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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사람 - 판단(判)

[김현진의 까칠거칠]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

작성자박동현|작성시간10.01.11|조회수71 목록 댓글 0

[시사인89호] 2009년 05월 25일 (월) 김현진 (에세이스트)

 

   
냉소적이고 삐딱한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못된 염소인지라, 사람을 잘 믿거나 좋아하는 긍정적인 성격이 못 된다. 칼럼명도 ‘까칠거칠’이니 말 다 했지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따위 노래를 들으면 닭살이 돋아서 즉시 거동이 불가한 상태가 되고, 비꼬아 말하기 좋아하고 사람이야 어차피 제 이득이 없는 한 움직이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게 지난해 여름이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단식투쟁 현장에 앉아 같이 굶는 것밖에 할 게 없는 무력감이 너무 싫어서 살림 내다 팔아 사람들 먹일 컵라면이라도 마련하자는 취지로 ‘입금투쟁’을 시작했고 인터넷으로 기증품을 모집했다. 물론 내다버려도 아무도 안 집어갈 쓰레기 같은 물건을 착불로 보내거나, 인터넷으로 판매한 책값이 얼마나 된다고 그거 떼먹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니들은 그래라, 싶을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은 따뜻했다.

포장을 뜯자마자 ‘이분, 손에 잡히는 대로 살림살이 탈탈 털어서 싸보냈구나’ 싶을 정도로 샴푸고 화장품이고 심지어 요리용 주걱까지 온갖 게 다 든 그 상자는 따뜻했다. 속옷 회사에 다니는 분이 보내준 부대에 든 속옷 한 보따리도 따뜻했다. 일단 속옷 하나 사러 다닐 시간도 없이 투쟁하는 조합원들이 먼저 환호했다. ‘이건 현장에 계시는 분들 몫이에요’라고  쓰인 그 음료수 병도 따뜻했다. 현장에서 바자회를 여는 건 품이 많이 들기에 나중에는 인터넷으로 판매했고, 아예 시간 많은 백수라는 핑계로 택배비도 아낄 겸 직접 배달까지 다녔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물건 받고 쥐여주는 그 커피 캔, 참 따뜻했다.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 1지회장이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둔 채 목숨을 끊었다. 해도 해도 안 돼서, 죽을 힘을 다해 살아봐도 안 되는 절망이 그를 그리로 내몰았을 것이다. 고인의 아내 박수진씨는 아이들 아빠가 헛되게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고 견디겠다고 말했다. 나는 얼마 전 회사를 때려치운 뒤 일하고 있는 카페에 양해를 얻어 한쪽에서 유가족을 위한 후원 바자회를 열었다. 날이 우중충한 일요일이었다.

   

아낌없이 책이고 CD고 뭐고 싸서 짊어지고 온 사람, 이거라도 써달라며 문화상품권에 영화표 몇 장을 내밀고 간 사람, 바리바리 쟁여놓았던 옷이며 화장품을 싸가지고 온 아가씨…. 거기 모였던 우리는 투쟁이니 계급이니 열사니 하는 단어는 잘 몰라도, 서로 가엾게 여기는 마음만은 아직 있다.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1980년 봄, 광주에서 주먹밥을 만들고 2000원씩 걷었던 어머니들의 마음도 투쟁이니 투사니 저항이니 하는 단어 위에 있는, 서로 어여삐 여기는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서로 가엾게 여기는 따뜻한 마음


나는 대중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어떤 지식인들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그 대중의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운 어떤 점을 안다. 물론 나 역시 ‘대중 1’에 불과하므로 우리 편 들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대단한 논리나 이상 말고 일단 우리가 서로 가엾게 여기는 그 마음을 믿는다. 촛불을 켜고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은 그 힘, 두들겨 맞는 옆 사람을 감싸주고 함께 물대포를 맞던 힘, 죽은 사람을 안타까워하고 남은 가족 어쩌나 근심하는 그 힘, 두껍지도 않은 지갑을 열어 이거라도 보태자는 그 힘, 얄팍하나마 사랑스럽고 애잔한 그 힘…. 그것을 정이든 연민이든 군중심리든 뭐라 불러도 좋다. 그래도 일단 견디고 버티자. 그거라도 잡고 지탱하자. 끝까지 싸워 견디겠다고 이야기하는 고인의 가족이 버티도록, 같이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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