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의 유익(시편119:65-72절) 우리나라 SK구단에서 뛰고 있는 한 야구 선수가 캐나다가 집에 있다가 한국에 간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너 바보야, 그 위험한 나라에 왜 가려고 하느냐고 했답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괜찮다고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더 안전하고 캐나다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더 많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고난은 당할 때는 힘들지만 그것을 잘 극복하면 오히려 축복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오늘은 고난이 주는 유익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탕자의 비유 렘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고난 가운데서 깨달은 것이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한하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스라엘이 진멸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악에서 용서받고 심판에서 구원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 때문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고난 가운데서 더욱 절실히 깨달아집니다. 렘3: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예레미야는 매일 아침 시간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아침마다 하나님께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아침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 했던 것이 예레미야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의 현실은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아버지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능력자이십니다. 이렇게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오는 고난은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인정하고 신뢰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도구가 바로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처럼 이 코로나19라는 고난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에 의지하여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이 물러가고 평안이 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2. 신앙의 인격자가 되게 합니다.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의 훈련을 통과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 시편 기자도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으로 새로워졌습니다.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고난은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는 데에 유익이 됩니다. 고난은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고난을 통해 신앙 인격은 다듬어지고 순종하는 자로 변화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고난당함이 유익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편안할 때보다 고난당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 잘 나갈 때는 설교를 들어도, 성경을 보아도 별로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순간에는 다릅니다. 고난을 당할 때에는 기도하게 되고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어도 은혜가 되고 성경을 읽으면 감동이 됩니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오래 전, 영국의 한 영적 지도자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다가 심한 폭풍을 만나 배가 몹시도 흔들리게 되자 사람들은 배의 갑판에 누워 신음하고 토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승객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노신사가 평온한 모습으로 찬송을 조용히 부르는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이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두렵지 않으신가요?”그랬더니 “두렵지 않습니다.”하더랍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자기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자기는 딸만 둘인데 큰 딸은 어렸을 적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갔고 둘째는 뉴욕에 살고 있다고 하면서 지금 그 둘째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이 배가 무사히 도착하면 미국에 있는 둘째를 만날 것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렇게 보고 싶은 천국에 있는 큰 딸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없다고 하더랍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서 겸손해졌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자기의 주장, 욕심, 자존심 등을 내려놓게 합니다. 그러므로 분쟁이 사라지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런 면에서 고난은 사람의 인격을 온전하게 합니다. 3.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을 도울 수 있게 합니다. 고후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하나님은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십니다. 어떤 고난과 시험이 닥쳐도 우리는 찬송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찾아와 주시고 위로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고난은 다른 사람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로하며 도와줄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게 합니다. 고난은 고난당한 자들을 위로하는 자격증을 얻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한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아홉 살 때 어머니, 열여덟살 때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거의 정신이상자였으며 두 아들도 그의 품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참가했다가 친구들의 죽음을 무수히 목도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치에 나섰으나 연거푸 낙선의 고통을 겪었으며 그의 인생은 온통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세월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항상 청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또한 주인이 되고 싶지도 않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한 존재다” 이 사람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온갖 수모와 고난을 통과했기 때문에 노예를 해방시키는 놀라운 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새벽기도 시간에 살펴보고 있는 요셉도 고난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기근에서 구원하게 되었니다. 17살에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갔고, 10년 정도를 죽도록 충성한 보디발의 집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난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축복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요셉이 13년 정도의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되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연단시켜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합니다. 고난은 문제가 아니라 훈련입니다. 고난은 기회이며, 또 다른 훈련과 축복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이루어 가는 통로입니다. 고난은 광야이며 과정이지, 결코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고난이 올 때, 염려와 불안에 휩싸이지 말아야 합니다.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셉처럼 신앙의 인격자로 든든하게 세워져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귀중품은 은행의 대여금고에 보관하면 안전하듯이 우리가 안전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우리에게 손을 댈수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은행이 안전하듯이 우리도 그곳에서 안전합니다.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손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미쁘신 창조주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이시여! 고난이 닥치든 기쁨이 찾아오는, 상황이 어떻든 간에 저는 하나님께 저를 의탁합니다"라고 말씀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만큼 안전할 것입니다. 그곳보다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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