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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출19:1-6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1|조회수0 목록 댓글 0

1977년 미 항공우주국(NASA)은 태양계의 끝을 탐사하기 위해 우주선 보이저 1호를 띄웠습니다. 35년이 지난 2012년 우주선은 태양계 끝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어서 지구로 전송하였습니다. 그 사진에 보면 수많은 별들 사이로 우리가 사는 지구는 보일 듯 말 듯한 하나의 점이었습니다. 그 사진에 보니까 정말 지구는 먼지에 불과했습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그 사진을 보고 깊은 성찰에 잠기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천문 물리학자들은 무한한 우주의 모든 별들이 물리적 조화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수많은 별들이 하나로 흐르게 하는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힘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입니다.

 

 

1. 세상이 다 내것이다.

출19:5~6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집과 논밭을 다 자기 이름으로 해 놓고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들이 다 차지하고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인들은 말이라도 인정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본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의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오늘 하루를 내 욕망이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 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간과 내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역시 재물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재물을 사용함에 있어서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면 손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과 은혜를 받아 물질을 써야 합니다.

 

 

대구에 있는 어떤 교회 청년부에서 매월 3일씩 덜더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덜 마시고, 더 구제한다! 덜 먹고, 더 선교한다! 덜 자고, 더 기도한다! 덜 놀고, 더 봉사한다! 덜 보고, 더 읽는다!”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운동입니다.

 

 

잠언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솔로몬은 독자들에게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적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지혜의 기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돈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인 되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삶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문덕에 사는 한 예비신자의 집에서 심방예배를 드렸습니다. 위암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계시는 분인데, 오권사님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예배를 드린 후에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냐고 했더니 감사헌금을 드리고 싶은데 내도 내느냐고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신 분이고,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감동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 농협에서 돈을 찾아다 놓았다고 했습니다. 중학교까지는 교회에 다녔는데, 그동안은 하나님을 잊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몸이 아파서 힘들 때 오권사님이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던 말씀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던 영혼이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2. 내 말을 잘 듣고 지켜라.

출19:5~6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모든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책에서 “왜 사람들이 TV에 나와서 황당한 일들을 자백하는지 아시나요? 아무도 들어 주지 않기 때문이었어요.”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기 말을 믿어주면 기뻐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잘 듣고 지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유는 히브리어로 ‘쎄굴라’인데, 특별한 기업, 보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면 하나님의 특별한 기업,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주인에 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볼때,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은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일꾼은 주인의 뜻을 알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일꾼이라도 주인의 말을 거역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좋은 일꾼이 아닙니다. 목사가 교회 일을 할 때도 어떤 성도가 좋으냐하면, 똑똑하고 잘난 성도가 아니라 목회자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잘 따라 주는 사람이 좋은 성도입니다. 자기 경험이나 지식을 앞세우며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은 교회의 좋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하는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잘 듣고 그 언약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가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눅6:5). 그런데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그물에 가득하도록 고기가 잡혔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잘 한 것이 바다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믿은 것입니다. 자기의 경험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자기의 삶의 현장에서, 평생을 해 오던 그물질하는 일에서도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한 것입니다. 자기의 경험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의지하였습니다. 그것이 기적을 체험하는 비결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실제 우리의 삶에서 믿는 자에게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3.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출19:5~6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선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게 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은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제사장은 라틴어 폰티팩스 - ‘다리 놓는 자’입니다. 대제사장은 폰티팩스 맥시무스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십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교량역할, 화해시키는 역할입니다. 원수 된 나라, 타락한 백성들을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입니다.

 

 

오이코스 전도 세미나에서 배운 것이 있는데, 우리 각 사람에게는 8-15명 정도의 관계를 맺는 가족이나 이웃, 친구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전도 되는 것이 75%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도를 할 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우리 주변에 있는 가족, 친지, 이웃, 친구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고, 밥도 가끔 사 주고 전도를 하면 가장 효과적인 전도를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되려면 구별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범사에 구별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범사에 세상 사람과 똑 같습니다. 의식주가 문화의 기본인데, 옷 입는 것이 똑같습니다. 옷가지고 성도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또한 먹는 것 가지고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주거 문화로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을 봐도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성도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 비해서 안 되는 것이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과 사회생활을 잘 하는 것과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은 많은데, 사회는 부정과 부패, 자살과 우울증, 차별과 탐욕 등이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교인들의 삶이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즉 이것은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는 드리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뜻을 따르기 보다는 육신적인 욕심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예배가 예배당 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찬송도 잘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데, 교회 문밖에 나가서는 하나님과 이별하고 세상과 짝하여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이 주인, 밖에서는 내가 주인 되지는 않습니까? 성경이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되어져서 몸으로 알도록 훈련되어야 합니다.

 

 

지난 월요일 예심전도 전국지부장 모임에 참석하는 날에 서울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 아저씨에게 전도를 하려고 교회에 다녀봤느냐고 물으니 정색을 하며 자기에게 교회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하는데, 교회에서 두 번이나 교인들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청년 때까지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는데, 그런 일을 두 번이 겪고 나니까 교회에 가기 싫어졌다고 합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인정하지 못하면,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자기에게 조금 손해가 되면 참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낮추고 겸손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의 증인, 제사장나라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이 사명은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내 가족들에게 해야 합니다. 내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족들에게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웃을 내 몸같이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이웃에게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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