하지 않으면 ...Dr. 베크에게 맡기는 것은 아무래도 좀..."
[ 어쟀든 최선을 다해 시장을 구해주게 ......로데커는 이번 의료심사 특별위원회에서 우리 아이슬러 기념병원에 대한 조성금을 대폭적으로 증액하기로 약속했거든. ]
"네? 그..그런..."
[ ...놈은 아직 죽어선 곤란하단 말일세. ]
"......"
[ 잘 부탁하네 덴마. 자네에겐 정말로 기대를 걸고 있다네. ]
딸칵.
"......"
-의사를 무슨 사회사업가로 착각한단 말이야...
우리는, 매일같이 타인의 죽음과 맞닥뜨려야 한다.
-우린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이전에 학자일세...그렇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의사는, 출세와 돈과 자신의 연구만을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는 말은.
-난 책임 없어...
-당연하지.
-그렇지?
언젠가, 누군가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기 훨씬 전부터 의사는, 내겐 당연히 가야 할 길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그러했고 나의 형들이 그러했듯이.
-사람의 목숨은 평등한 게 아닌걸...
원한는 연구를 하기 위해 출세를 해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수술을 성공시켜 입지를 굳혀야 했고.
-그따위 오페라가수보다는 내 아들이 먼저 실려 갔었어! 당신이 내 아들을 뒤로 돌린 거야!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생각하던 의사의 길이라는 것이 , 그렇게 변해버린 건...
-살려내! 내 아들을 살려내!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시장이 헬기로 도착했다! Dr. 보이어!"
"CT뒤에 즉시 뇌혈관 촬영을!"
"혈전폐색 부위의 확인을 부탁해!"
함께 수술을 집도하도록 지시 받은 Dr. 보이어와 Dr. 아이젠이었다. 두 사람은 가만히 서서 머뭇거리는 덴마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자네가 함께 한다니 마음이 든든하군."
"자! 준비하고 오게 Dr. 덴마!"
그들은 급히 수술실로 향하다가 덴마가 여전히 쳐져 있음을 깨닫고는 뒤돌아 섰다. 덴마는 눈의 초점이 풀린 채 멍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살려내야..."
"왜그러나 Dr. 덴마?"
덴마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나는... 먼저 들어온 수술이 저쪽에 기다리고 있어서."
"......?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던 그들은 덴마가 제 3수술실 쪽으로 돌아서자 그제서야 다급히 덴마를 불렀다.
"이...이봐, Dr. 덴마!"
"이건, 원장의 명령이야!"
"시장의 CT스캔이 방금 끝났습니다. 어서 사진실로..."
"아..알았어. 이것 보라고...Dr. 덴마!......덴마!"
쾅!
제3수술실의 문이 닫히고, 수술중임을 알리는 등이 켜졌다.
"...이런..."
"사전취재는 가능할까요?"
"당치도 않아요...아직은 무리랍니다, 형사님..."
두 사람은 힐긋 병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금 막 실려온 여자아이는 아직도 충격이 앙금처럼 가시질 않은 얼굴이었다.
1986년. 뒤셀도르프. 전 동독 무역국 고문, 리베르토 일가의 사건 당시.
열려진 창 밖으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는 부들거리는 총구를 보며 천진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곤 가볍게 고개를 숙여 머리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날 쏴..."
우라사와 나오키씨의 만화 몬스터를 제멋대로(--;) 소설화해본 것입니다. 창작란에다 올리기엔 엄청나게 찔려서 여기다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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