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인89호] 2009년 05월 25일 (월) | 김현진 (에세이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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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비정규직 단식투쟁 현장에 앉아 같이 굶는 것밖에 할 게 없는 무력감이 너무 싫어서 살림 내다 팔아 사람들 먹일 컵라면이라도 마련하자는 취지로 ‘입금투쟁’을 시작했고 인터넷으로 기증품을 모집했다. 물론 내다버려도 아무도 안 집어갈 쓰레기 같은 물건을 착불로 보내거나, 인터넷으로 판매한 책값이 얼마나 된다고 그거 떼먹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니들은 그래라, 싶을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은 따뜻했다. 포장을 뜯자마자 ‘이분, 손에 잡히는 대로 살림살이 탈탈 털어서 싸보냈구나’ 싶을 정도로 샴푸고 화장품이고 심지어 요리용 주걱까지 온갖 게 다 든 그 상자는 따뜻했다. 속옷 회사에 다니는 분이 보내준 부대에 든 속옷 한 보따리도 따뜻했다. 일단 속옷 하나 사러 다닐 시간도 없이 투쟁하는 조합원들이 먼저 환호했다. ‘이건 현장에 계시는 분들 몫이에요’라고 쓰인 그 음료수 병도 따뜻했다. 현장에서 바자회를 여는 건 품이 많이 들기에 나중에는 인터넷으로 판매했고, 아예 시간 많은 백수라는 핑계로 택배비도 아낄 겸 직접 배달까지 다녔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물건 받고 쥐여주는 그 커피 캔, 참 따뜻했다.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 1지회장이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둔 채 목숨을 끊었다. 해도 해도 안 돼서, 죽을 힘을 다해 살아봐도 안 되는 절망이 그를 그리로 내몰았을 것이다. 고인의 아내 박수진씨는 아이들 아빠가 헛되게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고 견디겠다고 말했다. 나는 얼마 전 회사를 때려치운 뒤 일하고 있는 카페에 양해를 얻어 한쪽에서 유가족을 위한 후원 바자회를 열었다. 날이 우중충한 일요일이었다.
아낌없이 책이고 CD고 뭐고 싸서 짊어지고 온 사람, 이거라도 써달라며 문화상품권에 영화표 몇 장을 내밀고 간 사람, 바리바리 쟁여놓았던 옷이며 화장품을 싸가지고 온 아가씨…. 거기 모였던 우리는 투쟁이니 계급이니 열사니 하는 단어는 잘 몰라도, 서로 가엾게 여기는 마음만은 아직 있다.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1980년 봄, 광주에서 주먹밥을 만들고 2000원씩 걷었던 어머니들의 마음도 투쟁이니 투사니 저항이니 하는 단어 위에 있는, 서로 어여삐 여기는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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