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사회학과 교수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청소년 2백 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하라는 숙제였습니다. 조사서는 거의 동일하였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전혀 미래가 없다. 너무 가난하여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25년이 지났습니다. 이 학교에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히 이 연구 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학생들에게 2백 명의 청소년들이 25년이 지난 현재 모습을 조사하여 오라는 숙제를 냈습니다. 조사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동안 죽은 아이와 이사 간 아이가 20명이었습니다. 나머지 180명중에서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변호사, 의사와 사업가 등 상류층이 많았습니다.
교수는 놀라서 그들을 한 사람씩 만나 직접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습니다. '여 선생님 한 분이 계셨지요. 그분은우리를 사랑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비결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1.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남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사랑하면 됩니다. 마음에 죄책감이나 염려가 찾아들면 두려워집니다. 그러면 '내가 기도가 부족하구나, 믿음이 약하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신앙이 약해지고 사랑이 식어지면 염려나 원망이 찾아들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별로 큰 문제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불안하고 무슨 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약해졌다는 증거이고 바로 기도가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교수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이 제일 많은 세대가 20-30대 젊은 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득 수준별로 보면 200만원 미만이 우울증 지수가 가장 높았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 20대 청년이 60대 할머니를 지하철에서 기침 한다고 폭행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요즘 우리 시대는 가장 발달하고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가장 큰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숨어 지내던 어느 카타콤 벽면에는 이런 글이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 천국을 경험합니다.” 예배를 못 드리게 해서 지하 동굴 묘지에 들어갔는데, 거기서도 서로 사랑함으로 두려움없이 천국을 경험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은 형벌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사랑 없는 마음에 두려움이 자리 잡습니다.
2. 사랑 안에 미움이 없습니다.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린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면 미움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이상하게 미운 사람이 없어집니다. 누가 나에게 잘못을 하고 안 좋은 일을 하여도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거칠어져 있고 황폐되어 있으면 좋은 것도 싫고, 나쁜 것은 더 싫어지고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납니다. 어떤 사람이 미워지면, 이렇게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라고 이해하시면 맞습니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베스트셀러인 <만남은 지겹고 이별은 지쳤다>라는 책에 읽었습니다. "성격 차이 때문에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모자라서 이별하는 것이다." 사랑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잠깐 동안 멀리 하는 사람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축복을 불러 오는 것이고 미움은 마귀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역사하는 가정이 되려면 부지런히 미워하고 싸우면 됩니다. 서로 원망하고 비난하고 잘못된 점만 부추기며 성질을 돋우면 마귀가 귀신을 끌고 떼거리로 올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이해하고 손해 보기에 힘쓰고 자신을 낮추고 사랑하기에 힘쓰는 곳에는 마귀가 얼씬도 못 합니다.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 그 크신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목숨까지 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요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3. 사랑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빌레몬서 1: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사도 바울이 빌레몬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빌레몬은 사유 노예를 소유할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남을 멸시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다른 성도들에게 큰 사랑을 베풂으로써 평신도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였습니다. 빌레몬의 헌신과 사랑이 많은 성도들을 기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을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사랑은 해피(행복) 바이러스인 것입니다.
별명이 키다리 아저씨이고 전봇대라고 불렸던 농구선수(205cm) 한기범씨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이분은 희망나눔재단을 만들어서 심장병 어린이에게 수술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와 남동생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진단해 보니 그것은 유전병으로 자신도 100% 심장병으로 죽는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받고 심장병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하게 되었고 매년 4-5명씩 수술을 받게 해 주어서 지금까지 50명에게 새생명을 안겨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하는 말이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은 아픈 아이들을 위해 사랑을 나눌 때였다고 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쁨을 나눔을 통해서 얻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편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게 하십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쁨으로 갚아주십니다.
한 목사님의 글에서 읽었습니다.
좋은 교회는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면제될 것을 약속하는 교회가 아니라, 아플 때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 예배에 몇 명이 나왔는가" 하는 통계보다 "오늘 누구 얼굴이 안 보이네" 하며 한 사람의 안위에 관심 갖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맺어진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사랑의 가족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교회가 되는 길입니다.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며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십니다.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 때문에 즐거워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졸업식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도 끄십시오. 그러면 주위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첫발을 떼는 손자, 손녀의 손을 잡아 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순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IT 업계의 선두주자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자신이 인생에서 이룬 그 어떤 큰 업적이나 화려한 성취도 손자, 손녀의 손을 잡아 주는 기쁨과 맞바꿀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4. 사랑 안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우리는 사랑하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랑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바로 사랑하며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요일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사랑의 열매가 맺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서로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미국의 한 목사님의 설교에 나온 내용입니다.
"왜 거지는 천국에 가고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까? 거지가 가난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이 아닙니다. 부자도 그가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이 아닙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놓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각자 자기에게 익숙한 곳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은 나사로가 속한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로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그가 본래 속한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부자는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했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지옥에 간 것은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죽었을 때 그는 그가 본래 속한 곳으로 갔을 뿐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지를 확실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자기 사랑, 자기 욕심에 묶여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 지 확실히 점검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부자처럼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의 시작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루시게 하셨습니다. 내가 죽어야 십자가에 예수님이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 주셨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목사님은 “사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 가장 숭고한 것이며, 사랑으로 우리는 천국의 모습에 가장 근접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서로 사랑하심으로 마음의 천국과 가정의 천국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