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꾸는 반복적인 악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둥글게 둘러싸고 비난한다. 아이는 공포스럽고 두렵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며 생각한다. '이 사람도 나를 상처 준 사람인가?' 이것은 공포와 동시에 경계(vigilance)를 의미한다. 트라우마 이후의 마음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묻는다. "안전한 사람인가?" "위험한 사람인가?" "또 상처받게 될까?" 아이의 꿈속 사람들은 비난하고 있는 타인을 넘어, 그 아이의 신경계 안에 저장된 수많은 '위험 신호들'을 상징한다.
나는 커다란 꽃잎들로 겹겹이 싸여있는 큰 꽃이 있는 꿈을 꾸었다. 꾸자마자 그 아이를 떠올렸고, '겹겹이 싼 꽃잎들이 마치 아이를 보호하는 사람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꽃의 중심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되었다. 꽃잎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생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시에 세상과 아이를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한다. 두 꿈의 공통점은 커다란 꽃의 중심에도, 아이의 악몽의 중심에도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둘 다 원형 구조이다.
겉으로 보면 하나는 아름답고 커다란 꽃이고 하나는 무서운 악몽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두 꿈의 이미지를 합쳐 보면, 그 커다란 꽃은 단순한 보호의 상징이 아니라 상처 이후 형성된 세계 전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웅크린 자신을 둘러싼 꽃잎들 하나하나가 지금 이 아이에게는,
- 비난의 기억
- 수치심
- 경계심
- 상실감
- 두려움
그리고 실제로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의 내면화된 흔적들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꿈자아는 매우 중요한 행동을 하고 있다. 무섭지만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한다. 이것은 매우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아이의 자원을 보여준다. 트라우마는 종종 온 세상에 대해 눈을 감게 만든다. 그런데 아이는 눈을 뜨고 본다. 물론 아직 세상이 안전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위험을 확인하기 위해서지만, 이 행위는 세상에 대한 접촉의 시작이다.
어쩌면 꽃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이 꽃잎들은 너를 가두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야. 너를 보호하려고 생긴 거야. 꽃잎의 얼굴 하나하나를 자세히 봐. 너에게 상처준 사람들이 아니야."라고. 꽃잎들이 완전히 펼쳐진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믿게 되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나를 해치는 것은 아니다"라는 구별이 가능해지는 상태일 것이다. 즉 세상에 대한 일반화된 공포에서, 두렵지 않는 존재에 대한 변별이 가능해지는 자리이다. 트라우마의 핵심에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그곳은 논리나 해석 이전의 자리이다.
꿈의 중심에 용기 내어 고개를 드는 아이. 아이에게는 상처받았지만, 공포 속에서도 사람들을 확인하는 생명력이 있다. 그 아이에게 학교는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니라,
- 사람들 속에 조금씩 존재해보기
- 불안을 견뎌보기
- 위험과 안전을 천천히 구별해보기
- 관계를 경험해보기
를 연습하는 장이 된다. 학교는 많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는 공간이다. 이 아이에게 학교에 간다는 것은 단순한 출석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는 경험을 조금씩 축적해가는 과정이다.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용기 내어 1교시라도 들어가 있는 경험, 불안해도 교실 문 앞까지 가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수많은 꽃잎들의 보호 속에 아이는 오늘 드디어 등교했다. 아이의 등교를 알려주는 부모님의 문자에서, 침묵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지금 당장 의미를 만들지 말고, 그 두려움 곁에 머물러 보렴, 아주 잠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