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는 감사로 시작합니다. 그 감사도 자기의 일이 형통하거나 기도의 응답 때문이 아니라 골로새 교인들의 성숙한 신앙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게 한 골로새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시고 우리도 그러한 참된 성도로 살아가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골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 때문에 감사한 첫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바른 믿음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그분과 바른 관계로 들어가게 하고, 그 믿음을 계속 사용하여 더 온전한 믿음으로 이르게 하는 복을 주십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반복적으로 믿음을 사용하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의 은혜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의 책에서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 혹은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도 믿음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센 세파를 거슬러 가지 못하고 쉽게 세상 앞에 무릎 꿇습니다. 현세에 마음을 모두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세상의 허망함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세상을 거슬러 가는 힘을 갖게 됩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신임하여 최고의 자리에 임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해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 틈이나 허물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 아니고는 고소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게 조서를 꾸미고 왕의 어인을 받아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열린창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고소하는 사람들이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을 열어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장차 그분은 우리 가운데 가장 연약하고 부정한 이들까지도 찬란하게 빛나는 불멸의 존재로 변화시키신다. 그때 우리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활력과 기쁨과 지혜와 사랑으로 끝없이 박동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은 예수 그리스도는 장차 우리를 이렇게 불멸의 존재로 빛나게 하실 분이십니다.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도 바울에게는 오직 예수님이 보배였습니다. 그의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예수님이 삶의 목적이고 이유였습니다. 바로 이것은 구원 받은 자의 삶입니다.
2. 다른 사람을 참되게 사랑해야 합니다.
골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들어가면 비로소 두 번째 단계인 '사랑'을 배웁니다. 우리가 제대로 믿는 자인지를 증명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참되게 사랑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기준입니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면 그 사람은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가 주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간 중요한 표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골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에바브라는 골로새교회가 성령 안에서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고 바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지니고 있던 사랑은 성령님께서 일깨워 준 것이었습니다(Vaughan).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는 사랑이 넘쳐납니다. 서로 아껴주고 칭찬해 주는 아름답고 따뜻한 분위기입니다. 허물이 보이면 기도해 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함께 도와줍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 있는 교회가 골로새교회였습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성도들간의 폐쇄적 사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교회 밖 이웃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면 이 사랑은 온 인류의 사랑이 될 것입니다. 사랑은 믿음과 긴밀하게 결합됩니다. 사랑은 믿음이 현실에서 열매가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일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 사랑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거룩한 것처럼 보여도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엄청나게 큰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나오는 따뜻하고 작은 사랑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알게 모르게 귀한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 사랑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좋아서 베푸는 것이요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시민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넌 할머니의 사연이 지난 25일 한 지역 커뮤니티에 게시글이 올라왔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시는데 중간쯤 갔을 때 빨간 신호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제보자는 할머니가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할머니와 함께 횡단보도 중앙에 서서 다음 보행자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리기로 했답니다.
그때 생소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차량들이 진행하라는 녹색 신호가 들어왔음에도 10여대의 차들은 그대로 정지선에 서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제보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까지 기다려 준 것입니다.
참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작은 사랑의 실천들이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3.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골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인하여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망'은 앞절의 '믿음', '사랑'과 밀접하게 결합됩니다. 이 소망은 하늘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산 결과 하늘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보상 즉 하늘의 축복에 관한 소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전합니다. 지금의 삶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비하면 너무 작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씀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에 쌓여 있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 살다가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육신의 장막은 무너질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위해서만 살지 않고 하늘에 쌓여 있는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야 합니다.
화종부 골로새서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위의 것, 하늘의 것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우리는 주님 계신 곳을 바라보며 거기 속한 것들을 소망해야 합니다. 위의 것을 찾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요즘 경제적으로 번성하면서 성도들이 하늘의 것을 잊어버리고 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하늘을 향하여 매달리는데, 요즘에는 인간의 삶이 편안해지다보니 별로 하늘을 향한 간절함이 없습니다. 이런 것이 평화와 번성의 때의 함정입니다. 세상 편하니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을 즐기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하기에 바쁩니다. 한마디로 타락하기 좋은 세상입니다. 잘 산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출세했다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좋은 것은 하늘의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어쩌면 코로나 19라고 하는 전염병은 우리 인간이 땅만 보지 말고 하늘의 향하여 눈을 들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 19 사망자가 지난 4월에 300만명이 넘어섰다고 영국 BBC 방송이 보도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가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이 땅의 삶만으로 우리 인생이 끝난다면 참으로 불행한 현실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잠깐이요 영원한 것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하늘의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나도 육신의 것은 끝이 있습니다. 아무리 높이 쌓아도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는 날이 있습니다. 영원한 권력이나 부자도, 영원한 인기도 없습니다. 영원한 세계는 우리 주 예수 안에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이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골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복음은 은혜를 깨닫게 합니다. 신앙은 은혜를 깨닫는데서 시작됩니다. 기독교는 진리의 말씀을 들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종교입니다.
또한 복음은 열매를 맺게 하고 자라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싹이 나고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생명이 있다면 범사에 복음의 열매를 나타나게 됩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면 신앙의 열매가 맺어지게 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최고의 성공은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과 교제하며 사는 것입니다. 천국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성공은 없습니다. 더 큰 기쁨과 자랑도 없습니다.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 가운데서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