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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가치(눅23:39-49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십자가는 목걸이를 하거나 귀걸이로 사용하는 장식품으로만 생각 되서는 안됩니다. 십자가는 로마 시대의 사형틀입니다. 그것은 죽음이요 희생입니다. 아픔이요 고통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심으로 우리의 희망이 되셨습니다. 신학자 러셀 무어는 “십자가야말로 세상의 영광과 다른 영광, 우리 스스로 추구하는 영광과 다른 영광이 발견되는 장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이 땅의 영광과 다른 영원한 영광이 십자가에서 시작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종려주일이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간에 십자가의 가치를 확실히 깨닫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1. 십자가는 갈림길입니다.
눅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가 비방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했습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과 자기들을 십자가에서 죽지 않게 해 주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이 조건들은 거의 육신을 위한 것이며 땅에서 잘되기 위한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근본적인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눈만 가지고 예수님을 봅니다. 육신의 생각만 가지고 십자가를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지금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이 강도는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인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할 줄 모릅니다. 자신의 잘못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뉘우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까지도 원망하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 강도는 죽음 이후에 있을 심판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땅의 자신의 삶을 결산 받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육신의 것에 집착한 나머지 죽음 이후에 있는 하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그 날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눅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십자가에 달린 다른 강도는 영적인 세계를 보는 믿음의 눈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예수님을 비난하는 강도에게 어찌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질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릴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들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강도는 아주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이 사람은 죽음 앞에서 천국이 있음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라로 자신을 인도할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나라에 이르실 때에 자신도 같이 가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만나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거듭난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강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회개하는 그 강도에게 죄사함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로 그 강도의 죄를 씻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 강도는 죽음의 문을 통과해서 낙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천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죽음과 고통이 없는 천국에 이른 것입니다. 같은 날 두 강도가 죽었지만 그들의 가는 길은 달랐습니다. 지금 우리 인생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2. 십자가는 새로운 길입니다.
눅23: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낮 12시가 되었을 때에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와서 골고다의 언덕을 덮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리고 큰 지진이 나서 땅이 요동치며 흔들거렸습니다.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그 때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큰 소리로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십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던 기도였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아버지에 나라에 이른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아버지의 나라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이 계시는 천국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눅23: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그 때에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성전에 있던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넋을 잃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던 지성소를 가로 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져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의 대속하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새롭고 산 길'이 열렸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휘장이 예수님의 육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흘리신 피로 속죄함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고 찢겨지시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죽으심으로 휘장 가운데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은총입니다.

십자가의 용기라는 책에서 읽었습니다.
비행기가 예기치 못한 난기류로 공중에서 빙빙 돌면 철저한 무신론자도 무서워서 비명을 지른다고 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죽음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움은 단순히 육체적 소멸에 관한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심판에 대해 저항하며 외면하고자 애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방법을 따라 열심히 살아보지만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고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한 미국의 신학자는 “나라 전체가 정신과 의사의 침상 위에 몸을 올려놓고 있는 현실이다.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침몰되기 직전이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애틀랜타에서 한국계 여성 4명과 중국계 여성 2명 등 8명의 여성들이 백인 남성에 의해서 살해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코로나를 퍼뜨린 아시아계라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미국 언론은 증오 바이러스라고 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좀 먹는 두려움과 증오 바이러스입니다.

이 세상에는 문제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프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병원에 가면 환자들이 넘쳐납니다. 병을 고치는 의사도 아픈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 치유 받고 신령한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십자가를 통해서 열렸습니다.

3. 십자가는 구원의 길입니다.
눅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집행한 로마군 장교입니다. 이 장교가 모든 진행된 상황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다 진실이었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백부장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십자가는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는 곳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가장 처참한 고통의 현장입니다. 그럴 때에 죄의 몸이 죽고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됩니다. 고난의 순간들, 광야의 연단은 힘들고 어렵지만 그 낮아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주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에 영혼이 살아나는 거듭남의 축복이 시작됩니다.

코로나 19라고 하는 전염병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워하고ㅐ 있습니다. 그 두려움의 현장이 바로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는 회개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높아진 자리에는 십자가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병이 들거나 문제가 생겨서 고난을 당할 때, 두려움이 밀려올 때 사람들은 겸손히 십자가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땅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그것들이 십자가의 은총을 받게 하는구원의 길이 되는것입니다.

형을 속이고 도망갔다가 20년 만에 돌아오는 야곱의 마음에는 불안감이 가득했습니다. 형 에서가 군대를 이끌고 마중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이 괴롭고 불안해서 얍복강가에서 홀로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밤새도록 천사에게 매달렸습니다. 자기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씨름에서 야곱이 천사를 이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야곱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 씨름에서 하나님이 이기면 야곱은 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져 주신 것입니다. 야곱을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져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서 져 주신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너무 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보내셔서 우리의 허물과 죄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구원 사건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말씀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과거의 내 모습이나 지금까지의 내 모습은 중요치 않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십자가에서 흘리신 아들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케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자,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받을 공동 상속자입니다.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인생의 승리자 되시기를 축원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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