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SaPiens)>> - 유발하라리(Yuval Noah Harari) - 제 1 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5)
작성자레아작성시간18.04.10조회수952 목록 댓글 2제 1 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5)
호모 사피엔스
ㅡ 형제 살해범
불의 혜택에도 불구하고, 15만 년 전 인간은 변방의 존재였다. 이제는 겁을 주어 사자를 쫓아낼 수 있고, 추운 밤에 몸을 데울 수 있으며, 가끔씩 숲을 태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종을 통틀어 보더라도 인간은 인도네시아 군도와 이베리아 반도 사이에 겨우 1백만 명쯤 살았을 것이므로,생태계를 레이더로 훑는다고 할 때 겨우 뻑 하는 소리를 한 번 낼 만한 정도였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세계 무대에 이미 등장하였지만, 당시까지는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을 해나가고 있을뿐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동물이 언제 어디서 처음 진화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사실은 15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에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피엔스가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이 그중 한 명이 오늘날의 시체안치소에 시체로 등장하더라도 그곳 병리학자는 특이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불이 있었기 때문에 이전 선조들에 비해 치아와 턱이 작았고 뇌의 크기는 이미 현대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약 7만 년 전 동아프리카의 사피엔스가 아라비아 반도로 퍼져나갔고 거기서부터 유라시아 땅덩어리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가 번성했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라비아 반도에 상륙했을 당시 대부분의 유라시아 지역에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이미 정착해 있었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두 가지 상충하는 이론이 존재한다. '교배이론'은 그들이 서로 끌려 성관계를 하고 뒤섞였다는 설이다.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가면서 다른 인간 집단들과 교배했고 오늘날의 인류는 그 이 종교배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피엔스는 중동과 유럽에 도착해서 네안데르탈인을 만났다.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근육이 발달했고 뇌가 더 컸으며 추운 기후에 더 잘 적응했다. 이들은 도구와 불을 사용했고 훌륭한 사냥꾼이었으며 병자와 약자를 돌본 것으로 보인다(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이 그 증거다. 일부는 심각한 신체적 장애를 지니고도 오래 생존한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이것은 친척이 돌보았다는 증거다). 만화에서 묘사하는 네안데르탈인은 야만적이고 멍청한 '혈거인'의 상징인 경우가 흔하지만, 최근 발견되는 증거들은 그런 이미지를 바꾸었다.
교배이론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의 땅에 퍼져나가면서 서로 교배했고 결국 두 집단은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의 유라시아인은 순수한 사피엔스가 아니라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혼합이다. 마찬가지로 사피엔스는 동아시아로 퍼져나가서도 현지의 호모 에렉투스와 교배했다. 그렇다면 중국인과 한국인은 사피엔스와 에렉투스의 혼합이다.
이와 대립되는 견해는 '교체이론'이다. 교체이론은 전혀 다른 설명을 들려준다. 그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반감을 보였으며 심지어 인종학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피엔스와 다른 인간 종들은 해부학적으로 달랐으며 짝짓기 습관이나 체취까지도 차이가 났을 가능성이 매우 커서, 서로에게 성적인 관심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설령 네안데르탈인 로미오와 사피엔스 줄리엣이 사랑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낳은 아이는 불임이었을 것이다. 두 집단의 유전적 격차가 너무 커서 이미 메울 수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집단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존재했으며, 네안데르탈인들이 죽거나 살해되자 그 유전자도 사라졌다. 만일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모든 현대 인류의 조상은 하나같이 7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는 모두 '순수한 사피엔스' 다.
이 논쟁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7만 년이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다. 만일 '교체이론'이 맞다면,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대체로 같은 유전자들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무시해도 좋은 정도다. 하지만 '교배이론'이 맞다면,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시아인 사이에는 수십만 년의 연원을 둔 유전적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정치적 화약고로서, 폭발력을 지닌 인종이론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최근 몇십 년은 교체이론이 이 분야의 상식이었다.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상대적으로 더 확고하며 정치적으로도 더 올바른 것이었다(현대 인구 집단들에게 유의미한 유전적 다양성이 있다고 말하면 인종주의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2010년에 끝이 났다. 4년간의 연구 끝에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지도가 발표된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화석에서 충분한 양의 온전한 네안데르탈인 DNA를 얻어서 그것과 현대인의 DNA를 폭넓게 대조해볼 수 있었다.
그 결과는 과학자 사회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중동과 유럽에 거주하는 인구집단이 지닌 인간 고유의DNA 중 1~4퍼센트가 네안데르탈인 DNA로 밝혀졌던 것이다. 이것은 비록 많은 양은 아니지만 중대한 의미가 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두 번째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과학자들이 2008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한 손가락뼈에서 추출한 DNA로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는데, 그 결과 현대 멜라네시아인과 호주 원주민의 인간고유 DNA 중 최대 6퍼센트가 데니소바인의 DNA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가 유효하다면 ㅡ 이런 결론을 강화하거나 수정할 가능성이 있는 추가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ㅡ 최소한 교배이론에 뭔가 근거가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체이론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오늘날 우리의 게놈에 아주 작은 양만 기여했기 때문에, 사피엔스와 다른 인간 종의 합병을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들 간의 차이가 번식 가능한 성관계를 완전히 차단할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런 접촉을 매우 드물게 만들 정도이기는 했다.
그러면 우리는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의 생물학적 연관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이 말과 당나귀처럼 완전히 다른 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불도그와 스패니얼처럼 동일 종의 각기 다른 집단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 실체는 흑과 백이 아니다. 회색지대들도 중요하다. 예컨대 말과 당나귀처럼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진화한 두 종이라면 다들 어느 시기에는 불도그와 스패니얼처럼 같은 종의 두 집단이었다. 그러다가 두 집단이 이미 확연히 달라진 시점, 그러면서도 드물게 서로 성관계를 해서 번식 가능한 우손을 낳을 수 있는 시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후 또 다른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최후의 연결선은 끊어졌고, 집단들은 각기 다른 진화적 경로를 밟게 되었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은 약 5만 년 전 이런 경계선에 섰던 것 같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종은 아니지만 대체로 별개의 종이었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듯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은 유전부호나 신체 특징만 달랐던 것이 아니라 인지능력 사회적 능력에서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번식 가능한 후손을 낳는 일이드물게나마 여전히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 집단이 합병한 것은 아니고 일부 운 좋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사피엔스 특급에 편승한 것이었다. 우리 사피엔스가 과거 언젠가 다른 종의 동물과 성관계를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는 생각은 심란하다. 그러나 한편 짜릿하기도 하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사피엔스에 합병된 것이 아니라면 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의 가능성은 사피엔스가 이들을 멸종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상상해보자, 사피엔스의 한 무리가 발칸 반도의 어느 계곡에 도착했는데, 네안데르탈인이 이곳에서 수십만 년 전부터 살고 있었다. 새로 도착한 사피엔스들은 사슴을 사냥하고 견과류와 장과류를 채취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네안데르탈인의 주식이기도 했다.
사피엔스는 기술과 사회적 기능이 우수한 덕분에 사냥과 채취에 더 능숙했다. 이들은 번식하고 퍼져나갔다. 이들보다 재주가 떨어지는 네안데르탈인은 먹고 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집단의 크기는 줄어들고 서서히 모두 죽어갔다. 이웃의 사피엔스 집단에 합류한 한두 명의 예외를 제외하면 말이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폭력과 대량학살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관용은 사피엔스의 특징이 아니다. 현대의 경우를 보아도 사피엔스 집단은 피부색이나 언어, 종교의 작은 차이만으로도 곧잘 다른 집단을 몰살하지 않는가.
원시의 사피엔스라고 해서 자신들과 전혀 다른 인간 종에게 이보다 더 관용적이었을까?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마주친 결과는 틀림없이 역사상 최초이자 가장 심각한 인종청소였을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 사실이었든, 네안데르탈인(그리고 여타의 인간 종들)은 역사상 가장 중대한 '만일'의 소재다. 상상해보자. 만일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나란히 살아남았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여러 인간 종들이 공존하는 세계에서는 어떤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가 출현했을까? 성경의 창세기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라고 적었을까? 예수는 데니소바인의 죄 때문에 죽었다고 기술했을까? 코란은 모든 고결한 인간은 종에 관계없이 천국에 자리가 예비되어 있다고 설파했을까? 네안데르탈인은 로마 군단의 병사나 중국 왕조의 관료가 될 수 있었을까? 미국 독립선언문에는 호모 속의 모든 구성원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자명한 진리라고 적혀 있었을까? 카를 마르크스는 "모든 종의 노동자는 단결하라"고 촉구했을까?
지난 1만 년간 호모사페엔스는 유일한 인간 종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다른 가능성을 그려보기가 어렵다. 우리는 형제자매가 없는 탓에 스스로가 창조의 최고 샘풀이며, 우리와 나머지 동물계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고 상상하기 쉽다.
그래서 찰스 다윈이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고 암시하자 사람들은 격분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만일 네안데르탈인이 살아남았다면,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종과 동떨어진 존재라고 인식할까?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킨 이유가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친숙하고 관용하기에는 너무 달랐다는 것.
사피엔스의 탓이든 아니든, 사피엔스가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의 토착 인류가 멸종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호모 솔로엔시스의 마지막 흔적은 약 5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모 데니소바는 그 직후 사라졌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3만 년 전 증발했다. 플로레스 제도의 난쟁이 비슷한 인류는 약 12,000년 전 사라졌다. 그들은 약간의 뼈와 석기 그리고 우리 DNA에 약간의 유전자를 남겼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수없이 남겼다. 그들은 또한 우리를, 최후의 인간 종인 호모 사피엔스를 뒤에 남겼다.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생태적으로 전혀 다른 오지의 서식지에 그처럼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다른 인간 종들을 망각 속으로 밀어넣었을까? 튼튼하고 머리가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은 어째서 우리의 맹공격을 버텨내지 못했을까? 논쟁은 뜨겁게 계속 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