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창1:1-5절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인사(축원)와 연결과서론(천천히 이해확인 반복 멈춤 한교훈 톤을낮게 관심과집중할 질문이나 예화 짧게)큐티
오늘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주제로 깨달음과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구호:주여!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오직 예수와 십자가만 선포-예수 영접 구원)
창조사업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분의 본성과 그분의 율법은 사랑이시다.
이는 과거에도 그러하였고 미래에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신 분은 변하지 않으시며 “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창조력의 표시는 모두 무한하신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통치권에는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완전한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부조 33).
1-3 수단의 저장소(시 33:6 ,9)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그 말씀들은 천연계 가운데 그분의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삼라만상은 그분께서 당신의 목적에 쓰시려고 준비해 두신 수단의 저장소이다(편지 131, 1897 ).
1-31 창조
지구가 그 창조주의 손에서 나왔을 때는 아주 아름다웠다.
지구의 표면은 산과 언덕과 평원으로 규모있게 구분 되었으며
그 사이에 맑은 강과 아름다운 호수가 산재하였으며
그 언덕과 산들은 지금처럼 험준하거나 울퉁불퉁하지 않았으며
무시무시한 절벽과 무서운 깊은 구렁들이 있지 않았다.
지구의 뼈대가 되는 날카롭고 거친 바위 끝들은 비옥한 땅아래 매장되었으며
어느 곳에 가든지 청청한 수목들이 무성하였다.
거기에는 몸서리쳐지는 늪이나 불모의 사막이 없었다.
어느 곳을 향하든지 우아한 관목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눈을 기쁘게 하였다.
높은 산들을 덮은 나무들은 지금 있는 어떤 나무보다 더욱 장엄하였다.
공기는 더러운 병균에 오염되지 않았으므로 맑고 건강에 좋았다.
모든 풍경은 이 세상의 가장 자랑스러운 궁전에 장식된 정원보다 휠씬 더 아름다웠다.
천사의 무리들은 기쁨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으며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경이로운 일들을 즐거워하였다"(부조 44).
우주는 생명체들의 존재를 위하여 자체가 매우 정교하게 조정되어져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는 정해진 법칙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생명체가 사라질 수 있는 여러 가지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는 움직임이 강한 내부 물질을 지지하기에 단단한 지각(crust)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부에 용암의 움직임이 조금만 더 클 경우, 지각이 녹게 되어서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태양으로부터의 지구의 거리,
지구로부터의 달의 거리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 거리가 멀어져 버리면 지구의 온도가 차가워져서 얼어 죽게 되고
너무 가까워져 버리면 더워서 살지 못할 것입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공전과 자전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4개의 단어가 창세기와 신구약 전체를 이끌어 가는 전제가 됩니다. 그 4단어는 “태초에(빼러쉬트), 하나님(엘로힘)이, 천지를(에뜨 하솨마임 웨에트 하아렛츠), 창조하시니라(빠라)”입니다.
1. 태초에(빼레쉬트)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뻬레쉬트는 뻬(불분리전치사)와 레쉬트가 합쳐졌습니다. 여기에 뻬는 불분리 전치사로 레쉬트에 붙어서 특정한 시간을 가리킵니다. 레쉬트는 ‘우두머리’, ‘꼭대기’라는 의미로 리더십이라는 뜻입니다. 머리가 되시는 하나님 특정한 시간을 출발케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을 때, 거기에 공간이 만들어졌고, 아직 시간이 없을 때 그 공간 안에 시간이 흘러가는 시점을 우리나라 말로 태초에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처음으로 이 세상에 시간이 흘러가려고 하는 그 출발점이 ‘태초에’입니다. 한마디로 시간의 출발점이 ‘태초에’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90: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영원하시다는 것입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만들어 지기 전부터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던 세상에 모든 것들의 원료가 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창조입니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원료를 가지고 어떤 형태를 가진 것들을 만드는 것이 조성사역입니다. 예를 들면 쇠가 용광로에 녹여져 있을 때는 아직 형태가 없습니다. 만들어지기 전 재료인 녹여진 쇳물을 만든 것이 창조사역이고, 그 쇠를 가지고 낫이나 호미 등과 같은 어떤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을 조성사역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장은 히브리인들의 창조사역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창조사역에 대한 신앙고백이 무엇인지를 이해야 합니다. 산, 땅, 세계도 조성하시기 전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의 태초는 영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철두철미하게 시90:2절에 나오는 영원이라는 세계 가운데서 이 땅에 시간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줄 때가 바로 태초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시간을 만드셔서 흐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 때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시점입니다. 인간의 존재는 뻬레쉬트(태초에) 이후 문제입니다. 우리 인간의 영역은 이 창조 이후입니다.
요1: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에 나오는 태초에는 ‘빼레쉬트’가 아니라 ‘엔 아르케’로 시간의 문제와 관계없는 영원에 해당하는 태초에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는 영원이 시작되는 태초입니다. 그러므로 이 태초는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엔 아르케(영원은)는 신앙의 문제이고 과학이나 이성이 접근할 수 없는 영원속의 태초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 1절의 뻬레쉬트(태초에-시간은)는 과학 이성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과 과학은 다른 것입니다. 영원의 문제를 다룬 것은 신앙입니다. 신앙과 과학과 다투면 안됩니다. 과학은 계속해서 논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과학보다 신앙이 위에 있습니다. 영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창세기에 나오는 태초에(빼레쉬트)부터 시작되고, 여기서 이성도 시작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하나님을 분석할 수 없습니다. 영원은 과학자들의 소관이 아니고 영원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믿느냐 믿지 않느냐이지 이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은 오직 하나님 편에만 속한 단어입니다. 영원은 이성의 단어가 아니고 신앙의 단어입니다.
요일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든 만물이 만들어지는 그 태초에 예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은 것이 하나도 예수님이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영원한 태초에도 계셨고, 창세기 1장 1절의 시간이 시작되는 태초에도 계셨습니다.
이제는 창조사역에 대한 신앙고백이 확실하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어야 성경이 이해되어 집니다. 유대인들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에 대해서 일체의 의심이 없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그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믿어져야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이것이 믿어져야 성경이 이해가 됩니다.
2. 하나님(엘로힘)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에 이 엘로힘의 하나님이 32번 나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과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작부터 주체로서 말씀합니다.
인간의 한정된 시간으로는 하나님의 영원을 담을 수 없습니다. 시간은 영원 속에 하나의 점밖에 안되지만 영원은 우리의 믿음의 고백의 대상입니다. 시간이 영원을 담을 수 없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시간표 속에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시간이 영원을 경험했다고 할지라도 영원을 담을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구구단을 외운 초등학생이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구구단을 외우는 수준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대학교수의 학식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 초등학생이 자기의 이성으로 이해 안 된다고 대학교수가 틀렸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길어야 백년 조금 넘게 사는 우리 인간의 수준으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을 판단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시작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신 주인이라고 선포하는 것으로 성경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표현하는 것이 구약에 2250번 나옵니다. 이 엘로힘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쓰였고, 여기에 붙은 동사는 하나님의 권세와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할 때에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하고 있던 고대근동사회는 Chjasm(키아즘)이라고 하는 X자 형태의 언어구조가 있었습니다. 이 키아즘 구조로 쓰여진 수사법 구조 중에 하나가 주어가 힘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장음형복수’ 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장음형 복수(엘로힘)를 써서 하나님을 쓴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가) 소유권문제를 다루기 위함으로 전 우주가 하나님의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엘로힘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천하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엘로힘 하나님의 이름을 대할 때 모든 만물의 주인, 곧 자신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일체의 의심도 없이 물질과 재산, 모든 만물의 소유주 하나님이심을 철저하게 고백합니다. 그 하늘들과 그 땅을 엘로힘의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이정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나) 통치권문제를 강조합니다. 통치권이 모든 만물을 만드신 엘로힘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주어를 주어 자리에 있게 하면 성경이 보입니다. 우리의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관리자입니다. 잠시 정해진 시간만큼만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관리자이지 주인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영원한 왕이 되십니다. 생명, 시간, 만물의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엘로힘 하나님의 이름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3. 천지를(에뜨 하솨마임 웨에트 하아렛츠)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 말로는 ‘천지를’이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는 에뜨(대격 전치사-그)라는 말이 앞에 붙어 있습니다. 이 에뜨(그)는 뒤에 나오는 목적을 나타내는 천지를 수식해서 ‘그 하늘들을, 그 땅(지구)을’이라고 지정하여 특정한 목적과 의도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즉 특별한 의미를 가진 하늘들과 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그 특정한 것에 의도를 두신 것입니다. 한국말에는 그자가 빠져 버려서 하나님의 의도(목적)가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목적(의도)를 가지고 천지를 창조 하셨습니다.
학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히브리어로 에뜨(그)는 소유권과 통치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관리권이 주어져 있어서 청지라는 단어를 씁니다. 주체가 엘로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 하늘들과 그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창1: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문화명령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땅(지구)이 목적이 있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죄악으로 타락되어진 이 땅을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가 역사하는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기적의 현장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4. 창조하시니라(빠라).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빠라의 뜻은 본래 ‘자르다’라는 뜻입니다. 영원이 있었는데, 엘로힘 하나님이 영원을 칼로 자르는 순간부터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빠라를 히브리인들은 질서를 만들었다는 말로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철저하게 인정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하나님이 영원 속에 시간을 자르므로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고, 그 하늘들과 그 땅의 역사가 시작되도록 질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요, 절대적 창조행위를 의미합니다. ‘빠라’라고 하는 단어는 절대적 창조인데,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입니다.
창조과학회에 실린 어느 과학자의 글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우리의 얼굴은 28 겹의 종이처럼 얇은 피하 근육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 근육들은 우리가 250,000개의 표정을 지을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신들의 종 내에서 다른 개체와 잘 구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 매우 독특한 얼굴들을 가지고 있어서 70억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가 구별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의 눈은 컴퓨터화 된 어떠한 TV 회로 시스템보다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망막은 1억 2500만 개에 달하는 간상체(rods)와 추상체(cones)를 가지고 있는데, 간상체는 마치 빠른 속도의 흑백 필름 같고, 추상체는 8백만 개의 색깔들을 인식할 수 있는 좋은 칼라 필름과 같다고 합니다.
우리의 귀는 대개 30만개 이상의 소리 종류를 구분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생존하는 데에는 별 필요가 없지만, 음악을 감상하고 즐기기에 충분하다고 합니다. 이런 몇 가지만 보더라도 우리 인간이 얼마나 뛰어난 존재로 창조되었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의 출발인 태초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 모든 것을 만드셔서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질서 정연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것을 인정하고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