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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엘 말씀 ◇

욜 2: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 2 )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15|조회수10 목록 댓글 0

 

욜 2: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 2 )                                                         

                                                                                                             

   

(5) 추수감사절 / 한국컴퓨터선교회

 

현대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오직 신앙의 자유만을 찾아 극심한 기아와 병고에 시달리면서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건너간 102명의 청교도(the Puritan)들이 그로부터 1년 후 낯설고 물설은 개척지에서 갖은 풍토병과 각종 생활의 질고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 해 농사를 수확한 후 얻은 새 땅에서의 첫 결실을 감사하여 드린 감사 기념 예배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너희의 소산을 먹을 때 너희에게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고 명하였으며, 그 후로(혹은 그 전에도) 인간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땅의 소산을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려왔다.

 

추수감사절을 따로 정한 것은 미국 이주자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즉 이 관습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행해졌었다.

 

매사추세츠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 절기를 가톨릭의 절기로 간주하여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처럼 크리스마스를 로드 섬을 제외한 영국의 식민지에서 절기로 지키지 않게 되자 추수감사절을 크리스마스 절기 대신에 정통과 청교도들의 절기로 지키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최초의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의 첫 번째 수확기였던 1621년 가을에 플리머드 정착지에서 미국 이주자들에 의하여 지켜졌다.

 

미국 이주자들과 그들의 인디언 손님들은 야외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일주일간 이 추수감사절을 지켰다.

17세기 말 이전에 이 추수감사절은 코네티컷주와 매사추세츠주의 연례적인 성일이 되었으며, 이 관습은 서서히 다른 지역들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이 추수감사절은 특별한 종교적 절기(비록 나중에는 종교적 색채를 지니게 되었지만)가 아니었으며 단순히 영국의 율타이드(Yuletide) 절기와 같은 것이었다.

 

추수감사절은 일반적으로 목요일 날 지켜졌는데, 그 이유는 목요일이 강연 일로서 매우 인기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관습이 보다 확고한 기반을 갖고 남부지방으로 퍼져 나가게 되자 각 주의 정치가들은 이 추수감사절을 각 주의 연례행사로 정하는 문제를 정식으로 토의하게 되었다.

 

한편 1840년대에《Godey's Lady's Book의 편저자였던 사라 요세파 헤일 여사는 추수감사절(11월 마지막 목요일)을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절기로 지킬 것에 대한 캠페인을 벌였으며, 1863년 9월 28일에 추수감사절을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축일로 선포할 것을 촉구하는 서신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링컨에게 보냈다.

 

그로부터 4일 후 링컨은 추수감사절을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절기로 공포하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감사일이나 기도 일에 대한 대통령의 선포는 연례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추수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러나 1863년 이후로 모든 대통령들은 링컨의 전례를 따랐으며 행정부도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따라서 1941년까지 추수감사절의 날짜는 대통령의 연례적인 선포에 따라 각기 달랐으나 1941년에 미국의회는 대통령과의 합의 아래 11월 네번째 토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이날을 휴일로 공포하였다.

 

의회는 이 추수감사절 날짜를 확정지어 놓고 있으나 대통령은 계속하여 링컨이 1863년에 시작한 전례에 따라 매년 추수감사절 날짜를 선포해 오고 있다.

 

 

2]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1) 독

 

'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예카빔'(*)은 '예케브'(*)의 복수형으로 포도주를 담는 항아리로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포도주 틀은 이 외에도 두 가지 형태가 더 있었다.

 

하나는 '가트'(*, 3:13; 맛소라 4:13)로 도성 안에 돌이나 몰타르(mortar)로 만들어 놓고 수로와 연결시켜 놓은 것이며, 또 하나는 '푸라'(*)로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돌로 만든 틀이다(R.B.Dillard).

 

(2) 새 포도주와 기름

 

수확한 포도로 제조한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온갖 선한 것을 크게 풍족히 소유할 것이다.

 

땅은 그 소산을 다시 낼 것이며 그들은 그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들이 쌓아 둔 창고를 들여다보면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칠 것이다(24절).

 

이에 반해 곤고한 날에는 그들이 곡식이 진하여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 하였으며 곳간은 무너졌었다.

 

욜 1: 10, 17 – 10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7 씨가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그들의 식탁을 보라. 거기에는 그들의 저장품이 나열되어 있다.

그들은 먹되 풍족히 먹고 만족하게 될 것이다(26).

 

그들은 먹되 과식하지 않으며 식상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취하던 주정뱅이들이요 앞의 고생으로 인해

술과 폭음에 대한 과도한 사랑을 고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궁핍 때문에 슬피 울었다.

 

욜 1: 5 - 취하는 자들아너희는 깨어 울지어다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너희는 울지어다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여기서는 그 풍족함을 인하여 찬송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 자가 충분히 먹으며 자기들이 충분히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음식을 자양분 있게 만들며 만족할 정도로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이상 여러 가지가 약속되고 있는 자비이며

이런 일들로 하나님께서는 큰 일을 행하시며(21) 자기 백성을 기이해 대접하신다(26).

 

그는 이 일로 자기 권능을 영화롭게 하시며 그들의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들을 능히 구하신다는 것을 증명하신다.

 

그는 이 일로 자기의 인자를 영화롭게 하신다.

 

그는 그들의 도발이 아무리 크더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이렇게 행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불쌍한 죄인을 기이해 대접하실 때에는

그가 기이히 대접하시며 큰 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어떤 해석가는 이 약속을 비유적으로 이해하여 이것이 복음의 은혜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이 약속은 은혜의 언약 가운데에서 신자들을 위해 쌓여 있는 풍성한 위로와 그들이 누리는 영혼의 만족에서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보내사 위로의 재료가 되게 하시고

그의 은혜를 우리 위로의 근거로 보내시며

위로의 시술자로 성령을 보내실 때

우리는 그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19) 또는 말로 다할 수 없이 좋은 것을 보내 주셨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으로써 흡족하다고 할 수 있다.

 

 

3] 풍성한 회복

 

(1)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다(23).

 

그들에게 기쁨의 재료가 되는 것은 감사의 재료가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다(26).

 

그들은 우상을 찬양하지 않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자기들의 연애하는 자들이 준 값이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호 2: 11 -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위안물의 풍족이 우리에게 참으로 자비로운 것이 되는 때는

우리가 그들로 인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에게 감사를 드리게 될 때라는 것을 유의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값싸게 섬기지만, 그는 우리에게 온갖 비싼 향유물을 주신다.

 

우리가 부족을 경험한 뒤 하나님께서 풍족한 것으로 회복시켜 주실 때 그 즐거움은 배가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더 많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먹어 배를 불릴 때는 즐거움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주신 옥토를 인하여 여호와를 찬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 8: 10 -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2) 그들은 명예와 위로와 영적 혜택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다시 풍요로움을 주시고 그들로 흡족하게 하실 때 그들의 형편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자.

 

① 그들의 명성이 회복된다.

 

그들이 의무의 길로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이 자비의 길로 그들에게 돌아오실 때

그들이나 그들의 하나님이나 다 서로 신실치 못하다는 비난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될 것이다(19).

 

"이방인들은 너희 재난을 보고 기뻐하며 너희를 모욕했다그러나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다."

이것은 26, 27에도 되풀이된다.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그들이 다시는 그 좋은 땅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이 과거에는 그 땅을 항상 자랑했었다그러나 이제 다시 그들은 그것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명예를 건지는 행위를 하실 때 그것은 하나님의 명예에도 큰 보탬이 된다는 것을 주목하자.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은 일시적으로는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할 수도 있으나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 죄를 올바로 부끄러워한다면 하나님께로서 얻는 우리 영광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② 그들의 기쁨이 소생한다(23).

 

"땅이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땅의 모든 거민아, 즐거워하라." (22).

 

풍족할 때는 대개 기쁜 법이다.

 

그러나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이 많아지는 자들보다 하나님의 은총의 기쁨을 마음에 주시는 자들이 더 즐겁다.

 

시 4: 7 -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그러나 특히 기뻐하고 즐거워할 자는 시온의 자녀들이다(23).

 

그들은 시온에서 슬퍼하였다(15). 그러므로 그들은 특히 시온에서 기뻐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참회의 눈물로 씨 뿌리는 자들은 정녕 감사의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온의 자녀들은 금식에서 다른 사람들의 인도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쁨에서도 남들의 인도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게 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선물로 받는 좋은 것들을 기뻐한다기보다

그런 것을 주시는 선하신 손길과 그들에게 돌아오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인하여 기뻐할 것이다.

 

그 좋은 것들은 언약으로 그들에게 속한 것들이며 은총의 보증과 징표이다.

 

추수의 기쁨과 잔치의 즐거움은 하나님에게서 끝이 나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기 위해서는 후히 주시는 그의 모든 선물 속에서 그의 사랑을 맛보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최고 선이시며 우리에게 대한 모든 선의 근원이신 까닭이다.

 

③ 그들의 믿음은 견고하게 되고 증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현세적 자비가 베풀어지고

그것이 우리의 영적 이익이 되며

신체의 풍족함이 영혼의 원수가 되긴커녕 도리어 우리 영혼을 번영시키는 친구가 될 때라야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비가 된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약속이 나온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다" (27).

 

호 11: 9 -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며 그 외에 다른 자가 없다는 것을 밝힌다.

 

왜냐하면 상하게 하시는 이도 그요 낫게 하시는 이도 그며

빛과 어두움을 지으시는 이도 그며 복과 화를 주시는 이도 그이신 때문이다.

 

신 32: 39 -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사 45: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동시에 이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증명하고 있다.

그는 자기 백성과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이요 그들을 낳은 아버지시다.

 

아버지로서 그는 그들이 범죄할 때 징계하시며 그들이 회개할 때 위로해 주신다.

에스겔의 예언에서 경고의 후렴같이 따라 다니는 것은

"내가 너희에게 이러이러한 재앙을 내리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표현이다.

 

여기서도 같은 표현이 여러 약속들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너희는 먹게 될 것이며 풍족히 먹고 흡족하게 될 것이며 기뻐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그렇게 하여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자비로운 섭리든 고통스런 섭리든 우리는 모든 섭리를 통해

하나님과의 면식이 성장하도록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주목하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돌아오면 그들에게 풍요한 평강과 기쁨을 주시며

그 때에는 그들의 회개를 기뻐하신다는 것과 그들의 죄를 사하셨다는 것도 깨닫게 하신다.

 

그는 여느 때처럼 그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깨닫게 하신다.

그들은 동일한 언약 속으로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때문이다.

 

그들은 동일한 교제 속으로 용납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 가운데 계시며 그들의 부르는 모든 일로 그들에게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다.

해가 태양계 중심에 있듯, 그는 그들 가운데 계셔서 그 땅에 두루 자비로운 영향을 미치신다.

 

(3) 짐승도 이 일에 동참하여 편안하게 될 것이다.

 

"땅이여, 두려워 말라, 들짐승들아(21) 두려워 말지어다(22)."

 

짐승들은 인간의 죄로 인해 고통을 받았고 인간과 벌이시는 하나님의 쟁변 때문에 수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인간의 회개와 하나님의 화해로 인해 형편이 나아질 것이다.

 

아니, 짐승들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다고 한다(흠정역, 1: 20). 이제 그 부르짖음은 응답되었다.

 

그들은 두려워 말라는 지시를 받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능과 생리의 욕구대로 풍족히 먹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불쌍히 여기시면서 가축도 눈여겨 보셨다.

 

욘 4: 11 -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하시니라.

 

이는 가축들도 금식했기 때문이다.

 

욘 3: 8 -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만물의 보상받는 때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 때에는 허무한 데 굴복하고 그 아래서 탄식하는 피조물이 비록 영광스러운 기쁨에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롬 8: 21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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