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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길(마태복음21:1-11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어느 나라의 왕자가 무심코 어떤 지역의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그 동네 사람들은 그 길을 왕자님이 지나가신 길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천 마리의 소가 그 길을 걸었어도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이제 그 길은 왕자님이 걸어가신 길이 된 것입니다. 하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우리가 따라 걸어야 할 길 새로운 길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시는 길은 세상의 길과는 반대되는 길입니다. 세상은 넓은 길로 가기를 좋아하지만 예수님은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높아지는 것을 좋아하기만 예수님은 낮아지는 길을 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1. 순종의 길이셨습니다.
마2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벳바게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 벳바게는 예루살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보내셨습니다.

마21: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나귀 빌릴 돈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냥 가서 나귀와 나귀 새끼를 풀어오라는 것입니다. 이런 심부름을 하라고 하면 아무리 주님이 하시는 명령이라도 그대로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하다가는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주님의 명령은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의 자세이며 일꾼의 자세입니다. 내가 가고 안 가는 것을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가 판단자가 됩니다. 자기가 결정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서 사람들이 신앙을 갖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다가 제자들에게 "오늘은 소풍가자." "어디로 갈까요." "감람산으로 가자."
예수님께서 산 밑에 도착하시더니 "너희들 역량껏 큼직큼직한 돌을 하나씩 골라라."
제자들은 묵직묵직한 돌을 하나씩 품에 안았습니다. 그런데 불평 많은 가롯 유다는 바둑알만한 것 두 개를 손에 들고 공기를 하면서 투덜투덜하면서 불평하면서 올라갔습니다. '소풍 가자고 그러더니 일 시킨다구.'
예수님께서 언덕 위에 올라가시더니 "얘들아 내려놓아라." 손을 번쩍 드시고 축사하시고 "아멘" 하고 나니까 가지고 온 돌멩이들이 몽땅 다 빵으로 변하고, 고기로 변하고 먹을 것으로 변했습니다.
"점심 먹자. 오늘은 자기가 가지고 온 것 자기가 먹기다. 다른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서는 안되느니라."
다른 제자들은 배가 부르도록 먹었는데 가룟 유다는 빵 부스러기 두 개를 손에 들고 이걸 가지고 점심을 때울 생각을 하니까 기가 찼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순종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마21: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만일 누가 왜 남의 나귀를 끌고 가느냐고 하면 ‘주가 쓰시겠다’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쓰신다고 하면 즉시 보낸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순종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필요하시다고 하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히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예수님도 아들이시면서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의 욕심이나 육신의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매순간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순종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희생해야 갈 수 있는 것이 순종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말씀하셨습니다.

2. 겸손의 길이셨습니다.
마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시온의 딸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이 새끼를 탔도다”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슥9:9에서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확실히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임하는 왕이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겸손은 ‘가난하여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해야 겸손합니다. 또 온유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다툼이 없어지는 길은 종의 자세로 낮아질 때에 가능합니다. 내가 낮아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면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다툼은 높아지려고 할 때에 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약 3Km가 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에는 항상 걸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나귀를 타고 들어가시려고 한다는 사실을 유의시켰습니다. 이것을 탄 왕이 없었던 점과, 세속적인 통치자들은 본래 전쟁과 승리의 상징인 말을 타고 입성한다고 하는 점과 비교하면 나귀는 '겸손'을 상징합니다. 나귀를 타신 메시야는 겸손과 섬김의 왕이며 이는 예수님이 참 메시야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마21: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이 가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었습니다. 안장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위에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상류층의 교통수단인 마차를 타지 못했습니다. 왕으로 입성하시는 주님은 너무 초라하게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던 정치적인 메시야는 강한 자로 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겸손의 왕으로 임하셨습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다(사55:8)고 하셨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사53: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21: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무리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 이방의 갈릴리입니다. 혈통이 온전한 곳이 유다이고 그 다음에 사마리아는 혼혈인들이 사는 곳이고 갈릴리는 이방 땅이었습니다. 나사렛을 붙였다는 것은 빈정거렸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나사렛 출신으로 겸손의 왕이 되셨습니다.

오만한 성품과 과음으로 군대에서 쫓겨난 젊은 장교가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었으나 실패했으며 이어서 한 사업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회개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이 젊은이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반 사병으로 입대, 새로운 군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장교가 됐고 소령이 됐으며 나중엔 부대 지휘관이 됐습니다. 그의 겸손하고 성숙한 인품이 알려져 링컨 대통령 밑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내다 나중에는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18대 미국 대통령인 그랜트 장군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만과 겸손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겸손의 길이셨습니다.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언 22:4).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6:3)”라고 하셨습니다. 부자 되거나 높아지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부자되면 교만해집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금송아지 숭배자가 됩니다. 그러다가 비참하게 그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지옥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낮아지는 겸손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3. 희생의 길이셨습니다.
마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많은 무리가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호산나라는 뜻은 “제발 구원하소서”입니다. 여기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구약에서 예언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무리들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주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마21: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온 성을 소동케 하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유월절 큰 명절을 지키기 위해 각 도시들에서 올라온 순례자의 무리가 약200-300만명 정도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혼잡한 생활 가운데서 메시야가 오셨다는 소식은 예루살렘을 극히 혼돈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정치적인 선동을 하시면 유다왕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정치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길은 자신을 희생하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욥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예수님께서 대속자가 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때가 되어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허물과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허물과 죄 때문에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영원한 지옥불에서 나를 건져 주시기 위해서 대신 피 흘려 죽으시기 위해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희생의 길이셨습니다. 대속의 길이셨습니다.

죽음이 '어떤 사람'을 찾아와서 “당신을 데려와 심판대 앞에 세우라는 명령을 받고 내가 왔다. 당신은 이제 죽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이 사람은 “아이고, 큰일 났네, 난 죽을 준비가 안 됐는데… 나를 좀 봐주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죽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안돼, 네가 지금 죽어서 심판대 앞에서야 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내가 온 것이다.”
“나는 죽는 것이 무섭습니다. 심판대 앞에 설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어쩌면 좋지요? 제발, 제발, 내게 며칠의 말미를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친구들에게 가서 그들이 나의 저승길에 동행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겠습니다. ”
“좋다. 며칠의 말미를 주겠지만,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말한 다음 죽음은 사라졌습니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이 사람은 그의 친구들을 찾아 갔습니다. 그들은 큰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돈 버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들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바쁘다. 당신과 농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다시 전에 함께 어울려서 놀던 친구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술집, 극장 및 각종 모임의 장소로 가서 그들에게 “내가 심판대 앞에 서서 답변을 해야 하는데, 누가 나와 함께 가서 나를 좀 도와주게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우리는 당신과 함께 갈 수 없소”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그의 친구들을 전부 만나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를 도우려고 해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이 사람은 주님을 찾았고, 주님이 그와 동행해주셨습니다.
A.W. 토저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들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것만이 타락한 영혼들을 구원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예수님은 구원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생명의 씨앗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생명의 표를 얻게 됩니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호13:14)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이루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대속의 주가 되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예수님을 통해서 주님의 순종의 삶, 겸손의 삶, 희생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교훈이 나의 생각이 되고 주님의 삶이 나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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