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울릉도에서 목회할 때입니다. 저와 아내는 부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천기태집사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울릉도 간령교회에 선교 봉사로 오셔서 알게 된 분이었습니다. 이번에 은퇴 앞두고 자서전을 내신다고 자신과 관련한 글을 보내 달라고 하셨습니다. 부부 교사이셨던 두 분이 안방을 내어주고 자신들은 작은방에서 잔다고 하셔서 사양을 했지만 결국은 안방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 승용차까지 내 주셔서 부산 여행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멀리 울릉도에서 나왔다고 사랑과 정성으로 대접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속에서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고, 스승이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살아야 할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자신이 죽으셔야 됨을 아셨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 때 겸손해집니다. 의사로부터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이 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만약에 6개월 밖에 못 산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는다면 우리의 생각과 삶의 자세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그때가 마귀가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마귀는 이렇게 생각을 통해서 사람들을 조종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이 들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지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자칫하면 세상이 주는 생각, 즉 마귀가 불어넣어 주는 생각에 붙들려서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은 의심, 두려움, 미움, 원망, 신경질, 탐욕, 교만 등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가치는 믿음, 평안, 겸손, 사랑, 만족, 용서, 화평, 온유, 감사, 인내 등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가치가 아니라 마귀의 가치를 따르지 않는지 늘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배신자인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팔아 먹을 가룟 유다도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을 철저하게 인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자기의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하게 아버지의 일을 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아셨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다가 다시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아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이것을 알 때 참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이라도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나를 힘들게 하는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비난하지 말고 기도해 주십시오. 마귀에게 붙들린 불쌍한 영혼입니다.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와 복이 임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구속의 징표로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요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유대인의 풍속에는 보통 식사 전에 손님의 발을 씻어 주는 법인데, 이 때에는 식사 도중에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친히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차림은 종이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종의 자리로 내려가셔서 섬길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강해지고 높아지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이 가져야 하고 높은 권세를 얻어야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낮아지시고 섬기는 자세로 사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낮아진 자리,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93세의 나이에도 부인 로절린 여사(91세)와 함께 사랑의 집짓기에 참여해서 일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한 신문에 났습니다. 카터 전대통령은 14개국에 다니면서 4300여 채의 집을 짓는 것을 도왔다고 합니다. 대통령까지 하신 분이 낮아진 마음으로 섬기니까 더욱 귀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삶이 건강의 비결인 것 같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출세했다고 합니다. 출세의 뜻은 세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서 구원 받는 것이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성공한 사람들입니까! 바로 우리 세상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가치관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요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님은 베드로의 발을 가장 나중에 씻으셨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의 발을 제일 늦게 씻어 준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삶의 원리입니다. 교회는 이런 곳입니다. 새신자가 가장 대접 받은 곳입니다. 먼저 믿는 사람들이 새로 온 성도들을사랑하며 섬겨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오래 다녔다고 텃세를 부린다면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주님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라고 하면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예수님의 발을 씻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행하심에는 겸손한 자세로 발을 씻어 주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속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것은 가룟 유다의 죄를 다른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다에게 은밀하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점을 배워야 합니다.주님은 가룟 유다의 죄를 드러내서 그를 비난 받게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은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의 흠이나 잘못이 있으면 파헤쳐서 온 세상에 떠벌려서 모욕을 주려고 합니다.
요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베드로가 죄로 인하여 어두워서 깨닫지 못하나 후에는 구원의 은총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으라이것은 내 몸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주시겠다고말씀하십니다. 떡을 떼어 주듯이 자신의 몸을 찢어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잔을 가지고 감사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몸이 된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또한 성만찬에 참여하는 제자들도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사랑함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요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모습을 보고 이해했느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부르니 너희 말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본을 보여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형제를 겸손히 섬기는 자가 하나님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8:4).
유명한 종교개혁자 쯔빙글리가 스위스의 산길을 걷다가 좁은 산길에서 두 마리의 염소를 보았는데 한 마리는 위로올라가려고 하고 또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좁은 길이라 두 마리가 다 오르고내려 갈 수 없었습니다. 서로 팽팽히 맞선다 싶은 순간, 놀라운일이 벌어졌습니다. 올라가려던 염소가 길가에 엎드렸고 그 위를 밟고 위에서 염소가 내려왔습니다. 그런 다음 엎드렸던 염소가 일어나 올라갔습니다. 이렇듯이 자신을낮추고 엎드리는 사람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사랑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손해 볼 줄 아는 것입니다. 손해 볼 줄 알고 양보 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랑을 아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면 아깝지 않습니다. 뭐든지 해 주고 싶습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하만민을 한 혈통으로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행17:26).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들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될 근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도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레19:18). 본래 우리 인간들은 한 혈통으로 창조된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안다면 서로 사랑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기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인도주의에 속하는 사랑이 아니고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성도의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표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요일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며 살기 위함입니다.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사도 요한은 우리가 사랑함은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그분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합니다. 사랑 받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