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 안에서 세상을 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능하면 긍정적이고 소망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며,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기적을 만들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오늘 말씀에 부정적인 요소가 세 가지가 나오는데, 첫째가 장소인데요 빈들입니다. 빈들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황량하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모든 수확이 다 끝나고 텅 비어 있는 빈 들판이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찾아보기가 힘든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시간적인 측면에서 날도 저물어간다는 것입니다. 황량한 빈들판에서 배는 고프고 희망이라고는 없는데, 날까지 저물어서 어두워 간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절망적입니다.
많은 가곡과 찬송가를 작곡한 음악가 현제명이 1922년 미국 유학길에 고향을 생각하며 지은 노래 ‘고향생각’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일 저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환경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바로 주님께 기도할 때이며, 그분에게 소망을 둘 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현실이 암담하고 어렵더라도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제자들의 처방책이 나옵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어른만 5천명이고,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합치면 2만명 가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빈들판이고 날은 저물어 가는데, 먹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각 동네로 흩어져서 사 먹든지 얻어먹든지 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아마 에렛츠’라고 하는 땅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라서 돈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주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자기들 먹을 것도 없는데, 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우리가 가서 이백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데나리온은 당시 쓰던 은전인데, 한 데나리온은 어른 일당 정도 되었습니다. 하루 일당 10만원을 잡으면 2천 만원 정도인데, 그 돈이 어디가 있어서 떡을 사다 먹일 수 있습니까? 라고 한 것입니다. 부정적인 환경의 세 번째는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떡을 사다 먹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장소적으로는 빈들이요, 시간적으로는 저물어 가고, 재정적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없는 부정적인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제자들의 생각에 이때에, 내가 돈만 많다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재벌이나 권력자가 있었으면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재벌도 권력자도 없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들 가난하고 연약한 땅의 백성들뿐입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별로 없고,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탐욕이나 교만함으로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은 살지 않았습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려고 하는 인정, 자기가 먹어야 하는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고 함께 나누어 먹으려고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기적은 바로 이러한 사랑의 마음, 서로를 생각할 줄 아는 인정이 있는 곳에 나타납니다.
2. 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알아보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내용은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알아보러 다닌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기 전에 벌써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무엇을 물으실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 주님의 마음을 알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전에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준비하면 좋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좋은 일꾼입니다. 그렇지 않고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주인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고 있는 사람이 충성된 일꾼입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 와서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인의 마음을 알고, 주인이 기뻐하시는 일을 성실하게 잘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겨우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이 잘 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가서 보라” 말씀하시니까, 단번에 돌아와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라고 보고 했습니다. 미리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2만 명에게 다 물어 보러 다녔으면 그것 조사하다가 날이 샜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제자들은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미리 파악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잔디 위에 앉게 하셨습니다. 기적은 이렇게 자리 앉아서 받을 준비를 할 때 일어납니다. 아마도 돈이 있거나 잘 나가는 사람들이면, 빈들판에 앉아 기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벌써 돈 가지고 사 먹으러 갔던지, 힘들게 빈들판에 와서 날이 저물도록 말씀을 듣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잔디 위에 앉아서 먹을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비록 현실은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빈들판이고 날은 저물어서 캄캄하고 먹을 것이라고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지만 그래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집에 가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서로 먼저 먹으려고 다투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타 먹겠다고 아우성이었으면 난장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모였던 사람들은 제자들의 지시에 따라 질서 있게 오십 명, 백 명 정도로 모여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서로를 생각하며 질서 있게 앉아서 주실 은혜를 사모할 때에 임합니다. 주님께서 전해주신 말씀으로 은혜를 충만히 받으니 날이 저물어 가고 빈들판이지만 그들의 마음에 서로 사랑함과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시키는 대로 오십명 백명씩 앉아서 주실 은혜를 기대한 것입니다.
날은 저물어 가고 빈들판인데, 더군다나 무엇을 사먹을 수 있는 가게도 없고 돈도 없는데 이렇게 모여 있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이만명이나 되는데 어디서 먹을 것을 낼 수가 있을까! 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강퍅해져서 부정적인 말이나 생각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기준이 돈이 되고 있고, 인간의 능력에 맞춰져서 판단하고 평가하다 보니 부정적인 견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전쟁 위기설, 경제 위기설 등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말과 뉴스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랑이 식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말씀의 은혜가 마음에 임하면 어떤 순간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현실은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마음에 믿음이 생기므로 긍정적이고 소망의 말을 합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서로 힘내서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용기를 심어주는 말을 합니다. 원망과 비난의 말이 아니라 감사와 위로의 말을 합니다. 바로 그런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은혜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기적, 주님의 은혜는 이런 마음, 사랑의 마음, 감사의 삶 가운데 임합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좋은 여건 속에 있어도 마음이 황폐하며, 주님의 은혜가 마음에 없으면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게 됩니다. 서로 비난하고 다투며 이기적이고 탐욕적이 됩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에 은혜, 사랑이 식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욕망에 빠져서, 심령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가시밭, 돌짝밭, 가시밭이 되어 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의 은혜, 말씀의 축복이 마음에 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좋은밭이 되어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는 축복의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 가득 차게 거두게 하셨습니다.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여기서 세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헌신입니다. 가난한 소년이 자기가 먹으려고 싸온 도시락을 주님의 손에 드렸습니다. 자기의 것을 드리는 헌신이 있을 때에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자원함으로 드릴 때에 주님은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우리들의 작은 헌신이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기적은 큰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된다고 했습니다. 큰 강물도 처음에는 작은 옹달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 냅니다.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주님의 협조입니다. 어린 아이의 헌신에 주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어린 아이에 헌신에 더해져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주님의 은혜는 사람들의 믿음과 헌신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반드시 먼저 우리들의 헌신,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협조하십니다.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앓던 여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 나와서 그 옷자락에 손을 댈 때에 주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그 여인을 힘들게 하던 혈루병이 그 근원까지 깨끗하게 치료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주님의 능력이 만나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순종입니다. 또한 제자들과 거기에 모인 백성들이 잘 한 것이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람들은 그것을 받기 위해 앉아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헌신과 주님의 협조, 제자들과 사람들의 순종이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보리떡 다섯 개’라는 말은 ‘가난한 집’이란 의미이고, ‘물고기 두 마리’라는 말은 억수로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적으로 봤을 때, 형편없이 가난한 어린 소년이 가져 온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를 두 마리를 통하여 주님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42-45 다 배불리 먹고 /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수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정도로 풍성한 이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 앞에서 사람의 숫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언제나 풍성하고 충만한 열매를 거두어들입니다. 여기서 열 두 바구니라는 말은 열두 제자를 역사적으로는 의미하고 있다고 합니다.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12제자가 나가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갈 때에 일어날 수 있는 열매에 대한 말씀입니다. 차게 거두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반드시 풍성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여기서 마가가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는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믿음의 말을 선포해야 합니다. 분명히 현실은 부정적인 상황이 가득하지만, 그러나 그곳에 주님이 계시는 것이 희망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능력입니다. 말씀으로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 12년 동안이나 힘들게 했던 혈루병을 낫게 했던 주님이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희망이 하나도 안 보이는 곳에도 하나님은 희망을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들어 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도 희망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시므로 범사에 감사하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