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 - 디모데전서 1:12-16
(중심구절 16절)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옛날 포도청에 새로 포도대장이 부임했습니다. 포도청이란 조선 성종 이래로 생긴 제도로 오늘날로 치면 경찰서를 말합니다. 부임한 포도대장이 감옥을 시찰했습니다. 그 감옥에는 많은 죄수들이 있었는데,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나으리, 저는 죄가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풀어주십시오.” 그런데 죄수들 중 한 사람은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히 여겨 그 죄수에게 “왜 너는 가만히 있느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신임 포도대장이 명령을 합니다. “저 죄수를 석방하라.” 많은 죄수들이 이 명령을 놓고 부당하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때 포도대장의 답변이 주어집니다. “이유는 이 죄수 한명 때문에 감옥 안에 머물고 있는 너희 같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악영향이 갈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서 이 포도대장은 속으로 말합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진정으로 자유할 수 있지.'
여러분, 죄인의 특징은 회개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죄인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충성된 종임을 자처했고, 부지런히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알고 난 후엔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13절) 그런데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에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14절)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바울을 초대 교회의 귀한 사역자로 세웠습니다. 여기에는 그만한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을 오래 참아주심으로 온 교회의 본보기로 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목적이 오늘 여러분과 저를 향한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오래 참으심으로 대우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비방하고 대적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혹자는 자기는 주님을 비방한 적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악에서 자유로운 자는 없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상황 속에서 절대적으로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길 수 없다면 그것은 곧 주님의 이름을 헛되게 만드는 것과 일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주님을 망각하고 내 방식을 고집한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주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신성모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죄악에 매여 있는 우리를 오래 참으심으로 찾아오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를 오래 참아 주심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품고 참아주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런데 신앙이 오래될수록 참을성이 더 떨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있습니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그러면서 자라는 것인데, 그것을 참아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한몸된 지체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은 제법 연륜 있는 분들이 아닙니까? 우리 역시 마찬가지 잘못을 종종 저지릅니다. 예수님 보시기에는 어떤지 관심 없으면서 당장 자기가 보기에는 문제 있다며 비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려고 하면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실천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서막을 열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이따금 ‘사랑’ 자리에다가 제 이름을 넣어봅니다. “성수는 오래참고/ 성수는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성수는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물론 매번 저는 절망에 빠집니다. 완전히 외식하며 주님을 가슴 아프게 하는 내 모습을 반복해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말씀은 우리에게 오래 참으라고 요구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오래 참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의 인내를 받은 자로 또 다른 사람들을 인내로 감싸 안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오래 참으심으로 대접해 주셨습니다. 그 주님은 오늘도 내일도 긍휼로 우리를 대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데에는 주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은혜를 받은 그대로 이웃들에게 베풀라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은 큰 은혜로 그 빚을 면제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고작 일백 데나리온 빚진 친구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지체들에게 박하게 대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겐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는 속좁음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긍휼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묵상합시다. 그 오래 참으심이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기를 열망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인내하심이 우리의 지체들에게, 또한 장차 믿어 구원에 이를 영적인 자녀들에게 우리를 통해 흘러가기를 간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