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789)
▶오래 전에 한 군인이 탈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생활이 너무 힘드니까 탈영을 했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래서 20년형을 받았습니다. 20년형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갔는데 외아들이라 그 어머니가 살림을 다 팔고 교도소 가까운 쪽으로 집을 얻어서 아들 가까이 이사를 갔습니다. 가서 항상 창을 열고 그 아들 쪽을 보고 있습니다. 아들이 냉방에서 자기 때문에 그 어머니도 냉방에서 지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고 면회도 거절하고, 옛날 애인도 도망가버리고, 형제들도 다 외면하고 거들떠보지 않는데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20년 동안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옷을 가져다 주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옷을 가져다주고 또 어머니가 즐겨 읽던 성경도 넣어주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서 아들이 석방될 때 그 아들은 중년 남자가 되었고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성탄절 날 석방되어 나왔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그 아들이 고백하면서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이런 시를 써서 헌시를 합니다.
내 감옥에 있을 때
어머니 나를 떠나지 않고 찾아오셨으며
내가 감옥에 누워서 외로이 있을 때
어머니 마음 내 곁에 와 있었으며
내가 추위에 떨 때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나를 덮으셨고
내가 외로워 눈물 흘릴 때
어머니의 손길 내 눈물 닦아주셨네.
내가 외로이 방안에 누워있을 때
어머니 마음은 나를 둘러 감싸주셔서
이 외로움을 너머 극복했네.
그가 이 시를 헌시하면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자기를 버리지 아니하고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유명한 책을 썼던 성자 '토마스 아켐패스'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토마스 아켐패스야, 네가 너무도 나를 사랑하고 내 뜻을 받들어 살려고 하니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주기 원하노라 네 소원을 말하라' '주님, 주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아니다.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고 싶으니 말하라' '주님 함께 계시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더 소원이 없습니다.' '아니다. 말하라'
세 번이나 물어봐도 여전히 토마스 아켐패스는 '더 이상 소원이 없사옵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함께 하심에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네 번째 음성이 들려옵니다. '토마스 아켐패스야, 너는 세상에 아무도 부러울 것이 없는 가장 좋은 것을 가졌느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부간에 살면서도 그런 것을 봅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학력을 묻고, 가문을 묻고, 인물을 묻고, 건강을 묻고, 돈을 묻고 여러 가지를 물으면서 결혼을 합니다. 살아 가면서는 돈 잘 버는 남편이 좋고 승진하는 남편이 좋은데 나이가 들면 딱 한마디 있습니다. '여보, 당신이 오래 살아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서로 함께 하면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임마누엘의 은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사는데서 임마누엘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제가 큰 감동을 받은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책인데 눈물 없이는 못 읽는 책입니다. 제가 제 아내와 함께 인도 선교현장을 답사하기 위해서 홍콩을 경유해서 갔는데 홍콩 공항에서 '타이타닉 호' 얘기가 실려있는 부분을 읽다가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1912년 스트라우스 부인은 남편과 함께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었습니다. 마침 배는 빙산에 부딪혀 서서히 침몰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와 함께 바다 한가운데로 사장되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어린 아이와 여자들은 구명 보트에 의해 구조를 받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남편과 헤어질 수 없어 구명 보트를 버리고 남편이 타고 있던 타이타닉 호에 올라 함께 죽음을 맞이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트라우스 부인이었습니다. 스트라우스 부인은 자신과 평생을 보냈으며, 자신의 가까운 친구였고, 자신의 진정한 동반자였으며 언제나 자신의 영혼을 위로해 준 그 남편의 손을 잡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저는 구명 보트를 타지 않을 거예요. 당신과 나, 우리는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이제 우리는 늙었고 난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가는 곳에 나도 가겠어요. 그 곳이 죽음의 길이라도 말이에요'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 두 부부는 두 손을 꼭 잡고, 그렇게 갑판 위에 서 있었습니다. 충실한 아내는 남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면서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 서 있었습니다.
▶찬송가 405장을 작사한 '존 뉴턴'이라는 사람의 아버지는 선장이었습니다 아들도 그것을 보고 배웠기 까닭에 선장이 되었습니다. 존 뉴턴은 노예선 선장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물건을 나르는 화물선 선장이나 사람을 나르는 연락선 선장은 그저 월급을 적당히 받고 일하지만 노예선 선장은 월급을 굉장히 많이 받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노예를 붙잡아 모아 놓으면 노예상인들이 값을 적게 주고 사서 배에 실어 유럽으로 가고 미국으로 가져다 팔았습니다. 그러므로 노예를 헐값에 사고 금값으로 팔기 때문에 이 매매업자들이 선장에게 두둑이 월급을 주곤 합니다.
선장노릇을 얼마 동안 해 보았더니 돈에 눈이 밝아졌습니다. '내가 선장 노릇을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노예 매매업자가 되어야 하겠다'라고 마음먹고 노예장사가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풍랑을 만나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토마스 아켐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되었고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 "내가 잘 못살아도 한참을 잘 못살았다. 내 인생이 무엇인가?"라고 단단히 회개를 하였습니다.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영국의 복음주의 파의 목사가 되었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을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그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라는 찬송을 지었습니다.
뉴턴이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옛날 노예선 선장 때 같이 일하던 친구들 또는 노예 매매를 하면서 수지를 서로 맞추던 친구들이 '뉴턴이 저렇게 변화되었다는데 한번 가 보자'고 하면서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그 때 뉴턴이 '나의 옛날 생활은 아프리카 맹수의 생활이었네 다른 짐승들이 자기네 가족끼리 재미있게 살면 너 한 놈은 나를 위해서 죽어 줘야겠다하고 잡아먹는 아프리카의 맹수 말일세. 네가 희생되어야 내가 사는 그런 생활을 했지. 사자나 호랑이도 사람의 손에 붙잡혀서 길들여지면 얼마나 순해지는가? 순해진 사자나 호랑이는 구경거리가 되어 주인에게 돈을 많이 벌어 주지 않나? 그런데 맹수 같던 내가 예수님께 붙잡혀서 길들여져서 구경거리가 되었고 목사가 되었지!'라고 말을 합니다.
뉴턴의 변화가 훈련을 받고 된 것입니까? 훈련을 받아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변화된 것입니다. 즉 예수로 말미암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선물은 변화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화가가 그림을 하나 그립니다. 큰배가 대양을 항해하고 있는데 얼마나 파도가 크게 이는지 모릅니다. 올라 갈 때는 천당에까지 올라가는 것 같고 떨어질 때에는 지옥에까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바다에 쑥 들어가면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측할 수 없는 문제라는 파도와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 그리는 화가가 그쯤 되었으면 그 배에 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릴 때 새파랗게 질린 모습을 그려야 하지 않습니까? 바들바들 불안에 떠는 모습을 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마음의 평안히 얼굴에 나타나게 그렸습니다. '잘 못 그렸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라고 사람들은 말 할 수 있습니다. 배에는 선장실이 있습니다. 그 배의 선장실을 자세히 살펴보니 선장이 작게 그려져 있는데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장이 되어 키를 잡고 계셨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파도 하나쯤 이겨 내지 못하시겠는가? 하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한 배를 타셨다는 데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운명을 함께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까? 무엇이 걱정입니까? 그렇기 까닭에 '평안한 모습으로 그렸다'라는 것입니다.
▶1945년 4월 8일 주일 아침에 독일의 나치에 저항했던 본회퍼라는 목사님이 아침 기도를 드리기도 전에 험상궂게 생긴 두 사나이가 소리쳤습니다.
'죄수 본회퍼. 우리를 따라와' 그들을 따라 오라는 말은 사형을 집행하러 가는 최후의 명령입니다. 옆에 있던 영국 장교가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마지막이군요.' 본회퍼 목사는 미소를 머금고 평화스런 낯으로 말했습니다. '마지막이 아닙니다. 지금이 시작입니다.'
본회퍼 목사에게 죽음은 새 시작이었습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문이었습니다.
▶오클라호마의 유명한 흑인 목사 페리는 부활에 대한 좋은 예화를 말했습니다.
'한 마리의 큰 뱀이 바다 속을 헤엄치면서 많은 물고기를 집어 삼켰습니다. 그러다가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를 집어 삼켰습니다.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가진 이 물고기는 뱀의 뱃속에 들어가 너무 캄캄한지라 여기서 못살겠구나 하여 자기의 무기인 날카로운 지느러미로 그 뱀의 배를 찢고 나와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먼저 잡혀 먹힌 다른 물고기들도 그 뒤를 따라 나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뱀은 죽었습니다.'
이 뱀은 사망입니다. 이 뱀이 오랫동안 사람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까지 삼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무덤을 열어 헤치고 나왔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가 예수님을 따라나오게 됩니다. 믿는 자의 산 소망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무덤 문은 열렸습니다.
▶옛날에 좀처럼 울지 않기로 유명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세 번 울은 적이 있답니다.
한번은 그가 페르시아 원정을 갔을 때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묘비를 보고 울었는데 '인생이 아무리 한때 부귀영화를 누려도 결국은 한 개의 무덤밖에 남기는 것이 없으니 허무하구나'하고 눈물을 흘렸으며, 인도의 인더스강가에서 인더스 강만 건너가면 인도를 정복할 수 있는데 지친 부하들이 따라주지 않고 다시 돌아가야만 할 때 거기서 목놓아 울었었고, 또 한번은 그가 부하들과 모래사장에서 씨름을 하다가 넘어졌는데 넘어진 그 자리를 보고 울었다고 합니다.
그를 넘어뜨렸던 부하가 하도 무안해 '왜 우시냐'고 물었더니 '부하에게 져서 원통하여 운 것이 아니라. 모래사장에 넘어진 자국을 보고 내가 지금은 이렇게 큰 나라를 가지고 부귀 권세를 누리지만 나도 죽으면 한 평의 땅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인생이 얼마나 무상하냐'고 하며 울었다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고통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숙명의 과제이었습니다. 아담 이후 인류의 종착점은 무덤이었습니다. 무덤은 인간 최대의 절망이며 어둠이며 마지막 종착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류의 숙제인 사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인생이 사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중요한 얘기는 단 5%도 하지 못하고 살고, 헛소리들만 한 95%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헛살았다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십니다. 소금이 없으면 음식이 부패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적절한 십자가가 없으면 그 영혼은 반드시 부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마련하신 잔을 기쁘게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습니다'(No Cross, No Crown).
▶여러분! 살아가면서 '얻으려고 하는 일'에만 전념하지 말고 '드리는 일'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선교와 구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더욱 풍성한 행복감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마다 '달라!'고만 하지 마시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도울 사람이 없습니까? 제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이 시간에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 생각나게 하시고 실제로 내 손을 펴서 그를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어떤 사람은 천당에 가면 땀도 흘리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평안히 놀고 먹는 곳으로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막상 천당에 가 보았더니 과연 자기가 믿은 대로 놀고 먹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보니까 그 생활도 지겹고 견딜 수 없이 차라리 지옥에 가서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제발 지옥으로 보내 달라고 했더니 '네가 있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 태어나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태어나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사명으로 살 때 비로소 천국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 청년이 목사님의 천국설교를 듣고 찾아와서 '목사님! 도대체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저도 천국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목사님은 '아! 그래요, 그렇다면 제가 천국을 보여드리지요! 우리 마을 어귀는 조금 벗어나면 가난하게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 할머니는 병이 들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굶는 날이 많습니다. 그분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입을 옷을 갖다 주고 약도 사다 갖다 주고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며 그분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천국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하면 천국을 볼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천국을 보실 것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 청년은 목사님의 말씀대로 그 할머니를 찾아가 먹이고, 입히고, 약을 주고,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같이 하나님은 찬양입니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천국을 본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목사를 찾아가서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는 했지만 저는 천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당신이 그곳에 있는 동안 그곳은 천국이었습니다. 천국은 바로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곳입니다. 아무 것도 자기의 것이 없는 곳입니다.' 청년은 이 말을 듣고 당황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천국이 바로 내 곁에 있었다니'
그 후 청년은 더욱 더 가난하고 병든 이웃과 함께 나누며 매일매일 천국을 맛보며 살았습니다.
불란서의 문호 '루소'는 '인생은 두 번 때어난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살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고, 또 한 번은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일에는 때가 늦는 법이 있고,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늦는 법이 없습니다. 지금하면 됩니다. 항상 기회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일이라고 생각할 때 소명이 됩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온 식구가 밥상머리에서 즐겁게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뽕'하고 누군가가 방귀를 뀝니다. 이때 7살 먹은 큰아들이 어머니를 향해 '엄마가 뀌었지?' '난 아니야' 이번엔 동생을 가리키며 '네가 뀌었지?' '형 나는 정말 아니야'
그때 큰 아들놈이 하는 말이 '어떤 놈이 한번만 더 뀌면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만큼 아버지의 입지가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한 성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선 성도들의 맨 뒷자리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훈장처럼 잘한 것을 달고 나온 가운데 그만은 유별났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하였느냐?'고 주님이 물으실 때 '주여, 잘한 일이 하나도 기억되지 않습니다.' 이런 겸손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일생을 아프리카 선교사로 생애를 바쳤던 '리빙스턴'은 '천국에 관계된바 없이는 내게 있는 것 그 어느 것도 나는 아무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내가 아프리카에서 나의 생을 희생한다고 말들을 하는데,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희생한 일이 없다. 하나님은 나에게 건강한 몸으로 좋은 일을 하게 하셨고, 마음에 평화를 주셨고, 이후에 올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의 밝은 소망 가운데 일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요,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백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처음 찾아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곳에서 흑인 아이들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백인들이 눈깔사랑을 주고 그 다이아몬드를 다 가지고 갔습니다. 그 흑인 아이들은 다이아몬드의 진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나오는 부자청년도 그 귀한 영원히 사는 영생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잠깐 있다가 없어질 재물 때문에 영생을 포기한 것입니다.
▶한 부자가 황금덩어리를 싣고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가라앉고 있을 때 선장이 외치기를 '빨리 구명정에 올라 따라'고 외쳤지만 이 부자는 금 덩어리가 너무 아까워 구명정에 옮겨 타지 못하고 그 금 덩어리와 함께 바다에 잠겨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돈에 대한 욕심입니다.
▶탐심의 원래의 뜻은 '더'라는 말입니다.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 탐심 있는 기업, 탐심 있는 부자,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벌어야겠다는 사람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브르크 라손'이라는 판사가 집안에서 전기를 만지다가 감전이 되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장례를 치렀는데, 이 죽은 사람이 한밤중에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유고슬로비아는 무덤을 평장을 하고 돌로 덮어두는데, 이 사람 살아나서 결사적으로 그 돌들을 밀치고 나와서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하얀 수의를 너풀너풀 날리면서 집으로 뛰어가서는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들어갔는데, 그만 이 죽었던 판사가 한 밤중에 수의를 휘날리면서 뛰어들어온 것을 본 그의 아내와 여동생이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 이렇게 자기 아내와 여동생이 기절을 하자, 또 바로 옆에 사는 자기 친구인 의사의 집으로 뛰어갔는데, 그만 그 판사를 본 친구의사도 놀라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다음날 이 브르크 라손 판사의 소문이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왔다고 합니다.
▶영국의 문호 '씨 에스 루이스'는, 자기의 살이라도 베어줄 수 있는 친한 친구 찰스 윌리암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 찰
스 윌리암스가 갑자기 먼저 죽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이 슬픈 장례식장에서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조사에서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천국이 내게는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멀리 생각했던 천국인데 그곳에 내 친구 챨스가 가 있으니 이제 천국은 아주 가까운 내 이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일년이 못되어서 그의 아내 죠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루이스 부부는 금실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 또 아내마저 잃어버린 그는 이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천국은 내 집처럼 되었습니다. 아내 조이가 거기서 살고 있고, 친구 챨스가 거기에 있으니 나도 얼른 가서 그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