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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설 방

펌 : 그 황홀한 숨결 1편

작성자구원|작성시간12.05.12|조회수46,029 목록 댓글 3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은 산 위에서 내려온 바람이 다 차지했나 보다. 세찬 바람이 숲
을 엎지르며 햇살마저 날려버릴 듯이 을러댄다.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집 안에서는 기척이 없다.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러 본다.
그래도 기척이 없어서 돌아서려는데 인터폰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결혼식 때 가지 못해서 아직 만나보지 못한 형수인가 보다.

"안녕하세요? 대구에서 온 진혁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진혁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여자가 크고 맑은 눈으로 진혁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누구시라고 하셨죠?"

목소리가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하면서도 나붓한 느낌이 든다.

"정진혁이라고 합니다. 여긴 이모 댁인데......"

여자는 그제야 진혁이 누군지 알아챘나 보다. 얼굴 가득 반가움이 번진다.

"어머, 이모님 댁 도련님이시네. 몰라봐서 죄송해요. 어서 들어오세요."

진혁은 눈앞에 있는 앳된 느낌의 여자가 형수라는 사실이 주는 놀라움을 숨기고 꾸벅 인사했
다.

"형수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정진혁입니다."

"저도 도련님 처음 보네요. 진하영이에요."

듣기로는 서른두 살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많게 봐도 이십 대 중반을 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
는 얼굴이었다. 풍성한 홈드레스를 벗고 다른 옷을 입으면 이십 대 초반으로 볼 수도 있을 만
큼 앳되고 청순해보인다.

처음 와보는 이모 댁이었다. 이모 댁이 이곳 광장동 언덕 위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할 때와 사
촌형 지훈이 결혼할 때 진혁은 미국에 있었다.
다시 세차게 불어온 돌개바람에 하영의 치마가 펄럭이고 마당 한쪽에 있는 은행나무 이파리
가 우수수 떨어진다. 하영의 손이 진혁의 등을 부드럽게 떠밀었다.

"내 정신 좀 봐, 귀한 도련님을 밖에다 세워 두고 있었네.
얼른 들어가세요."

잘 가꾸어진 정원까지 딸린 넓은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진혁은 이모부의 사업이 꽤 잘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진혁의 등을 바람 한 줄기가 타 넘더니 앞으로 달려가며 하영을 휘감는다.
그 바람에 하늘하늘한 홈드레스가 하영의 몸에 착 감기고 터질 듯한 몸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
러난다. 아찔한 시각적 자극에 진혁의 얼굴이 단풍 빛으로 물들었다.

진혁에게 거실의 소파를 권한 하영은 마실 것과 과일을 준비하느라 주방을 분주히 오가고 있
다. 진혁은 그런 하영의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눈으로 좇으며 독특한 설렘을 주는 미인이라고
생각했다. 적당한 키에 동그란 어깨와 하얀 얼굴, 찰랑거리는 긴 웨이브 머릿결이 청순한 느
낌이 들게 하면서도 은밀히 가려진 요염함이 보일락말락 드러나는 듯한 분위기였다.
크고 동그스름한 엉덩이 바로 위의 잘록한 허리가 특히 눈길을 끌었는데, 하영이 걸을 때마다
홈드레스를 비집으며 드러나는 엉덩이와 허리의 윤곽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려 버릴 것처럼 큰 눈과 선하고 온화하면서도, 쳐다보기조차 벅찰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에 비해 몸 전체로 물씬물씬 풍기는 그 관능을 진혁은 매혹이라고 생
각했다. 확 드러났다가 이내 질리는 색기가 아닌, 우아하면서도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저리게
하는 고혹으로 느껴졌다.
손 닿을 수 없는 곳을 더 애타게 바라보는 아스라한 안타까움 같기도 했다.

음료수와 과일을 준비하는 게 끝났는지 하영이 쟁반을 들고 거실을 가로질러 소파로 걸어온
다. 앞모습에서도 허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크고 아름다운 둔부와 봉곳하게 솟은 가슴 사
이에 자리 잡아서인지 더 잘록하게 보이고, 걸을 때마다 허리를 기준으로 상체와 하체가 반대
방향으로 흔들리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신다고 들었는데 언제 귀국하셨어요?

쟁반을 내려놓고 곁에 앉은 하영의 말에 진혁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친형제처럼 지내던 사촌
형의 부인을 훔쳐보며 품었던 생각들이 부끄러워졌다.
진혁은 형수의 몸을 훔쳐보며 뜨거운 눈길로 더듬었던 것이 미안해서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왜 그렇게 형수의 몸을 눈으로 샅샅이 훑었는지 진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진혁은 몰랐기에 자책하였지만, 그것은 진혁의 문제가 아닌 하영에게서 비롯된 문제였다. 그
것도 하영이 의도한 것이 아닌 하영의 몸에서 배어나는 분위기가 저절로 그렇게 되게 한 것이
었다. 진혁이 불순한 마음을 품지 않았는데도, 하영의 몸이 진혁의 눈길을 끌고 다녔다는 것
을 진혁은 몰랐다. 그만큼 하영이 발산하는 분위기가 아슬아슬하고 매혹적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가려진 채 조금씩 들쳐지는 것이기에 더 깊고 아찔한 늪이었다.

"졸업하고 들어온 지는 일주일 정도 되었습니다.
입대하기 전에 이모랑 형님 뵈려고 왔더니 형수님을 젤 먼저 뵙네요."

"그래서 실망하셨어요?"

그 말에 하영이 서운하다는 듯 새치름한 표정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웃을 때 눈이 먼
저 웃는 사람치고 미인이 아닌 사람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이모부 곁에서 사업을 도와주는 사촌형 지훈과 이모부는 함께 피지에 출장 중이었다. 현지의
관광청과 합작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며칠 전에 출국하여 다음 주나 되어야 들어온
다고 했다.
진혁은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온 것을 후회했다.
평소 외국에 나가는 것을 꺼리던 이모도 피지가 유명한 관광국이라는 것을 알고는 같이 갔다
고 했다. 하영만 친정에 일이 있어서 남았다는 것이었다.

"돌아오실 때까지 저랑 서울 구경하면서 기다리세요."

하영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어도 진혁은 난감했다. 입대일자는 보름 정도 남아 있지만,
형수 혼자 있는 집에서 기다린다는 게 주저되었다.
이모와 형을 못 본지 벌써 몇 년째이므로 그냥 갔다가는 또 서운해서 난리가 날것도 불을 보
듯 뻔했다.
이제 겨우 화요일인데 그들은 다음 주 수요일에나 들어 온다고 한다. 진혁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사이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하영은 진혁이 고민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진혁만 괜찮다면 자신은 함께 기다리는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처음 보았지만, 반듯하
고 왠지 모르게 미더운 시동생이었다. 나이답지 않게 깊은 눈빛이 마음에 와 닿고 쑥스러움을
숨기며 웃는 웃음이 싱그러웠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오랫동안 함께 지낸 동생처럼 스스
럼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넓은 집에 혼자 지내는 게 무서웠던 하영이었다.
진혁이 고민하는 것을 보며 그가 주저하지 않도록,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지 않
은 게 후회스러웠다. 이모 댁에 와서 그냥 가려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했었더라면, 당연한 것
처럼 편하게 머물 텐데 싶어 미안했다.
고민하는 듯한 진혁을 보면서 하영이 지금이라도 그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마침 남편 지훈이었다.

진혁은 좀 전까지 고민하던 것도 잊은 채, 통화 중인 하영을 보고 있었다.
서서 움직일 때는 몸에서 은은하면서도 아찔한 관능의 가루가 흩날리는 것 같더니 다소곳이
앉아서 통화하는 모습은 청초하면서도 가냘프다. 같은 사람에게서 어떻게 저런 다른 모습이
동시에 느껴지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네, 밤에 무서운 것 빼고는 별일 없어요.
아가씨도 시부모님이 입원하셔서 못 온다고 하고, 밤엔 무서워서 못 자고 낮에만 자는 걸요."

통화하는 내용으로 봐서 사촌형이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하영이 잠시 수화기를 막으며 눈으로
웃었다. 그리고 마치 저쪽의 지훈이 들으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이 수화기를 손으로 막더니
진혁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형이에요."

그 짧은 속삭임의 과정이 진혁을 짜릿한 파문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말의 내용이 아닌, 하영이 아까의 어색함을 떨치려고 지은 웃음과 목소리가 문제였다.
'형이에요.'라는 네 음절의 말을 속삭이려고 진혁의 귀 가까이 다가오던 입술과, 그 입술에서
달콤하게 배어 나온 숨결과 홀릴 듯한 눈이 문제였다.
아직 여자를 깊게 알지 못하는 진혁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자극을 받으며 그 짧은 순간에 하
영을 여인으로 느꼈다.
그리고 여인이 뿜어내는 은밀한 고혹에 발을 딛으며 그 향기를 깊이 들이키고 말았다.
'형이에요.'라는 네 음절의 말이, 애교와 매혹과 향기와 버무려져서 몇십 음절로 늘어나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소리만이 아닌 형상과 향기와 감촉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짧은 그 순간에 진혁은 환상을 보고 말았던 것이었다.
작고 매끈한 손이 하영자신의 사타구니를 쓰다듬으면서, "하아앙..형..이..에..요..흐응"하며
꿈틀거리는 환상이었다.
진혁은 얼굴을 붉힌 채 머리를 흔들며 겨우 그 환상에서 벗어났다. 아직도 통화 중인 하영을
보니 그냥 아름답고 애교 있는 형수일 뿐이었다. 좀전의 그 생생한 꿈틀거림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단정하고 청순한 모습으로 통화하고 있었다.

여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진혁이지만, 하영이 다른 여인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다른지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르다는 것만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
었다.
얼핏 보기엔 가냘플 정도로 청초하지만,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아찔한 향기가 물씬거렸다.

하영이 수화기를 진혁에게 건네준다.

"받아보세요. 형이 도련님 혼내려나 봐."

진혁은 눈을 하영의 얼굴에 고정한 채 전화기를 받다가 그만 하영의 손을 더듬었다. 진혁과
하영의 첫 신체접촉이었다. 포근한 것 같기도 하면서 막 솥에서 건진 도토리묵을 만지는 것처
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아득한 감촉에 놀라 황급히 손을 떼는 바람에 전화기가 바닥에 떨
어지고 하영이 소리없이 웃었다.

"일 때문에 나와 있어서 미안하다야. 형수한테 이야기했으니까 같이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해달라고 하면서 기다려. 일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

"집에 내려갔다가 귀국하실 때 맞춰서 다시 올게요."

지훈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진다. 몇 년 만에 왔다가 그냥 가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거기가
남의 집이냐고 호통까지 친다. 그냥 가면 혼날 줄 알라고 숫제 엄포를 놓는다.

"형님도 안 계시고 어른들도 집을 비우셨는데 어떻게 일주일씩이나 기다려요?
내려갔다가 다시 올게요."

"야, 이 녀석아. 형수랑 데이트하면서 기다리면 되잖아. 안 그래도 무서움 많이 타는 니 형수
를 혼자 두고 와서 걱정했으니까 딴소리하지 말고 기다려.
형수랑 같이 가까운데 여행도 가고 그러렴."

지훈은 윽박지르다시피 하며 기어코 진혁이 기다리겠다고 약속하게 하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하영은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듣고 나니 미안함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지훈이 다시 하영을 바꾸게 하더니, 무료하지 않게 잘 챙겨주라고 당부하는
것 같았다.

"알았어요. 걱정 말고 일 잘 보세요.
멋진 도련님을 애인 삼아 아주 장거리 여행이라도 가버릴까 보다."

애인 삼아버린다는 하영의 말에 수화기 저편에서 지훈이 웃는 소리가 진혁에게까지 들렸다.
일주일 넘게 남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지 걱정이지만, 일단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나니 마
음은 편했다. 전화를 끊은 하영이 진혁을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도련님,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세요, 제가 예쁜 친구 해 드릴게요."

귀를 지나 머릿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하영의 독특한 음색이 진혁의 마음에 또 파문을 일게 했
다. 진혁은 자신도 모르게 잘게 몸을 떨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쑥스러워서 얼굴을 붉히는 커다란 덩치의 시동생이 하영에겐 싱그럽게
느껴진다.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진혁을 바라보던 하영이 소파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가며 화사
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우리 일단 맛있는 저녁부터 쓱싹 해치우자구요."


하영과 진혁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길옆 은행나무에서 잘 익은 가을이 뚝뚝 떨어져 은행열매로 굴러다닌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하영은 또 다른 분위기의 여인이었다.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와 미색 가
디건을 걸친 모습은 아무리 높게 봐도 이십 대 초반의 학생처럼 보인다.

"하나뿐인 우리 도련님을 처음 만났는데 남의 손 빌려서 저녁 드시게 하는 건 말도 안돼.
이 형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 한다구요. 맛있는 것 정성껏 만들어 드릴 거야."

단둘이 먹을 저녁이니 번거롭게 준비하지 말고 나가서 사먹자는 말에 하영이 곱게 눈을 흘기
며 한 말이었다. 우리 도련님이라는 말이 진혁에겐 아련한 두근거림과 따스함으로 와 닿았다.


언덕길을 내려오며 바라보는 한강에 노을이 깔린다.
걸음을 멈추고 한강을 바라보는 하영의 얼굴에도 노을이 물든다. 그 모습이 진혁의 가슴에 동
화 속처럼 아름다운 그림으로 담기고 있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하영이 입을 열었다.

"도련님, 어떤 음식 잘 드세요? 이 형수께서 우리 도련님을 위해서 예쁘고 실력 있는 요리사로
변신할 테니 분부만 내리세요."

말을 할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하영이 이번엔 개구쟁이처럼 귀여운 모습이다.
진혁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형수님이 손수 해주시는 음식이라면 자갈을 볶아서 주신대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해주는 진혁과 함께 걸으면서 하영은 자신이 모처럼 많이 웃는다고 생각
했다. 싹싹하고 예의가 바른 데다가 MIT의 박사학위까지 딴 사람답지 않게 순진한 진혁이 친
근하게 느껴진다. 호랑이라도 때려잡을 것처럼 건장한 체격이면서, 자신의 말 한마디에도 얼
굴이 붉어지는 진혁이 귀여웠다.
평소 시부모와 남편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칭찬하던 시동생이었다. 막상 만나보니 말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정이 가고 스스럼없이 느껴진다.
그런 시동생과 함께하는 외출이 하영을 달뜨게 했다.

진혁도 하영이 오래전부터 알아온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3대 독자인데다가 어머니마저 자매만 있어서 종형제는 물론이고 내외종도 없었다.
사촌이라고는 자신보다 다섯 살 많은 이종사촌형 지훈과 그 세 살 아래인 현주 둘뿐이었다.
공교롭게 이모부 집안도 손이 귀하여 지훈과 현주에게도 사촌이라고는 진혁 하나뿐이었다.
그렇기에 두 집안은 더 서로 아끼고 위하였고 사촌끼리는 친형제처럼 지냈다.
어릴 때 진혁은 형수가 있는 친구들이, 예쁜 새댁으로부터 도련님으로 불리는 게 부러웠다.
그게 부럽고 샘나서 사촌형 지훈이 고등학생일 때부터 얼른 장가가라고 졸랐었다. 그러다가
막상 지훈이 결혼할 때는 공부하느라 참석하지 못한 게 안타까웠었다. 그런 진혁이었던 만큼,
매혹적인 여인으로부터 도련님이라는 말을 들으니 아련하고 좋았다.
자신의 형수가 아름답고 애교 있는 여인이라는 게 흐뭇하고 좋아서 마음이 그득해졌다.

가까운 곳에 대형 마트가 있었지만, 진혁과 하영은 더 멀리 있는 광장시장으로 갔다.
하영은 될 수 있으면 마트 대신 재래시장을 이용한다고 했다. 왁자한 가운데 사람 사는 모습
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따뜻함이 좋다는 것이었다.
눈부신 외모로 보아 화려한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짐작했었던 진혁에겐 그 소박함이 신선하
게 와 닿았다.

시장에서 상인들과 흥정할 때의 하영은 영락없는 알뜰 주부였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야채와 육류와 그 외 양념거리를 산 하영은 지금 어물전 아주머니와 흥
정 중이었다.

"아이, 아주머니 그러지 마시고 조금만 더 깎아주세요."

"싸게 드린 건데 여기서 더 깎으면 우린 밥도 굶어야 한다우."

사람 좋은 인상의 아주머니는 떼쓰는 하영이 귀엽게 보이는지, 손사래를 치면서도 웃으며 대
꾸했다. 하영의 목소리엔 애교가 철철 넘친다. 누군들 웃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아주머니 인상이 푸근하셔서 꼭 울 엄마 같아.
딸처럼 여기고 좀 더 빼주세요. 앞으로는 동네 아주머니들 싸악 다 델고 여기만 올 거라구요."

그 애교에 어물전 주인이 졌다는 듯이 두 팔을 들었다가 놓으며 인심을 썼다.

"내 아가씨가 하도 이뻐서 싸게 주는 거유."

비닐봉지에 고등어를 담아주던 아주머니가 뒤에 서 있는 진혁을 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하
영에게 물었다.

"애인이우? 신랑이우? 참 훤하니 잘생겼네."

그 말에 진혁이 얼굴이 발개져 형수라고 대답하려는데 하영이 생글거리며 냉큼 받아 넘긴다.

"애인이에요."

그러더니 진혁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자기, 이제 가요."

졸지에 하영의 애인이 되어버린 진혁은 얼굴이 달아오르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어물전 아주머니의 웃음을 뒤로하고 시장을 나오면서 하영이 물었다.

"형 올 때까지 저랑 데이트하기로 했으니 며칠간은 도련님 애인 맞죠?"

진혁은 애인이라는 말에 두근거림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면서 싹싹하게 대답했다.

"형수님처럼 미인이 애인 삼아주시면, 저야 자다가도 일어나서 춤 출 만큼 좋죠. 기왕이면 연
인이라는 말이 더 좋을 것 같네요."

하영이 눈으로 웃으며 장난스럽게 다짐을 받았다.

"그럼 지금부터 우린 연인인 거 맞죠?"

그 눈웃음이 진혁의 마음을 또 흔들어 놓는다.

"넵. 이제부터 형수님께 충성을 다하는 연인이 되겠습니다."

하영이 진혁의 팔을 덥석 잡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연인이니까 정식으로 팔짱 낄 거야."

하영에게 붙잡힌 팔이 자신의 것인데도 진혁은 그 팔이 아릿하게 부러웠다.
하영의 손이 닿은 곳이 팔 아닌 가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할 수만 있다면 가슴을
팔로 옮기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혁과 하영은 몰랐다.
장난끼를 섞어서 엮은 연인이라는 끈이 자신들을 끝까지 묶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인연이 얼마나 깊을 지 알 수 없기에 그냥 서로의 체온이 맞닿는 팔의 감촉을 따뜻하게 느
꼈을 뿐이었다.

 

여러분의 반응을 보고 생각해보고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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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선인 | 작성시간 25.04.13 넘.나고청순한글에
    감사들여요
  • 작성자또닥이 | 작성시간 25.07.02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부재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7.06 자주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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