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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13.01.09|조회수102 목록 댓글 0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

본문: 디모데후서 4장 6∼22절



우리는 이 땅 위에서의 계절이나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 그리고 하늘나라의 영적인 것들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법칙을 알게 됩니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주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시는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전도서 12장에는 인생의 겨울이 있음을 말하고 그 겨울이 누구에게나 빨리 오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손과 발이 떨 것이며 뼈가 구부러질 것이며 이빨이 빠질 것이며 눈이 어두워질 것이며 입이 닫혀 질 것이며 이가 없어 음식을 씹기가 곤난해지고 잠이 없어지고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깨게 되고 음악하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곱지 않게 되고 높은데 올라가지 못하고 길가다가 낙상하게 되고 흰머리가 나고 메뚜기도 짐이 되고 그러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조문객들이 오고 가고 몸은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는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온다는 것을 세밀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인생을 4계절로 나눌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20세까지를 봄, 20세에서 40세까지를 여름, 40세에서 60세까지를 가을, 60세 이후를 겨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60세를 넘은 분들은 이미 인생의 겨울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그런데 인생의 겨울은 나이와 상관없이 갑자기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항상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삶을 삽니다.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지 않습니다. 오늘 최선을 다합니다. 내일은 어찌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 갈 준비를 하고 그 날 그 날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최후를 예견하면서 순교의 순간이 가까워 온 것을 깨닫고 믿음의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서신으로 주님의 종들과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겨울, 계절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머잖아 닥칠 추운 겨울을 앞에 두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몇 가지 당부와 함께 겉옷과 책을 갖고 오기를 부탁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6절)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21절) 이 말씀에는 인생의 겨울과 계절의 겨울을 생각하면서 디모데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는 노사도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긴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봄이 유년기라면 여름은 청소년기, 가을은 중·장년기, 겨울은 노년기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6절의 ‘관제와 같이’란 말씀은 희생제사의 제주를 붓는 마지막 의식으로 전제(레위기 23:13, 민수기 15:5∼10 28:7∼8)라고도 합니다. 이는 바울 자신의 희생적 순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산 제물로 순교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게 된 바울의 고백이요, 표현입니다. 또한 21절의 말씀은 계절적으로 추운 겨울이 닥쳐오면 여행하기가 어렵고 항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어서 속히 오라고 재촉한 것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우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겨울을 준비해야 합니다. 인생에는 봄, 여름, 가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겨울이 찾아옵니다. 춥고 삭막한 찬서리, 눈보라치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고 믿으면서 순종하며 잘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과 교회에 겨울이 오기 전 준비를 잘 해야 됩니다. 지금 이 세상은 영적으로도 심판의 시기를 앞둔 겨울 직전의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겨울이 오면 모든 식물은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심판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심판 시기인 겨울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부지런히 선한 일과 주의 일에 힘써야 되겠습니다.

바울 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익한 사람들과 무익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데마는 바울을 배반하고 떠났으며 알렉산더는 많은 해를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 누가 마가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14명의 사람들은 바울에게 유익을 준 사람입니다. 본문을 보면 모두 다 떠나고 누가만 함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몸도 춥지만 마음도 쓸쓸하고 외로워지며 그리움이 많아지게 됩니다. 바울 역시 동역자들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었습니다. 너는 속히 오라 그리고 겉옷과 책을 갖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겨울이 올 때에 우리는 옷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책이 필요합니다. 영육간에 양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인 영혼의 양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의 회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노환으로 임종을 앞두었을 때 그의 앞에 놓인 것은 건강을 위한 보잘 것 없는 보리죽 한 그릇이었습니다. 또한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게르하르트 하프트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임종 직전에 미소를 띄우며 "아, 나는 집에 있는가!" 라며 만족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육신의 집은 떠나지만 그는 하나님의 집으로 옮겨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젊음이 영원한 것 같아도 인생의 황혼을 넘어갈 때쯤 되면 그것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갔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즉 세상의 것에 미련을 두고 살면 하루살이처럼 단 하루의 꿈을 위해 살다가 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 누릴 권세와 부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마음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이솝우화가운데 개미와 매미의 이야기입니다. 뜨거운 여름! 개미는 열심히 열심히 땀흘려 일했습니다. 매미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노래만 부르고 놀았습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습니다. 열심히 일한 개미에게 겨울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마련해 놓은 양식을 먹으며, 겨울을 무사히 보냈지만, 여름동안 일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고 놀았던 매미는 배고픔과 추위에 떨다가 죽었다는 이야기지요. 여러분 중에 이 이야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야기는 아는데 이 이야기의 교훈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허점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에 지식이 없어서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지식이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문제는 그 성경의 교훈이 내 삶 속에 역사하느냐는 것입니다. 안하고 있습니다. 인생에게도 겨울이 옵니다. 일할 수 없는 날이 옵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교회에 매미 같은 집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는 돈도 많고 아무개 하면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그런 큰복을 받았으면서도 믿음생활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가보니까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고칠 수가 없는 병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건강 주셨을 때 하나님이 내게 기회를 주셨을 때 내가 잘할 껄.... 그분은 그냥 울다가 갔습니다. 글쎄.. 죽기 전에 깨달았으니까 다행이긴 다행이지만, 그것이 무슨 상 받을 일입니까? 주님께서 '너 세상에서 뭐하다가 왔느냐?'고 물으시면 무어라고 답할 것입니까? 아무 상급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할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셨는데 아무것도 안 하다가 마지막 죽기 전에 울다가 죽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성경에도 보면, 개미 같은 인생, 매미 같은 인생이 계속 나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해 신랑을 맞이하고, 기다립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만 있지, 기름이 없습니다. 맞이할 준비를 안 했습니다. 그들에게 신랑이 왔습니다.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 즐거움을 나누는데 준비하지 못한 매미 같은 미련한 다섯 처녀는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우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달란트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맡은 종은 개미 같은 인생입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매미 같은 인생입니다. 미련한 것들.. 뭐 하러 저렇게 일하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날마다 먹고 놀았습니다. 그들에게 심판의 날, 겨울이 왔습니다. 주인이 계산하자고 할 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종은 열매를 갖다드리니 주인이 기뻐하며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 그리고 기쁨을 얻었습니다 매미처럼 먹고 놀았던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은..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으라 거기에서 슬피 우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또 마태복음 22장 1- 14절에 보면 혼인잔치에 예복을 준비하지 않아 입지 못한 사람이 수족을 결박당하고 바깥 어두움에 던지워진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기억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깨어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번 여러 번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4절에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예수가 오리라. 마태복음 25장 13절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 노아는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만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갔으며 홍수가 내릴 것을 깨닫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홍수에 의해 다 죽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것, 깨어있지 못하는 것,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비극과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갑자기 재림하십니다. 마치 도적이 오는 것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도적은 언제 온다고 절대로 미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람이 깊이 잠들어 있을 때옵니다.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도적이 와도 문제가 없습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언제 오시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오시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환영하고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즉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깨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 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보시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너희가 한시간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겨울이 무섭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놓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아니합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나라에 마음을 두고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인생의 겨울이나 우주의 겨울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하나님나라에 가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무궁토록 겨울이 없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하다가 예수님이 오실 때 들림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불을 준비해야합니다.



겨울은 춥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인생의 마지막 겨울에 로마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고 하면서 올 때에 드로아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춥기 때문에 따듯한 옷을 겨울 전에 가지고 오라는 말입니다. 추운 겨울에 불이 없으면 얼어죽습니다. 장작불이든, 가스불이든, 전기불이든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추운 겨울에 얼어죽은 사람에 관한 신문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인생의 겨울에 필요한 불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춥지 않습니다. 사랑은 따뜻한 불과 같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이 싸늘해집니다. 예수님은 말세에는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고 베드로는 마지막 때는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했고 형제를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저녁에 말씀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의 겨울이 와도 우주의 겨울이 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억하시고 그 사람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 헐벗은 사람,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된 사람, 병이 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을 돌봐 주는 사람을 칭찬하시고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시면서 소자 중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싸늘한 겨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속에 더욱더 크고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성령의 불이 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성령을 불이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때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은 후에 그들은 불같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하여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가기의 것을 가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빈부의 차이, 나이의 차이,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의 차이, 신분의 차이 등이 전혀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 피 받아 한 몸을 이룬 형제요 자매들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열이 납니다. 열이 나면 힘이 생깁니다. 권능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은 기름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불이 붙고 열이 나고 힘을 내어 일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었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인 예루살렘 거리는 삭막한 겨울이었습니다. 그러나 덜덜 떨던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오시므로 제자들의 심령에는 봄이 오고 예루살렘 죽음의 거리는 생명의 거리로 약동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이전에 그렇게도 무서웠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음을 다 이기었습니다. 싸늘한 감옥도 제자들의 뜨거운 가슴을 식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불이 바울에게 붙게 되어 소아시아로 세계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는 성령을 남녀 종들에게 물 붓듯이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의 힘만으로는 인생의 겨울과 우주의 겨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주의 겨울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주의 겨울에 대처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경청해야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은 모여서 성령을 기다리며 간절하게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모여야 합니다. 잘 타는 장작불도 흩어져 있으면 꺼지고 맙니다. 모아 있을 때 불이 잘 탑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열심히 모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빛이 있어야 합니다.



겨울은 어두움의 계절입니다. 낮이 짧고 밤이 긴 때입니다. 어두운 밤에 필요한 것은 빛입니다. 우주의 겨울도 그러합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고 다 떨어지고 하늘이 종이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빛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겨울은 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겨울에도 빛이 있어야 합니다. 빛이 없으면 가는 길을 모릅니다. 방황하게 되고 구렁텅이에 빠지고 맙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이단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거짓선지자와 적 그리스도가 도처에서 순박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외치고 자기에게 와야만 구원이 있다고 선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불법이 성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복음과 진리와 비복음과 비진리를 분간하기가 어려운 때입니다. 빛이 없는 사람들은 앞이 캄캄합니다. 우왕좌왕하고 갈팡질팡합니다. 우리 인생의 빛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빛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계시의 말씀이 사람들의 길을 인도해 주는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인생의 겨울 우주의 겨울을 이기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의 인품이나 성격이나 능력이나 감화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은 어둠에 사는 사람이고 어둡고 캄캄한 심령의 소유자입니다.



넷째, 겨울에는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만나이고 영생의 떡입니다. 겨울에 필요한 것은 양식입니다. 벳장이는 양식을 준비해 놓지 아니했기 때문에 겨울에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한 개미는 양식을 충분히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긴 겨울에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겨울이 죽음의 계절이라고 할찌라도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생명의 양식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 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은 기온이 차기 때문입니다. 기온이 차면 물방울이 눈이 되는 것은 물의 성질 때문입니다. 물의 성질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눈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겨울에 눈이 땅에 덮이는 것은 마치 솜이불을 땅에 덮어놓은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눈 자체는 차지만 이찬 눈이 땅위에 덮힘으로 그 아래는 많은 식물의 생명이 추운 겨울에도 보존된다고 합니다.



알라스카에 사는 에스키모사람들이 눈으로 집을 짓고 사는 것을 생각해 보면 눈 속이 그렇게 춥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눈은 땅속을 비옥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흰눈은 이런 것보다 영적인 면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욥기 38장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실 때에 네가 눈 곡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창고를 보았느냐고 했습니다. 네가 흰눈으로 된 창고에 들어가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눈 창고에 들어가 보았느냐는 말의 뜻은 네가 흰눈의 비밀을 깨달았느냐는 뜻입니다. 과학자들은 눈송이 하나 하나가 우주의 통일성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흰눈을 볼 때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비를 깨달아야 합니다. 겨울이 되어서 풀은 마르고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대지는 황량하게 되고 만물이 매우 쓸쓸하게 보일 때 눈이 내려서 온 땅을 하얗게 덮고 있을 때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흰눈은 순결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언제나 흰옷을 입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요한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양털 같고 눈과 같다고 했고 하나님나라 보좌에서 찬송을 부르는 24장로들과 성도들은 흰옷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겨울에 흰눈을 볼 때 너희는 눈처럼 순결한 사람이 되라는 멧세지를 들어야합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 이하에 보면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찬송을 부르는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흰눈을 볼 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주홍같이 붉은 죄를 흰눈같이 희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억하실 것은 계절의 겨울은 지나간 후에 또 오고 또 오지만 인생의 겨울, 우주의 겨울은 한 번 오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계절의 겨울이 오듯이 인생의 겨울, 이 우주의 겨울(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준비해야합니다. 깨어서 기도하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 뜨거워지고 빛을 준비하고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겨울을 맞이하도록 준비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가 잘 준비하여 바울과 같은 승리자가 되고 주님이 예비하신 그 약속의 축복을 누리며 면류관을 받아쓰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용서하시고,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것처럼만 생각하고 미루며 살아오는 것도 용서하옵소서.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생각하며 순교 직전에 사랑하는 편지를 쓴 것 같은 그 심정을 우리가 이 시간에 헤아리면서 우리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해야할 일을 하게 하시고 서둘러 마쳐야 할 일을 마칠 수 있는 저희들에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반갑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주님의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출처] 기독정보넷 - http://www.cjob.co.kr/sermons-718.html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딤후 4:9-21)

- 설교 : 오주철 목사



지난 11월 25일 목요일 저녁 8시 50분에 sbs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잃어버린 얼굴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내용인 즉, 올해 43살의 한미옥이라는 여인에 대한 사연이었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심각하게 부풀어 오른 이마와 볼, 턱, 목, 듬성듬성 나 있는 머리카락과 선풍기만한 머리 등으로 처참했습니다. 이 방송을 본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자신도 신문에서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막내둥이 예인이가 와서 보고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 아줌마, 왜 이래?"



그녀도 처음부터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20대의 그녀는 일본을 오가며 촉망받던 미모의 밤무대 가수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아름다웠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보는 사람마다 기겁을 하면서 도망치는 "괴물 같은 외모"로 망가진 원인은 바로 잦은 성형시술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불법 시술에 자기가 직접 실리콘부터 식용유, 콩기름, 파라핀 등을 주사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한 것은 남들이 예쁜 꼴을 보지 못하고 내가 더 예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얼굴이 선풍기만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바로 "선풍기 아줌마"라고 합니다. 자기 외모에 대한 지나친 콤플렉스가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인생 선배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깨달은 한 가지 교훈은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의 제일 첫 번째 특징은 과거로부터 자유하고, 자신 안에 있는 콤플렉스로부터 자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콤플렉스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자유하고,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서 오직 앞에서 부르시는 부름의 상을 보고 달려갑니다. 그런데 사탄은 과거의 기억과 상처를 끝없이 이용하고 또 이용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의 과거를 끝없이 물고 늘어지고 이용하거든 그것이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사탄이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기억일 뿐입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기억에만 남아 있는 것을 붙들고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인간은 과거의 회상력에서 일어나는 힘보다는, 미래의 환상에서 일어나는 힘이 훨씬 더 강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탄은 과거를 붙잡고 오늘을 살아가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미래의 계획을 붙잡고 오늘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미래를 붙드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희미해져 가는 비전을 다시 붙잡으십시오.



진실한 믿음은 역사하는 힘이 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 속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돌변적인 사건들을 얼마든지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든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든지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만 일어나면, 하나님의 개입만 일어나면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웃지 못할 놀라운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마다 살아 역사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믿는 자를 통하여 살아 계심을 증거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영에 취하여 어떠한 사건이든지, 어떤 불행의 한 가운데에서도 그 입에서 하나님의 예언을 그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만날 때에 제일 먼저 한 일이 예언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처음 만났을 때의 베드로는 성격이 몹쓸 사람이었습니다. 그 외모 속에 무슨 희망이 있고, 그 속에 무슨 기대할 만한 게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처음 본 순간에 고기잡이 시몬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반석으로 보셨습니다. 성격이나 외모에 대해서 어떤 기대나 희망도 없었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반석이 되어갑니다. "너는 게바가 되리라"는 주님의 그 한 말씀을 붙잡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한 말씀을 붙잡고 우리들의 인생이 바뀌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자면 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래에 역사하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을 믿고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서로를 위로하고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시간 좌우를 돌아보시면서 이렇게 축복의 말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집사님 안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하심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이 교회력으로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저는 지난 2001년부터 매년 11월 마지막 주일에 동일한 본문과 동일한 제목으로 똑같은 내용의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헤어져야만 했던 사랑하는 성도들이 매년 반복하는 똑같은 설교를 듣기 위해서 이곳 영신교회로 찾아오는 발걸음을 기대하면서 기나긴 설교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았습니다. 이 자리에는 우리를 떠나간 사람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랜 방황 가운데서 다시금 우리들과 함께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고향을 등지고 타향 생활을 하면서 접었던 신앙을 다시금 붙잡고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우리의 예배는 작년보다는 더 많은 분들이 똑같은 설교를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오늘의 말씀을 전하면서 내년에는 오늘보다 훨씬 더 많은 믿음의 식구들이 오늘의 동일한 말씀을 듣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 바울은 두 번째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서 그는 이제 머지않아 순교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나이도 칠십이 넘어서 노인이지만, 그러나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이 "내년 봄의 어느 시간에는 내가 순교하게 될 것이다" 라고 미리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여기에서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라는 말은 자신의 생명과 피를 희생제물로 드려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바로 앞에 있음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삶을 정리해야 하는 그 마지막 순간에 그는 감회가 깊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그리워집니다. 한번 더 그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죽음을 앞둔 바울이 디모데에게 왜 이런 부탁을 했겠습니까? 멀리 에베소에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한 것은 인생의 겨울이 닥치기 전에 준비할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젠가 우리들의 인생에도 차가운 겨울이 닥칠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우리에게도 어느 날엔가, 어느 시간엔가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순간에 인생의 겨울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도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당부합니다. 바울은 사형 선고를 받고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언제 죽을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가 어떤 이유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로 하여금 빨리 오라고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가지를 상상해 볼 수는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겨울을 보다 따뜻하게 보내고 싶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13절 하반 절에 보면,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겨울을 지나기 위해서는 따뜻한 외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입니까? 어쩌면 남들처럼 돈도 더 많이 벌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지위나 명예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많이 배워서 많은 실력도 쌓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 가운데는 내일 죽더라도 한 시간이라도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갖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토록 많은 것을 성취하고 싶지만 만족스럽게 이루지 못하고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후회하면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젊었을 때 좀더 열심히 했었던들 하고 후회를 합니다. 조금만 더 뜨겁게 사랑했었더라면 하고 후회를 합니다. 좀 더 건강할 때, 돈이 있을 때 더 열심히 봉사하고 살았더라면 하고 후회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70을 살고, 80을 살아도 정말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세월은 그렇게 길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긴 세월이 주어질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삽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에게도 인생의 겨울이 닥쳐옵니다. 항상 봄과 여름과 가을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속히 오라!"는 목소리는 우리의 인생에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는 목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우리의 양심에서 들려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못 되고는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흔히 "내일부터는 내가 새 사람이 되어 보겠다. 오늘밤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재미를 보고 내일부터는 새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장담합니다. 이와 반대로 "내일은 어떻게 될는지 모르지만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 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내일을 위해서는 그럴 듯한 약속을 하지만, 오늘은 되는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그런 정도의 사람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와 반대로 후자는, 내일을 위해서는 아무 약속을 못해도 오늘은 바로 살아가는 데서 내일의 인간이 형성되어 갑니다. 우리 모두가 이 순간에 결단해야 할 것은, 이 두 종류의 인간 가운데서 어떤 인간이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순간 나의 사람됨이 곧 내일의 나의 인간됨을 결정해 줍니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순간이 다 중요하지만 그래도 가장 귀중한 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내일이 아니고 오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내일은 반드시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해가 다 지나가기 전에, 내 인생에 겨울이 오기 전에 자신을 한 번 깊이 성찰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년 한해를 살아오면서 주님을 향한 열심이 좀 부족했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이 부족했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주의 몸된 교회를 더 뜨겁게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주님 앞에 칭찬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이웃과의 관계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이 말은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가정과 가정이 벗하여 이웃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세상살이입니다. 결코 독불장군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외롭고 처량한 늙은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지금 인생의 마지막 겨울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먼저 데마가 생각이 납니다. 데마라고 하는 사람은 본래 바울의 제자요 함께 하는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핍박이 어렵고 힘들어서 바울과 같이 동행하지 못하고,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은 데마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금 배신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디도가 생각이 납니다. 본문에서 "디도는 갔다"고 했습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바울을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고, 그래서 디도는 자기의 할 일을 위해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갈라디아로 간 그레스게, 자신에게 해를 많이 입혔던 구리장색 알렉산더. 결국은 모두 떠나 가버리고 바울 곁에는 의사인 누가만 남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겨울 앞에 선 이 늙고 힘없는 외로운 바울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알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갑니다. 이래서 가고, 저래서 가고, 다 떠나갑니다. 그래서 고독합니다. 그에게는 지금 사람이 그립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겨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은원 관계를 정리하고도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를 부르면서 마가도 함께 올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지중해는 겨울이 되면 항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배 사정이 어렵다고 합니다. 만약에 겨울 전에 오지 못하면, 그 이듬해 봄에 올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디모데를 보지 못할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내년 봄까지 바울이 살아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에 겨울이 되기 전에 오라고 당부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이 편지를 받고서 어떻게 했는지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디모데는 그해 겨울 전에 로마를 방문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생전에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를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너는 어서 오라"는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서도 다른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지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해 겨울에 항해가 중단되어서 그 이듬해 봄에 로마에 갔을 때에는 이미 바울은 옥중에서 순교하고 난 이후였습니다. 이때 디모데는 스승의 무덤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가 울고 또 울었다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후회와 한을 풀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원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과 디모데의 이야기는 어쩌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일 수가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천하 만사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그를 찾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이웃 아무개에게도 인생의 겨울이 옵니다. 그러기 전에 그에게도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두 번째 죽음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당하게 될 영원한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주를 알지 못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해서 그가 이 땅에서의 장막이 무너진 후에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 당할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가 정말로 안타깝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갈급한 심정으로 찾는 우리의 부모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혼의 몸부림을 치면서 간절히 부르짖는 친구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용기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웃의 눈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겨울이 오기 전에 그들을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그리고 부활의 소망을 그들에게 안겨주십시오.



성경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같이 죽었습니다. 한 사람은 지옥으로 가고, 한 사람은 천국으로 갔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몸부림을 치며 호소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저희에게 증거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겨울 전에 와 달라고 하는 이웃들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쯤은 찾아가 보아야 할 사랑하는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속히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에게 영생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어쩌면 바쁜 시간 때문에 찾아가는 일을 미루다가 디모데처럼 영원히 후회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영영 할 기회가 없는 일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일생동안 단 한번 밖에 없는 기회, 지금 놓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기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봄이 오기 전에 세상을 달리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 누가 죽게 될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일 수도 있고, 친구나 존경하는 은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했을 때에 그 영혼의 울부짖음과 고통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복음을 들고 그에게 찾아가십시오. 주님께로 인도해야 할 사랑하는 영혼을 위해 몸부림치며 전도하십시오. 지옥에서도 내 형제에게 이 무서운 심판의 겨울이 오기 전에 복음을 전해 달라고 호소하는 영혼들의 울부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특별히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바울과 마가의 관계는 그렇게 좋은 관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마가를 데려 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마가를 데려오라고 했을까요? 여기에서 나오는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고 우리가 흔히 말할 때 '마가의 다락방' 그 다락방의 주인입니다. 부잣집 아들인 것 같습니다. 이 마가가 바울과 함께 1차 전도여행을 따라 나섰다가 도중에 포기하고 고향으로 되돌아 가버렸습니다. 이 일로 바울은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그래서 2차 전도여행 때에 마가가 찾아와서 함께 동행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으나 바울은 끝내 허락하지 않고 거절하고 맙니다. 결국에는 마가의 일로 동역자요, 후원자였던 바나바와 다투고 서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런 애물단지 같은 마가였습니다.



그러나 애물단지 같았던 마가는 그 후에 열심을 내고, 충성을 다해서 주를 위해 헌신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마가복음의 저자가 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때 섭섭해하던 마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겁니다. 자기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뿐이지만 "그 때 마가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내가 만나서 저를 위로해 주어야지." "마가야, 그때 마음이 많이 아팠지?" 그 말을 꼭 하고 싶은 겁니다. 이 말은 꼭 하고 가야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용서하고 화목하고…. 이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마가를 데려 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니까 마가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지금 바울은 인생의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마가에게 옛날에 서로 막힌 마음을 풀고 화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격려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겨울이 오기 전에 서로 풀어야 할 사람은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원망하고, 다른 사람에게 허물을 돌립니다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서로를 좀더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 차가운 겨울이 오기 전에 지금까지 마음 깊은 곳에 쌓여있던 응어리를 풀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단점과 흠에 초점을 맞추려하지 말고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형제와 성도들에게 흠이 보이면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도하십시오. 화해하고 위로하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가슴에 맺힌 모든 응어리를 다 풀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졌던 묵었던 감정들을 다 푸십시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섭섭했던 감정을 다 풀어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주님께로 좀 더 가까이 가셔야 합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주님께 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과연 내가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내 심령이 주님께 왔습니까? 내가 정말로 세상은 뒤에 두고, 내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돌아서서 주님을 향해서 나아왔습니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주님을 내 구주로 삼으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는 회개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엄청난 죄를 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 때에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회개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해야 할 기회에 회개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큰 죄를 범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마지막 저녁을 잡수시고 나서 여러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 가운데 하나가 장차 나를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면서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강퍅한 가룟 유다는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듣기 싫으니까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저주받은 심령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로 나아오는 것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나아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기회가 언제입니까? 지금입니다.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은혜 주실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닫힌 마음을 여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주시는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 믿음으로 승리하십시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이 시간은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온전히 주님께 나오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 주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좀더 가까이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자비한 주님께서 당신을 부르십니다.

♬"지금 오라 지금 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내 신앙에 열심이 없고 뜨거움이 없다면 겨울이 오기 전에 신앙의 열심을 회복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막상 인생의 겨울이 닥쳤을 때에 주님 앞에 서지 못하는 불행을 맞이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이라는 동화를 아실 것입니다. 개미는 여름철 열심히 일해서 겨울 양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베짱이라는 녀석은 여름 내내 시원한 그늘에서 게으름만 피우다가 추운 겨울이 닥치자 먹을 것이 없어 이곳 저곳 다니며 먹을 것을 동냥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마땅히 할 일을 해야만 합니다. 세월은 빨리 지나갑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섬기는 것도 기회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항상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떠나실 때가 옵니다. 그때는 아무리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우리 가정에도 겨울이 옵니다. 부부간이라 해도 영원히 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같이 살다보면 서로가 귀한 줄을 모르고 살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등한히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가정에도 겨울이 옵니다. 매일 저녁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이 어느 순간엔가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던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더 귀한 줄을 알고 더 깊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겨울이 오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겨울 전에 더 열심히 주 앞에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헌금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을 때 하셔야 합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의 정성을 주 앞에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 행로는 일방 통행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고 가을 지나면 겨울이 옵니다. 기회 있을 때에 좋은 일을 많이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더 열심히 사랑하고 헌신하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기회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기회의 신은 앞머리는 풍성한데 뒷머리는 대머리라고 합니다. 내 앞에 있을 때 붙잡아야지 지나고 나면 붙잡을 수 없습니다.



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몹시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젊은 사업가에게 어떤 낯선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당신 사업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주일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이제는 주신 사업으로 이웃이나 하나님을 위한 일도 계획을 좀 하시지요?"하더랍니다. "그러잖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나 아직은 젊으니 좀 나이가 든 후에, 지금 잘 벌릴 때 돈을 좀 더 벌어놓고 할 생각입니다." 몇 번이고 이 사람은 찾아와 똑같은 말을 했고 젊은 사업가는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어느 날 한참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어 내려가는데 이 낯선 사람이 또 찾아왔습니다. "이번이 내가 당신을 찾아오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십시오. 그리고 하늘을 위해 준비를 하십시오." 이번에는 괴롭히지 말라고 짜증을 부리면서 이 사람을 쫓아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이제는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 "이제 당신의 때가 되었습니다. 머물 시간이 없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지금 바쁩니다. 곧 중요한 바이어들을 만나야 합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그 순간 갑자기 얼음장같이 찬 손이 목덜미를 거머쥐는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죽음의 사자였습니다. 이제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해도 발버둥쳐도 유언이나 하게 해 달라고 매달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의 겨울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겨울 전에 주 앞으로 돌아오십시오. 마지막 주일이 있듯이 내 인생에도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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