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조 가 (黃鳥歌)
翩翩黃鳥(편편황조) 펄펄 나는 저 꾀꼬리
雌雄相依(자웅상의) 암수 서로 정답 구나
念我之獨(염아지독) 외로워라 이내 몸은
誰其與歸(수기여귀) 뉘 와 함께 돌아 갈까
(유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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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高句麗) 2대 유리왕(BC 17년)이 지었다고 전(傳)해지는 한시(漢詩)이나 정확히 한시(漢詩)를 짓기 시작한 시대(時代)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전(傳)하는 것을 보면,
꾀꼬리 생각하면 나는 고독한 몸 이 시를 지은 유리왕은 왕비 송씨(松氏)가 죽자 왕이 사냥에서 돌아와 이 말을 듣고 곧 말을 달려 뒤를 왕이 탄식하며 나무 밑에서 쉬는데, 짝을 지어 날아가는 위의 사실에 근거(根據) 한다면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우리나라의의 고시(古詩)를 살펴보면 알려져 왔으나, 고구려 승려 정법사(定法師)의 《영고석(詠孤石)》 칠언고시(七言古詩)는 원효의 시(詩)라든지 수로부인의 설화에 고려시대(高麗時代)를 살펴보면 김부식을 위시한 당시 귀족시인들의 귀족적 여유에서 나온 특히 서경(西京) 출신 정지상은 서경 특유의 정조(情調)를 무신집권시대의 구귀족 세력의 후예들과 이인로는 무신정권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식과 구귀족사회에 임춘은 불우한 처지에서 자기 의식에 집착된 산문성이 강한 이규보는 독창성을 강조하는 진취적인 창작 자세로 다양한 그의 장편 서사시 《동명왕편(東明王篇)》은 민족적 ·민중적 정열적으로 시화(詩化)한 것으로서 그 뒤 원(元)나라 군림기로 승려들의 시작(詩作) 활동과 성리학(性理學) 수용을 지향하는 선시(禪詩)는 인생의 의미를 불교적으로 심화시키면서 원감(圓鑑)은 원(元)나라 군림하의 고려 민중의 고난을 위시하여 성리학적(性理學的) 사유에 접한 신진사대부 층은 외식적(外飾的) 이제현(李齊賢)의 노건(老健), 이숭인(李崇仁)의 온자(蘊藉), 앞 시대의 이규보에게서 그 단초(端初)가 열린 농민현실 고발과 이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정도전(鄭道傳)의 밝고 한시(漢詩)의 자국(自國) 민간가요 세계에의 접촉이라는 점에서 조선시대(朝鮮時代)를 살펴보면 사대부 층의 자기분화(自己分化)에 의한 상이한 성격과 체질을 가진 조선 왕조 체제를 수립하고 15세기 역사의 주역이 되었던 이미지와 교묘한 시어를 구사하여 화미(華美)·부염(富艶)의 미학을 성현(成俔)의 시는 주정성(主情性), 낭만성을 띠면서도 불우한 체제에서 일탈(逸脫)된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방외인계(方外人系)의 재야(在野) 세력으로 남아 있다가 사림계(士林系)의 선두로 중앙에 관노(官奴) 출신 어무적(魚無迹)이 지배층에의 강렬한 저항 시편을 관찬(官撰)으로 성종 때 이루어진 《동문선(東文選)》과 중종 때 황진이(黃眞伊), 이매창(李梅窓), 이옥봉(李玉峰), 사림파의 정치적 역할이 증대되고 도학(道學)의 학문적 탐구와 서경덕(徐敬德),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이이(李珥) 등이 송익필(宋翼弼)은 미천한 신분 출신이면서도 도학파와의 연계에서 정철(鄭澈)은 그의 국문시가와의 대비에서 한시가 떨어지는 송시(宋詩)의 사변성(思辨性), 기교성(技巧性)과 도학파시의 배워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출을 지향하는 운동이 이 삼당의 시풍은 임제(林悌)에게 이르러 한층 분방하게 허균(許筠)은 조선왕조 한시의 선집인 《국조시산(國朝詩刪)》을 권필(權糧)은 청려(淸麗)한 시풍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광해군(光海君)의 난정(亂政)을 풍자한 시로 필화(筆禍)를 당해 이들은 모두 천부적인 시재를 타고난 출중한 규수시인이었으며 한자로 시심을 표현하는 한시에는 다양한 주제의 시가 등장합니다. 자연의 경치를 묘사하는 서경시(敍景詩), 특정한 주제에 대한 시인의 정서와 감회를 노래하는 서정시(抒情詩), 역사적인 사실을 묘사하며 경우에 따라 시인 자신의 평가를 곁들이는 영사시(詠史詩), 사람과의 이별을 노래하는 전별시(傳別詩)가 있는가 하면, 자연이나 인간사를 냉소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이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풍자시(諷刺詩), 자신의 수양이나 자손들에게 삶의 가르침을 나타내 주는 교훈시(敎訓詩), 죽음 직전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감정을 압축해 토해 내는 절명시(絶命詩)의 숙연함도 있다. 한시의 상당한 숫자는 선비들이 자신의 몸가짐이나 구도에의 열정과 자연친화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도학풍(道學風)의 시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한시는 이밖에도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내용도 다수 전해 내려 옵니다. 오늘은 역시 고려조의 문신인 정포선생의 칠언절구 한수를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을 노래하는 전별시의 일종인데, 제목이 양주객관별정인(梁州客館別情人)으로 우리말로 옮기면 “양주의 여관에서 정인을 이별함”으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五 更 燈 燭 照 殘 粧 (오경등촉조잔장) 欲 話 別 離 先 斷 腸 (욕화별리선단장) 落 月 半 庭 推 戶 出 (낙월반정퇴호출) 杏 花 踈 影 滿 衣 裳 (행화소영만의상) 새벽 등불은 여인의 화장 자국 비춰 주는데, 작별을 고하려는 나의 애가 끊어지는 듯, 달빛어린 뜰에서 문 열고 집을 나서려 하니, 살구꽃 그림자는 온 몸을 감싸 주네. (어휘풀이) 五更 :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 殘粧 : 남아있는 화장 자국 欲 : ~ 하고자 하다 欲話 / 말하고자 하다. 斷腸 : 창자를 끊어내다(고통의 절정을 표현하는 말) 落月 : 지는 달, 새벽달 半庭 : 뜰의 절반 /滿庭은 뜰안 가득 推戶 : 문을 밀어내다. 杏 : 살구 踈影 : 그림자 (지은이) 정포(鄭誧), 字는 중부(仲孚), 號는 설곡(雪谷). 1309년에 태어나서 1345년 36세로 별세하다. 1326년 문과에 급제후 예문수찬(藝文修撰), 좌사간(左司諫), 전리총랑(典理摠郞)등의 벼슬을 지내다. 정사의 쇄신과 국정의 개혁을 상소 후 면직되어 경상도 울주(蔚州)에 귀양가다. 석방후 원나라 연경에 들어가 지내든 중 젊은 나이로 병사하신 분입니다. 시와 문장에 능한 분이며 저서에 “雪谷集”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