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역사에서 한 인물, 현 우리 사회 인간성 문제,
그로 인한 나라 현실 진단, 미연에 방비하자!
잘못 된 한 인간,
그것도 힘을 가진 권력의 정점에 있거나, 나라 권력의 지휘봉을 잡은 지도자
그들이 어떤 인물인가?
인간성, 근본, 정서, 정체, 애국심 등,
힘을 가지고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행사하는가!
그 한 사람이 선택하는 정치적 행보가
얼마나 국민들을 이롭게 하거나 해롭게 할 수 있는지!
그 영향력이 나라 안위 여부와 직결되고,
국민 행복인가, 아니면 고통인가? 직결되고,
그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회를 질서를 바로 잡거나
아니면 혼란과 불안 사회로 몰아서 어떻게 공동체에 절망을 안겨다 주는지!
결정적인 순간에 그 한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내몰 수 있는지!
이를 너무도 명확하게 잘 드러내 보여주는
우리 역사속 한 인물을 소환해 내고자 한다.
왜냐하면 과거에 실현 된 인물로 끝난 것이 아니란 점 때문,
이런 유형의 인물들은 현재에서도 돌고 돌면서 계속 일어나고,
지금도 그 인물은 현 우리 사회 속에서 함께 공존한다는 엄연한 사실,
이전 정부에서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그런데 앞으로 안 나온다는 장담, 또한 안 된다는 사실,
오늘은 이 부분을 심도있게 다루고자 한다.
특히 조선 왕조 실록에서 있었던 한 인물을 통해서
인간성과 그 인간성의 사악함의 근본성을 다루고,
그것이 어떻게 현 우리 사회 파괴로 연결되는지,
왜냐하면 지금도 그와 똑 같은 현상이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
인조 반정의 1등 공신 중의 한 명, 신라 경순왕의 11대 직계손, 조선의 권문세가, 그 일족이 어느 날 조선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김자점, 우리는 이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한 사람 때문에 이 가문 자체가 멸족을 당한 것이다. 김구 주석은 자신의 선조임을 솔직하고 겸손하게 고백하고 당시 일제 강점기 배반하는 자들이 판치는 조선 말기 시절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진솔하게 자신의 선조에 대한 고발로써 그 같은 인물을 만천하에 들추어내며 고발하고자 했음이 아니었겠는가?
김자점, 이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이 사람을 잘 이해 할 필요가 있겠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런 유형의 인물들이 우리 사회 안에서 너무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사회 각 분야에서 접하게 되고, 우리 현대가 이들 관리만 잘 하게 되어도 나라와 국민들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것을 미연에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 교훈은 현재를 가늠하는 하나의 예준이 될 수 있다. 이 사람 김자점은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준 인물 중의 한 명이었다. 조선 왕조 마지막 인물이었던 이완용에는 좀 덜 미치지만 그에 버금가는 배반자,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나라 파괴자, 정보를 적국에 넘긴자, 자신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자신 정부를 배반하고 온갖 악행을 일삼은 자, 권력을 추구하는 그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냉혹하게 자신 주위 동료들과자국 공동체를 파괴했던 자였다. 이 사람은 폭군 광혜군을 폐위 시키고 인위적으로 인조를 왕위에 올리는데 앞장을 섰다. 정치의 줄을 잘 선 것인가? 단순하게 이런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소위 적극적인 가담자로 농공행상에서 일등 공신 작위를 받은 것이다. 순간에 조선 왕실 가장 최상층부에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 되었다. 인간은 이런 드라마틱한 쾌감 때문에 나쁜 방법을 통해서라도 올라서려고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한 판 벌여보자! 등의 요행수나 한 번 기회를 잡는다는 유혹은 모든 인간에게 일어나는 충동 작용의 문제일 것이다.
무엇이 남는가? 이기면 승자, 지면 패자라는 갈림길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의도되지 않은 방향, 계속해서 예상 하지 못한 다른 변수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모든 사회의 변화를 가져 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를 예측불가결의 인생문제라 할 수 있다.
김자점 한 사람의 존재,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 이 문제로 끝나는 인간 사회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해석들에 따라 다른 관점들이 나오지만 이것은 군주제 시대에 자주 볼 수 있는 사건들 중 하나의 선례이다. 이제 성공을 한 김자점은 어떤 행보를 해 왔고 이것이 조선 중기 이후 어떤 날개 짓이 되었는지, 우리는 탐험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오늘 시대를 조명해주는 실현 된 선조들의 지난 역사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일등공신이 되어 조선 왕실 정치 중심에 들어선 이 사람, 일반적으로 이런 사람의 사회 첫 출발을 우리는 좀 냉정히 들여다 보고 넘어 갈 필요가 있을 것이우술을 마시는 술꾼들 사이에서 술주정이 심하면 묻는다. 처음 술을 누구에게서 배웠는가? 하고 첫 시작을 상기시킨다. 이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하강는 점이다. 사회 첫 출발을 어하느냐했는가?
이는 일생 동안 우리 공동체의 질서와도 직결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되는 가정들이 건강할 때, 그 나라 사회 역시 건강하다는 논리이다. 각자 각자 개개인이 사회 생활의 첫 출발을 정상 범위 내에서 바르게 잘 출발했다면 이것은 모두가 모여사는 자국 기반을 바람직하고 안정되게 하는 근본이 될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에 의해서 시작하는가? 아니면 공식적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하지 않고 국힘처럼 자신들이 권력을 가진 갑의 위치라고 예외나 특별성을 스스로 부여하며 그 힘으로 자기 자녀들이나 지인들의 자녀들을 시험 제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좋은 직업전선에 꽂아 버리는가? 군대도 수작을 부려서 빼내고, 공기업 등에 낙하산으로 멤버가 되게 하는 비정상 케이스들이 판을 치는 나라라면, 그 나라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그런 일들이 국힘의 권위 아래 은밀히 난무하다는 것이다. 국힘은 이 같은 형태를 잘 보여준다.
이런 비정상 루트로 올라 선 이들은 대부분 성공하고 힘을 갖게 되었을 때, 얼마나 자기 공동체를 무너트리는 자들이 되는지, 그것도 걸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국힘은 언제나 이 같은 작태를 드러낸다. 김자점의 사회 첫 걸음은 자기 가문, 부모의 빽, 아니면 자기 부모들이 속한 조직의 힘에 의해서 사회 생활이 시작되었다.
오늘로 말하면 낙하산으로 시작한 인생이었다. 그런 부류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나라와 사회를 우습게 여기고 힘을 가지고, 높이 올라갈수록 사회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자신들을 예외의 사람들로 생각하며 헌법도, 사회 규범도, 정부 조직의 원칙도 다 무시한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도 이런 점이다.
우리 국민들은 법에 걸리면 법대로 처벌을 받는데 국힘에 속한 집단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든지 빠져 나간다. 법이 이들에게 오면 무장해제 되 버린다. 이것이 검찰, 사법부, 국힘, 극우 보수가 보여주는 몰지각 행보들이다. 이 기반들은 자신들 성공, 부귀 영화를 구축하기 위해서 언제나 나라와 정부의 재정을 거덜내고 국민들을 억압하는 갑질의 짐승들이 된다는 것이다.
김자점의 인생 첫 출발이 이랬다고 볼 수 있다. 정상적으로 과거 시험을 봐서 자신의 실력과 인품으로 조선 왕실 정계에 입문을 한 것이 아니었다. 사대부 권문세가라는 가문의 빽, 소위 오늘날로 말하면 낙하산 인사였던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신들 스스로 특권층으로 여기는 자들의 몰지각 행위이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도 딸라갈 수 없이 입이 화려하다. 입으로는 정의, 공정, 법을 잘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들 자녀들이나 조직 안의 인사, 재정, 좋은 자리, 나라의 최상층부 등, 그것들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오로지 자신들 중심으로 한다.
예외를 두거나 때론 편법으로 빠져나가고 철저히 부정으로 임한다. 잘못을 했어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들에게 면책을 주는 법으로 활용하고, 자신 조직에 속한 이들은 용서를 해주고, 이것은 소위 자기 식구 개념이다. 자기 조직에 속한 대상들을 중점으로 국가 기업 핵심 분야에는 낙하산 인사를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다.
김자점은 그런 케이스로 정치에 입문을 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자들 마음에는 나라가 이미 정한 법과 원칙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권력, 힘이란 그 빽이 배경이고, 답이고, 진실이고, 정의라고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철저히 이중적인 행위의 기술자들이 되는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표를 확보하여 나라 정치 권력을 장악해야 해서 거짓의 이중성을 잘 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탕이 된 자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자기들만의 생철학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보수 기반이 지향하는 반자국 정치 구현이다.
광혜군은 자신의 정통성 운운하며 폐위를 시키려 하는 인목대비를 역으로 폐위시키고 유폐 했다. 이때 김자점은 이를 반대하다가 조선 왕실 정치에서 쫓겨났다. 이것이 광혜에 대한 김자점의 분통 터지는 문제가 되어 반감이 깊어졌다. 그 때 인목대비 문제로 광혜군을 폐위시키려 하는 집단들의 움직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들과 합세하여 적극적인 행동가로 앞장을 섰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궁을 급습하여 광해군을 보위에서 끌어내리고 강화도에 유폐 시켰고, 이들에 의해서 인조가 왕위에 올랐다. 인조 반정 혁명에 성공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혁명이 옳았다고는 볼 수 없다. 실현 된 역사이고 우리 역사이기에 받을 뿐이지만 그렇다고 정당했다고 볼 수는 없다.
꼭! 현재 지금의 우리 정치적 현실은 이러한 수준의 대통령 위치가 여야 정당의 전투적인 싸움에 의해서 왕위가 찬탈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그러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굴복할 수 없는 선거 문제가 점차적으로 불거지고 그것은 수많은 의문을 낳는 현실을 가져 온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언가 진실을 바로 잡는 과정이 진행 중에 있음이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이 있기에 이를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 이를 바로 잡으려고 지금의 이런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거라는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나라의 대권 행보는 나라와 사회 혼란을 가져오고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측면이 형성되고 있음에도 안이하게 대처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가 소수자들의 목적과 명분에 의한 전쟁 형태로 왕권이 탈취되는 것과 같은 수준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 우리 나라를 어떤 이유로든 가장 잘 이해하고 연구를 한 집단들의 배후 컨트롤이 작용된다고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이렇게 몰아가는 보이지 않는 손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21세기가 흐르는 현대의 시점에서 침략의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 현 사회가 이를 빨리 잡아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조반정에 성공을 한 후 농공행상이 거행되었고, 여기에서 김자점은 최고의 공로자로 인정되어 일등공신으로 조선 왕실에 그것도 최고위직에 바로 올라섰던 것이다. 혁명이 성공하면 이런 것이다. 시궁창의 시정잡배 같은 신분도, 말단직에서 하루아침에 최상층부 위치, 그래서 혁명에 목을 거는 사람들이 나오고 요행수를 부리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힘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거나 결국 거덜나게 한다는 것이다. 오늘 현대는 더더욱 그렇다. 성공을 하는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숱한 악행들은 결국 나라를 위기로 내 몰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흔치 않다는 점이다.
다음 예는 꼭! 이와 같은 이치일 것이다. 본래 부자였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저급한 모습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난하다가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 형태의 대상들은 그 하는 짓들이 얼마나 저급한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정치도 갑자기 힘을 손에 쥐는 자들의 얼굴과 인품들은 너무도 저질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들이 결국은 국민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들이 된다. 일제 강점기 때, 종들이었고, 백정들, 하류층의 인물들이었던 자들이 일본이 무력으로 우리를 정복하고 나서 조선을 지배하고 다스리기 위해서 양반들 가문의 종들이나 사회에서 천대시 취급당하는 자들에게 완장을 채워주니 이들이 미쳐서 날 뛰던 역사 기록을 우리는 잘 안다.
일본이 우리를 그렇게 저급한 부류들로 몰았던 것이다. 그들을 세워서 우리 전통적인 사회와 역사 말살에 앞장서게 하고, 그들을 키워서 조선의 힘을 가지도록 해 주고서 그들로 하여금 조선 수준을 떨어트리는 과정을 만들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즉, 일본이 조선 내에 의식 수준, 문화 수준이 낮은 평시 양반들에게 눌려 삐툴어져 있는 그 당시의 천민 그룹에서 자신들을 대신 할 자들을 뽑았던 것이다.
그들에게 조선 관리를 하고 양반 계급 사회를 무너트리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우리 조선을 저질스럽고 저급한 수준으로 전환되게 하는 그 과정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속한 후손들은 아직도 스스로 우리 한국을 근본적으로 저급하고 저질스런 민족이었다고 열변을 토하면서 말하는 자들을 오늘 현대 우리 사회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도 일본, 그리고 일본을 따르는 예전의 조선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친일 부역자들은 우리를 스스로 이런 저급한 민족이라고 주장하여 말한다. 그런 한국인들이 있다. 일본이나 다른 힘에 굴종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선조들이 지금에 와서 누구인가? 바로 국힘과 극우 보수 집안들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해방 이후에 우리가 독립을 하고 우리 스스로 나라를 지배하게 되면서 대한민국 현대사 정부의 힘을 국힘이 오랜 시간 지배하면서 그때부터 한국 전통적인 가문들이 국힘에 많이 유입되어 구성원들이 많이 달라졌지만 국힘의 본체였던 일제 강점기의 정치 기반은 일본에 의해서 세워진 배반자들이 주도하던 저급한 기반이었다고 단언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국힘의 역사적 배경은 이 때도 나라를 위기로 내몰아간 김자점에게서 그 뿌리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자점 - 이완용 - 현재의 국힘이다. 즉, 한반도 역사와 전통이란 흐름 속에서 사악한 기운이 나온 이러한 물줄기를 우리가 스스로 경계하고 배척해야 하는 사악한 기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라 권력 기반을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넘겨주면 안 된다는 점이다. 현재 한동훈이 등장하여 보수 재건을 외치고 있다. 예전에도 지적했지만 한동훈 이 사람은 지금에서 제2의 이완용이 될 수 있는 인물이다. 끼리끼리 어울리고 논다고 했다. 한동훈의 심지 속에는 나라를 팔아 먹을 힘이 꿈틀거리기 때문에 친미, 친일에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국힘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의 얼굴과 눈빛은 자국을 노리는 독수리의 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그가 부산 갑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는지, 지금으로써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선거과정에서 살아났지만 그를 지금의 국회의원으로 새운 자가 누구인가? 이것이 앞으로 한동훈의 행보를 가름하는 배경이 될 것이다.
모든 인간 행위, 비밀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 상황이 종결점에 다다르게 될 때 모두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성질이다. 이에 따라서 한동훈의 가까운 미래 정체도 조만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힘을 갖지 못하도록 우리 사회는 그 전에 그의 힘을 뽑아 버려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키는 지혜요, 보호막을 치는 것으로 걸려내는 국가적 능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동되고 강렬해야 우리가 두고두고 우리 핵심 가치를 지키고 국가를 보호하는 능력을 갖는 현실이 될 것이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자! 이때까지 김자점의 모습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조 등극을 성공시킨 김자점은 인조에게 인정 받는 인물이자 주군에게 충성하는 군신의 예를 다하는 충성가였다. 그것을 특징 지어 주는 두 가지 예가 있다. 그 첫째는 함께 인조 반정을 했고, 어떻게 보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불거졌다. 농공행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이있었다. 일등공신 중의 일등공신인 이괄이 일등공신 봉록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이 사람은 변방을 지키던 뛰어난 장수였다. 변방을 지키던 장수가 난을 일으켜서 한양성을 공격했 한 것이다.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와서 삽시간에 궁을 장악 해 버린 것이다.
인조는 급히 행장을 꾸려 충청도 공주로 피난길에 올랐다. 이때 인조 옆에는 김자점이 함께 하면서 인조를 극진하게모신셨다. 고달픈 피난 길, 모든 것이 힘든 여정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김자점이 인조를 철저히 마크해주니 얼마나 인조의 마음 속에 김자점이 깊이 들어가는 과정이 되었겠는가?
이 괄은 본래 김자점과 함께 반정을 한 장수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그가 변방에서 전쟁으로 단련 된 군사 1만 2천명을 거느리고 한양성으로 달려 와서 공격했기 때문에 반정에 성공을 한 것이다. 그런데 농공행상에서 이 사람이 일등공신으로 작위를 받지 못한 것이다.
2등 공신에 올라 외지로 배정 받은 것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이 때의 이괄은 자신이 받은 직을 그대로 받고 말없이 방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충실히 직을 이행하며 별 문제 없이 수행을 잘 했다. 하지만 모반 사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서 자신의 아들이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렇게 되면 자신 또한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직감하고 조정에서 온 사신들을 죽이고 반역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는 문신들의 작은 마음들이 무신 이괄을 받지 못한데서 일어난 사태임도 내포되어 있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사전 계획에 의한 반란이라기 보다는 당시 조선 조정의 상황이 그렇게 내몰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은 군주 시대 우리네의 왕실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예도 선조와 반대파들의 우려가 인물을 수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 오는 예가 아닌가?
집권층의 우려에 의한 반란이었다. 난의 원인이 이괄 자신의 결정도 있지만 무신을 무시하는 문신들의 수용력 부족에 의해서 유도된 난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관점이다. 이괄은 파죽지세로 한양 궁궐로 자신의 군사들을 몰아 왕궁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인조는 급히 행장을 꾸리고 충청도 공주로 피신했다. 이때가 우리 한반도 역사에서 지방군이 난을 일으켜서 중앙 왕권을 장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 인조의 옆에는 김자점이 처음부터 끝까지 비바람 맞아가면서 인조를 극진하게 받들었다. 이때 인조는 고난 가운데서 김자점이 자신을 섬기고 극진하게 받드니 너무도 고마운 신하로 자리를 잡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만주족이 일어나서 후금이라 국호를 칭하고 조선으로 하여금 자신들과 형제 관계를 맺자고 한 것이다.
이때 조선 왕실은 인조 왕정이 시작되면서 광혜군의 중립 외교를 버리고 '친명배금'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어떻게 오랑캐와 형제 관계를 맺겠는가 하고 거절을 한 것이다. 그러자 만주족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 침략을 결정하고 1627년 1월 장수 아민에게 3만의 병력으로 조선 침략을 단행하도록 했던 것이다.
후금과의 전쟁으로 인조는 대환란에 처했고, 한양성을 떠나 강화도로 들어갈 때, 이때도 김자점은 인조의 곁에서 같이 먹고, 자고, 일어나며 극진하게 인조를 살피며 비바람을 맞았던 것이다. 위기 때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 본다고 두 번이나 김자점은 왕을 배반하지 않고 곁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극진하게 모시고 섬겼던 것이다.
사람은 고생할 때 옆에서 함께하고 배반하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이 가고 어떤 경우에는 그를 끝까지 믿는다. 이런 사감은 본래 영원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이것이 우리 인간의 감정을 온통 사로 잡을 때, 나라나 인생의 본질 문제가 이런 작은 문제에 의해서 무너지고 잘못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 김자점은 괜찮은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를 조명할 때, 권력을 지향하는 김자점은 정치적 줄을 잘 섰음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권력을 추구하고 탐하는 자들은 가깝고 먼 미래를 위해서 현재는 인위적으로 자신을 잘 위장할 수 있다고 본다. 얼마든지 감정적 표현, 언어 구사, 인내 등, 얼마든지 잘 할 수 있고 판세도 어느 정도 잘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를 간과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실수와 곡해로 나라나 관계 등, 잘못 판단하고 위기로 내몰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를 김대중전대통령에게서 배웠다. 이 분의 민주주의 운동에 대해서 우리는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차후에 다시 논할 때 이렇게 3단계 과정으로 구분하여 다루도록 할 것이다.
여기서는 대략적으로 인간의 감정적 요인, 특히 현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결초보은'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각성 된 인간들의 인위적 경향성에 의해서 침략적인 작용이 부드러운 인간 관계에서 조밀하게 어떻게 악용되는지, 김대중전대통령을 통해서 독특한 각도에서 간략히 재조명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우리가 우를 저지르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 현대사 인정된 주요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를 바라볼 때이다. 좋은 쪽으로만 만들어진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서 우리의 냉정한 판단력이 흐려지는 문제이다. 그가 좋은 면으로 세워진 부분에만 영향을 받아 객관성을 잃는다면 그를 통해서 진행된 은밀한 부분들은 영원히 끄집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현대사를 위협하는 핵심 요인이다. 그가 은밀하게 뿌려놓은 나쁜 기운들이 현재도 계속 먹고 자라가면서 우리 사회 내부에서 더욱더 거대한 힘으로 진화되는 과정이 진행중이다. 이것이 때가 되면 우리를 멸망시키는 파괴의 힘이 될 수 있는 이 점을 간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그가 은밀하게 뿌리고 키워 놓은 잘못된 힘을 보지 못하는 한계이다. 너무도 잘 알려지고 익숙함에 길들여진 보편적인 인식이 은밀하게 그를 통해서 들어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그것을 보호 한다는 사실이다.
김건희가 일본의 임진왜란 때 죽은 일본 대표적인 장수들 5인의 영혼 23그람, 이것을 한남동 관저에 설치 해 두었다가 컨테이너로 밖으로 끄집어 내서 어디로 옮겨 놓은 것인가?
그런데 우리 정부가 이를 들추고 밝히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약 문제도 그렇고, 이러한 은밀한 배경들을 보호하고자 함인가? 그래서 검찰, 사법부 개혁을 용두사미로 끝내려 하는 것인가? 이런 것들을 국민들은 모두 알고 마음에 담아 둔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을 덮고 넘어가려 할 때, 바로 이런 이유가 우리 나라 기반을 약하게 하고 무너지는 방향으로 방임하는 적극적인 직무 유기인 것이다.
법무부 장관의 눈을 보라!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기존 검찰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강렬한 눈빛이 아닌가? 어딘가 모르게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서 의지를 강하게 내 뿜는 듯한 강렬한 눈빛, 그 어디에도 대한민국을 받든다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눈빛이 아닌가? 정성호, 우리는 이 장관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MB가 연상되게 하는 이 사람의 눈초리, 같은 과가 아닌가? 일본을 향하는 냄새 말이다.
이 측면에서 대한민국 내 이러한 흐름은 김대중전대통령이 뿌린 씨앗이 아닌가? 이분의 생애는 나라와 민족, 그리고 오늘날 민주주를 위해서 고난 당한 세월은 숭고한 한 인간의 모습이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감옥을 들락거리고, 목숨까지 몇 번씩 위협을 당하면서까지 일생을 살아 온 김전대통령이 보낸 정치적 세월은 부정할 수 없다. 마땅히 존경 받을 만 하다.
일제에서 막 벗어난 시대적 격변기와 우리의 불운했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20세기 초 우리네 현실, 이제 막 출범한 현대 대한민국 정치기반으로 문제 많았던 국가적 환경에서 이분의 지역적 한계의 정치 행보는 걸림돌이 많았다. 더욱이 시대적이고 국제적인 역학구도와 복잡함은 한반도 상황을 우리와 상관없이 불합리한 국가적 환경으로 내몰아왔던 시공간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해방 직후 바로 이어진 내전, 그리고 혹독하게 가난했고 너무도 약했던 작은 대한민국, 거기다가 나라 안으로 국가를 책임져야 하는 정치적 기반은 주위 강대국들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당하고 매일 크고 작은 문제들과 비밀들이 온 나라 안에서 벌어지던 그러한 시절이었다.
이 때 야당에서 여당과 박정희 정권을 강력하게 위협이 되는 한 인물이 나온 것이다. 정치적으로 박정희를 위협했고 계속되는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중단시켜 버릴 수 있는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젊은 김대중 야당 대권 후보, 박정희는 절대권력의 힘으로 김대중을 보안법으로 옭아매고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 수장시켜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리고자 일본에서 납치를 해서는 태평양 바다로 나가던 중이었다.
태평양 물고기 밥이 되려던 절체절명의 순간, 일본의 중재와 압력은 박정희의 마음을 돌렸고, 죽이지 말라는 박정희 명의 의해서 태평양 바다 수장 계획은 일단락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물고기 밥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김대중전대통령이 책에서 밝힌 당시의 심경을 토로하시면서 신앙적인 고백과 일본에 대한 감사의 감정은 깊이 인박히듯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때까지는 김대중에대한 존경심과 당연히 인간은 도움을 받았으면 그에 대한 감사함과 기회가 된다면 품은 감사의 마음을 되돌려 줘야 한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생각하고 동의가 되었다.
문제는 정권을 잡고 난 후에 일본에 대한 김대중전대통령은 자신의 개인 감정과 국가적인 본질과 의무,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분명한 구분을 하지 않고 믹셔해서 여전히 원수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일본을 받아들이는 정책 운영자로써 중심을 잡아 버린것이다.
대한민국 국정 철학과 일본과의 관계 를 자신 감정적 범위 내에서 믹셔하여 모호해져서 한일 좋은 관계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이러한 주장을 자신의 정론으로 내 세웠던 것이다. 영향력이 컸던 김대중전대통령은 주변을 그렇게 강요하며 설득 시키는 환경을 깔아 왔던 것이다. 여전히 일본이 적화 야욕을 버리지 않는데 말이다. 김대중정부 각료들도 일본에 대한 애정적인 감정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정부에 이르기까지 한일간 해저터널로 일본의 과거 조선에 대한 야욕을 그대로 이어지도록 하고자 하는 연결고리가 되는 한일 해저터널을 민주당이 추진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이 중심에는 이낙연과 같은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
전재수 시장이 부산 시장으로 등극을 한 것은 이에 대해 매우 위험한 신호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전재수 시장은 과거부터 한일간 해저터널 계획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금번 지방 선거에서 부산 시장을 택했고, 민주당은 그를 세운 것이다.
이는 결코, 자연적인 인사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 현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비밀리에 진행되면서 일본의 제3차 침략 계획이 성공하도록 돕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현실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적으로 일본이 노리고 있던 독도 찬탈을 유리하게 해주는 바다 200해리 어협 협정을 일본과 맺음으로써 일본의 지소미아, 즉 일본이 전쟁을 수행 할 수 있는 헌법 개정에 손을 들어주는 꼴이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로 이어지면서 화해와 용서, 결자해지 등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 것이 김대중표 일본 몰이이다.
이때부터 일본과 함께 손잡고 미래로 향하자! 라는 슬로건이 일기 시작했다. 이를 정당화 시켜주는 기반을 만들어 준 꼴이 김대중표이다. 여기에 결정적인 것이 바로 200해리 어업협정이었다. 현재 일본이 계속 위급시 물자 교류 협정을 체결하자! 고 기자들을 내세워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이 200해리가 생성 된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200해리 협정 체결시 이러한 내용들이 모두 삽입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는가? 왜, 우리가 일본을 향해서 함께 할 수 없는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이 말이다. 과거 80년 전 실현된 역사만이라면 얼마든지 용서하고 말 그대로 이웃하고 이웃국가 관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함께 미래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나 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80년 전 조선을 지배했던 그 영광의 시절, 조선을 통해서 자신들이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대륙과 연결된 육지로의 진출을 했던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죽자사자 매달리는 것이다. 계속 현대 우리나라를 향해서 도발하며 공격적인 모드를 국가적 과제로 표방하고서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도가 심화되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이제까지는 우리 나라를 우방이란 관계 안에서 최대한 준비 과정을 만들어 왔다. 대한민국 안에 자신들을 도와줄 인적자원들을 세워오는 과정이었다. 이제까지 재정적인 지원으로 한국내 자기 사람들을 세우며 친일 한국인들과 정치기반을 부지런히 조직해 온 것이다.
이런 준비과정을 부지런히 만들어 왔다면, 지난 21세기 직전 일본으로부터 시작된 IMF 는 일본의 본격적인 행동기였던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점진적으로 공격을 펼치는 현실로공고히 하고지 했던 것이다. 그것이 MB 정부와 함께 시작된 5만의 뉴-롸이트 한국 정부 진입이었다.
이 때 뉴-롸이트 70%가 MB 정부로 유입되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80%가 참여 하였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그 범위가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전국적인 조직과 본격적인 일본 정부와 일본 극우 세력들의 도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한반도 본격적인 공격으로 전환의 시기였다. 이 때 일본은 한국과의 과거를 논하면서 태도가 이전과는 돌변했다. 일제 강점기 때의 거만과 주인 행세와 같은 형태로 과거에 대한 자신들의 잘못을 부정하려 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려고 했고, 한국 안의 친일 부대들을 향해서 강경 노선적 행동들로임전하도록 명령을 내렸다고 보여진다.
그와 동시에 일본에 대해 아직도 반감으로 부정시 하는 우리 한국 사회를 향해서 더 이상 과거에 매이지 말자! 운을 계속 띄우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공격적인 행보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충성맹약을 한 한국 내 충성파들에게 위안부 문제로 한일 관계를 좁히고 해결하는 계획하에 한국에서 위안부 운동을 펴도록 한 일이 지난 28년 동안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가장 예민한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등을 이용하면 한일 관계를 화해 용서 라는 장으로 연결해서 풀어내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국적인 입장처럼 엮어 한일 간 추진을 했던 것이다. 현대에서 일본을 향해 공격을 하는 것처럼 대립각을 세웠다.
한국 입장에서 이 민감 사안으로 운동을 전개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일본과 과거사를 풀자라는 상황이 조성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한일이 머리를 맞대고 위안부 문제를 논하다보면 그런 과정을 통해서 가까워지는 장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28년 세월을 만들어서 한일간 줄다리기 과정을 가지고자 한 것이다. 즉, 강대강이란 환경 속에서 갑론을박 하다보면 정들고 문제들이 풀릴 수도 있는 기회를 노리자고 했던 것 같다.
자신들 일상의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화해와 용서, 그러면서 기독교의 그리스도의 사랑이린 배경까지 자신들을 지지하는 한국사회 내 추종자들의 운동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과거 문제를 털어버리고 넘어가려고 하는 시간 벌기를 만들어서 정말, 한일이 함께 하는 오늘 날로 연결시키자고 양진영에서 일본으로 귀결되는 이들이 이런 묘수를 부리려 했던 것이다.
현재도 일본과 함께 하여 미래로 나아가자! 슬로건을 내 세우는 자들은 이런 앞전 과정의 연장 선상으로 볼 수 있다. 앞에서 화해, 용서 라는 판을 깔았으니 이제는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 이로 귀결되는 논리라고 보고자 하는 것 같다. 이것이 김대중전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와 정신적으로 결합된 어떤 정신인지는 모르지만 현김민석총리의 명석한 머리에서 귀결되려 하는 이것이 현 이재명정부의 색깔이 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를 이미 내다보고 몇 차례나 언질을 던지는 글들을 썼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그 방향으로 달음질을 하려고 하지 않는가? 제발! 이것 때문에 깔고자 하는 평화론이 아니길 빈다.
자신들 내부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충분히 연구 과정을 거쳤고, 한편으로 이제까지 충분히 한국 사회 정부와 사회 주요 인사들, 주요 기관들을 장악했다고 확신했기에 이러한 공감대 형성을 열었던 것이다. 이것이 지난 28년 동안 우리 사회 안에서 위안부 운을 깔아 온 배경이다.
하지만 위안부를 이용하고자 한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역할이 끝나자마자 더이상 위안부 문제는 사그라지고 말았다. 안 좋은 얼룩만 남기고 끝나 버린 것이다. 목적은 한일이 함께 손잡고 미래 발전을 지향하여 나아가자! 이 구호로 연결시키려고 작전을 편 위안부 이용몰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민주당이 앞장을 서느냐? 하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김대통령이 용서라는 개념을 강력하게 메시지화 하고자 했다. 그래서 전두환, 노태우 이분들을 사면 복권 시켰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노벨 평화상으로 연결 시키고자 했지만 이것은 우리사회로 하여금 이제 일본을 그만 용서하고 함께 가자! 이 메시지를 남기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바톤을 받은 국힘당 정부가 "화해와 용서"라는 개념을 이어 받았고, 문재인정부는 일본의 염원이자 육지로의 진출의 상징적 계획인 한일간 해저계널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이다. MB, 박근혜, 윤석열 정부는 아예 우리 정부 자체를 친일 인물들로 채우고자 한 것이다. 여기에 윤석열정부는 모든 정부 각 분야별로 독도 문제를 일본 입장으로 만들어 놓는 작업을 소리소문 없이 기록들로 전환 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 군대가 국방 백서나 군사 훈련용 정신 교육 과정에 적용되는 책에 다가 일본을 위한 독도 문제를 기술해 놓았지 않았던가? 그것이 현 이재명정부 들어서면서 대립적인 분위기를 이제는 거두고 평화, 화해, 사랑의 공동체적인 환경을 조성하자! 이것은 너무도 위험한 말장난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윤석열 정부 때, 온 나라와 사회가 대 혼란과 부정의 힘, 마약, 귀신몰이, 크고 작은 사건들,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난리부리스를 치면서 온 나라가 문제에 휩싸였다. 결국, 내란으로 결론되며 또 다시 나라가 대 혼란 상황으로 들어가는 이상한 현실이었다.
그런 나라가 이재명대통령이 들어서면서 한 순간에 사그라 지며 안정된 국가 현실로 나아 온 것이다. 그렇게 날 뛰던 자들, 극단적인 나라 환경으로 내 몰던 자들이 일순간 잠잠해지며 어느 구멍들로 한 순간에 들어가 버린 것처럼 잠잠해 져 버린 것이다. 과연, 이것이 우리 이재명대통령이 잘해서 이렇게 되는 것이 진실인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듯이 잘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수도 안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때는 대통령으로써 대중 앞에서 농담삼아 하는 말들이나 말투가 가벼울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저절로 받쳐 주는 듯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조직적으로, 인위적으로 조절 가능한 현상이라 한다.
오늘 시대는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 나라 국정을 책임진다고 해도, 현대인들은 이데올로기 정황 가운데서 미국과 같은 강력한 국가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국가 기반은 뛰어닌 대통령이 세워진다 할지라도 안정되고 자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잡아 가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만일 그 미국을 제압 헤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실제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게 하면서 다스리는 국정이라면 가능 할 것이다. 현재 우리 이대통령과 정부가 그와 같은 힘을 가졌는가?
다시 말해서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적 현상은 결코, 쉬운 문제로 규명 될 일이 아니다. 즉, 자연발생적인 현상이 아니란 점이다. 지난 윤석열정부 때는 실수 투성으로 불안과 혼란이 조성되는 사회였다. 너무도 불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던 나라 현실이었다. 그러다 마지막은 계엄령 선언으로 너무도 나라가 위기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 재임과 동시에 그러한 분위기가 한 순간에 잠잠해 져 버린 것이다. 정말, 능력있는 대통령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복이고 기뼈하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가까운 미래에 완전히 우리나라를 어떻게 해 버릴 수 있는 인공적으로 그러한 문제가 일어나기 전, 잠시 이런 질서가 확립되어 가는 순간 과정처럼 잠시만 허용되는 것이라면, 조만간 우리를 마비시키고자 하는 어떤 힘이 작용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는 온 국가적으로 냉정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도 냄새가 짙게 배어 나온다는 것이다. 부드러움을 가장한 인공적인 힘이 강렬하게 세워져가는 과정을 만드는 것인가? 어딘가 모르게 불안과 우려가 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현 이재명대통령의 강조에는 몇가지 우려되게 하는 특징이 있다. 가장 첫번 째는 일본과 잘 지내야 한다는 강조이다. 과거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그것에 국한하여 관계를 극단적으로 몰아 갈 필요는없다고 자주 강조한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우리를 노리고 있는 나라인데 말이다.
과거 문제는 그것대로 그대로 놓아 두고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서 좋은 관계로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는 이것이 강조의 맥락이다. 다음은 우리 사회 대립적 관계와 환경을 지양해야 한다. 선거가 끝난 이후의 나는 대통령으로써 모든 국민들을 안아야 하는 대상이다. 이것은 맞는 말이고 당연한 가치이다.
하지만 이를 기준하는 것처럼 하면서 여야 정치권 전체를 두루 두루 국정에 동참시키도록 하겠다. 그러면서 이재명대통령은 민주당 안에서 강한 이미지의 자기 식구들은 내치려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힘당에서 괜찮은 인물, 정부 국정에 필요하고 능력이 있다면 정치의 경계를 초월해서 국정에 참여토록 하겠다.
이런 의지를 내 비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럴 때는 정치가 참으로 무섭기 짝이 없는 사회적 공포의 가치이다. 여기에는 이런 것이 숨어 있다. 먼저는 연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의지적 발언이다. 그래서 자기 내부 강한 이미지의 인물, 다음 대권에 의욕이 강한 대상들은 쳐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민족적이고 한국적인 색깔이 강한 정청래 같은 대상은 아예 잘라 내 치겠다는 의중이 내포되어 있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국힘당이라도 나라와 정부, 그리고 국익 추구를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들을 국정 동력에 적극적으로 동참을 시키겠다고 하는 발언은, 연임을 하려면 양쪽 진영에 적극적인 지지와 동조자들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사전 정지작업의 과정이라고 보여진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재명대통령은 처음부터 국힘당의 복병이었다는 설이다. 그래서 여야를 총망라하여 국정을 펴겠다는 이 발언을 이제 국가의 힘을 가졌으니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면 무리수가 되니 지금 시점에서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국힘의 주요한 인물들을 민주당 안으로 끌여들이면서 민주당을 이전 국힘당 장악하듯이 장악해 버릴 수 있다는 설을 가정 해 볼 수 있다.
이재명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 때 정계에 입문을 했고, 어쩌면 그 이전 훨씬 오래전에 국힘 과거 여당에 속한 사람이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공격을 당하면서도 살아남은 그 배경부터, 그리고 민주당에 들어와서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 은밀하게 받쳐주는 보이지 않은 손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실현 된 것이다.
만일 본인이 유추한대로, 왜냐하면 본인은 이재명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정치, 그것도 대선 레이스에 올라서면서 언론 보도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알려 질 때, 이런 문제를 여러차례 기술하여 강조하면서 민주당에 경고를 보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새누리당의 복병일 수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자 했다. 이는 인터넷 상에 그대로 남아 있다.
왜 이런 주장을 폈냐 하면 당시 내주위 신한국당, 새누리당의 골수 분자들인 당원들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온이들 가운데서 이재명을 대선 후보로 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강조를 했던 것이다. 그때는 대장동 문제가 터지기 전이었다. 나는 의문을 가지며 반문했다. 어째서 신한국당 당원 출신들이 이재명을 이렇게도 지지하는가?
그때부터 깊은 생각에 잠기는데 순간, 여당에서 복병으로 이재명을 만들어 놓았을 수 있겠구나! 이재명의 약점을 만들어서 손바닥에 쥐고 있으니 민주당 경선에서 성공한 이재명이 본선에 올라서면 자신들 국힘이 대선을 따놓은 당선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구나! 미연에 이재명의 약점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한 순간에 낭떨어지로 내몰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던 것인가!
여기까지만 하자! 다음에 더 깊이 다루도록 하겠다. 다만 김대중전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감정몰이, 깊은 감사의 감정에서 형성되어 오랜 관계로 발전하고 진화되어 온 정서, 긴박한 목숨의 위기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이분의 정서가 되고 감성의 실체가 되고 말았고, 그것이 한국 민주당 정치를 좌우하는 영향력이 된 것이구나!
그것이 지금으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 일본 애찬의 정치적 환경 조성 물결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슬픈 현실이 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인조'의 경험이 현실 지금에 이입되어 나타난 것인가? 자신이 피난길 위의 고난에 처했을 때, 두 번이나 자신 곁에서 함께 하며 힘이 되고, 모든 힘든 과정을 이기게끔 곁에서 수종들고 섬긴 김자점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깊이 자리 잡은 그러한 정서적 문제가 나라에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곧 후에 닥칠 자신에게 더 큰 위기와 나라적으로 대 환란을 가져오도록 하는 그런 사악한 인물을 키우는 감정적 공존 관계가 성립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좌진 장군은 자신의 방아간에 일본이 침투시킨 공산주의자를 받음으로써 결국, 그가 쏜 총탄에 비명횡사를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각성되어 있는 도둑은 목적을 가지고 접근을 해 오는데 각성되어 있지 않는 대상은 당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김자점이 좋은 사람처럼, 끝까지 주군을 모시고 죽음의 자리까지도 따르는 사람처럼 곁에 머물렀고, 임금을 대신해서 어려운 순간에 모두 김자점 자신이 대신 감당을 했다. 이 두번의 사건 이후 인조는 김자점을 높이 인정하여 조선군 전체의 통수권인 도원수의 자리에 김자점을 앉힌 것이다.
그런데 하늘이 이를 시샘했던 것인지, 아니면 조선에 교훈을 주고자 했던지, 김자점의 본색을 알려주고자 했던 것인지, 16 63년 만주에서 힘을 키우던 만주족이 일어나서 자신들을 후금이라고 칭하다가 더 강성해지자 일대를 하나로 통합하고 국호를 청으로 바꾼 다음 스스로 황제국임을 칭하고서 조선과 형제관계를 맺자고 하던 자들이 군신 관계를 맺고 자신들을 섬기라는 통보를 해 온 것이 아닌가?
명을 200년 동안 섬겨오던 인조와 조선의 사대부들은 어찌 오랑캐를 주군 삼아 황제로 섬길 수 있겠는가 하며 차라리 싸우자고 선언을 하고 청의 사신들까지 죽여버린 것이다. 그러자 청나라 태종이 직접 군사 12만 명을 이끌고 조선으로 쳐들어 왔던 것이다. 병자호란의 시작이었다.
압록강을 건너 불과 5일 만에 한양 도성 가까이에 도달했던 것이다. 청나라 태종은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조선 곳곳에 있던 성들을 치지 않고 곧 바로 한양 성으로 기마병들로 하여금 번개처럼 내 달리도록 했다. 이때 조선의 모든 군대를 통솔하여 지휘하던 도원수는 김자점이었다.
평안도 일대를 방어하는 도원수로써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들이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책무였다. 조선의 운명이 그의 책무와 역할에 달려 있었던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청나라가 쳐들어 온다는 말을 전해 들은 그는 지휘소를 '정방산성'이라는 가장 견고한 성에다 설치를 했다.
하지만 여기서 김자점은 가장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말았다. 산성에서 방어를 한다는 목표아래 성 안에 틀어박혀 방어 태세만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모든 작전을 세워놓고서 능동적인 자세로 임전 태세를 갖추어야 했지만 입만 벌리고 과일이 입안으로 떨어지길 기다리는 이와 같은 어리석은 자세만을 취했을 뿐이란 점이다.
하지만 청군은 그 탄탄한 산성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 성을 지나쳐 한양으로 직행 했던 것이다. 한 나라의 군 통수권자가 적군이 자신들 성 옆으로 지나쳐 가는데도 그냥 쳐다만 보고 있는 꼴, 이러한 군 지휘관이 나라 군대를 통설한다면 그 나라 군대는 자멸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지휘관은 바로 정상적으로 계단을 밟고 훈련 과정으로 잘 준비되어 올라온 자가 아닌 갑자기 낙하선으로 떨어진 자이거나 아니면 평소에 군인들의 복지비나 도둑질하고 방산 비리에 뛰어난 능력을 발군하는 자들, 혹은 다른 나라나 힘에 이미 영혼을 빼앗긴 자들은 나라 위기 때 그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이미 그 때는 늦고 말 것이다.
김자점은 적군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적이 한양을 향해 내 달리고 있음을 보았다면 왕궁에 신호라도 제때 알려주어야 했다. 그 신호조차 중간에서 끊겨 버린 것이다. 조정은 적이 궁궐 바로 코 앞까지 들이 닥쳤는데도 몰랐다. 전혀 궁궐이 대비할 수도 없었고,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을 가야 했지만 청군이 그 길을 끊어 버렸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 방향을 틀어서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47일 동안 버틴 것이다. 하지만 추위와 굶주림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심전도에서 3회 무릎을 꿇고 3번씩 머리를 땅바닥에 쿵쿵 찍듯이 박으면서 굴욕을 당하는 치욕의 역사를 남기고 말았다. 한 사람의 지휘관이 잘못되면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순신 한 사람의 장군이 23번 싸워 23번 모두 이김으로써 결국은 전쟁을 자국 승리로 가져오는 결과가 된 것이다.
도원수 김자점은 뒤늦게 군사를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왔지만 청군을 물리치지도 못했고, 남한산성에서 임금을 구해내지도 못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김자점은 탄핵을 받아 외딴섬으로 유배를 당한 것이다. 여기서 그의 인생이 끝을 맺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악인들은 그 뿌리 또한 강하고 오래 산다고 했던가?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정치 인생이 꺼져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자점은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지난 윤석열정부 때 국무총리였던 '한덕수' 공무원으로 '이면합의'에 능한자라고 한다. 몇 번씩이나 거짓으로 외교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당시는 몰랐는데 몇 년 지나서 등통이 나고 그때마다 자기 직을 잃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매번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윤석열정부에 와서 정부를 말아먹는 일등 공신 역할을 한 자가 되고 말았지 않는가? 이런 부류들이 우리 정부에서 살아남도록 하는데는 그 만한 이유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세력들이 이들을 살리고 키워서 이런 때 써 먹으려고 판을 깔아오는가 이것이다.
싹을 잘라야 할 자를 자르지 않고 자꾸 이 사람은 살아남고 남아서 결국은 큰 도둑으로 나라를 크게 어렵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야 만다는 만고의 진리가 아닌가? 하지만 현시대의 특징은 도리나 윤리관보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닌가? 통치에서 상벌이 분명하지 않으면 건강하고 좋은 나라 기반은 결코, 가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식구,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 갖는 식구개념, 이러한 '식구' 개념에 의한 '우리가 남이가?' 이러한 사적 관계에 의한 끼리끼리 눈감아 주자는 사악한 결합이 나라를 무너트리는 거대한 구멍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재명대통령이 이런 주장을 많이 하고 있다. 무엇을 하고자 끼리끼리 맞는 이들을 모으는 것인가?
김자점은 전쟁의 패배의 핵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몇 년 만에 다시 살아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에 오르기까지 복귀했다는 것이다. 패전의 장수였던 김자점이 어떻게 권력의 중심으로 다시 올라 설 수 있었을까?
자신의 위치가 막혔을 때, 자신의 앞뒤로 정치적 퇴로가 막혔을 때, 이때 정치적 복귀를 하려고 어떤 방법을 강구하게 되는가? 여기서 우리는 냉정하고 심도있게 우리와 우리 사회를 통찰해야 할 것이다. 이를 알면 현대의 우리 사회 정치 지도자들을 국민들이 선택하는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택해야 할 자와 버릴 자를 가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자점은 전쟁의 패전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되자 거기서 포기하고 조용히 여생을 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치에 노예가 된 자, 정치 권력에 영혼을 빼앗긴 자 자신이 비참해지고 죽는 자리까지 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그렇게 되기까지 이미 가진 힘과 이룬 여정이 에 사람에게 힘을 부여하고 그가 그것을 행사하는 동안 주변은 주변대로, 나라는 나라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나 불행과 고통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가 자신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어떤 다른 힘을 나라 안으로 끌고 들어올 때는 더욱 심각해 진다는 것이다. 김자점은 나라 안에서 막히고 무너지자 다른 길을 모색했다. 정치인들이 바로 여기서 진짜와 가짜, 사악한 자와 의로운 자, 나라를 사랑하는 민족 지도자와 나라를 이용하여 자신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여 억지 지도자로 등극을 꿰하는 자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김자점은 자신이 다시 권력의 중심에 올라서기 위해서 조선 왕실의 정공법으로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자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시 조선인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돼는 길을 택한 것이다. 조선을 침략하고 살육하고, 짓밟았던 청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거침 없는 반역의 길로 과감하게 행동하기 시작 했다.
이런 점에서 조선 왕실 마지막 반역자라 할 수 있었던 이완용과 너무도 같은 유형으로 앞서 간 사악한 선조였다. 이런 선조들이 길을 닦아 놓았기에 이완용 같은 자가 더 무섭게 발전된 나타났고 지금에 다시 나타난다면 상상이상의 불행의 파장을 몰아올 것이다. 윤석열이 그럴 뻔 했는데 아닌 것이다. 앞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금도 그는 만들어지는 진화 과정 중에 있을 것이다. 한동훈? 오세훈? 이진숙? 아니면 민주당 내에 있을까? 누구일까? 반드시 때가 되면 나타날 것이다. 지금 21세기 초 공간은 지구상 가장 흉악한 자들이 나타날 그러한 공간임을 우리 세대는 감지해야 할 것이다. 오늘 날 국힘이 걸어가는 노선은 이를 드러낼 바로 미터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21세기에서 제3의 김자점이요 이완용이라 할 수 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조선은 청에 무릎을 꿇은 신하의 나라가 되었다. 어떻게 태극기를 들면서 동시에 성조기를 들고 같이 흔드는가? 지구상에 그러한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만큼 우리 현대 사회 안의 국민층은 이상한 자들의 집단현상이 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사회 현실이다.
지구는 앞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부류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문명이 발전되면 발전 될 수록 인간성 상실이 뚜렷해지는데 그것은 정신적으로 안 맞는 행보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비정상적인 증세는 주로 국힘당에서 일어 난다. 국힘과 극우 보수가 일으키는 이상 기류이다.
이들은 지성적, 감성적, 전통 가문 등, 뭐 하나 빠질데없고 부족함이 없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짓들이 비상식적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 여전히 일본의 그늘을 그리워하는 것을 볼 때, 전근대적이다.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는데 무질서와 혼란을 조성하고 지향한다. 나라의 보수임에도 반자국주의 형태로 나아 간다.
이와 같은 반국가적 환경을 주도하면서 나타나는 것이 다른 나라 국기를 흔들기가 아닌가? 자국 정부를 다른 나라 힘에 고하는 반역 짓을 해대고 있다. 그리고 그 나라에게 청원하기를 한국 대통령과 정부를 멸하여 달라고 요청한다. 과연 이들을 가리켜서 정상적인 국민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동훈이 보수 복원을 외치는데 보수가 현재와 같은 이상한 짓들로 계속 국민들 앞에 선다면 이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일본이나 미국으로 이주해야 하며 세계 속에 유리방황하는 무리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동훈이 일본 유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포부를 밝히는 것은 일본에게 한국 정치 보수 기반을 살릴테니 자신을 인정해 달라는 보고 차원의 인터뷔 한 것이 아닌가?
김자점이 외세에 의탁해서 철저히 당시 조선과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당시 조선은 겉으로는 청을 섬기는 것처럼 그랬다. 하지만 내심 조선 왕실, 신하들, 온 나라 백성들은 청에 원한을 갖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그러한 환경이 조선의 진짜였다. 그런데 김자점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조선과는 반대로 청에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충성하는 신하가 되었던 것이다.
청나라와 음성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조선에서 청의 눈과 귀가 되어 모두 보고하는 간자 노릇을 하면서 청으로부터 환심과 인정을 받는 중간 역할을 하는 기꺼이 개가 되었던 것이다. 즉, 청의 강력한 힘과 영향력이 조선의 그 어떤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데 오직 김자점을 통해서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처리 되었던 것이다. 조선이 곤란한 일도 김자점이 청에 요청하면 해결되자 자연히 조선 조정은 김자점의 힘이 득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전언해 주는가?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받거나 한국 안의 중요한 문제들을 미일로부터 의논하며 지지를 받아서 처리를 하고, 그것이 능력이 되니 한국 정부는 그를 내 세울 수 밖에 없고, 그는 자만과 거만하여 나라 일이나 중요한 정보들을 함부로 다루고 가벼이 취급하는 그 같은 현실이 아닌가? 지금도 우리 정부 안에 미국으로부터 핵심적인 정보나 힘국 정부와 사회를 조절하는 능력을 어느 누가 비선 라인으로 받아서 우리 정부에 유력한 자로 올라서는가? 이것을 그대로 두고 보기만 한다면 바로 이런 배경이 우리 대한민국 정부 실정을 농락할 것이다.
그렇다. 김자점은 오늘 날 우리 현실에 어떤 교훈을 주는가? 오늘 날 시대적 상황은 군주 시대가 아니다. 민주자유주의 시대로 인간의 자율, 인권, 자유가 그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간중심이 온 지구를 관통하고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김자점이 활용했고,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서 어떻게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 이런 차원에서 인간성 문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한미일 관계를 조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미일 우방 관계, 동맹이란 관계는 바로 이런 점에서 하위의 나라인 우리의 위치는 매우 불리하다. 먼저는 이 바운다리가 설정되고 오랜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나라는 인적 자원들이 유린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상위의 미국이나 일본이 한국 정부 내에, 그리고 국회나 정치 기반 내에 어떤 소수자들과 은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그러한 비선 라인을 통해서 대한민국 모든 현대 정부와 사회 정보들을 장악하고 논할 때, 바로 그들이 우리 정부나 대통령보다 실제적으로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왜, 검찰이 우리 정부와 대통령을 우습게 대했던가? 왜, 통제를 따르지 않고 검찰이 더욱 더 마음대로 하는 대한민국 환경이 되었던가? 바로 미국이나 일본으로 직통되는 정치 라인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방식에 의해서 음성적으로 우리 사회를 유린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을 바로 컨트롤 타워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재명정부 정상호 법무부 장관도 어쩌면 이러한 라인에 의해서 저 같은 행보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비선 관계를 통해서 우리 한국 사회 전반이 조절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가 유린 된다는 사실이다. 김자점의 청과의 비선 라인은 바로 이러한 불합리하고 오리무중의 나라 안개 지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지 않을 수 없음이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와 정치 기반은 이를 우리나라 내부적으로 통찰하고 우방이란 관계를 공식적으로 수용하면서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는 이와 같은 비선 라인들을 철저히 분쇄하고 이런 내부 인사들이 비선 라인으로 나라 외부의 집단들과 은밀히 관계가 형성되어 자국을 해롭게 하는 음성적인 정치 행보를 하지 않는가? 첩보는 국가 차원에서 조밀하고 내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처럼 국힘과 그 전신 정치 기반은 애매한 국민들을 간첩으로 내몰거나 자신들의 앞을 가로 막는 대상들을 자신들 입맛대로 간첩 몰이로 제거하는 환경을 만들어 왔다. 지금도 이들의 종북 몰이는 지구적 시대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퇴보되고 전근대적인 몰이를 해오고 있다. 이것은 인간을 뒤떨어지게 하고 시대의 발전을 퇴보시키는 극단성의 저급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국힘의 비열한 모습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작태는 대한민국을 뒤떨어지게 하는 집단적이고 몰지각한 무지의 전근대적 일본 통치 하에 여전히 속한 나라 배반의 기계적인 인간 집단 행위라고 단정 짓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를 간첩 몰이로 나라 환경을 억지로 조성하는데 올인을 하고자 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일제 패전 직후 일본이 조선 종들과 자신들을 섬기던 친일 부역자들에게 남기고 간 명령, 조선을 둘로 갈라서 공산주의 몰이로 철저히 대립을 지향하고 분열을 책동하는 불신 사회가 되도록 하라!는 일본 명을 따르는 것이 지금의 국힘 당과 극우 보수 집단들의 빨갱이 몰이의 정체인 것이다.
그러니까 잘못된 사람들이 나라 권력 기반을 장악하면 정상의 사회 환경이 주도되는 것이 아니다. 나라 안에 비정상이 자리잡고 점점 사회를 불안과 죽음으로 내몰아 간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과 충성스런 공직자들이 고통을 당하는 나라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자들이 성공하고 힘을 갖는 나라 환경이 되지 못하도록 조직적으로 각 분야별로 그러한 사회적 환경을 깔아온다는 것이다.
반면에 나라에 해를 가져오고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 줄 자들이 중심이되는 나라가 되도록 온 나라 기반을 그렇게 몰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오랜 세월 국가를 좀 먹고 발전을 저해하는 나라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까지 우리 한국의 현실이었다. 나라 환경을 간첩으로 내 몰도록 해방 때부터 보이지 않게 설정된 명령 체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우리 현 사회가 덮어 버리고 있다.
일본과 관련해서 그 어떤 내용들도 여론몰이가 안 되도록 해버리는 대한민국 현실, 이는 우리의 큰 불행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0년 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부와 공권력이 여기에 맞추어서 가동 되어 온 세월이다. 정말, 나라와 정부를 어려움에 빠트리는 진짜 간첩들이나 내부 배신자들을 축출해내는 정상적인 국가 정보 기관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는 점것이다.
특히 일본 관련해서는 철저히 보호되는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 얼마나 오랜 세월 나라 안의 친일 부역자들이 대한민국 안에 이런 장치를 해왔는가? 이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바로 미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그런 현실여전히 지속되어 오고 있다. 일본 관련 글은 그 어떤 경우에도 막혀 버리고, 우리 사회가 읽히지 못하도록 막고 가려버린다. 반대로 자기 사회 비판 글, 교묘하게 글 장난식으로 올리면 올리는 쪽쪽 그 글에 찬동하는 비판 러쉬가 폭발한다. 이런 현실을 우리 눈 앞에서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이재명정부 조차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의 애매모호한 검찰 개혁 자세, 결코 사법부, 검찰 개혁이 완전히 이루어질 조짐이 보이지 않고 적당히 덮고 넘어 갈 것 같다. 이는 이대통령의 발언 속에 이미 강하게 묻어 나온다. 왜, 완전 개혁인가? 일제 시대부터 이어지는 검찰이요, 사법부로 이들이 현재 나라 법을 어떻게 운영해오고 있는가? 그런데 이재명정부조차도 이를 그대로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를 알지 못하고 보안법에 걸려서 하루아침에 죽음의 형장으로 사라지고, 오랜 세월 수 십 번씩 감옥생활을 해야 했고, 나라 자유와 주권을 회복했어도 합법적으로 다른 힘의 작용 아래 있는 현실은 그 나라 에너지는 자신들을 위해서 움직이고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고 억울한 일들이 계속 이루어지면서 악인들이 잘 되고 선인들, 정말 나라 사랑하는 국민들과 공직자들이 잘 안 되는 그러한 나라 공간이 열릴 뿐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현 잘못된 사법부, 검찰의 형태임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바로 미터가 아닌가? 그래서 국민들이 오랜 시간 이를 겪으면서 억울한 나라 환경이 펼쳐졌기 때문에 검찰 사법부 완전 개혁을 외치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믿었던 현정부조차, 적당한 개혁으로 용두사미 행보를 하고 있다. 그에 대한 정체가 점점 드러 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나라 공간에는 지독스런 이중적 환경이 깔리는데 사악하고 거짓된 무리들이 온 나라 사회를 바보로 만들어가고 겉으로는 나라, 애국, 민족을 강조하지만 뒤에서는 나라의 진정한 국민, 공직자들을 철저히 왕따시키고 은밀하게 자신들을 잘 따르는 이들을 중점으로 나라 환경을 만들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현실에 깔린 외형적으로는 자국 지향을 하지만 실제로는 반자국지향을 하는 그러한 환경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현실이다. 이는 공무원 사회나 조직사회, 그리고 이제는 그들과 함께 연결된 가족단위, 조직, 지인, 친구 관계의 일반 국민들까지 이러한 대한민국 이중적인 잣대를 너무도 잘 안다는 것이다. 늘 상 겪고 주위에서 나쁜 짓을 하고 실제적으로 법을 잘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잘 되는 사회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은밀하게 누구라도 대한민국을 중심하는 마음가짐의 사람들, 공직자들, 정치인들은 바보 취급을 당하고, 국뽕으로 낙인찍히고, 삶 가운데서 언제나 막히는, 하지만 이를 지양하고 거짓되고 약싹 빠르게 다른 힘을 지향하는 부류, 조직, 정치 기반들이 주도하고 잘 되고, 성공하는 대한민국 현실, 이것이 실제적인 사회 환경이 되어 있다.
이재명정부도 이 점에서 자국 중점의 정부 첩보 기관들을 죽이고 외국인들로 구성된 안보 요원들을 대통령이나 청와대 내부에 더욱더 확대시키는 정책을 펴는 것은 아닌지, 이 부분이 우려 되지 않을 수 없다. 외국 순방길에 오르는데 환송을 하는 이들이 자국 국무위원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이 도열하고서 대통령을 환송하고 있지 않는가?
김대중정부 때 부터 청와대 안에 미국인들로 구성된 안보 팀 30인 정도의 말들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한미 동맹관계라는 이유 아래 청와대 내 더 많고 외국인들 조직화 된 안보팀이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이들의 조절에 의해서 국내 주요 첩보 기관들이 약화되고 점차적으로 사라져 가는 환경 설정, 그래서 금번에도 12.03 내란 사태 척결이란 미명아래 군대의 우리 방첩 부대가 사라지는 또 한번의 전환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김민석총리의 복안이 작용되어 성공을 거두는 그러한 케이스가 아닌가? 당연하다. 내란 척결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이것을 척결 명분으로 하여 우리나라 주요한 기반들을 거두어내는 과정으로 기회를 만드는 그러한 과정이 실현되는 것은 아닌가? 이런식으로 해서 그 동안 우리나라 내 주요 기관들이 너무도 많이 도태되는 과정들이 만들어져 왔다.
예를 들면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참여 했다는 이유로, 이는 이명박정부가 한미일 관계 중에서 미일 중점의 첩보 환경을 강화하기 위해서 국정원을 선거판에 고의로 사용했는지, 철저히 조사를 해야 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두 번 다시 선거에 참여하여 영향을 주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강력히 조치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굳이 그 힘을 죽일 필요가 없었다. 이는 현대 우방들이란 울타리 상위 나라들이 대한민국 내에서 더욱더 자신들 중점의 첩보 활동을 광범위하게 펴고자 하여 이처럼 대한민국 내부 안보 기관을 자국 언론의 중심에 세워서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도록 하여 죽이는 역할을 하고자 했다는 보이지 않는 공작의 개입 작용에도 직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군의 방첩 부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나라 안에 주요한 일들이 일어나면 그것들을 처리 할 때 외부로부터 어떤 작용은 없는 것인지?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서치 롸이트로 우리 자체적인 판단과 통찰력을 가동하여 우리 기반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 의해서 미일의 압력, 혹은 그 외의 국가적이고 집단적인 힘의 작용이 들어올지라도 형식적인 수용 자세를 취하고 안으로는 우리만의 통찰력으로 우리 국익과 우리 중점에서 이를 재설정하거나 결정을 내리라는 것이다.
이는 김대중정부 때부터 민주당이 정부 안에 외국인들로 구성된 안보팀을 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국힘과 그 전신 정부들은 처음부터 외국 기관들과 연계하고 하부 구조로 임전했기에 우리가 그토록 여전히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여기서 더 합법적인 형태로 청와대 내부에 조직을 두어 운영한다는 것인가?
이런 환경은 시간이 흐를수록 동시에 우리 자체적인 정보팀들이 점차적으로 사장되고 약화되는 환경이 조성되어 오늘까지 이르고 교묘하게 사건들과 엮어서 우리 언론 구조를 활용하여 우리 정부 기관들을 자국 언론에 세워 사회와 국민적은 공분의 중점에 세워서 그 기능을 죽이거나 축소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정말, 우려 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우리 나라 국민성과 연관 된 경향성이다. 인간들은 누구라도 이런 면을 가지고 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자들의 편에 서거나 그들과 어울리면서 생색내고 고개를 으쓱거리고 자신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경우 말이다. 국가적으로도 그렇다. 미국이란 초강대국이 우리를 구슬리고 손을 내밀고, 우리 중점으로 아시아를 재편하겠다고 하면, 나라적으로 우리 정부가 좋아서 주인에게 개가 꼬리를 흔들듯이 그러한 작은 모습으로 제스처를 취하는 정도의 행보를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냥 덤덤하게 받는 것이다. 좋은 것처럼 받는 호응은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 빠져서 허우적 대는 꼴이 되면 안 될 것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아시아 관리를 설정하면서 일본을 파트너로 삼았다. 한국은 그냥 심부름꾼 정도, 소위 행동부대 역할이었다. 모든 것을 일본을 중점으로 하고자 했다. 그래서 3.8선부터 우리 땅에 긋고, 대마도, 독도, 동해 모든 것을 일본을 중점으로 하고자 했다.
심지어 94년부터 있지도 않는 북한 핵문제 해결이란 명분을 만들어서 북한을 살려서 악의 축으로 역할을 시키는 작전을 폈다. 철저히 북한의 신분 보장과 한반도를 북한 중점으로 하겠다는 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보다 중국을 더 잘 아는 북한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미국의 동아시아 계략이었던 것이다. 오랜시간 미국 사회 엘리트 집단들은 한국보다 북한을 더 중점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미국 백악관 안의 주요 부서들도 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오랜 시간 북한 중점의 한반도 상황을 만들고자 했다.
또 북을 살리고 힘을 실어주어서 북한이 악의 축으로 역할을 해주면 미국 자신들의 아시아 역할과 중국이나 한국 관리에 명분이 더욱 확실해지고 미 존재감을 키우며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미중점의 태평양 환경을 더욱 확실히 공고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미국은 북한을 중점으로 한반도 조건을 만들고자, 어떤 조건 중국을 잡기 위한 조건, 은밀하게 25년 동안 세계 곳곳을 돌면서 북미간의 은밀한 관계 증대를 하면서 북한을 중심으로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미국은 이를 바꾸어서 한국의 중요성으로 돌아 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기술력 발전으로 달라지는 국력과 힘을 알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고, 미국이 은밀하게 추진해 오던 그 방식이 우리 한국에 발각되면서 우리가 중국, 러시아와 밀착되려 하자 다급해 진 상황에서 미국의 요즘 행보가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여기서 잘못 선택하고, 잘못 행동하면 우리는 더 어려운 상황 한 가운데로 들어 갈 수 있다. 그것은 미국과의 관계 설정을 지혜롭게 원만하게 잘 해야 하지만 미국의 계략에 놀아나면 그것은 우리 불행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중립국 설정을 하여 세계 앞에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제발, 우리의 달라지기 시작하는 국방력, 방산과 기술력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았으면 한다. 이전에 조용히 무기 개발과 발전을 해 올 때 얼마나 좋았는가? 아무도 몰랐고, 못 느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의 환경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방산을 통한 대기업들의 돈벌이 사업으로 이제는 경쟁처럼 해대기 시작하면서 세계 속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부가가치 차원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돌파하고자 하는 면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드러나고 알려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잃고 안 좋은 댓가를 치르는 현실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력한 무기를 가진 나라로 등극을 하게 되면 강한 나라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다. 강한 나라, 이때부터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대한민국을 경계하기 시작하게 된다. 겉으로야 대한민국과 친해지려고 다가오고 손을 내밀겠지만 속으로는 온갖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떻게 대한민국을 구슬리고 긴장을 놓게 해서 저들의 기술을 우리 것으로 할까? 이로부터 시작해서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선진국 같은 나라들은 대한민국을 질시하여 주저 앉히려 은밀하게 연합전선을 펴고 대한민국으로부터 사들인 무기를 서로 공유하며 자신들이 더 강한 무기를 만들고자 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 G2는 우리 한국을 이대로 두고만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은 대한민국이 없으면 당장 주요 산업 부분에서 시스템화 되어 있는 기술 문제를 바꾸려고 할 것이다. 세계 모든 기술 체계가 현재와 같이 주요한 부품들이 한국 산으로 되어서 한국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반드시 바꾸려 할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조선, 원자력, 밧데리, 전기 분야에서 주요 부품 문제들을 하나하나 미국화 하는데 그때까지 몇 년 동안은 우리나라를 구슬리고자 할 것이다.
그 때까지만 참고 기다릴 것이다. 미국에게 이것은 너무도 쉬운 문제이다. 이미 우리 나라 안에 친미 성향의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회 각계 각분야에 널려 있다. 이들은 은밀히 미국에 협력을 할 것이다.
중국은 몇 백억씩, 심지어 천억 이상을 주고서라도 기술자들과 기술 관련 서류들을 가져 가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 왔지 않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미중이 은밀하게 합의하에 우리를 공략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가 통일을 하고 지구 곳곳까지 열차길과 차길을 내서 잇고, 실제적으로 강대국으로 올라설 때까지 드러내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 즉 자신이 더 권력을 잡고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신감 등의 이유들이 실적을 내서 국민들 눈 앞에 먼저 보여 주겠다는 욕심이나 인위적인 생각들이 나라를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 만다는 것이다. 정말,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고, 세계 속의 대한민국의 진정한 역할을 생각하는 거대한 인물이라면 결코, 이런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다른 힘에 의해서 거짓으로 만들어지는 인물들은 이처럼 조작으로 자신을 만들고자 하는데 능숙한 인물이다. 어떻게 자신을 높이고 이미지 개선을 하고 국민들을 속일 것인가?
여기에 속임수가 뛰어나고, 권모술수에 능하고, 자기 주변에 이런 짓을 하는데 능숙한 인물들을 심고 그들에게 힘을 쥐어 주는 이런 방면으로 움직이도록 조직적 장악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은밀하게 다른 힘에 의해서 길들여지고 준비되어 온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김자점은 바로 이런 정치인으로 이미 우리 역사 기반에서 실현된 인물로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다. 만일 순수한 우리 힘이 작용되고 관리되는 나라 환경이요 교육이 설정된 나라 기반이면 이런 역사 속의 인물들은 우리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제대로 규명되고 교육되면서 우리를 바르게 인도해 가는 방향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힘이 작용되고 영향력을 주는 현재와 같은 나라와 사회 기반은 이러한 실현 된 역사 속의 인물들이 어떤 힘이 몰아가는 목적을 위해서 재해석 되고 각색되어서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바꾸고 길들여가는 배역의 인물들로 우리를 각성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현 된 역사적 사건, 사실, 이야기들이 전혀 현재의 우리에게 발전이 되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조절되어 교육 된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 사회가 내부적으로 일깨우고 보호하고 인도해 가지 못하면 이런 것들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 되고 미래 후손들에게 좋은 나라 물려 줄 나라 기반이 제대로 세워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당장 가까이 실현 된 과거 일제 깅점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상황을 검토해 보면 당장 알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더 앞선 과거에서 그러한 인물이 일어나서 어떻게 나라와 민족을 위기로 내몰고, 왕실과 국민들을 고통으로 내몰았는가 잘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21세기로 들어 선 오늘 현대는 과거 군주시대와는 다르다. 당시대는 분명한 국가 개념하에 영토의 경계만이 아니라 적과 아군이란 경계 개념이 분명한 시대로 정복이란 전쟁으로 수시로 평화가 위협을 받던 그러한 지구촌 시대였다. 반면에 오늘은 국제법과 질서가 있어서 이전 군주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인간중심의 자유와 인권이 인정되고 통하는 그러한 지구적 환경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문제가 사라진 것인가? 아니란 점이다. 비록 국가간의 경계가 무너져서 이념관계로 혹은 외교적 관계로 인간들이 서로 경계 없이 온 세계 인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지구촌처럼 펼쳐지는 환경이 현실이지만 오히려 보이지 않는 주종 관계, 혹은 힘의 원리가 통용되고 보이지 않게 형성된 갑을의 관계는 개인적, 조직적, 국가적으로 더욱더 무섭게 작용된다는 사실이다.
즉, 오늘 현대의 김자점은 자유라는 이름 아래 자신에게 주어진 인권으로 자율적인 경계 속에서 자국과 자기 민족을 아무렇지 않게 배반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은밀하게 하는 것이다. 은밀하게 자신이 가진 힘과 정보로 혹은 자신이 속한 권력의 힘으로 자기 나라의 모든 것을 자신이 은밀하게 속한 자신의 주인이나 나라에게 모두 다 팔아 넘긴다는 것이다.
현대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어떤 강력한 나라나 힘이 우리 대한민국과 어떤 형태로든 관계가 형성되어 어떤 형태나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동의 울타리 환경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외교 관계로 보호되는 울타리 관계이다. 이전 군주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관계가 형성 된 것이다.
그런데 두 나라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면 모든 것은 비밀에 붙여져서 진행된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비밀리에 도장을 찍는 행위는 능숙능락해져 있다. 이를 우리는 이면합의가 통용되는 문화로 수용되는 그러한 환경이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국 나라를 배반해도 보호되는 것이다.
이것은 힘의 논리의 강대국이 가진 배경으로 유리한 조건이다. 현대 미국이 우리에게 보여준 우방 관계는 이제까지 80년 동안이 충분히 말을 해준다. 우리가 보이지 않게 당한 억울한 일, 그리고 여기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행동한 현대판 김자점 같은 자들이 얼마나 나라가 위기에 처한 행보들을 해 왔던 것인가?
청나라의 힘을 업고서 다시 살아났던 김자점은, 영의정의 자리에 올라서서는 조선 왕실을 마음놓고 유린하는 자가 되었다. 청나라가 직접와서 다스리고 관리하지 않았어도 이 배반자 한 사람, 김자점을 통해서 조선 왕실의 정치, 경제, 군사 조선 사회 모든 상황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침략자들이 가정 선호하는 방식이다. 자신들은 그 침략 국가 사회를 모르기 때문에 그 나라 안의 적절한 배반의 인물들을 골라서 적당한 부귀영화를 손에 쥐어 주면 그 나라 모든 상황을 안 가도 알고 적은 인원으로 관리가 가능한 통치 전략이 된다.
이런 점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서 삼국시대 고구려가 망하는데 당나라에 충성한 일등공신 고구려 장수가 있다.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이다. 물론 당나라의 인간계 정책의 3형제 이간질이 먹혀 들어간 부분도 고구려 멸망의 한 획이지만 이는 연님생의 배반이 고구려 멸망의 결정적인 역할이었다.
고구려에 대해서, 고구려 군 조직과 운영, 실태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대막리 출신 연남생이 고구려 성 12개와 자신 수하의 장수들을 거닐고 당나라아에 넘어가서 이때부터 고구려의 군사력 방면의 일체를 다 제공해 준 것이다.
성을 공격히는데 취약 부분, 그 성을 지키는 성주의 성향, 어떻게 하면 성들을 싸우지도 않고 굴복 시킬 수 있는 성들, 군사 수, 보급의 실태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정보들을 제공해 줌으로써 고구려는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고구려의 멸망은 단순히 연남생 한 명의 배반으로 귀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고구려의 운이 다 되가는 시발점은 장수왕의 천도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났고, 고구려가 멸망 될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다고 판단 된다.
나라의 세력, 하나의 기반으로 단단하게 결합된 고구려의 그 기반이 둘로 갈리게 된 시초가 바로 장수왕의 천도로부터 기인 되었다. 윤석열이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으로 무속에 의해서 가볍게 옮기더니 그 때 이후로 대한민국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나라기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너무 미신화 되는 배경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나라와 기반의 주요한 의미들을 너무 경시하는 환경 설정을 너무 가볍게 결정하는 것도 쉽게 수용되어 자행하는 것도 금물이다. 물론 장수왕은 중국의 침입과 식량 보급 등의 이유로 평양 천도를 했겠지만 400년 동안 지속해 온 국가 기반을 가볍게 결정함으로써 정치와 백성들의 중심이 둘로 갈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민심이 하늘이라 했다. 고구려는 천도 이후에 국내성 세력과 평양 세력으로 갈리면서 이에 따라서 나라가 둘로 나뉘는 힘의 갈림이 일어났고 이는 고구려의 굳건한 기반을 갈리게 하는 단초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은 우리 한반도를 다시 갖기 위해서 한반도가 둘로 갈리는 작전을 마법 처럼 부린 것이다. 이는 앞전 글들에서 너무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맥만 짚는다. 이는 일본이 물러가면서 자신들의 입과 귀가 되어 줄 조선에 남기고 가는 친일 부역자들에게 철저히 조선을 둘로 갈리게 하는 정책을 펼치도록 엄중히 명하고 갔다.
남북으로 갈렸고, 한국은 또 다시 정치적으로 둘로 갈려서 또 다시 원수처럼 피터지는 환경이 깔려오고 있다. 그런데 어쩐 자가 이런 배경을 깔도록 정부나 국회에 정책으로 던진 것인가? 현재 천도를 대전으로 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고 또 다시 우리 한국을 둘로 갈라 놓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국을 노리는 자들은 우리 보다 더 한국 역사를 잘 안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천도는 이들에게 좋은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나라가 끊임없이 갈리고 한국 민중과 사회를 계속 분열시키면서 동시적으로 인구수도 자연적으로 줄어들게 하고 전쟁 환경으로 몰아가려는 사악한 자들의 계략이 우리를 또 다시 갈리도록 하고자 나라 안의 김자점을 움직여서 대전 천도를 몰아온 것이다. 한일간 해저터널을 몰아오듯이 말이다.
본래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통일을 내다보고 위로 올라가려고 해야 한다. 그런데 밑으로 내려가도록 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쟁을 지향하는 수작이고 우리 한국 자체가 남북으로 갈렸듯이 남한 자체가 둘로 갈리도록 하는 국가 재설정 기반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시행되면, 서울 기반과 대전기반으로 세력 판도가 새롭게 둘로 갈리며 우리 한반도는 영구적으로 마음과 마음이 갈리면서 나라의 힘은 축소되고 큰 일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방 정부 형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라의 힘이 분산되고 계속 지방정부 힘이 커질수록 힘이 분산되고 각지방마다 저지르는 부정부패의 힘은 결국 중앙정부까지 위기로 내몰고 감당하기 어려운 공간이 열릴 것이다.
지금 나라 빚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것도 지방 정부들이 자신들 정치 놀음과 제재 없는 활동 등의 마음대로 재정 사용이 이와 같은 현실을 가져오는데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려진다. 이에 대한 우리 자체적인 종합적 체크와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제언한다.
서울을 버리고 천도를 하는 것은 세력을 둘로 쪼개고 또 나라 힘을 갈리는 어리석은 나라 행정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발! 어떤 형태로든 우리를 둘로 갈리는 것을 최대 목적으로 은밀하게 작용하는 일본의 훈수 정치 등을 간파하기를 바란다.
김자점의 존재가 조선에서 기생하며 조선 왕실을 갉아먹는 벌레 같은 인간이 된 데에는 그를 기용한 인조에게도 그 책임이 크다. 몇 번을 당했으면 내쳐야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잘 한다는 이유와 이런 유혹에 냉철한 지도자가 되지 못하고 그를 계속 기용했다는 점이다.
부리기 좋은 대상, 하지만 이런 부류는 앞에서는 말 잘 듣는 개처럼 굴지만 그 앞을 떠나면 전혀 자신이 섬기는 주군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병자호란 직후 반청, 찬청으로 기울린 왕실 조정은 인조를 골아프게 했다. 그래서 인조는 다시 김자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섬에 유배되어 있던 김자점을 풀어주고 중용을 시킨 것이다. 풀려난지 4년 만에 우의정까지 오른 김자점은 청의 영향력 아래 있는 조선 왕실을 자신이 좌우하기 위해서는 청과 결탁 해야 겠다는 결심하고 과감히 그 방향을 잡았다.
김자점은 권력을 쫓는 자였다. 그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하겠다는 주의였다. 국힘의 배경이 바로 이 김자겸의 노선인 것이다.
이 때가 김자점이 본격적으로 힘의 논리에 철저히 편승하는 자로 돌변했다. 조선 인조왕의 그늘보다 더 강한 청나라의 그늘로 들어가는 것이 어쩌면 조선 왕실 자체를 자신이 좌우 할 수 있다는 더 큰 권력을 넘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청나라의 역관 정명수와 손을 잡았다.
현재도 이런 부류의 권력을 추구하는 불나방 같은 현대판 김자점이 얼마나 많은가? 미국의 힘이 우리 정부나 대통령 위에 있으니 미국의 힘을 잡는 것이 곧, 우리 정부를 장악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미국에 자신 정부나 대통령에 대해서 고자질로 정치적 기생을 하는 자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명수 뿐만 아니라 당시 이행수 역관 등과 조직을 하여 청나라의 권력 기반으로 조선을 관리하는데 앞장을 섰던 것이다. 조선의 관리가 적군의 앞잡이와 손을 잡은 것이다. 이때부터 김자점은 일반적인 정치인이 아니라 외세와 결탁한 정치인이 된 것이다.
이 같은 형태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녹을 받는 한국의 공인이 버젓이 그 신분을 가지고서 우리를 통제하거나 노리는 다른 나라의 권력자들과 결탁하여 한국을 곤란하게 하는 짓들을 서슴치 않고 자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나라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되면 나라에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가? 나라 안의 좋은 인재들과 정부 내의 너무나 귀중한 인재들이 제거 된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결국,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돌아가는 곳이다. 특히 나라 구조와 사회가 존재하는데는 어떤 부류의 인간들이 그 나라를 받들고 섬기는가?
이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나라 안에 좋은 인재들이 정부에 많이 참여 한다면 그것은 사회 안정과 국민 행복과 직결된다. 반면에 나쁜 인물들이 많아지면 그 나라는 통곡과 슬픔, 불행이 가득차는 암울한 나라 환경이 된다. 이런 좋거나 나쁜 공직자들의 엇갈리는 구조는 김자점 같은 인물들이 정부 안에 많아 그들이 자신들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히고자 걸림돌이 되는 주변 다른 정부 공직자들을 많이 제거하고 그 자리에 나쁜 자들을 세울 때이다.
청나라를 정치 기반으로 하면서부터 김자점은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대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사악한 자들이 합법적인 정부나 조직 안에 들어오게 되면 가장 먼저는 소리없이 좋은 사람들이 제거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은 그 나라, 그 조직의 인간적인 좋은 환경이 무너지고 그에 따라 좋은 환경 역시 점차적으로 꺼져 간다는 것이다.
신기원, 임경업, 소현세자의 죽음, 이러한 일들은 모두가 김자점에 의해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소현세자의 죽음, 1년 후 며느리 강씨를 사약으로 죽이고, 3 손자들을 제주도로 유배시켜 그 곳에서 두 손자를 죽이고 등,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것은 인조와 김자점의 합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김자점은 영의정에 올라 한 가지 수를 둡니다. 그것은 자신의 손자 김세룡을 인조의 후궁 귀인 조씨의 딸 호명 옹주와 결혼을 시킨 것이다. 왕실과 피를 섞는 수를 쓴 것이다.
하지만 인간사에는 인간들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인들이 사라질 시기가 되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권력을 행사할 때는 천년만년 길이길이 보전 될 것 같이 그 힘이 제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무너질 때가 되면 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드디어 1649. 05월 인조가 죽는다. 김자점의 보호막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뒤를 이어 반청에 대명사 효종이 즉위를 한 것이다. 즉위 즉시 김자점을 반대하는 모든 신하들을 불러들였다. 김집, 송시열 등,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겠다는 사림 세력들을 부르고 사헌부, 합세한 사관헌까지 김자점의 탄핵이 시작되었다.
효종은 한 달 만에 김자점을 파직하고, 도성 밖으로 쫓아내고 1650년에는 강원도 홍천으로 유배 시켰던 것이다. 보통인들 같았으면 당시 나이도 62세로 적지 않았기에 포기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자점이 어떤 사람인가? 권력욕에 만족이 없는 유형의 사람이다.
오늘 날 늙어서도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은 바로 이 김자점 유형의 부류들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권력욕을 놓을 수 없어서 정치에 끝까지 올인하는 자들이지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들을 생각하여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유배지에서 자신의 심복 역관 이형장을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거짓 고별을 하는 것이다. 지금도 국힘은 이외 똑같은 고별 짓을 하고 있다. 미국에 자기 정부를 무너트리고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거짓 고별들을 하는 짓을 하고 있다. 혹은 미국 사회 내 기득권 극우 보수진영과 결탁되어 있는 그 루트로 자기 정부 무너트리는 거짓 고변들을 일삼고 있지 않는가?
김자점도 효종이 이전의 신하들을 모두 몰아내고 반청에 앞장서는 새로운 신하들을 앞세워서 청나라를 칠 계획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증거로 조선 왕실이 사용하는 서류에 청나라 연호를 쓰지 않고 명나라 연호를 썼다. 청나라 연호를 쓰지 않는 다는 것은 우리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국이 아니다고 부정하는 것이다고 고하는 것이다.
이런 짓을 국힘이 지금도 미국이나 일본에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자점이 청나라에 보내는 이 편지가 역관을 통해서 청나라 황실에 전달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다시 제2의 병자혼란과 같은 전란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버림을 받았다는 데 앙심을 품고서 적국에 자신의 나라를 벌해 달라고 거짓 고견을 내는 것이다.
지금은 더욱더 심하다. 왜냐하면 적군이 아니라 우방이란 같은 편이란 이유가 맺어진 상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정부와 대통령을 의식하기 보다 미국을 더 의식하여 정치적으로 얼마나 자기나리 곤한하게 하는 짓들을 얼마나 많이 저지르고 있는가?
결국, 이 김자점 보고가 청나라에 들어갔고 청나라는 10차례나 조선을 방문하여 조사에 들어갔다. 물론 효종과 몇 사람 신하들의 노력으로 전쟁을 일어나지 않았지만 효종의 북벌 계획은 완전히 노출되어 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사악한 내부 간첩들 같은 정치인들에 의해서 자기 정부 비밀 계획이 까발려지고, 효종의 북벌 계획은 죽을 때까지 불가능해져 버렸다. 이 사건으로 김자점의 유배지가 전라도 광양으로 옮겨진 것이다.
1651년, 음력 12월 17일
김자점은 효종의 친국 아래 역모죄로 죽음을 맞았다. 똑 같이 주위 가까운 이들로부터 고발을 당하고 가장 비참한 형으로 처행을 당하는데 김자점의 몸이 잘려 나간 것이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토막형을 당한 것이다. 신기원의 8년 전 저주가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아들 모두, 손자 손녀까지, 사돈 귀인 조씨는 자진을 명 받았고, 아버지 묘까지 파헤쳐지고, 어머니 딸들은 모두 노비로 전락되고, 선산에 있는 모든 가문의 묘들이 파헤쳐 졌다.
제자들, 친분 관계에 있었던 주변 모든 사람들 모두가 도성에서 쫓겨 났다. 한 사람의 정치적 욕심으로 인해서 온 가족 가문이 몰살 되었고 주위 이 김자점과 연관 된 모든 자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불행이란 줄기에 붙어서 끝장나고 말았던 것이다.
김자점, 이 사람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었던가? 인목대비가 억울함을 당할 때 목숨 걸고 보호하고자 했고, 폭군을 몰아내고 인조 반정을 할 때, 두 번이나 자신의 군주가 불행에 처했을 때 떠나지 않고 곁에서 끝까지 모시고 받들고자 할 때까지는 이 사람은 충신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 사람을 능력을 가진 관료였고 유능한 장수, 또한 자신의 동료를 탄핵으로부터 구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의로운 사람의 모습도 있었다.
유배에서 풀려나 인조의 칼이 된 순간부터 이 사람은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칼이 되는 자들, 검찰은 자신들 권력을 위해서 검찰은 칼을 손에 쥐었다.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직 자신들을 위한 칼이다. 거만하고 자만해지고 이 칼을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 또 다른 힘과 결탁하는 짓들을 서슴치 않고 자행하고, 자신의 나라 정보를 고견하는 짓을 마음껏 자행하여 힘은 손에 쥐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는 자, 이것을 김자점이 보여준 배반의 모습이다. 김자점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 사회는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왜, 권력을 탐하고 그 권력을 위해서 외세와 결탁하고 자기 나라를 팔아먹는 짓을 하는 것인가?
이 사람은 처음부터 니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권력이 이 사람의 나쁜 인품과 성향을 드러낼 뿐인 것이다. 처음부터 좋은 사람은 권력을 손에 잡았다고 해도 좋은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김자점은 조선 광혜군 때 과거 시험이란 절차를 통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치에 입문 한 것이 아니다. 가문의 배경에 의해서 시험을 치르지 않고 정치에 입문, 즉 오늘로 말하면 낙하산 인맥,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국힘당이 지금도 이런 짓을 얼마나 잘 하는가?
물론 민주당 가운데서도 은밀하게 이런 짓을 잘 하는 이들이 많아 질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국힘당 기반이 우리 현대 대한민국 정부를 데부분 다스려 왔다. 민주당은 이제 시작이다. 현재까지는 민주당이 좋은 나라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시간이 좀 더 길어지면 민주당도 지저분한 정부 형태로 떨어질지 모른다.
김자점을 통해서 우리는 이런 류의 인간이 얼마나 그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기로 내몰 수 있는지? 반복되는 배반으로 나라 자체를 어떻게 위기로 몰고, 그 자신의 권력 쟁취와 보존을 위해서 끊임 없이 펼치는 권모술수가 주위를 얼마나 불행하게 하고 고통을 가져다 주는지!
정의롭고 충직하고 의로운 의인들을 겨냥하여 언제든지 사지로 내몰 수 있고, 얼마나 거짓되고 불법적인 일들이 나라 안에 축적되고, 국민들을 반국가주의자들로 타락시키는 그러한 힘의 배경이 될 수 있는지, 너무도 확연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력이 아무리 좋고 뛰어나다 할지라도 인성이 잘못되고 삐뚤어진 대상을 주요한 자리에 앉히고 그에게 힘부로 나라의 주요한 자리를 내어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자행하면 점진적으로 나라가 어려워지고 조만간 나라 안에 소용돌이 쳐 질 일들이 많아 질 것이고, 이런 방면으로 뛰어난 인물 한 사람으로 인해서 나라 안 좋은 인재들이 제거되고 그 자리에는 좋지 못한 인물들로 채워지면서 나라 안에 좋지 못한 일들이 조성되면서 불안 사회가 깊어져 갈 것이다.
김자점은 결국, 자신이 왕이 되려는 계획을 진행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단계로 자신 스로 종말을 앞당겼던 것이다. 이때 자신이 나라를 청에 갔다가 고발을 하였듯이 자신의 반정을 고발하는 고견이, 그것도 자신의 가까운 이들로부터 효종에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의 전 가족은 멸족을 당했다.
지금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현대판 김자점, 이들이 들끓으면 우리 대한민국은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부류들이 날개를 치고 온 나라를 어려움 속으로 내몰아가려고 한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그 사상의 보호아래 보호막을 치면서 나라 곤란하게 하는 짓들을 마음놓고 자행하려고 한다.
거기에는 정치인 김자점, 종교인 김자점, 역사학자 김자점, 교수출신 김자점, 대통령출신 김자점, 이루 말할 수 없는 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다. 김자점의 말로처럼 자신들의 끝도 그와 같이 비참할 것이란 점이다. 왜냐하면 자국을 노리는 힘들은 사용할 대로 사용하고서 마지막에는 비밀 유지라는 이유아래, 써먹을 이유가 더 이상 없어지면 인위적으로 목숨을 빼앗아 조용히 이 지상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란 사실이다.
필요할 때는 필요하니까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면서 자신들의 목적대로 사용하지만 그 역할이 더 이상 안되는 때가 되면 살려놓으면 은밀히 진행해 온 것들이 모두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가 마지막 목숨을 노리는 일만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그 덩어리가 큰 사람들일수록 결과 역시 크게 다가 올 것이다. 현대판 김자점, 우리 정부는 이 차원에서 사람 관리 안일하게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일이 자리 잡은 대한민국, 이제는 중국이 자리잡고 있는 과정 또한 만들어지고 있지 않는가? 정부 말도 안 듣는 그러한 방임적인 대 혼란 나라 상황이 되지 않도록 사전에 나라 내부를 단단하게 만들어놓는 인적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과정 필요하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