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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추가 자료편(성도, 그리스도인)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13.06.22|조회수375 목록 댓글 0

주제별 추가 자료편(성도, 그리스도인)

 

▣ 칼리마 신자

 

죽은 잎사귀’로 불리는 칼리마(Kallima)라는 나비가 있다. 왜 죽은 잎사귀로 부르는가. 이 나비가 날개를 펴고 있을 때는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인다. 날개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마치 왕관을 쓴 여왕의 자태처럼 우아하다. 그러나 날개를 접으면 누런 색깔의 흉물스러운 곤충에 불과하다. 그 모습이 마치 썩은 나무 잎사귀와 흡사하다. 날개를 펴고 접는 것에 따라 그 인상이 완전히 바뀐다.

오늘 칼리마와 같은 교인이 많다. 주일날 교회에서는 온유하고 친절한 크리스천으로 불린다. 기도도 잘 한다. 언행도 공손하고 부드럽다. 화려한 총천연색 신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가면 죽은 잎사귀 신자로 돌변한다. 가정에서는 무뚝뚝하고 권위적이다. 회사에서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다. 날개를 접은 칼리마의 모습과 흡사하다.

사람들이 교회에 처음 나오는 것은 기독교 교리 때문이 아니다. 교인들의 진실한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교인들의 이중성과 누추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시작과 끝이 일치해야 한다. 이중적인 인생을 사는 교인은 스스로도 불행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떠나가게 만든다. 전도의 방해꾼이 된다. 그대는 혹시 칼리마처럼 이중성을 가진 ‘나뭇잎 크리스천’은 아닌가.

/오범열 목사(안양 성산교회)

 

그리스도인의 권위

 

그리스도인들은 D-day와 V-day 즉 '이미(already)'와 '아직(not-yet)' 사이라는 영적 현실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현실을 다음과 같이 예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점점 세력이 팽창하던 악한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가 그 왕국 본부에 거대한 폭탄이 떨어졌습니다(d-day). 그 본부는 산산조각이 났고 그 왕국의 잔당들은 산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잔당들은 게릴라를 조직하여 산속에 살면서 배가 고프거나 물자가 떨어지면 평화롭게 사는 도시에 내려와 선량한 시민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한 왕국의 왕자가 다시 나타나 이 잔당들을 완전히 소탕하여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깊은 옥에 감금시켜 버렸습니다(v-day)."

사탄은 산 속에 숨어 사는 게릴라와 같이 기회만 있으면 도시와 같은 복잡한 인간의 마음에 침략하여 쑥밭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부끄러움이 없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엡 6:10,11)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신분을 올바로 정비함으로써 사탄의 권세를 대적할 수 있는 권위를 소유하게 됩니다.

예배와 삶 / 김진호

 

세 가지 유형의 크리스천

 

본문 :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① 베드로형입니다. -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지만 정작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는 예수님을 3번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열정적이지만 나약한 인물입니다.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얻은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심이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② 룻의 아내형입니다. -멸망해가는 성을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것처럼, 교회에 몸을 담고 있지만, 또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유형입니다. 이런 유형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과 궁합같은 미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러 다닙니다. 새로운 직분을 받거나, 교회를 얼마 다니지 않은 신자의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런 과정을 겪지만 또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정이기도 합니다.

③ 바울 형입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사람들이 회심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유형은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들으며, 아무런 미련 없이 지난 삶을 청산하고 주님께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런 유형들은 인물의 한 특징만 강조했기에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 위치와 신앙의 문제점을 파악함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형에 있든지 약점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과정으로 삼으십시오.

* 기도: 주님! 하나님과 더 가까이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게 하소서!

* 묵상: 신앙생활의 단점을 발판 삼아 더 성장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갈릴리 공동체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 불꽃하나 선교회 http://cafe.daum.net/seedoffire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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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기도훈련 기도, 기원

2013/04/0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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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기도훈련

 

본문: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UPI통신의 종교부 기자인 루이스 카셀은 ‘잘못된 기도 교육이 자녀를 무신론자로 만든다’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녀에게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고 교육하던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 말을 진짜로 믿고 자전거를 달라고 매일 밤을 기도했습니다. 아이의 기도를 엿들은 부모님은 자전거를 사주었고 아이는 이후로 신이 나서 원하는 것이 생길 때마다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금세 부모님이 더 이상 들어줄 수 있는 기도 제목은 존재하질 않았고,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지 않는다고 생각한 자녀는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를 위해 이런 방법을 썼지만 이것은 마치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달라고 매년 요구하다가 어느 순간 산타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효과였을 뿐입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사례를 통해 자녀들이 무신론자가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모든 경건 생활은 바른 말씀을 통해 견고히 세워져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이 가장 좋은 때에 좋은 방법을 통해서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요구할 때마다 마법처럼 항상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욕심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에 뜻에 우리를 맞추는 바른 기도 생활인지 점검하십시오.

* 기도: 주님! 기도를 통해 주님과 소통하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 묵상: 솔직한 기도로 나의 삶을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주님 말씀하시면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주님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뜻하신 그 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불꽃하나 선교회 http://cafe.daum.net/seedoffire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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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모음(분수, 한계) 절제, 사치, 분수

2013/04/07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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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모음(분수, 한계)

 

▣ 노새와 귀뚜라미

 

어느 가을날 노새는 귀뚜라미의 노래를 듣자 매우 부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귀뚜라미에게 무엇을 먹기에 그런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느냐고 물었다. 풀잎 위의 이슬을 먹어서 그렇다는 말을 들은 노새는 자기도 이슬만 먹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이슬이 내리기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노새는 굶어 죽었다.이 이야기 끝부분에서 이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도 자기 적성과 반대되는 욕망을 품으면 성취하지 못할뿐더러 더 큰 불행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다."

* 참조: 민16:3,7, 롬12:6, 전3:22, 전5:18, 19

 

▣ 분수대로

 

성경: 롬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나귀 한 마리와 작은 삽살개 한 마리를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강아지를 귀여워해서 외식을 하고 돌아올 때면 언제나 먹다 남은 음식을 가져다 던져 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강아지는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며 주인의 주위를 빙빙 맴돌곤 했습니다. 강아지의 이러한 행동을 유심히 보아오던 나귀도 어느 날 주인이 돌아오자 주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나귀는 실수로 주인을 걷어차게 됐습니다. 주인은 화가 나서 나귀를 흠씬 두들겨 팬 후 마굿간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분수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믿음의 분수대로 성실하게 충성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까마귀의 실패

 

어느 날, 큰 독수리가 먼 산에서 날아왔다. 큰 독수리는 목장에 내려서 작은 양을 한 마리 잡아 가지고 날아갔다. 이것을 본 까마귀는 큰 독수리의 날쌘 동작과 힘센 몸집에 은근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한 번 해 보아야겠다"하고 생각한 까마귀는 곧 목장으로 날아갔다. 까마귀는 작은 양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중 가장 작은 양의 등에 내려 그 양을 잡아 올리려 했다. 그러나 잡아 올릴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단념하고 그저 홀몸으로 날아가려 했으나, 발톱이 양의 털에 휘어 감겨서 빠지지를 않았다. 까마귀는 갑자기 겁이 나서 빨리 도망치려고 날개를 야단스럽게 흔들었다. 이것을 본 양들이 달려와서 까마귀를 발로 밝아 죽여버렸다. 이 이야기는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 것인데, 요는 자기의 힘을 알지 못하는 까마귀의 비극에서 자기를 정직하게 보는 힘을 기를 필요를 절실히 느끼게 한다. ▣ 큰 까마귀와 백조 큰 까마귀가 백조의 깃털이 흰 것을 부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백조가 살고 있는 물 탓이라고 생각하고, 큰 까마귀는 이제까지 항상 음식을 손에 넣고 있던 제단을 버리고, 연못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거기서 큰 까마귀는 깃털을 손질하고 몸치장을 하고 저고리를 빨았는데, 전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큰 까마귀의 깃털은 이전처럼 새까맣고, 평소의 음식을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곧 얼마 안 가서 죽어버렸다.

 

 ▣ 찌르레기

 

어떤 찌르레기가 어렸을 때부터 오색방울새의 목소리와 거의 같게 노래 부르고 있었다. 그 찌르레기는 마치 자기가 오색방울새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였다. 명랑한 목소리로 그 찌르레기는 숲 전체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래서 숲 속에 사는 모든 것들은 찌르레기를 칭찬했다. 보통의 다른 새였다면 자신의 이런 운명에 만족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찌르레기는 시샘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자기가 아닌 다른 누가 칭찬 받는 꼴을 못 봤다. 그런데 어느 날 꾀꼬리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리자 찌르레기는 이렇게 생각했다. "두고보라지. 나는 꾀꼬리 식으로도 노래를 해 보이겠어. 내가 꾀꼬리 못지 않게 아름다운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말 테야." 그리고 찌르레기는 꾀꼬리 목소리를 흉내내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나 독특해서 거의 공해에 불과했다. 삑삑 울어 보인다거나, 새끼 고양이처럼 괴상망측하게 야옹야옹 울기도 했다. 찌르레기는 결국 그 흉측한 울음소리로 말미암아 숲 속 새들에게서 쫓겨났다. 찌르레기여, 그런 짓을 한다고 해서 앞으로 무엇이 되겠다는 것인가? 형편없이 서투르게 꾀꼬리 소리를 흉내내기보다는 오히려 능숙하게 오색방울새의 울음소리를 내려무나. 인간은 각자 독자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따라서는 언제나 함부로 손을 내미는 자가 있습니다. 타인의 사회적 성공을 부러워한 나머지 자신에게 적합치 않은 일에도 말입니다. 자신에게 적합한 일에 손을 대어 꾸준히 노력한다면 모든 일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승진을 거부한 수위 일본 회사가 런던에 개설하여 영국인을 수위로 채용했다. 그 사람은 20년간을 결근도 없이 성실하게 근무했다. 지점장은 그 수위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그를 서기로 승진시켜 채용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수위는 그 제안을 거부했다. "저에게 뭔가 잘못이 있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열심히 근무해 왔다고 생각됩니다만, 지금 저의 직무를 중지하고 새로 서기가 되려는 것은 지난 20년 간의 경험을 포기하라는 것인데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것은 제게 모욕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국인의 기질이라 생각된 지점장은 그의 희망대로 계속 수위로 일하게 했다.

 

▣ 배치의 요

 

지금은 은막에서 사라졌지만 이탈리아의 배우 소피아 로렌은 대단한 미인으로 정평을 받은 여성이다. 그러나 사진을 바짝 당겨 부분 부분을 따로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 있다. 눈은 깜짝 놀라 쓰러질 직전같고, 중앙에 버티고 있는 코는 아무리 호의적으로 보아도 바위의 견고함 이외에는 별로 보탤 말이 없다. 얼굴의 절반 밑은 전부가 입이 아닌가 하고 착각이 가는 정도로 대문만한 입이다. 그런 상황의 배치의 묘에 따라 절세의 미인이 된다. 사람도 그렇다 작은 자리든 큰 자리든 자기에게 맞는 자리에 앉아야 전체가 아름다워진다. 적재적소는 얼굴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듯 싶다

 

▣ 날치와 갈매기

 

지난주에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잭슨빌을 다녀 왔다. 그곳은 항구 도시로 세미나 인도중 짬을 내 몇몇 목회자들과 함께 바다낚시를 갔었다. 그런데 고기도 잘 잡혔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날치(Flying Fish)가 점프를 하면서 떼를 지어 날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하늘에는 갈매기들이 모여 와선 물에서 뛰어오르는 날치들과 전쟁이라도 하는 듯 쉽게 잡고 숨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 친구가 어떤 날치가 잡혀먹는지 유심히 보라는 말에 관찰하듯이 바라보았더니 갈매기에게 잡혀 먹는 날치가 따로 있었다. 분수에 맞게 짧게 나는 경우엔 잡혀 먹지 않는데 남보다 더 멀리 날기 위해서 조금 더 뛰는 날치는 모조리 잡혀 먹히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미국 친구 목사가 들려준 말이다. 사람들도 자신의 분수가 있는데 과욕을 부리면 저렇게 날치처럼 낭패를 당한다는 말이었다.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게 진리이다. /김순권 목사

 

▣ 개구리와 황소

 

늪 투성이인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던 황소가 우연히 새끼 개구리들 가운데로 발을 들여 놓아 거의 대부분을 밟아 죽이고 말았다. 살아남은 한 마리 개구리가 이 무서운 소식을 가지고 엄마 개구리 한테 달려갔다. "어, 엄마! 그런 짓을 한 건 어떤 짐승-아주 커다란 네 발 가진 짐승이었어요." "커다랗다고?" 하고 어미 개구리는 말했다. "어느 만큼 크더냐, 그건" 그녀는 자기 몸을 한껏 부풀게 했다. "이 정도로 크던?" "아이, 그 보담도 더 더 훨씬 더 컸어요." 하고 개구리 새끼는 말했다. "뭐, 그렇게 컸었다고?" 하면서 그녀는 전보다도 또 더욱 몸을 부풀게 했다. " 엄마, 정말이지 엄마가 아무리 터지도록 몸을 부풀게 해도 반도 안 될 걸요." 이런 식으로 자기 힘을 무시당한 엄마 개구리는 몹시 화가 나서, 다시 한 번 몸을 부풀게 하려다가 그만 몸이 터지고 말았다. 자기에겐 걸맞지 않는 큰 것에 도달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자기 몸을 망치고 만다.

 

▣ 왕따 개구리

 

어느 연못에 유난히 등치가 크고 성질이 고약한 개구리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연못에 있는 다른 곤충들을 사정없이 잡아먹고 같은 개구리들도 막무가내로 물어서 상처를 내는 바람에 그는 연못에서 '왕따 개구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놈은 자기에게 힘이 있어서 다른 개구리들이 피한다고 생각하고 그 기세가 날이 갈수록 더욱 등등해져 갔습니다. 이제 그는 연못에서 무서운 것이 없는 폭군이 되었습니다. 어느 여름 큰 홍수가 났습니다. 그 틈에 다른 연못에서 등치가 세 배쯤 큰 황소 개구리가 떠내려왔습니다. 왕따 개구리는 이 커다란 녀석이 자기를 보고도 눈만 껌뻑이는 것을 보고 "이녀석! 건방지게.." 하면서 있는대로 입을 크게 벌려 황소 개구리의 엉덩이를 물었습니다. 너무 입을 쫙 벌려서 무는 바람에 턱뼈가 부서지고 입이 엉덩이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입이 막히니 말도 못하고 입을 빼려고 아둥바둥 몸부림을 치다가 그만 제풀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걸 본 황소 개구리가 뒤돌아보며 한마디 했습니다. "힘들면 놓지..." 오늘 내가 욕심 사납게 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사자와 여우

 

여우가, 하인의 자격으로 사자에게 봉사할 것을 승락했다. 양쪽이 모두 얼마 동안은 자기 입장에 수반된 역할을 다했다. 여우는 늘 먹이를 가르쳐 주고, 사자는 거기에 덤벼들어 잡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우는, 자기도 주인에게 지지 않는 훌륭한 짐승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먹이를 찾아내는 대신 제 스스로 그것을 추적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여우의 청은 허락되었지만, 가축 떼에 덤벼들려는 순간 사냥꾼들이 여우한테 덤벼들어서 여우는 스스로 포획물이 되고 말았다. * Keep to your place, and your place will keep you. 자기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위치가 또한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 원숭이와 낙타

 

짐승들의 대집회에서 원숭이가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멋지게 춤을 추어, 거기 모인 짐승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자, 그게 낙타의 신경을 거슬렸다. 그리하여 질투를 느낀 낙타도 앞에 나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낙타는 매우 턱없는 동작을 보여 주어 짐승들은 모두 화를 내며 몽둥이를 들고 덤벼들어, 낙타를 그 자리에서 몰아내고 말았다. * Stretch your arm no further than your sleeve will reach. 소매가 닿는 곳 이상으로 팔을 뻗쳐서는 안 된다.

 

▣ 두더지의 사윗감

 

땅 속에 사는 두더지가 딸을 낳아서 잘 키웠다. 이제 애지중지 키운 딸의 혼기가 다 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땅한 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높고 힘있는 옥황상제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옥황상제를 찾아가 말했다. "당신의 아들과 내 딸이 결혼하면 어떻겠습니까?"그러자 옥황상제는 "내가 이렇게 높이 있고 힘있는 것 같지만 구름이 와서 가리면 힘도 못쓰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저 구름에게 가서 청혼을 하시오."라고 말하였다. 그 말에 두더지는 구름을 찾아가서 청혼을 했다.그러나 구름도 "나는 이렇게 온 하늘을 덮는 힘은 있지만 바람이 한번 세차게 불면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니 바람에게 가서 청혼해 보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두더지는 바람을 찾아가 또 청혼을 하였다. 바람은 "내가 이렇게 강하기는 하나 정 언덕 위에 우뚝 세운 망부석은 못 쓰러뜨리는데 두더지 대감님은 능히 쓰러뜨리니 그 분께 가보시오."라고 말했다. 두더지는 그제서야 옥황상제의 아들도 구름도 바람도 자기 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두더지의 아들과 결혼을 시켰다.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고 신분과 맞게 살아야 한다. * 참조: 롬12:3, 고후10:13, 엡4:7,16

 

▣ 사자의 청혼

 

이솝우화를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자하나가 어느 동네길을 걸어가다가 참으로 아름다운 처녀를 보게되었습니다. 한 눈에 반해버린 이 사자는 그 처녀의 뒤를 따라갔죠, 그 처녀는 그 동네 농부의 딸로 아름답기로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사자는 한눈에 사랑에 빠져 농부를 찾아가서 "나는 당신 딸을 사랑하니 결혼을 하겠소, 만약 싫다면 당신 딸을 잡아먹고 말겠소. " 갑자기 사자의 청혼을 받은 농부는 앞이 캄캄했으나 사자가 무서워 거절하지 못하고 하루의 말미를 달라고 사정을 해서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걱정 때문에 그날 한숨도 잠을 자지못했습니다. 걱정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서 딸은 그 자초지종을 묻고는 괜찮으니까 내일 사자가 오거든 이렇게 저렇게 시키는대로 하시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사자가 아침 일찍 찾아왔습니다. "생각해 봤소?" 사자가 큰 소리로 묻자 농부는 반색을 하며 사자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는 웃는 낯으로 " 내 딸도 당신처럼 성실하고 용감한 사자라면 결혼하고 싶다고 그럽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을 하더군요. 기분이 좋아진 사자는 침을 삼키며 물었습니다. "한 가지 걱정이라니" 농부는 머뭇거리다가 "저.. 말입니다. 내 딸도 당신을 좋아하는데 사자님의 그 날카로운 발톱이 무서워 가까이 갈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발톱을 뽑아주면 시집을 가겠답니다."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 농부의 딸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긴 사자는 자기의 발톱을 모조리 뽑고는 다음날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사자를 추켜세우며 말했습니다. "내 딸은 사자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답니다. 그것만 들어주시면 기꺼이 시집을 가겠답니다." "오 그래? 그 부탁이 뭐요?" "실은 내 딸이 사자님의 그 날카로운 이빨이 무서워 가까이 갈 수가 없답니다." "알았소. 그럼 내일 다시 오겠소" 이미 발톱을 뽑아버린 사자는 뒤뚱거리며 물러갔습니다. 사자는 그대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왔습니다. "내 당신 말대로 이빨도 뽑았소, 자 이제 당신 딸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자 농부는 갑자기 몽둥이를 들더니 "네 이놈, 지금까지는 네 발톱과 이빨이 무서워 꼼짝 못했지만 이제는 무서울 게 없다." 하며 사자를 마구 두둘겨 팼습니다. 사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지만 이미 발톱도, 이빨도 다 뽑아버린 뒤였습니다. 눈앞에 것에만 집착하여 자신의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이와같이 어리석은 사자와 같은 것이죠.

 

▣ 자기 현실을 아는 사람

 

성경: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 131:1)

 

한국 야구 100년사에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투수는 바로 선동렬이라고 할 수 있다. 선동렬 하면 사람들은 흔히 '무등산 폭격기', '국보급 투수', '나고야의 태양' 등등 여러 가지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선동렬은 자기의 주제를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선동렬의 손을 잡아본 사람은 깜짝 놀란다고 한다. 투수이기 때문에, 그것도 145km대의 강속구를 던지는 손이기 때문에 손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동렬의 손을 잡아본 사람은 여느 사람들과 비슷한 크기인 데 놀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변화구 대신 작은 손으로 던질 수 있는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개발하였고 그로 인해 자신의 야구인생을 화려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자신의 분수와 현실을 파악하기 못하고 다른 투수와 마찬가지로 변화구를 개발하고자 했다면 그는 여느 다른 투수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투수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선동렬이 은퇴하기 전 미국 메이저리그의 명문 구단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나이, 기량, 능력, 현실을 감안하여 깨끗하게 거절한다. 만일 그가 자기 분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메이저리그로 갔다면 아마 이상훈과 똑같이 지금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현실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특별히 자기 자신의 부족한 모습, 연약한 모습을 일찌감치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고,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에게 부족한 것, 연약한 것들에 대한 채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다른 사람과 뭔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실패로 끝날 것이다.

 

▣ 탐욕의 결과

 

빈대 네 마리가 살았다. 그들은 자기네 몸집이 너무 작은 게 항상 불만이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빈대들에게 새해 소원을 각각 물어보았다. 첫 번째 빈대에게 물었다. “네 소원이 뭐니?” “네, 저는 몸집이 작아 힘이 약해요. 그러니 힘이 센 소가 되고 싶어요.” “그래? 그럼 소가 되어라.” 그러자 빈대는 소원대로 소가 되었다. 두 번째 빈대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네, 저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되고 싶어요.”“그럼 너는 새가 되렴.” 세 번째 빈대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네, 저는 배고픈 건 견딜 수 없어요. 그러니 굶지 않고 매일 음식을 뒤져 먹을 수 있는 쥐가 되게 해주세요.” “그럼, 너는 쥐가 되거라.” 세 번째 빈대도 소원대로 쥐가 되었다. 네 번째 빈대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네 번째 빈대는 살그머니 욕심이 생겼다. ‘어차피 원하는 대로 다 받는다면야 실컷 구해봐야지.’ 그는 하나님께 대답했다. “하나님, 저는 소처럼 힘도 세고요, 새처럼 하늘도 날고요, 쥐처럼 굶지도 않는 그런 것이 되고 싶어요.” 그러자 하나님은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럼 소새쥐가 되어라.” 네 번째 빈대는 즉시 ‘소새쥐’ 아닌 ‘소시지’가 되어버렸다. 빈대도 낯짝이 있지, 구할 것을 구해야지 잘못 구하다가 큰 코 다쳤다. 욕심은 자기분수를 뛰어넘는 것이다. 모든 동물 중에서 위장병이 있는 것은 사람뿐이라고 한다. 오직 사람만이 과식하고 위장병을 덤으로 받는다. 자기분수를 초월했기 때문이다.“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욕심을 과식하면 탈이 난다.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내 소원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 김봉준

 

▣ 분수를 모르면

 

결혼 30주년을 맞이한 60세 동갑 부부가 있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천사가 나타나서 소원을 한 가지씩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그동안 워낙 가난하게 살다보니 여행을 못했는데 세계일주 여행을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네요.” 그러자 천사가 항공권과 여행경비를 건네주었습니다. 소원을 말하자마자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본 남편이 아내의 눈치를 슬슬 살피더니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보다 서른 살 젊은 여자와 살았으면 좋겠네요.”그 말에 천사는 “그동안 두 분이 열심히 살아서 드리는 혜택인데 소원을 안 들어 드릴 수도 없고…아무튼 그렇게 원하신다면 이루어 드려야겠지만…그러나 참 이상한 소원도 다 있네요.”라면서 남편을 향해 날개를 폈습니다. 그런데 예쁜 새댁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남편이 폭삭 늙어 90세의 노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분수를 모르는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잠 5:18)고 말씀합니다. /홍병호 목사(시흥 열린교회)

 

▣ 분수에 맞추어 만족하라

 

성경: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잠 27:20) 어떤 가족이 여행 도중에 한 마을에 들렸습니다. 지나가다 보니 어떤 집 문 앞 난간에 중년의 남자가 편안하게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문 밖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이 대뜸 물었습니다. "아버지, 난간에 기대 놓은 목발을 보셨어요?" '음부'와 '유명'은 둘 다 죽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부는 계속 입을 벌리고 만족함이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눈도 만족할 줄 모릅니다. 여기서 '눈'은 '욕심'을 의미합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과 같이, 눈은 보아서 다함이 없습니다. 즉 욕심을 채우면 채울수록 더 크게 생겨나 욕심을 채우려고 애쓰며 평생을 욕심에 쫓겨 살다가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은 자신의 분수대로 만족할 때 가능합니다. 자신의 분수에 맞추어 자족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 묵상: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 작은 배에 너무 큰 돛을 달면...

 

만일 어떤 사람이 그가 지니기에는 너무 큰 것을 갖게 되면 재난을 당하게 된다. 마치 너무도 작은 배에 너무도 큰 돛을 단다든지 너무도 작은 몸뚱이에 너무 큰 음식상을 베푼다든지 너무도 작은 영혼에 너무 큰 권력을 쥐어주게 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완전히 전복(顚覆)될 수밖에 없다.-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중에서 -* 너무 작은 배에 너무 큰 돛을 달면? 그 배는 결국 뒤집히고 맙니다. 너무 작은 상(床)에 너무 많은 음식을 올려놓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상도 결국 주저앉게 됩니다. 너무 큰 감투, 너무 많은 돈, 너무 높은 인기...누구나 추구하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매우 경계해야 할 일들입니다. 몸에 맞는 옷이 가장 편합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고도원의 아침편지

 

▣ 칭찬과 축복도 적절해야

 

성경: "이른 아침에 큰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잠27:14) 샴, 즉 옛 태국의 왕들은 자신의 왕국에 있는 어떤 사람을 파멸시키고자 할 때 흰 코끼리를 그 집에 보냈습니다. 전통적으로 태국에서는 흰 코끼리를 '신성한 동물'로 여겨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더욱이 왕에게서 흰 코끼리를 받은 사람은 '국왕의 선물'이기 때문에 코끼리에 대한 모든 것, 즉 먹을 것, 목욕시킬 것, 치장할 것, 잠재울 것 등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돌봐야 했습니다. 따라서 왕에게서 미움을 받아 흰 코끼리 받아 사람은 평생 흰 코끼리에 매여 입히고, 먹이고, 잠재우고, 돌봐야 하기 때문에 전 재산을 날리고 끝내 파멸하고 맙니다. 흰코끼리는 경배의 대상이자 파멸을 초래하는 공포의 대상인 것입니다. 아무리 듣기 좋은 칭찬도 지나치게 들으면 불쾌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칭찬의 말, 축복의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줍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계속해서 같은 칭찬이나 축복을 해준다면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칭찬과 축복은 좋은 것이고 자주 사용해야 할 것이지만, 적절하게 사용할 때 그 효과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저주같이 들리는 것입니다. * 묵상: 때로 지나친 칭찬이나 축복으로 주위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봅시다.

 

▣ 칭찬과 아첨

 

성경: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잠 29:5) 어느 날 까마귀가 치즈 한 조각을 훔쳐서 그것을 조용히 먹으려고 숲 속으로 날아갔는데, 마침 여우가 지나가다가 나무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치즈, 냄새도 좋다. 저것을 꼭 빼앗아야지." 여우는 나무 가까이 와서 까마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마나님, 당신은 참으로 아름다운 짐승입니다. 나는 당신이 이렇게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참, 마나님의 음성도 아름답겠지요? 만일 그러시다면 마나님은 조류의 여왕으로 불림이 당연합니다. 어려우시지만 노래 한 곡조 불러 주시렵니까?" 까마귀는 자기의 노래를 여우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입을 열었습니다. 순간 치즈 조각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여우는 그 치즈를 한 입에 삼켜 버리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칭찬과 아첨은 틀립니다. 칭찬은 정당하게 잘하는 것에 대해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아첨은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마음에 들 만한 말로 꾸며서 말하는 것입니다. 칭찬은 사기를 복돋우어 주고 힘과 용기를 주므로 많이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아첨은 그 사람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아첨하는 말을 듣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지며, 결국 그물에 걸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 묵상: 세상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만 칭찬을 받기 위해 노력하십니까?

 

▣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이조 선조대왕 때에 유현이었던 이지함이 포천 현감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었다. 옷은 삼베옷에다가 신은 짚신을 신고 갓은 다 헤어진 것을 쓰고 부임하였는데 그 고을 관리들은 새로 맞이하는 현감의 부임인지라 있는 정서을 다하여 진미를 갖추고는 저녁 진지상을 올렸는데,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수저를 들어 보지도 않고는 상을 물렀다. 아전들은 아마도 상이 시원치 않아 그런가보다 하고는 부랴부랴 더 좋은 음식을 마련하고는 두번째 상을 올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상을 물리는 것이었다. 당황한 아전들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다가 뜰 아래 엎드려 크게 절을 하고는 말하기를, "황송하오나 저희 고을은 서울과는 달라서 이 이상은 더 상을 차릴 수가 없으니 그저 죽여 주십시오!"하고 빌었다. 이때에야 이지함은 온화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말하기를, "너희가 나의 생각을 몰라서 그러는군, 나는 그런 좋은 음식을 먹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저 두려운 생각이 들어 그런 것 뿐인데..., 우리가 넉넉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하기 때문이오. 사치란, 언제나 가정과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니 우리가 부해지기까지는 그런 사치스런 음식을 먹지 맙시다."하고는 보리밥과 시래기국을 가져오게 하여 부임 첫 달 식사를 마쳤는데, 그가 포천에 부임한 지 2,3년 만에 포천은 눈여겨 볼 만큼 달라지게 되었고, 백성과 현감사이는 부모와 자녀사이처럼 되어 이지함이 아산 현감으로 떠날 때에는 온 고을 사람들이 길을 막고 서서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연수약언을 보면 "살림하는 도리는 오직 절약하고 검소해야만 오래 지탱할 수 있나니, 난세에 있어서는 더군다나 사치를 금해야 하는 것이다."하였고, 힐티의 행복론이란 책을 보면 "추위룰 막기 위해서는 한 벌의 외투면 족하나, 만약 이 경계선을 넘어 의복을 색깔이나 모양에 관심을 쏟으면 색다른 열 벌의 외투도 부족하게 될 것이다."했다.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사치를 좋아하는 자에게 분쟁과 재앙과 까닭없는 창상이 있는 것이라."(잠23:29)"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잠28:19)

 

▣ 너는 너처럼 살아라

 

 미국의 어느 부흥사가 하나님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주셔서 미국의 아브라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네가 아브라함처럼 되고 싶느냐? 그럼 너는 아들을 내게 바칠 수 있니” “나는 아들을 번제로 바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아브라함처럼 될 수 없단다” “하나님, 그러면 모세와 같은 지도력을 주셔서 미국의 모세로 만들어 주옵소서” “모세처럼 되고 싶느냐? 그러면 모세처럼 사람을 죽여 모래에 파묻을 수 있느냐?” “나는 살인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모세처럼 될 수 없단다” “하나님, 그러면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주셔서 미국의 엘리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엘리야처럼 되고 싶어 하는구나. 그러면 너는 많은 이방인을 죽일 용기가 있느냐?” “나는 그런 끔찍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엘리야처럼 될 수 없단다”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을 하나하나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모두 부정이었습니다. 부흥사는 화가 나서 하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그러면 나는 누구처럼 되라고 하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너처럼 되거라” 나 이전에 나는 없었습니다. 나 이후에도 나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누구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로서 살아야 합니다. /강문호 목사(갈보리선교교회)

 

▣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동화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하였다.“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정채봉의《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중에서 -* 자신의 본체(本體)를 정확히 알고 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진짜 능력, 자기가 선 자리를 모르거나 망각하면, 설탕물을 먹고 가짜 꿀을 내놓는 벌처럼, 초라한 인격자의 모습이 되고 맙니다./고도원의 아침편지

 

▣ 정도를 지나치면

 

다음의 진술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유익한 것이지만 자칫하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죄의 결과를 초래하기 쉬운 것들이다. * 육체적 휴식이 게으름이 된다. * 침묵이 대화 부재가 된다. *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 탐욕과 욕심이 된다. * 인생을 즐기는 것이 무절제가 된다. *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관심을 갖는 것이 탐심이 된다. * 음식을 즐기는 것이 탐식이 된다. * 자신을 돌보는 것이 이기주의가 된다. * 대화가 잡담이 된다. * 신중함이 불신이 된다. * 긍정적인 태도가 무감각이 된다. * 사랑이 과잉보호가 된다. * 민감한 양심이 완전주의가 된다. * 관대함이 낭비가 된다. * 조심성이 두려움이 된다. *<이제 자유입니다/ 닐 앤더슨>

 

▣ 어느 9세기 왕의 충고

 

너무 똑똑하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지도 말라. 너무 나서지도 말고, 너무 물러서지도 말라. 너무 거만하지도 말고, 너무 겸손하지도 말라. 너무 떠들지도 말고, 너무 침묵하지도 말라. 너무 강하지도 말고, 너무 약하지도 말라. 너무 똑똑하면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걸 기대할 것이다. 너무 어리석으면 사람들이 속이려 할 것이다. 너무 거만하면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너무 겸손하면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말이 많으면 말에 무게가 없고 너무 침묵하면 아무도 관심갖지 않을 것이다. 너무 강하면 부러질 것이고 너무 약하면 부서질 것이다

 

▣ 분수에 맞게 살자

 

어느 곳에 뱀 한 마리가 있었는데 하루는 머리와 꼬리가 서로 앞에 서겠다고 다투었습니다. 꼬리가 말하기를 "머리야, 너는 언제나 앞장서서 가고, 나는 노예처럼 끌려만 다니는데 그건 불공평하다. 나도 뱀의 일부인데, 어떤 때는 나도 앞장세워 주면 좋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머리가 듣고 말하기를 "멍청한 소리 말아라 너는 눈도 없고, 귀도 없지 않으냐?"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꼬리의 강력한 주장에 그만 머리가 "정 그렇다면 네가 내 역할을 해 보렴" 하고 양보했습니다. 꼬리가 기뻐하며 앞장서서 움직이다가 얼마 못 가 수채에 떨어졌습니다. 머리가 온갖 수고를 다해 간신히 수채에서 나왔는데 여전히 꼬리가 앞장서서 다시 가다가 이번에는 불 속으로 들어가 타죽고 말았습니다. 자기 분수나 신분을 모르고 행동하는 자는 망하기 쉽고 불행해집니다.(고전12:12-31)고라와 그 무리들과 다단이 자기 분수를 모르고 모세와 아론을 거스리고 스스로 높아지려고 반역하였다가 망했습니다.(민16:3,7)또 웃시야 왕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제사장이 하는 일을 하려다가 문둥병에 걸렸고(대하26:16- 26), 사울왕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삼상13: 8- 13) 오늘날에도 자기 직분과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 달랑거찰(螳螂拒轍)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도중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수레바퀴를 향해 덤버드는 것을 보았다. '허, 맹랑한 놈이로다. 대체 무슨 벌레인가?'장공이 묻자, 수레를 모는 어자(馭者)가 대답했다.'사마귀(螳螂)라는 벌레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을 모르는 놈인데, 제 힘도 생각지 않고 강적에게 마구 덤벼드는 버릇이 있습니다.'장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말했다. "저 벌레가 인간이라면 틀림없이 천하무적의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피해가도록 하라."미약한 것이 제 분수도 모르고 강적에게 덤비거나 되지도 않을 일을 하려고 덤벼드는 무모한 짓을 한다는 말을 달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한다.

 

▣ 분수를 아는 신하

 

당나라의 2대 임금인 태종의 정관의 치세는 길이 후세에까지 훌륭한 정치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태종이 임금으로서 사치를 금하고 정직하고 충성된 인물들을 많이 등용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에나 결단력이 뛰어난 두여희와 어떤 계획을 세우더라도 남이 미처 생각도 못할 만큼 총명하고 치밀했던 방현령, 그리고 천하에 강직하고 깨끗하기로 유명했던 위징, 청렴 결백한 왕규 등이 모두 합심 협력하여 태종의 정치를 알뜰히 보좌했습니다. 어느 날 태종이 왕규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이 방현령 이하 여러 대신들과 비교하여 어떻다고 생각을 하는가?"왕규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성실하게 나라에 봉사하고, 알면서도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는 점에서 소신은 방현령을 따르지 못합니다. 재능에 있어 문무를 겸비하고 조정에 들어서는 현명한 재상이요, 밖에서는 어엿한 대장군이라는 점에서 소신은 두여희를 당할 수 없습니다. 임금님께 직간을 올리고 잘못을 바로잡기에 여념이 없기로는 또한 소신이 위징을 따르지 못합니다." 라고 말하며 다른 중신들보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겸손히 대답했습니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 슈퍼맨은 있는가?

 

1952년부터 1957년까지 5년 동안 '슈퍼맨의 모험'이라는 영화가 방영된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슈퍼맨'이라는 말은 인간의 새로운 이미지로 부각되었고, 1978년 전 세계를 휩쓸며 상영되었던 영화 '슈퍼맨'은 빅 히트 상품으로 오래 상영되었었다. 그렇게 유명해진 '슈퍼맨'을 다시 살려 1993년에는 TV 시리즈로 '슈퍼맨의 신 모험'이라는 외국 영화가 국내에까지 들어와 오래 동안 방영된 일이 있었다. 그렇게 TV 나 영화에 나오는 '슈퍼맨'은 불가능이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간으로 부각되었었다. 그런데 '슈퍼맨의 모험'에 출연했던 조지 리브스는 1973년 권총으로 자살했고, 78년 '슈퍼맨'에서 주연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리브는 승마를 하다가 낙마하여 전신마비가 되어 지금도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방영된 '슈퍼맨의 신 모험'에서 슈퍼맨의 목소리를 연기한 국내 성우(聲優)는 97년 괌 여객기 추락 사고로 사망.오래 전부터 '슈퍼맨의 저주'에 대해서 떠돌던 말이 많은 사람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초능력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6:18)

 

▣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다부지게 외쳤던 나폴레옹도 그가 일생 동안 치른 60회의 전쟁 가운데서 58회는 승리했고, 2회는 패했다. 그는 말년에 대서양의 외딴섬으로 귀양 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감했다. 그가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과연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말했을까?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서 끝내 이룰 수 있는 일도 있고, 별별 수단을 다 써 보아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두 가지를 잘 구분해서 행동한다.중세에 한 수도사가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 이 기도문은 많은 현대인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도전할 용기를 주시고, 할 수 없는 일에는 조용히 받아들일 침착함을 주시고, 이 두 가지 일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인간에게 일어나는 많은 불행한 일은 이 두 가지를 혼동한 데서 비롯된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게으른 것이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한계선을 분명히 긋는 것은 매우 현명하고 꼭 필요한 일이다./ 유성은

 

▣ 능수버드나무의 교훈

 

분당 여수천에는 자연방생으로 자란 능수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름 장마로 흙탕물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고 나면, 1,2년생 능수버드나무들은 무성한 버들잎으로 인하여 몸통줄기가 구부정하게 휘어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습니다. 한편, 바로 그 옆에 풍성한 잎도 가지도 없이꼿꼿하게 자란 이름 모를 1년생 풀은 물살에 밀릴 때는 90도 가깝게 휘어졌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원상을 회복하고 곧바로 서 있습니다. 잎만 무성하게 사업을 벌였던 기업은 문을 닫거나 크게 어려움을 당했으나, 평소에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정직하게 사업을 하던 기업은 쓰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사업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을 보았던 IMF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여운학 (사랑의편지 발행인)

 

▣ 농어와 연준모치

 

어류를 연구하는 학생들이 이런 실험을 했다. 큰 물탱크에 물을 가득 붓고 중간을 맑은 유리로 칸을 막은 다음, 한 쪽에는 연준모치라는 작은 고기를 넣고 다른 쪽에는 농어라는 큰 고기를 넣었다. 그러자 농어가 연준모치를 보더니 먹을 것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곧 잡으려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칸막이에 주둥이만 부딪치고 말았다. 며칠 동안은 유리에 부딪치면서도 자주 연준모치에게 덤벼들려고 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이따금씩만 덤벼들고, 나중에는 아주 단념했는지 덤벼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후 칸막이를 없앴더니 농어와 연준모치가 함께 헤엄치고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농어는 연준모치에게 덤벼들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이것저것 얻어 보려고 덤벼들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분수에 맞도록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참조: 고후4:8, 9 고후10:13, 롬12:3-6, 민16:3,7

 

▣ 분수에 맞는 자긍심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고 자신한 어느 소년이 모차르트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소년을 보고 “아직 이른 것 같으니 교향곡보다는 민요부터 작곡해 보게”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도 10대에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았습니까?”

소년이 항의조로 묻자 모차르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교향곡 작곡법을 묻지 않았다네.”

자신에 대한 축소지향이나 과대망상은 인생의 독소입니다. 분수에 맞는 자긍심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주님보다 앞서가지 맙시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것도 탐욕입니다.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도 말고 주신 바 족한 줄 알아 겸손히 내가 서야할 자리에 섭시다.

* 기도: 주님, 주 안에서 만족을 누리게 하옵소서.

* 묵상: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한계점

 

전혀 새로운 창조는 대개 주어진 한계를 적극적으로 껴안고 활용한 흔적이 그 배경에 있다. 그 한계점이 곧 예술가의 시야가 넓어지는 순간임을 그는 경험한 것이다. 새로운 시선을 통해서는 나를 다시 보고, 새로운 시점을 통해서는 당신을 다시 보고, 새로운 시야를 통해서는 세상을 다시 본다.

- 김소연의《시옷의 세계》중에서 -

* 누구든, 무슨 일이든 반드시 한계점에 이르게 됩니다. 그 고비를 넘어서지 않으면 새로운 창조도 없습니다. '여기까지가 과연 한계인가?' 싶을 때 눈을 들어 그 너머를 바라보면 그곳에 새로운 나, 새로운 당신,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분수, 한계에 관한 성경 말씀

 

0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민16: 7)0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131:1) 0 부자가 되려다 건강을 해친다. 분수에 맞게 사는 지혜를 배워라.(잠23:4) 0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사치를 좋아하는 자에게 분쟁과 재앙과 까닭없는 창상이 있는 것이라.(잠23:29)0 이른 아침에 큰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잠27:14) 0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잠28:19) 0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0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롬12:6) 0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전10: 13)0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후10:13)0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고후10: 15) 0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엡4:7) 0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4:13) 0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살전4:6)

 

▣ 분수에 관한 금언

 

0 동물 중에서도 인간은 가장 과도함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프랑스 속담) 0 도가 지나치면 모든 것이 잘못 된다.(서양 속담) 0 개구리는 금 의자에 올려 줘도 다시 뛰어내려 연못 속으로 돌아간다.(독일 속담) 0 자기 자신을 알라. 주제넘게 하나님의 일을 샅샅이 살피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인간에게 어울리는 연구는 사람이다. 0 분수에 맞게 살지 않으면 불행해 진다.(독일 격언)

 

* 출처 및 자료제공: 한승진 선교사(http://blog.naver.com/j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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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 자료편(핍박) 십자가, 순교, 핍박

2013/04/0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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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 자료편(핍박)

 

▣ 핍박받는 자의 복

 

주님은 핍박의 가시밭길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을 단련시켜서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 앞에 엎드릴 때 주께서 우리를 영원한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열 두 제자의 마지막 최후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몸의 가죽을 벗기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순교했습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도하며 순교했습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창에 찔려 순교를 당했습니다. 안드레는 에데사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맛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돌팔매질을 맞고 쓰러진 뒤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누가는 헬라에서 감람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칼에 목이 떨어지면서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다 죽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백 살까지 온갖 시련을 겪다가 죽어간 살아있는 순교자였습니다. 초대 교회의 유명한 교부인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련의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태복음 5: 10)

 

▣ 시련과 핍박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요16:2)

 

1979년 8월 30일, 카터 대통령은 에모리 대학에서 아주 인상적인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는 아널드 토인비의 말을 인용하여, 역사상 문명이 최고로 발전했던 시기는 평탄할 때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때였음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카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위기는 각성을 낳고, 각성은 참신하고 창조적인 생각을 낳습니다." 한마디로 위기가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에는 정도만 다를 뿐 늘 시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심판의 시기가 다가올수록 시련의 무게는 더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말로만 위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는 자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두려운 이 시련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시련을 회피하거나, 핍박 속에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시련을 신앙의 성장 단계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위기를 통해 자신과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 기도: 우리의 보호자 되신 주님, 시련을 통해 더욱 큰 발전과 승리를 얻게 하소서


▣ 핍박을 통한 인도하심

 

성도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 핍박과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생각지도 않은 유익을 얻곤 한다.

야곱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는 가나안이었다.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잠시 떠난 가나안이었다. 그런데 20년 넘게 삼촌 라반의 집에 있게 되었다. 긴 시간은 원래의 사명을 잊고, 안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때 라반과 그의 아들들의 핍박이 시작되었다. 야곱을 바라보는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라반의 박대는 야곱에게는 축복이었다. 라반이 환대하고, 친절을 베풀었다면,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났겠는가? 박대와 핍박이 야곱으로 하여금 라반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게 만들었다. 우리는 종종 믿음 생활 잘하는데, 왜 고난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품는다. 핍박과 고난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로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바로의 핍박을 당한다. 고된 노동을 하게 하고, 심지어 아들을 낳으면 죽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애곱에서 400년을 살았다. 애굽이 그들의 고향이다. 만약 이런 심한 박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모세의 말을 듣고 출애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핍박과 고난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출애굽하게 만들었다. 원수의 적대도 하나님의 도구이다. 나를 잘되게 만드는 인도하심이라는 말이다. 핍박과 고난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느끼라.

야곱은 라반을 떠나기 전까지 부인들에게 하나님을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가족을 데리고 떠나야 하니까, 비로소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한다. 꿈에 만난 하나님,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증거하기 시작한다. 위기는 전하게 만든다. 속에 있는 것을 간증하게 만든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든다. 가족 중에 중병에 걸린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는 전도하지 않던 사람이 초조함으로 복음을 증거한다. 그리고 병에서 회복되었다. 그 가정에 어려움이 없었다면, 복음 증거도 없었을 것이다. 고난은 우리가 머뭇거리는 것을 재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야곱 가정은 여러 아내들로 인해서 평안한 날이 없었다. 특히 레아와 라헬은 자매이면서 서로 라이벌이었다. 의견의 일치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 라반을 떠나는 문제를 놓고, 서로 하나가 된다. 이때 두 여자는 처음으로 “우리”라는 표현을 쓴다. 하나됨을 체험한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창31:15-16)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걸으면, 나의 오래된 문제들이 풀리기 시작한다. 삶의 우선순위에 하나님을 두라. 그러면 나의 삶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게 될 것이다.

/전병욱 목사(삼일교회)

 

▣ 고난과 핍박을 이긴 초대교회의 성도들

 

그 무시무시한 로마황제들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믿음의 생활을 했던 무리들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이다. 네로황제가 시를 쓰기 위하여 로마 시에 불을 질렀다. 6일 간의 화재로 인하여 로마 시의 삼분의 이가 타버린다. 그 죄를 기독교인들에게 전부 뒤집어씌운 네로황제는 죄가 전혀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네로황제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밀납을 온 몸에 입히고 그 육신에 불을 붙여 황제의 정원을 밝히는 등으로 썼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네로황제는 원형경기장에 그리스도인들을 몰아놓고 굶긴 사자들을 풀어놓았다. 그 원형경기장에는 로마인들과 네로황제는 사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뜯어먹는 것을 즐겁게 관람했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빈정거리면서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나 네로황제는 밤에 사자 밥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공포에 질려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황홀한 얼굴로 웃으면서 죽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자 밥이 되는 공포의 순간에서도 저토록 밝게 웃을 수 있는가? 도대체 저들이 믿는 종교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종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중얼거리면서 네로황제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결국 네로황제는 정신병자가 되어 자살로 그 삶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로 황제 이후로 9명이나 되는 악한 로마황제들이 기독교인들을 지속적으로 찔러죽이고 화형을 시켰으며 온갖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며 그들을 저주했다. 6번째 황제인 맥시무스 황제는 기독교인들은 집단으로 50명 이상씩 한꺼번에 합장했다. 그는 지독하게 기독교인들을 핍박을 한 악명 높은 황제로 알려져 있다. 7번째 데리우스 황제는 기독교인들은 말살시키기 위하여 가장 강도 높은 상상초월의 방법으로 소름끼치는 고통을 가한 자이다. 심지어는 독사와 전갈이 가득한 가죽부대에 기독교인을 넣어 바닷물에 던져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독교는 환란과 핍박을 받을수록 강해지고 놀라울 정도로 활성화된다. 그것은 개인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이 배가될수록 더욱 기도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과 핍박이 오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오히려 주님을 찬양하고 뜨겁게 기도하자.

/김학규

 

▣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사람

 

8복의 말씀 여덟 번째 복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하루를 견디고 정년까진 살아남자며 제 가슴 깊은 숨마저 빼앗긴 시대에 물질의 위력이 빌딩 숲처럼 하늘로 치솟는 어두워 가는 시대에 십자가 아래 교회조차도 승리주의로 사지가 굳어가는 시대에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사람들 어느 골목 어느 아파트에 살아남아 눈 뜨고 있을까? 황금탑으로 마음이 어둔 그림자에 묻히는 이 저녁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사람에게 천국을 내리소서. 자기의 이익을 잊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영혼에게 천국을 내리소서. 가난한 마음으로 애통하면서 온유하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채 긍휼히 여기며 청결한 마음으로 평화를 만들어나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아야 할 십자가라면 그 핍박으로 기쁨의 꽃이 피어나게 하소서 영원히 영원히 이전의 선지자들처럼

/이주연

 

의를 위한 핍박

 

본문: 마태복음 5장 10∼12절

 

예수께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은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약속한 특별한 복입니다. 이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라는 말씀으로 시작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라는 천국의 복을 담고 있습니다. ‘팔복’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복 가운데 최고이자 크리스천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향입니다. 이 팔복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언급하신 의를 위한 핍박을 받는 자가 받는 복은 예수님이 그 어떤 것보다 특별하게 언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된 분량을 봐도 팔복의 모든 내용이 하나같이 짧고 간결하게 한 절에 불과한 반면 유독 이 복에 대해서는 3절씩이나 길게 설명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어떤 사람에게 임합니까? 믿음 안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이라고 예수님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위해 핍박을 받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위해 핍박을 받았다면 즐거워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큰 상을 베푸실 것입니다.

‘의를 위한 핍박’이란 어떤 것일까요?

첫째, 신앙의 핍박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간 후에도 하루에 세 번의 기도 시간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둘째, 사역의 핍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다가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역을 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사역을 열심히 감당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소중히 쓰실 것입니다.

셋째, 선교의 핍박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은 즐거워할 일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는다면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큰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 희생한다면 더 큰 기쁨과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용길 목사<로뎀교회 목사>

 

▣ 핍박하는 이들을 축복하기

 

대학원 영문과 교수 한 분이 나를 자신의 연구실로 불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온갖 농담과 핍박의 표적이 되어 왔던 나는,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듣게 될까 적잖이 겁이 났다. 그날 그분과 나눈 대화는 예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불행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분도 내가 믿는 하나님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의 연구실을 나왔다. 이 세상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핍박, 곧 자신의 신념에 대한 격렬한 반대를 만난다. 우리는 핍박당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를 괴롭히는 이들의 상처와 슬픔에 대해 진정으로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돌보심에 그들을 맡겨 드린다는 의미다. 바울은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온전히 기도했다면 더 쉽게 그들의 면전에서 그들을 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과의 대면 후 하나님은 내게 그 핍박자를 계속해서 생각나게 해주셨고 내 안에 그를 향한 깊은 돌봄의 마음을 창조하셨다. 나는 그가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을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자신의 자연적 본성에 휘둘리지 않고 경건한 대응을 택하는 삶은, 즉각적 결과는 아니더라도 언제나 좋은 열매를 맺는다. 수개월에 걸쳐 나를 조롱하던 교수님은 내가 논문을 마치기 하루 전 내 연구실로 찾아와서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자네에게 이런 말하기 정말 싫지만, 사실 난 자네를 좋아한다네.” 저도 교수님을 좋아한답니다. 지금도 계속 교수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만큼요….

「희열의 공동체」/ 마르바 던

 

핍박 중에도 변함없는 믿음

 

본문: 마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

 

로마의 네로 황제 밑에는 '황제의 투사 씨름꾼'이라는 정예 부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 베스파시안이 이끄는 그 부대에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황제는 베스 파시안에게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처형하라는 칙령을 내렸습 니다. 백부장이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인들은 나오라 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40명이나 되는 투사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베스파시안은 천막 앞에 큰 불을 피워놓고는 40 명의 군인들에게 옷과 신발을 벗게 한 후 꽁꽁 얼어붙은 호수위로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불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 용서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늘 황제 앞에서 부르던 노래의 가사를 고쳐 이렇게 합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40명의 투사! 주 예수를 위해 싸우고 주님이 주실 면류관을 받아 쓸 40명의 투사!" 밤이 지난 후에야 한 명의 군인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불 곁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때 백부장 베스파시안은 지휘관의 옷을 벗고 장하게 죽음을 맞고 있는 그리스도인인 부하들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천국의 소망이 있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고통보다 큰 영광을 이미 맛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시3: 6-7)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1513∼72)는 「박해의 상징」인 메리 여왕의 불의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왕의 비위를 건드리는 바람에 왕정파에 의해 체포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대의 신앙과 그대가 말한 것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 가?" 지휘관이 매섭게 쏘아보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낙스는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마음이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입이 말했고 손이 그것을 썼습니다. 만일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피로써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참으로 용기있는 고백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려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14:32)

"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 29- 30)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우는 썬다씽이 밀림지대에서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의 일입니다. 그 군대의 연대장이 썬다씽의 활동보고를 듣고 그를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때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핍박을 했지만 순종하지를 않자 나중에는 돼지우리 같은 지저분한 곳에 옷을 다 벗긴 썬다싱을 가두고 그곳에서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 대장은 밤새 지독한 모기들에게 뜯겨서 썬다싱이 죽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기와 온갖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돼지 우리에 갇힌 이 성자는 밤새도록 찬송을 기쁜 소리로 불렀습니다. 연대장이 이것을 보고는 감동하여 예수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 같은 고통중에도 찬송을 부르게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예수를 믿어 보겠다하여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힘입고 기쁘게 여기는 자를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견고하게 해주십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성도 여러분 모두가 어떠한 고난과 핍박중에도 변함없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이 언제나 평탄한 길만은 아닌 것을 저희가 압니다. 때때로 어렵고 힘든 가시밭길 같은 험한 길을 갈 때, 우리의 힘이 되어 주옵소서. 의로 인해 핍박받을 때, 고난과 역경에 굴복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창조적 삶을 이루는 승리자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핍박이 기다리는 땅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믿음으로 가게 하시고 핍박을 도구 삼아 영혼을 구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박해 때문에 믿음을 버리지 않게 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최후의 승자

 

주후 1세기에 이그나티우스(Ignatius)라는 교부가 있었다. 그는 안디옥교회의 감독으로 시리아에서 복음의 역사를 많이 펼쳤다. 그의 노년기에 로마의 트라얀 황제(AD 98~117)가 동방의 도시들을 순회하던 중 안디옥을 방문했다. 황제는 이그나티우스의 명성에 끌려 그를 만났지만, 기독교를 멸시했던 황제는 혹독한 말로 이그나티우스를 빈정대기 시작했다. "여기 사악한 마귀, 사람들을 속이는 자가 있구나!" "나는 마귀가 아니라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입니다." "네 속에 그리스도가 있다고? 본디오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리스도가 너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인가?" "그렇습니다. 그분은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답을 들은 황제는 적법한 절차도 없이 그를 로마로 압송해 콜로세움에 세웠다. 약 4만5천명의 구경꾼이 몰려들었고, 그를 맹수에게 던지라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졌다. 이때 이그나티우스는 이와 같이 말했다. "나는 맹수의 이빨 사이에 낀 하나님의 곡식으로, 빻아져서 주님을 위한 거룩한 빵이 되고자 한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를 덮쳤다. 세상은 교회를 비웃고 조롱한다. 이 조롱은 주후 1세기 때부터 행해진 박해의 유형이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리며 온갖 멸시의 포화를 다 퍼부어 댔다. 하지만 보라. 최후의 승자가 누구였는가를..

-신동행기/오정현-

 

유일한 영웅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은 저의 유일한 영웅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초등학교 때부터 6·25 전쟁이 나던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저는 평양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공산 치하에서 학교를 다닐 때 매년 "자기의 영웅이 누구인지 쓰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나의 영웅은 김일성 장군'이라고 쓰는지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학급 친구들은 자신의 영웅을 김일성이라고 썼는데 저는 '예수님'이라고 썼습니다. 그 시절에는 단지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매를 맞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이 교회 다니는 학생을 조사할 때 손을 들었는데, 그때부터 고통의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월요일만 되면 주일에 교회 갔다는 이유로 몽둥이나 쇠 파이프로 맞거나 복도에서 벌을 서기 일쑤였습니다. 손을 들었던 학생들은 하나둘씩 교회 다니기를 포기했고, 결국 3년이 지나자 목사님 아들인 송해용이라는 친구와 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교회 나가기를 포기하지 않자 한번은 우리 반에서 주먹이 제일 센 아이가 패거리를 이끌고 저를 뒷산으로 끌고 가 얼마나 많이 때렸는지 모릅니다. 어린 시절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계속 되었지만, 감사하게도 이 모든 과정이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쓰시려는 하나님의 훈련과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고난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김상복

* 금언: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기적을 숭상하지만, 십자가의 수치를 따르는 이는 없다.- 토마스 아 켐피스 -

▣ 핍박에 관한 성경 말씀

 

0 (신명기 30: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0 (시편 31: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0 (시편 55:3)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0 (시편 69:26)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0 (시편 119:84)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0 (시편 119:86)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0 (시편 119:157)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0 (시편 142: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0 (시편 143:3)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0 (마태복음5: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0 (막10: 29-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 출처 및 자료제공: 한승진 선교사(http://blog.naver.com/j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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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모음(용서) 용서, 관용, 분노

2013/04/0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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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모음(용서)

 

▣ 두 개의 F

 

본문: 눅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온몸에 화상을 입은 추한 모습 때문에 ‘E.T. 할아버지’라고 불리던 채규철 선생님은 원래 장래가 유망한 젊은이였습니다. 서울시립대학의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에 덴마크와 인도를 거쳐 유학까지 하고 한국에 돌아와 연구를 하며 교직에 몸을 담으려고 했지만 교통 사고를 당해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27번이나 수술을 했지만 귀는 녹아 사라졌고, 손도 흉측하게 붙어버렸습니다. 한쪽 눈도 잃게 되어 의안을 해야 했습니다. 반대쪽 눈의 시력도 온전치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채 선생님의 얼굴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다른 길로 피했습니다. 좋은 스승이 되고 싶었던 채 선생님은 사고를 당한 뒤에 큰 좌절과 실망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인생을 포기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지만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헬렌 켈러의 책을 보고는 다시 살아갈 희망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한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청십자, 한벗회, 사랑의 장기 기증본부 같은 단체들에 들어가 2006년도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사셨습니다.

“삶에는 용서(Forgive)와 잃어버림(Forget)이라는 두 개의 F가 필요 합니다. 사고가 난 뒤의 그 고통을 잊고 용서하지 않았다면 난 지금처럼 살지 못했습니다”라고 채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새로운 사랑으로 과거의 고통스러운 일들은 모두 잊고, 또 용서하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께 받은 값없는 용서로 인해 남을 용서하게 하소서!

* 묵상: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용서하며 축복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초나라 장왕의 용서

 

중국 초나라의 장왕이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었는데, 별안간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져버렸습니다. 한데 신하 중에 장웅이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왕의 첩을 평소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때는 이때다 싶어 이 사람이

왕의 애첩을 와락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갑자기 변을 당한 애첩은 장웅의 갓끈을 잡아 끊었습니다. 이제 장웅 장군은 죽은거죠? 갓끈이 왕의 애첩에 손에 있으니 꼼짝없이 죽은 겁니다. 애첩은 왕에게 가서 어떤 놈이 나를 끌어안기에 여기 갓끈을 끊어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때 왕이 촛불을 켜는 것을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모두 갓끈을 끊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누가 감히 왕의 명령을 거역하겠습니까? 다시 촛불이 켜졌을 때 아무도 후궁을 희롱한 장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본인 외에 말입니다. 이때 이 장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자신을 조건 없이 용서해진 아량에 얼마나 감복했겠어요 후에 이 장수는 적과의 싸움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왕과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했습니다.

 

용서의 기적

 

미국 캘리포니아에 오션게이트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갑자기 성장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느 날 밤, 마을의 불량 10대 소년 9명이 일제히 교회를 향해 돌을 던졌다. 문화재로 지정된 아름다운 교회의 형형색색 유리창이 무려 73장이나 파손됐다. 재산상의 손실도 엄청났다. 당연히 소년들은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되어 모두 법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때 웰스 목사와 교인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교회에 돌을 던진 소년들은 나이가 어립니다. 우리 지역의 소년들을 우리 교회가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잘못도 큽니다. 소년들을 용서해주세요.” 교회의 간절한 탄원 덕분에 소년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그러자 소년들이 동네를 다니며 외쳤다.

“우리가 교회 유리창을 깨뜨린 소년들입니다. 그런데 웰스 목사님과 교인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도소를 가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을 만나보세요. 이 교회야말로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소년들은 마치 전도특공대가 된 것처럼 이 소식을 알렸고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했다. 사랑과 용서가 낳은 큰 선물이었다. 우리는 내게 손해를 입히거나 피해를 준 사람에게 바로 되갚거나 후일 갚아 주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용서는 용서를 낳고 결국 사랑과 은혜로 돌아온다.

/오범열 목사 (안양성산교회)

 

* 기도: 긍휼과 자비하심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 마음과 몸의 상처를 성령의 위로로 회복하여 주시고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면서 살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 위에서 대속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훨씬 더 어려운 길

 

내 친구 윌리엄 윌리몬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듀키 대학교의 교목이었다. 테러로 인해 학교 안에 그리스도인과 유대교인, 이슬람교도 사이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자, 윌리엄은 랍비와 이맘(이슬람교 지도자)을 각각 한 명씩 초빙해 토론회를 열고 자신은 개신교 목회자 대표로 참석했다. 토론 주제는 '테러 공격에 대한 종교인의 올바른 태도'였다. 이슬람교의 이맘은 형제가 공격을 당하면 보복하는 것이 선지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랍비는 한 유태인이 무슬림을 공격하면 벌을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 유태인을 사형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은 뒤 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 분의 말씀을 들으니 유대교와 이슬람교, 두 종교 모두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훨씬 더 어려운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른 자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하셨거든요."

이해되지 않을 때는 용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힘내야 한다. 마틴 루터 킹은 말했다. "그래도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이다."

「토니 캠폴로의 회복」/ 토니 캠폴로

 

* 금언: 용서하는 마음이 없이는 어떤 기도도 응답될 수 없다. - J.C.라일 -

 

* 출처 및 자료제공: 한승진 선교사(http://blog.naver.com/j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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