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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G. Fischer (1835-1912) |
Words: bio("William McDonald","m/c/d/mcdonald_w") William McDonald, 1870:
The hymn was written in 1870 in the city of Brooklyn, New York, while I was pastor in that city. I had felt the need of a hymn to aid seekers of heart purity while at the altar. I had desired something, simple in expression, true to experience, and ending in the fullness of love. The tune composed by Mr. Fischer, with the first two lines of the chorus, I had seen, and was much pleased with their simplicity. And as I was sitting in my study one day, the line of thought came rushing into my mind, and I began to write, and in a few minutes the hymn was on paper. It was first sung at a National Campmeeting, being held at Hamilton, Mass., June 22, 1870. It has been translated into many languages, and sung all round the globe.
The words were first published in The American Baptist Praise Book, 1871.
Music: bio("William G. Fischer","f/i/fischer_wg");lmn("i/a/I%20Am%20Coming%20to%20the%20Cross") William G. Fischer (MIDI, score).
fot("William Mc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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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지방 장로교회에서 사용하던《찬셩시, 1895》41장에 처음으로 채택된 이 찬송은, 본디 윌리엄 맥도널드(William McDonald, 1820-1901) 목사가 작사한「나는 십자가로 옵니다」'I am Coming to the Cross' 라는 찬송으로 발표되었고, 지금도 다른 나라에서는 그 가사로 부르고 있다. 원 가사를 보자.
♬ I am Coming to the Cross;
<1절> <1절>
I am coming to the cross; 주님 앞에 옵니다
I am poor and weak and blind; 눈이 멀고 병들어
I am counting all but dross; 쓸 모 없는 이 죄인
I shall full salvation find. 주여 구원하소서
Refrain <후렴>
I am trusting, Lord, in Thee. 주만 믿사옵니다
Blessed Lamb of Calvary; 갈보리의 어린양
Humbly at Thy cross I bow. 엎드려 구하오니
Save me, Jesus, save me now. 구원하여주소서
<2절> <2절>
Long my heart has sighed for Thee; 나의 속에 악한 맘
Long has evil reigned within; 가득하게 찼으니
Jesus sweetly speaks to me: 모두 소멸하시사
」I will cleanse you from all sin.」 깨끗하게 하소서
<3절> <3절>
Here I give my all to Thee: 나의 가진 모든 것
Friends and time and earthly store; 주께 바치옵니다
Soul and body Thine to be, 완전하게 하시사
Wholly Thine forevermore. 주 뜻대로 쓰소서
<4절> <4절>
In the promises I trust; 주의 피로 사신 나
Now I feel the blood applied; 주만 믿사옵니다
I am prostrate in the dust; 십자가를 지고서
I with Christ am crucified. 따라 가게 하소서
<5절> <5절>
Jesus comes! He fills my soul! 완전케 해 주시니
Perfected in Him I am; 정말 감사합니다
I am every whit made whole: 주를 찬양하면서
Glory, glory to the Lamb! 평생 살게 하소서
이런 가사를 가지고 배위량 선교사 부인 안애리(安愛理, Annie L. A. Baird, 1864-1916) 여사는, 당시 풍전등화 같았던 우리나라 국민들의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담아 새로 이렇게 창작을 하였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곧 가까이 오셔서
쉬 떠나지 마시고 부형(父兄) 같이 됩소서

작사자 배위량 선교사 부인 안 애리 여사
이 찬송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애창곡이었다. 망명 중 답답하고 앞길이 아득할 때면, 눈물이 글썽하여 이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이 찬송은《찬셩시, 1895》41장에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었다.
음악가요 시인인 안애리 여사는 한국어의 장단(長短) 음을 극적으로 사용하였다. 가사 첫 마디「멀리 멀리 갔더니」는 곡조와 리듬이 어쩌면 그렇게 잘 맞는지, 기가 막히다. 이 곡조는 경과음으로「파」음이 살짝 지나갈 뿐 완전 5음계요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3박자다. 블리스 목사가 출판한《복음 성가집》'Gospel Songs, 1874' 43장에 처음 실렸다.
곡명「믿음」'TRUSTING' 은 윌리엄 피셔(William Gustavus Fischer, 1835-1912)가 작곡하였다.
작곡자 윌리엄 피셔(William Gustavus Fischer, 1835-1912) 교수는 1835년 미국 메릴랜드의 벌티모어(Baltimore)에서 독일계 이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미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어 8살부터 벌티모어에 있는 독일교회에서 찬양대로 노래를 하였다. 글과 음악을 교회 가창반에서 배웠고 계속하여 피아노와 오르간도 배웠다. 낮에는 제본소에서 일하며 밤에는 음악공부에 열중하였다. 그는 성악교사로서 당대의 유명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찬양대 지휘자 훈련에도 대가가 되었다. 필라델피아로 이사 가서도 성악과 피아노와 음악이론을 가르쳤다. 그는 웨일스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고 웨일스음악협회에도 관계하였다. 1858년부터 10년 동안, 그는 거드대학(Girard College)의 음악교수로 있었다. 교수직을 물러나면서 피아노업계로 뛰어들어 뛰어난 사업솜씨를 보였다. 그는 찬송가 작곡자 존 굴드(John E. Gould, 1821-1875)와도 평생 파트너로 지내었다. 1875년 그는 늦둥이로 아들 찰스를 낳았는데, 이 아들이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성공하였다.
작사자 안애리(安愛理) 여사에 관한 자세한 것은 279장「인애하신 구세주여」해설을 참조하라.
베어드 부인 안애리 여사는, 윌리엄 베어드(裵緯良, William M. Baird, 1862-1931) 선교사의 아내로서, 처녀 적 이름은 애니 로리 아담스(Annie Laurie Adams, 1865-1916)요 한국 이름은 안애리(安愛理)이다. 대구에서 활동하며 계성고등학교를 설립한 안의와(安義窩, James E. Adams) 목사의 누님이요, 계명대학교 설립자 안두화(安斗華, Edward. A. Adams) 목사의 고모이다.
베어드 부인의 어학 실력은 대단했다. 게일(Gale․奇一) 박사는 이렇게 그를 칭찬하고 있다.
“베어드 부인은 한국 외국인 사회에서 첫째 가는 어학자였다…. 부인에게는 그 본성에 시적 영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글이나 말에 맑게 나타나 있다.”
1916년 6월 9일, 베어드 부인이 평양에서 돌아갔을 때, 북장로회 해외선교부 총무인 아더 브라운(Arthur Judson Brown, 1856-1945) 선교사는 다음과 같은 조문을 보냈다.
“베어드 부인의 서거로, 해외 선교운동은 마음과 정의 고귀한 힘을 가졌던 위대한 여성 한 분을 잃었습니다…. 아내, 어머니, 전도자, 교사, 저술가, 번역자, 그리고 성자(聖者)…. 부인은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부인의 일생은 한국 선교사업 확립의 명맥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헌신적인 하나님의 종의 26년에 걸친 희생과 봉사에 대하여, 치하하는 말로 한 장(章)을 쓰지 않고는, 한국 그리스도교 발전에 대한 역사를 포괄적으로 써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옛날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정에는 다음과 같이 새긴 베어드 부인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한문으로 된 비문을 원문과 함께 번역해 싣는다.
裴夫人諱愛理美国人也。生自主後一千八百六十五年九月十五日同九十年随夫君裴緯良牧師渡朝鮮。蓋慾助夫君伝基督教于我邦。初六年服従南部以後到平壌。崇実学校培養多数教役者善終基道。而一千九百十六年六月九日別世。豊功徳河勝所以建石永永紀念。
(배부인의 휘는 애리요 미국인이다. 주후 1865년에 나서 1890년에 부군 배위량 목사를 따라 조선으로 건너왔다. 부군을 도와 우리나라 그리스도교 전도에 힘썼다. 처음 6년은 남부 지방에서 일하다가 평양으로 왔다. 숭실학교에서 많은 교역자를 주님의 말씀으로 교육하다가 1916년 6월 9일 별세하였다. 그의 공덕이 바다 같이 큰바 있어 여기 돌을 세워 길이길이 기념하노라.)
그런데 이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는지는 확인 안 되었다.
이 찬송은 하워드 돈(W. Howard Doane, 1832-1915)이 편집 출판한《헌신의 노래들》'Songs of Devotion, 1870' 102장에 처음으로 실렸다. 본격적인 찬송가로는 생키가 출판한《성가와 독창곡 750곡집》'Sacred Songs and Solos: 750 Pieces, 1880' 63장에 처음 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