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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생활수행

열반, 불성, 자성, 주인공, 본래면목이라는 말 다 빼고, 지금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

작성자小百合|작성시간23.12.19|조회수68 목록 댓글 0

불교를 공부하면서 꼭 불성이니, 본래면목이니, 견성이니 하는 말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말들은 어디까지나 방편의 말일 뿐이다.



임시방편이란 말처럼 말은 언제나 임시적으로 필요할 뿐이다.



지금 여기에 진리가 환히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불성이 현현한다, 법신불 밖에 없다, 성품은 늘 드러나 있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그런 말이 없어도 좋다.



오히려 그런 말들은 있는 그대로의 이 평범하고 당연한 이것을 장엄하는 장엄문에 지나지 않는다.



장엄이란, 치장하는 것이고, 광고하고 현혹하는 꾸며낸 과장이란 뜻이다.



그런 말 다 빼고, 지금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



눈 앞에서 경험되고 있는 현실 이대로일 뿐이다.



이것이 전부다.



이것을 해석하지 않고, 판단 분별하지 않고, 그저 경험되는 이대로를 맨느낌으로 그저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따로 있을까?



삶이 곧 진실이란 말도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



그런 말을 억지로 믿으라는 뜻이 아니다.



늘 펼쳐지고 있는 삶 이것 밖에 없지 않은가?



이것 말고 또 다른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가?



삶이란 이대로의 여실한 실상에 대해 판단하고 해석하면 사람들마다 이 현실은 다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판단분별 없이 그냥 보면, 그저 이럴 뿐이다.



이대로의 삶이 그저 이렇게 담연하게 펼쳐져 있지 않은가.



나라는 삶이, 눈에 보이는 삶이 이렇게 펼쳐지고 있다.



저절로 흘러가고 있다.



나 또한 삶으로써 이렇게 저절로 자연스럽게 살아지고 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인 삶이 인연따라 흘러간다.



거기에 '나'라는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고, 분별로 해석하지 않으면, 지금 이대로 무엇이 부족한가?



또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모든 것은 저절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이것 외에 또 다른 신비로운 진리의 세계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런 것은 없다.



지금 이것이 전부다.



해탈, 열반, 불성, 자성, 주인공, 본래면목도 하나의 말일 뿐이다.



그 말에 끌려가지 않으면, 지금 여기에서 경험되는 있는 이대로가 알아차려질 뿐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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