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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창세기11:1-9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09|조회수0 목록 댓글 0

재미 칼럼니스트 김우영 작가가 쓴 <개미의 삶은 이제 그만…>이라는 글에 나온 내용으로 오늘 말씀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개미는 부지런함의 화신입니다. 그러나 유대주의 랍비들은 개미에게서 쓸 데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찾아내 교훈하고 있습니다. 개미는 한 철을 지내기 위해선 밀알 두 톨만 있어도 충분한데, 그것들은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 한없이 쌓아놓으려 합니다. 거기에 투자된 시간은 결국 낭비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미니멀 라이프’라는 것이 있습니다.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입니다. 물건을 줄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게 가짐으로써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1. 하늘까지 높아지려고 합니다.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노아의 후손들은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서 살기로 했습니다. 이 시날은 지금의 이라크입니다.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유역으로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큰 강이 있어서 농사짓기도 좋고 살기가 편해서 문명이 발달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새로운 곳으로 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당연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도시를 건설하는데 바빴습니다. 세상 일하는데 바빠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홍수심판의 교훈을 잊어버렸습니다.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당시에 벽돌을 찍는 기술이 개발 되었습니다. 건축을 하는 신기술이 개발된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술 개발을 합니다. 그전까지는 아마 초막이나 장막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벽돌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건축 재료로 풀이나 나무 대신에 진흙을 구어 만든 벽돌과 그 틈을 메우는 것으로 진흙 대신 역청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새로운 문명 세계로의 돌입을 의미합니다. 역청을 발라 쌓아 올린 진흙의 벽돌 구조물들은 놀랄 만큼 견고하여 수천 년을 지탱할 수 있다고 합니다. 3천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오늘날까지 지구라트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발견된 것만 해도 25개나 된다고 합니다.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살면서 차츰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성을 쌓고 대를 쌓아서 꼭대기가 하늘에 땋게 하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까지 높아지려는 인간의 교만함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 같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의 이 시대의 사람들의 끝없는 탐욕의 모습과 같습니다.

2. 자신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은 목적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마땅히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분을 높여야 합니다. 그런데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업적을 자랑하고 자기의 이름을 내기에 바빴습니다. 헛된 명예욕에 빠진 것입니다.

바벨론 나라에 느브갓네살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왕이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굉장히 커서 하늘 끝까지 닿았습니다. 잎사귀는 아름답고 열매는 굉장히 많아서 많은 사람들과 들짐승들과 새들의 먹이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순찰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 나무의 밑둥을 잘라버리게 합니다.
이 이상한 꿈 때문에 느브갓네살왕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신처럼 군림하던 왕이 꿈 하나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 꿈풀이를 못해서 염려하다가 다니엘로부터 해석을 듣게 됩니다. 그 거대한 나무는 왕 자신을 가리켰습니다. 하늘 끝까지 닿았지만 일순간에 잘려나가 밑둥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꿈을 꾸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느브갓네살 왕은 일순간에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서 7년 동안 산속에서 짐승처럼 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왕으로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숲속으로 쫓겨 다니면서 짐승처럼 살다보니,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망하려니까 한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날 평지의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은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도시, 높은 빌딩, 기술 발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명이 발달하여 번성할수록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들의 이름 내기에 바빴습니다. 자신들이 유명해지기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이 탐욕과 권력욕에 빠진 것입니다. 삶의 주인이 자기가 된 것입니다. 우상 중에서 가장 못된 우상이 자기우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인 됨을 정면으로 거부한 행위였습니다.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라는 책에 보니까 인본주의 시대에는 "탐욕이 성장의 원동력이며 선한 힘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소유하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탐욕을 억제하던 규율들을 없애버렸다"고 했습니다. 인본주의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더 많이 가지는 것만 중요하다고 합니다. 욕심이 성장의 힘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치열한 경쟁속으로 몰아 넣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 남이 못 누리는 것을 얻고자 끊임없이 욕심내게 합니다.

부자들의 기본적인 원칙 2가지
​하나. 돈은 꼭 필요한 곳에만 쓴다.
​둘. 번돈의 일부는 반드시 저축한다.

돈을 모으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 5가지
​1)신용카드를 많이 사용, 그런데 카드는 내 수입과 전혀 다른 돈이다.
​2)남들이 계산하는 꼴을 못 본다.
​3.필요한 게 있으면 사야지 직성이 풀린다.
​4.오늘 쓰고 내일 아끼면 된다고 생각한다.
​5.평생 돈을 벌 수 있다고 착각한다.

3. 하나님이 간섭하셨습니다.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당시 사람들이 뭉쳐서 하는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치 못하였습니다. 한 족속이고 언어도 하나면 선한 일을 하면 좋겠는데, 그들이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들이 악했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씨앗도 한 종류만 있는 것보다 다양한 종류의 씨앗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세계화가 되고, 언어가 통일되어 하나가 될수록 세상은 악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시골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가 더 악하고 바벨탑들이 더 많습니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우리가 내려가자고 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서 심방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려오시는 분이며,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들이 신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그들의 언어를 혼잡게 해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하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온 지면에 흩어 놓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성 쌓는 것을 그쳤습니다.

바벨탑은 사람들의 교만함이 만들어낸 죄악의 문화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의 욕심에 의존하여 거대한 문명을 건설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쾌락과 번영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 없이 얼마나 잘 하나 보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인 건물이나 숫자에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살기보다는 좋은 집, 좋은 직장, 부자로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바벨탑 문화에 빠진 것입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사람들이 세상에서 찾는 행복은 처음에는 손에 잡히지만 금방 파랑새가 되어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찾는 행복은 믿음 생활을 할 때에 손 안으로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세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하늘까지 높아지려고 했던 인간의 교만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이름을 내려고 안달인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강림하심으로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거나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한계성을 가진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는 온전할 수 없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귀의 올무에서 해방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단단히 각오를 해야겠습니다. 내 욕심대로 세상을 살지 않고 주님 중심으로 살기로 결단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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