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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십자가만 자랑하리라(갈6:6-16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09|조회수0 목록 댓글 0

한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이분은 군대 갈 때까지 어머니 때문에 교회를 다녀 주었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주님의 십자가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군대에 갔습니다. 군대에서 몸이 아파 수술을 받는데 부분 마취를 해서 정신은 멀쩡했답니다. 그때, 이상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 셋이 한 사람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맞는 사람이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때리는 사람들은 로마 군인들이었습니다. 화가 나서 어떻게 예수님을 저렇게 괴롭힐 수 있어! 하고 로마 군인들에게 대들었는데, 그 군인이 바로 자신이더랍니다. 3명의 군인의 모습이 전부다 자신의 모습이었답니다. 너무 놀라서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답니다.
그가 찔림은 너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너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네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네가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그 말씀을 듣고 펑펑 울었답니다. 그 수술대 위에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거듭남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어머니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주었고, 교회를 다녀 주었는데 그 순간에 예수님이 믿어졌답니다. 그 이후로는 교회를 다녀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를 빼버리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겠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1.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만 가지고는 안되고 할례까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십자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유대주의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적당히 믿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믿음이 육신을 위한 신앙입니다.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육체를 자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자랑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교만에 빠졌습니다. 육체적인 것을 신뢰하는 거짓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오늘 이 시대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중요성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모릅니다. 그 죄값으로 영원토록 지옥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나그네 인생임을 모르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영광은 잠깐입니다.

2. 십자가의 은혜로 영원한 것을 심어야 합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칫하면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속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구원 받지 못했는데 교회에 다니니까 당연히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의 날에 많은 사람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대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불법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자기의 욕심대로 행하였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기의 영광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 때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심판대에서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잘 심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여러 가지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은사들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물이 아니라 그 열매를 가지고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선물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열매는 열심히 경작해서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힘써야 합니다. 인생 농사를 잘 지어야 합니다.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타락한 육체의 본성을 따라 생활한다면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됩니다. 이 땅을 떠날 때는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심판 때에 지옥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반대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자기의 삶을 성령께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맺는 삶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이것은 한 인격속에 있는 것들이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말씀은 마지막 추수의 때가 지연되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얼마 후에 재림하신다면 담대하게 신앙생활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실 날이 지연되고 세상은 갈수록 악해지면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낙심할 수 있습니다. 낙심은 권투 선수의 가드가 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심판의 날, 하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해서 거두는 그날이 반드시 옵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시험이 있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들이나 어려운 환경에 굴복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담대하게 진리의 말씀을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3.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 땅의 모든 자랑거리는 십자가 앞에서면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랑은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뿐이었습니다. 결코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높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거듭난 성도의 모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세상이 보기에 십자가는 연약함과 불행의 상징이었지만(고전 1:25) 그러나 거듭난 바울에게는 최고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도 한때 세상의 영광들을 추구하며 육신적인 성공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못 박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제는 오직 주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세상'은 자기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불신앙적인 세계를 말합니다. 그곳은 악한 영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세상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과 생명의 길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할례도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죄와 사망에서, 마귀의 종살이에서 건져 줍니다. 오직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희생입니다. 죄인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이 희생과 사랑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무거운 짊을 짊어지고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입니다.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유행이나 쾌락, 탐욕이나 이기적인 삶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삶을 묵묵히 따라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오래 참고 인내해야 하는 고난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결코 적당히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자기’라고 하는 우상 때문에 발생합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 더 높아지려고 하는 교만함, 쾌락을 쫓아 사는 육신의 정욕 등입니다. 이런 삶은 예수님의 길, 십자가의 길과는 정 반대는 삶입니다.
왜 싸웁니까? 왜 원망하고 불평합니까? 왜 낙심하고 좌절하겠습니까! 아직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들은 이런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날마다 십자가로 죽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우리는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예수님의 목숨값으로 새생명을 얻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세상 사람은 돈이나 권세를 자랑할지라도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성도의 능력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성도의 기쁨도 십자가에 있습니다. 성도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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